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 클라이스트 막내놈 백수 아님 충격

백업용 by 오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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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스트가의 사남이 본격적으로 ‘이런’ 사업에 뛰어든 건 아카데미를 졸업했다고 알려진 연도 보다 1년 후였다. 그 동안의 그의 행적은 묘연했으나, 떠돌아다니는 소문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기울어지는 차남과 삼남의 진영을 보고 눈치 빠르게 장남에게 줄을 댔다지, 뒤늦게 뛰어든 승계 경쟁이 사남에게 상냥했을 리가 없으니 그는 아마 장남이 시키는 모든 궂은일을 직접 굴러 해결했어야 했을 것이다. 아카데미를 졸업한 직후 아직 어린 애 티를 벗지 못했던 사남은 어느 순간 다시 양지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에는 완연히 성장해있었더랬다. 천성이 게으르고 권력과 재산에 관심 없다는 이야기가 많아 조금 깔보던 이들의 모골이 송연하도록. 때때로 장남의 명을 받은 그의 ‘작업’을 지켜보던 몇몇 이들은 남몰래 그런 생각들을 했다. 차남과 삼남을 직접 죽인 장본인이, 어쩌면 사남일지도 모르겠다고.

 

그 외에도 클라이스트가의 사남, 필릭스 에밋 클라이스트와 관련된 소문은 무척이나 무성했다. 그는 많이 말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클라이스트가의 공식 행사에서도 언제나 가주가 된 장남을 보필하거나 경호하느라 다른 사람과 별 말을 섞지 않았고, 그 외 물 밑 사업의 간부로서 역시 결코 자신의 말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희었던 머리를 검게 염색한 이후, 그의 인상은 제법 차가웠다. 그가 대부분의 시간 동안 짓고 있는 표정이란, 지루하고 관심없다는 표정이 전부였다.

 

멀리서 보던 그런 표정들을 가까이서 보는 건 생각보다 무척이나 곤란하고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더군다나 남자가 그 소문의 사남을 접대해야 하는 지위에 있을 때에는 더더욱 그랬다. 이번 만남은 남자에게 있어 앞으로 있을 사업의 성공을 결정짓는 중요한 자리였다. ‘그’ 클라이스트와 직통으로 유통을 뚫을 수만 있다면 자신이야 돈다발에 앉을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므로 남자는 지금 제 앞에서 나른히 무료함에 잠겨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겠는 사남을, 그러니까 클라이스트 무역 회사의 사장으로서 이곳에 참석한 필릭스 에밋 클라이스트에게 무조건 잘 보여야만 했다.

 

“드시죠.”

 

남자가 건넨 값비싼 시가를 필릭스는 표정 없이 훑었다. 고급스러운 칼로 시가 끝을 잘라 지포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여주자, 그는 말없이 시가를 가져가 제 긴 손가락 사이에 끼웠다. 한껏 들이킨 시가의 연기가 그의 폐를 가득 채웠다. 시간을 두고 내뱉는 숨이 독했다. 그러나 여전히 말이 없는 제 접대 상대의 반응에, 남자는 조금 초조해졌다.

 

“……이런 말씀 드리기에 조금은 재촉하는 것 같으나, 그 계약은…….”

“아.”

 

짧게 끊어지는 대답에, 남자는 잔뜩 긴장한 채로 등을 세웠다. 여전히 쇼파에 등을 기댄 채로 마치 제 사무실인 것 마냥 시가를 피우던 남자는 그런 남자를 보며 입꼬리만 올려 작게 웃었다.

 

“그건 걱정하지 마. 형님이 좋게 검토 중이라고 하셨거든. 별 일이 없다면 아마 통과되겠지.”

“…….”

 

존대를 깡그리 무시한 필릭스의 어투는 중요치도 않았다. 체면을 지키는 척 하지만 숨길 수 없는 환희가 지나가는 듯한 남자의 표정에, 필릭스의 얼굴에 다른 종류의 웃음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하얗고 긴 손가락 사이에 낀 시가를 다시금 입에 물고만 있더니, 이윽고 한참 남은 시가를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고급진 크리스탈 재떨이를 비벼 껐다. 여섯 개비에 평범한 사람이 꼬박 한 달을 일해야 벌 수 있는 값을 지닌 시가였다. 그럼에도 별 것 아니라는 듯 시가를 버리는 모습에서 그의 집안이 얼마나 많은 돈을 지니고 있는지를 짐작해 볼 수 있었다. 개중 대부분은 깨끗한 돈이 아니겠지만.

