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터리
송하운 7학년 과제
문제. 사람을 존경하고 존중한다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열정을 배제한다는 것을 뜻하는지 논하시오.
시험지를 받곤 한참을 종이가 뚫어져라 쳐다봤다. 톡. 톡. 톡. 잡은 필기구의 머리가 종이를 치는 소리가 났다. 하운의 가치관에 이건 문제조차 성립되지 않았다. 사람을 존경하고 존중한다는 것 자체가 그 사람이 가진 행복과 열정을 응원한다는 의미가 아니었나?
하운은 곧 답을 써내려갔다.
‘열정할 수 있다는 사실이 존경과 존중을 가지게 됩니다. 둘은 공존하는 개념입니다. 하나가 존재하는데 다른 하나가 사라질 순 없으니까요. 사람을 대하는 데에 존경하고 존중한다는 것은 내가 그리 받기를 원한다는 것이며, 그는 곧 관계의 이어짐을 의미합니다. 무언가가 이어질 때에는 열정이 없을 수 없습니다. 서로를 맞춰나가고자 배려하는 것조차 상대가 나에게, 내가 상대에게 보여주는 열정이고 신호입니다. 내가 사람을 존중하고 싶다면 그 사람이 보여주는 열정 또한 존중해야 마땅할 것이고 그렇기에…’
이 문제는 이상합니다.
차마 시험지에 마침표를 찍을 문장을 적을 수 없었던 하운은 ‘배제할 수 없습니다.’ 라는 문장으로 답을 대체했다. …이거 정말 우리한테 풀라고 낸 문제인거 맞겠지? 서너문제를 풀고 나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머리만 싸매다 다 지나갔네. 하다하다 지금부터는 풀기를 관두고 엎어져나 있을까 생각이 든 건 처음이었다.
마지막 문제. 권리를 수호한다는 것과 이익을 옹호한다는 것은 같은 뜻인지 이에 대해 논하시오.
겨우 끄트머리에 도착하면 또다시 난관에 봉착한다. ‘송하운’이라는 인간은 누군가의 권리를 수호한다는 것을 몰랐다. 그들은 이미 가지고 있었고 손에 쥐지 않았던 적이 없었던 개념이었으니까. 가지지 못했던 적이 없으니 상상할 수도 없다. 이익을 낳은 적이 없으니 옹호할 수도 없다. 다만 하나만은 알고 있다. 권리와 이익은 결코 같은 단어가 될 수 없다는 것. 누군가의 권리가 닿는 곳에는 다른 사람의 권리는 사라진다. 한 사람이 가지면 다른 한 사람이 잃게 되는, 그것이 이익이었다. 둘 모두가 동일한 선상에서 서로에게 주는 이익을 옹호하라면, 그래.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지. 그러나 그게 어디 쉽던가. 싫었다. 가해자에게는 잘못을 시인하지 않을 권리, 피해자에게는 가해자를 용서하지 않을 권리. 둘 중 하나만이 받아들여지고 대부분은 피해자에게 용서하지 않을 권리를 주지 않는다는 것이.
결국엔 책상에 머리를 박고 시험을 욕하고야 만다. 엉터리 문제. 엉터리 시험. 내가 엉터리인지 얘가 엉터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아무리 노려봐도 시험지의 문제는 바뀌지 않는다. 알고 있어도 그만두질 못하겠다. 누군가가 생각났다. 미안하다 혹은 잘못했다 사과 한번을 하지 않은 사람. 한 가족이 사라졌는데도 얼굴 들고 생글거리는 낯으로 다가온 남자가 떠오르자 무심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콰직.
“아….”
남은 시간을 보니 이제 겨우 5분. 필기구가 부서지자 하운은 마지막 문제에 답을 적지 못했다. 적지 않았다. 그저 부러진 짜리몽땅을 잡고 x 하나를 써놨을 뿐 그렇게 생각한 사유조차 없었다. 시험을 끝내는 종이 울리자마자 삼삼오오 아이들이 모여든다.
“너 열심히 적던데? 잘봤어?”
“그랬던가. 잘봤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고 그냥저냥.”
“헐. 이건 또 왜 부러졌냐? 답 모르겠다고 이거 막 부러트리고 그러면 안 돼~”
“다 시험 문제 탓이야.”
“어휴. 됐다. 시험도 끝났으니 가자!”
“응.”
어쩐지 침울해지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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