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 바르셀로나!

올라, 바르셀로나! (6)

동오대만(완)

비행중 by 므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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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비행기표는?」

동오가 술이 덜 깨 뭉개진 발음으로 물었다. 대만은 동오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뭐, 변경해야지. 그래도 내일까지 변경 가능하니 다행이지.」

수수료는 좀 물어야겠지만. 대만은 아쉬워하며 눈살을 찡그렸다. 동오는 대만의 품으로 더 파고들었다. 이상한 장미 냄새 나. 동오가 오만상을 쓰면서 올려다봤다. 이 녀석은 짙은 꽃향기를 싫어하는군. 이렇게 오래 알고 지냈고, 여기에서 여러 모습을 보았는데도 여전히 새로이 알게 되는 것이 있다. 장난기가 발동한 대만은 동오의 양볼을 움켜잡고 이리저리 조물딱대며 말했다.

「그래? 그럼 난 무슨 향이 어울려?」

「으음?」

「나도 네가 무슨 향 어울리는지 말해줬잖아. 그러니까 너도 말해줘야지.」

조금 억지스럽지만 둘 다 술에 취해서 억지 논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동오는 미간을 좁히면서 진지하게 생각했다. 평소 향에 예민하지 않은 만큼 향수에도 관심이 없었던 터라 대만의 질문을 받자 조금 당황스러웠다. 향이…. 무슨 향이 있지? 동오는 살면서 맡은 냄새 중 가장 괜찮았던 것을 떠올리려고 애썼다. 바다 냄새는 이상하게 상상이 잘 안 갔고(심지어 대만은 인천 토박이었는데도. 어쩌면 동오가 강원도 토박이라 동해를 기준으로 상상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과 별개로 대만은 동해의 청록색 물빛과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조카의 베이비 파우더 향은 너무 낯간지러웠다. 벚꽃 냄새도 좋지. 하지만 정대만이라는 사람에게 가장 어울리는 향이라면…. 입술을 모으고 곰곰이 생각하던 동오가 확신이 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음, 비누 향…?」

「비누 향? 왜애?」

대만은 동오를 놀릴 양으로 집요하게 물었다. 이제 동오는 술기운에 점점 졸음이 몰려오고 있었다. 동오는 느리게 눈을 깜빡이면서도 대만과 눈을 맞추려고 애썼다. 눈에 띄게 느려진 목소리로 동오는 혼잣말하듯 웅얼거렸다.

「뭔가…. 깨끗하고…. 계속 맡고 싶고.」

동오는 말을 하다 말고 잠에 들었다. 제 가슴팍에 코를 묻고 잠든 애인을 내려다보며 대만은 새빨갛게 열이 몰린 얼굴을 식히려고 애를 썼다. 와, 최동오 이거 완전 여우 아냐. 대만은 왼쪽 팔을 빼내 천천히 부채질했다.

 

올라, 바르셀로나! (6)

 

「대만아, 일어나야지. 이제 아홉 시야.」

동오가 부드럽게 대만의 어깨를 흔들어 깨웠다. 으윽, 대만은 앓는 소리를 내면서 반쯤 눈을 떴다. 좁은 시야 사이로 옷을 챙겨 입는 동오와 그의 맨몸이 보였다. 오, 최동오가 나보다 먼저 일어날 줄이야. 오늘은 드디어 해가 서쪽에서 뜨려나. 대만은 부스스 일어나 까치집이 된 머리를 대충 정리했다. 동오가 편의점에서 사온 커피를 내밀면서 말했다.

「오늘 비행기표 예약 변경한 다음에 한국 돌아가야지.」

「아, 맞다.」

대만은 크게 하품을 하다가 급히 입을 가렸다. 아침부터 잘생긴 애인한테 입속을 보여줄 순 없지. 그러나 동오는 이미 대만의 가지런한 흰 이를 전부 본 참이었다. 유독 짙어 보이는 볼 안쪽과 혀도. 동오는 어쩐지 남사스러운 기분이 되어 고개를 돌렸다. 대만은 옷을 주워 입고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오늘은 몇 시까지 돌아가야 해?」

동오가 씻고 나온 대만의 앞에 샌드위치를 내밀면서 물었다. 이미 그는 손에 반밖에 남지 않은 샌드위치를 들고 있었다. 세수를 하고 나왔는데도 잠이 깰 기미가 없다. 눈도 덜 뜬 채 샌드위치를 우물거리다가 대만이 대꾸했다.