 

다시금 무료해져 자리를 뜨려는 필릭스를 가로막듯, 남자는 급하게 사람을 불러 준비된 것을 내오라 시켰다. 높으신 것들의 결정이란 참으로 갈대 같은 것이라, 지금 이런 긍정적인 대답을 받았다고 할지라도 다시 어떻게 일이 없던 것이 될지 몰랐다. 다시 오지 않으리라 확실할 수 있는, 클라이스트가의 직계를 만나는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뜻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테이블 위는 비싼 양주며 음식이 잔뜩 차려졌다. 하물며 흔히 이런 술놀이를 시중 드는 사람들 역시 남자와 필릭스의 주변에 채워졌다.

 

“약소하지만 감사의 의미로 준비했습니다. 바쁜 일이 없으면 잠시 편히 계시지요.”

“…….”

 

테이블 위에 고정되어 있던 필릭스의 시선이 서서히 남자에게로 옮겨갔다. 좀 전에 목격했던 조금의 미소조차 사라진 상태였다. 남자는 애써 등에 흐르는 식은땀을 무시했다. 대접을 준비하며 사남에 대해 살펴본 바, 그의 호불호를 전혀 파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 바닥에서 안 하는 사람을 찾기 더 힘든 마약을 극도로 혐오했으며, 음주가무 자체도 잘 즐기지 않았다. 그렇다고 색色을 밝히는 것도 아니었다. 다들 여자를 불러 놀 때면, 그만 혼자 뚱하니 자리를 지켰던 것이다. 보다 못한 누군가가 그에게 여자를 붙여주면, 여자만 그에게 달라붙고 그는 딱히 밀어내지도 가까이 당기지도 않았다. 그가 남색을 하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 역시 돌았지만, 역시 같았다. 그런 그가 유일하게 대놓고 희열을 드러내는 부분이 있다면…….

 

“우와, 이거 다 나를 위해 준비한 거야? 그런데 어쩌나. 나는 이런 것들을 별로 안 좋아해서.”

 

필릭스가 호박색 양주가 담긴 크리스탈 잔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마저 말을 이었다. 고개를 들어 마주한 남자의 눈에, 그가 눈을 휘어 눈웃음을 지어보였다.

 

“차라리 이런 걸 준비할 바엔, 마음대로 때려 부술 수 있는 것들을 준비해주지 그랬어.”

 

그랬다, 그는 누군가를 폭력에 그대로 노출하여 그 압도적인 힘 앞에서 굴복시킬 때에만 크게 웃었다. 말이 끝나자마자 필릭스가 그대로 크리스털 잔을 테이블 밖으로 밀었다. 와장창,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잔이 깨지며 진한 호박색 양주가 바닥에 엎질러졌다. 그 모습에 모두가 시선을 뺏긴 사이, 필릭스가 마저 씩 웃으며 테이블을 걷어 찼다. 아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시끄러운 소음과 난장판에, 모두가 벙찐 채 그 모습을 목격했다. 오로지 필릭스 혼자서만이 태평했다.

 

그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챙겼다. 수행하는 부하도 없이 혼자 온 꼴이 무서운 것이 없는 건지, 혹은 그 다운 것인지 잘 구별이 가지 않았다.

 

“돈 아깝게 다음에는 이런 짓 하지 마. 아, 그런데 밥상 엎는 건 좀 즐거웠어. 어렸을 때에도 버릇 없어진다고 못해봤거든.”

 

응접실을 나가기 전 필릭스가 가볍게 말을 던졌다. 그제서야 난장판 속에서 정신을 차린 남자는 그를 붙잡으려 해보았지만, 그가 쉬이 잡혀줄 것 같기도 않았다. 결국 포기한 남자는 망연자실하게 건물을 나가는 필릭스의 뒷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불안함이 엄습했다.

 

 

 

*

 

 

 

어우, 시가 매워서 혼났네. 몸에도 안 좋고 맛도 없는 걸 대체 왜 피우는 거지? 기침에 눈물까지 나올 뻔 했는데 겨우 참았잖아.

 

뒤 돌아서 혀에 남은 쓴 맛에 인상이란 인상은 다 찌푸리며 호들갑을 떠는 모습은 안타깝게도 그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은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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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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