에메히카 조각글

슈님네 에메세이

느루네 by 느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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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웃긴 녀석. 과거의 그와 지금의 조각난 그를 떠올리며 드는 감상이었다.

자기 마음대로 선 따위 모른다는 듯 넘어오던 녀석과 비 맞은 강아지마냥 자신을 들여달라 보기만 하는 녀석은 결정적인 부분이 달랐지만, 그 또한 웃긴 것은 같았다. 자신을 사랑해달라, 선 안에 들여달라 온 몸으로 외치고 있는 주제에 입으로는 다른 말을 한다. 같은 붉은 눈으로, 같은 다정을 품고 나오는 말은 다르니 이것이 조각난 인류의 한계인 거겠지.

그럼에도 그 눈빛을 혼자 두지 못해 남아버린 것은, 어쩌면 충동적인 결정이었다. 막이 끝난 배우는 무대에서 퇴장해야 하건만 억지로 붙들어 옆에 놓으려는 꼴이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그것을 거부하지 못하고 남아버린 자신 또한 바보 같다. 그리 생각하며 어렵사리 열리는 입술을 보고 있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게. 그냥 옆에만 있어줘. 그 외에는 욕심내지 않을테니까. ...응?"

우습다. 이 모든게 한편의 삼류 연극 같았다. 세상을 구한 영웅의 일대기가 한 챕터 종료된 이후에 나온게 이따위 싸구려 로맨스라니, 책이었다면 혹평을 받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으리라. 하지만 마찬가지로 그 혹평을 내뱉을 마음이 들지 않는 것은 어째서일까. 나도 이미 이 연극에 빠져들었는지 모른다. 아니면, 눈부신 금발과 타오르는 듯한 눈동자가 그 옛날의 향수를 불러 일으키기 때문인지도.

어느쪽이든 영웅에게는 이득인 이야기였다. 포기하는 법을 모르는 다정한 녀석은 자신이 말로써 거절하기 전에는 계속 기다릴테니까. 그리고 자신이 쌓아놓은 벽을 열어주기를 바라며 비가 오든, 눈이 오든 계속 바라보고 있겠지. 그것이 문득 마음에 들지 않아 눈가를 찌푸렸다. 계속 눈치를 보던 세이드가 한걸음 내딛으려던 발을 움찔거린 것은 당연했다. 어정쩡한 자세로, 민망한 듯 제 뒷머리를 긁는다.

"미안해. 더 다가가지 않을게. 그냥...보는 것 정도는 괜찮을까?"

찌푸려진 눈가는 펴지지 않고, 되려 입에서 혀차는 소리를 내뱉었다. 그러나 그 외에 다른 단어를 만들어 내지는 않는다. 오랜 세월 제게 쌓인 독은 충분히 그를 상처입힐만한 말을 할 수 있는데도 그러지 않았다.

푸른 하늘, 일렁이는 초원, 눈부시게 쏟아지는 햇살....그리고 그것이 사람이 된 듯 웃던 너. 애정을 가득 담아 나를 보던 너. .....사랑을 담아 나를 보는 너.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국 그런 이야기다. 이녀석은 그녀석과 닮았고, 같은 혼을 가지고 있지만...결국 다른 녀석이라는게, 그럼에도 같은 사람이라는게 손을 놓지 못하게 했다. ...꼭, 그 날 길을 달리 걸었던 내가 너에게 보내던 눈빛 같아서.

그래서 하데스는 결국, 뚱한 얼굴로 손을 내밀고 마는 것이다. 그 날의 자신에게 손을 내밀듯이.

"미련한 녀석. 빨리 와라."

가넷과도 같은 붉은 눈이 놀라움과 행복에 젖어 크게 뜨이는 것이 보인다. 투명하고 맑아 자신이 비쳐보이는 눈동자를 오래 보기 어려워서 금세 고개를 돌렸다. "싫으면 거기 계속 서있던지."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자신에게 닿기까지 하나, 둘, 셋. 어쩔줄 몰라하며 손가락 끝을 붙잡는 모습이 우습다.

정말이지, 하나부터 열까지 우습지 않은 구석이 없는 영웅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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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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