「내일 오전 열 시까지 집합하라고 했으니까…. 시차 생각하면 늦어도 저녁 즈음에는 타고 돌아가야지.」

「그럼 점심까지는 먹고 갈 수 있겠네?」

대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오가 대만의 캐리어를 정리하는 사이 대만은 옷을 갈아입고 단장을 한 다음 숙소를 정리했다. 뒤를 돌아보자 동오가 캐리어를 건넸다. 오, 땡큐. 그가 캐리어를 들고 현관으로 향하는 사이 동오는 두 사람의 더블팩을 메고 숙소의 불을 껐다.

그들은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동오의 하숙집으로 돌아갔다. 일정이 바뀌어 오늘 돌아가게 되었다고 전하자 하숙집 멤버들이 아쉬워하며 선물을 주섬주섬 챙겨주었다. 제니퍼가 내민 것은 카사 바트요 인근 초콜렛 가게에서 산 봉봉이었다. 제니퍼가 동오를 흘긋 보면서 말했다.

「거기 안 데려갔을 거 같아서 말이야. 내가 하나 챙겨뒀지.」

「아, 이 초콜렛 가게 얘기 몇 번 들었는데. 고마워. 비행기 타고 가다가 입이 심심할 때 먹으면 되겠다.」

대만은 빙긋 웃으며 더블팩 안에 초콜릿을 소중하게 챙겼다. 장난기가 발동한 대만은 동오의 옆구리를 찌르며 물었다.

「너는 선물 없냐?」

「어?」

「나 오늘 돌아갈 건데 준비한 선물 없냐고.」

대만이 집요한 눈빛으로 채근하자 동오는 당황해 안절부절못했다. 설마 애인이 떠나는데 굿바이 선물도 안 줄 건 아니지? 학생들이 대만의 편에 가세해 동오에게 압박을 주었다. 얼굴이 벌게진 동오는 대만의 귀에 대고 소심하게 속삭였다.

「향수…. 오늘 사줄게.」

와, 설마 어제 한 비누 향기 기억하고 하는 말은 아니겠지? 대만은 덩달아 얼굴이 새빨개져 침을 꼴깍 삼켰다. 주변에서 우우, 하고 야유하는 소리가 들렸다.

마지막 관광지는 사그라다 파밀리나 성당이었다. 바르셀로나에 왔으면 가우디의 걸작을 봐야 하지 않을까. 대만은 트램에 타 흥얼거리며 사그라다 파밀리나를 검색했다. 사그라다 파밀리나 성당은 특이하게도 시나 기업의 지원금 없이 관광 금액과 신자들의 기부금으로 공사가 진행 중이라고 한다. 과거에는 오로지 헌금에 의존해 공사를 하느라 돈이 떨어져 중단될 뻔한 적도 많았다고 한다. 다행히 기술의 발달과 관광 수입 증가로 속도가 빨라졌지만, 그래도 모든 부분이 완성되려면 몇 년은 더 필요하다고. 열심히 인터넷 기록을 뒤지던 대만이 동오를 돌아보며 말했다.

「사그라다 성당의 예상 완공 해가 가우디 서거 100주기라는데. 이거 역사적으로 꽤 중요한 거 아냐?」

「건축사로도 의미 있지만, 종교적 의의는 말할 것도 없지.」

「그럼 너 그때 다시 오겠네?」

「그러지 않을까?」

동오는 부모님을 떠올렸다. 그의 부모님 또한 동오 못지 않은 신자라 동오가 어린 시절엔 순례길을 2년 에 한 번씩 다녀오곤 했다. 두 분 다 나이를 먹어 순례를 끊은 지 오래 되었으니, 사그라다 성당이 완공되면 미사를 드리러 올 겸 오랜만에 스페인의 순례길을 걸으러 올 것이다.

동오는 가만히, 그 옆에서 같이 걷고 있을 정대만을 상상했다. 농구가 아무리 격정적이고 많은 파워를 요구하는 스포츠라고 하지만, 10분씩 총 40분 동안 힘을 발산하면 되는 운동 경기와 해가 질 때까지 덤덤하게 걸어가야 하는 순례는 결이 다르다. 아마 두 시간 만에 지쳐서 헉헉대지 않을까. 아무리 짧은 순례길이라도 완주하는 데에는 꼬박 일주일이 걸린다. 그럴려면 체력을 길러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대만과 함께 순례길을 걷는 상상만으로도 동오는 마음이 간질거리며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왁 같은 길을 걷고 싶다. 그의 옆에서 나란히 걷고 싶다. 앞으로도 계속. 한국에 돌아간 뒤로도, 그리고 그들이 그들의 부모님과 같은 나이가 된 뒤에도.

「무슨 상상해?」

대만이 불쑥 상념 사이로 끼어들며 물었다. 그들은 사그라다 성당 입장줄에 서 있었다. 대만은 손에 표 두 장을 들고 팔랑댔다. 줄은 줄어들 줄을 몰랐지만 유명한 성당을 본다는 데에 들뜬 대만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듯하다. 놀이동산이라도 놀러온 것 같은 얼굴을 보며 동오는 태연하게 대꾸했다.

「다음에 네가 스페인 왔을 땐 어디 갈까 했지.」

「비시즌에? 난 좋지. 다음에는 가우디의 다른 작품도 보러 가자.」

동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달이 되도록 동네 근처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는데, 대만 덕분에 다양한 곳을 돌아다니고 있다. 그가 아니었다면 가우디의 작품이 이곳에 모여 있다는 것도 몰랐으리라. 바르셀로나는 그의 생각보다 큰 도시였고, 다양한 재미가 있는 곳이었다. 대만이 있어서 그런 것인지는, 그가 돌아간 뒤에 알게 되겠지만.

의외로 입장 순서는 금방 찾아왔다. 대만은 의기양양하게 표를 내밀었다. 표를 검수하던 직원이 그들을 보다가 여행객이냐고 물었다. 대만은 친구를 만나러 왔다며 동오를 가리켰다. 굿 트립, 직원이 짧은 영어로 인사를 건네며 끄트머리를 잘라낸 표를 건넸다. 빨리 들어가자, 대만이 동오의 손목을 잡았다.

들어가자마자 보인 것은 거대한 창문이었다. 창문은 모두 스테인드글라스였다. 형형색색의 빛이 모든 방문객을 축복하듯 바닥에 뿌려졌다. 대만은 거대한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을 따라 위로 고개를 들었다가 아, 하고 탄성을 뱉었다.

「이제 보니 기둥이 나무였네.」

동오도 따라 고개를 들었다. 그의 표현대로 일자로 곧게 올라가던 기둥은 중간 지점에서 여러 갈래로 나뉘어졌다. 마치 나무 줄기에서 뻗어나온 가지처럼 보였다. 천장 근처의 동그란 창문에는 아무 장식이 없었다. 하얀 햇살이 곳곳에서 들어와 천장과 나뭇가지 기둥을 하얗게 비추었다. 마치 설원과 자작나무 같아 보였다. 상대적으로 어두운 아래와 달리 하얀 위쪽을 보고 있으면, 저곳에 천국이 있을 것 같다는 기분도 들었다.

그들은 손을 잡고 예배당으로 향했다. 그곳은 여느 성당과 다를 게 없었다. 작은 피아노와 주교가 올라가는 단, 그리고 신자를 위한 기다란 의자가 놓여 있었다. 강당 위에선 신부 한 분이 나지막하게 성경을 낭독하고 있었다. 가운데에는 십자가와 예수의 일생을 그린 스테인드 글라스가 신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의자에 나란히 앉아 한동안 말없이 정면을 쳐다봤다. 동오는 더블팩에서 떼온 묵주를 오른손으로 굴리며 왼손으로는 꼭 잡고 있는 대만이 오른손을 만지작거렸다. 아래로 내리고 있어 신부는 그 은은한 애정행각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예수님과 성모 마리아는 저 그림의 모습을 빌려 동오의 마음을 꿰뚫어보고 있을 것이다. 동오는 흘긋 대만을 보았다. 기도하는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지긋이 눈을 감고 있었지만 필경 자고 있는 것이리라. 어제 심란한 마음에 한참동안 자질 못했으니 졸릴 만도 하다. 오늘 아침에도 연신 하품을 하며 숙소를 나왔으니까.

동오는 대만의 오른쪽 손등을 문지르며, 천천히 묵주를 굴리며 기도했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거리를 극복하지 못하고 지치지 않도록 가호를 내려주세요.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이 사람을 사랑하겠습니다. 그리고 첫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기도를 마치고 눈을 뜨면 대만은 푹 잠들어 있었다. 동오는 대만이 눈을 뜰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아니, 졸고 있으면 깨워주지….」

대만이 머쓱해하며 뒷목을 꾹꾹 눌렀다. 그들은 30분이나 예배당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 탓에 비행기 시간이 조금 빠듯해져 바로 택시를 잡아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 라운지에는 다행히 식당이 꽤 많았다. 동오는 자신이 처음 스페인에 왔을 때 들어간 가게로 대만을 이끌었다. 가스파초와 살모레호를 흡읍하듯이 먹고, 코시도 마드리예뇨와 라보 데 토로까지 깔끔하게 해치웠다. 와, 기내식 안 먹어도 될 거 같아. 대만은 통통해진 배를 두드리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래도 빨리 온 덕분에 면세점을 둘러볼 시간 정도는 있었다. 대만은 각양각색의 가게를 구경하다가 향수 코너를 발견하자마자 동오를 질질 끌다시피하며 데려갔다. 와인만 있어서 초조했는데, 덕분에 동오에게 어울리는 향수를 사주겠다는 약속은 지킬 수 있게 되었다. 동오의 코에는 그게 그것처럼 느껴지는 다양한 머스크 향과 우디 향 속에서 대만은 열심히 냄새를 맡다가 하나를 집어들어 건넸다.

「맡아 봐. 이게 네 살 냄새에 잘 어울리겠다.」

동오는 시향지 끄트머리를 잡고 코에 바짝 붙여 냄새를 맡았다. 누가 봐도 맡는 법을 모르는 사람인지라 대만은 크게 웃고는 시범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시향지를 흔들어서 공중에 흩어진 냄새를 맡는 거야. 대만은 새 시향지를 꺼내 끄트머리에 두 방울 정도 떨어트린 다음 동오의 코 앞에서 흔들었다. 묵직하지만 버겁진 않은 향이 천천히 밀려왔다. 대만은 시향지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원래 향수라는 건 체향이랑 잘 어우러지는가가 가장 중요하거든. 그래서 원래는 몸에 직접 뿌려봐야 하는데…. 그렇게 하면 막 쓰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이게 내 체향이랑 잘 어울린다고?」

동오는 제 손목 안쪽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았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대만이 큭큭대며 웃었다.

「자기 체향을 아는 사람이 어디 있냐? 너는 체향이 옅은 편이라 너무 가벼운 거 쓰면 다 날아가서 안 남아. 조금 묵직한 게 나아.」

「너는 무슨 향수 쓰는데?」

「나? 나 안 쓰는데.」

대만이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대꾸했다. 동오는 짐짓 놀랐다. 향수에 대해 잘 알길래 몇 병씩 쟁여두고 쓰는 줄 알았는데. 그럼 대체 그 지식은 어디서 쌓은 거지. 의심스러운 눈초리에 대만이 어, 하면서 멋쩍게 웃었다.

「나도 사실 아버지께서 알려주셔서 조금 아는 거야. 어디 가서 자랑할 정도는 아니고…. 후배 중에 특이한 향수 쓰는 녀석이 있긴 했는데.」

「걔는 어떤 향수 썼는데.」

동오의 잠잠한 눈에 파장이 일었다. 어, 최동오 지금 질투한다. 대만이 동오의 잘생긴 코끝을 건드리며 킥킥댔다. 동오는 홧김에 대만의 목을 끌어안고 매달렸다. 아, 최동오 무겁다고오. 칭얼거리면서도 대만은 동오의 드문 질투를 온전히 받아주었다. 안 그렇게 생겨서는 은근 똥강아지 같은 구석이 있다니까. 대만은 실실 웃으며 동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도 언짢아할 줄 알았는데 동오는 의외로 순순히 쓰다듬당했다. 앞으로 이 녀석이 토라지면 머리를 쓰다듬어주면 되겠군. 대만은 쓸데없는 것을 학습했다.

두어 번 쓰다듬으니 동오는 슬그머니 품에서 나와 시향지를 들고 이 향 저 향 맡아보기 시작했다. 대만은 이미 동오를 위한 향수를 들고 카운터에 가서 결제했다. 카드를 받고 돌아서는데 동오가 눈앞에 불쑥 향수병을 내밀었다.

「그러면 넌 이거 써.」

「어떤 향인데?」

대만이 묻자 방금 막 향수를 뿌린 시향지를 같이 건넸다. 대만은 왼손에 향수병을 들고 오른손으로 시향지를 살살 흔들었다. 동오가 말한 <비누 향>이 무슨 느낌인지 알 것 같았다. 포근포근하게 감기는 느낌. 저 녀석 눈엔 내가 이런 사람이로 보이나. 180이 훌쩍 넘는 남자 운동선수에겐 영 어울리지 않는 향이지만, 그에게 자신이 이런 사람으로 느껴진다니 마음 한쪽이 간질간질하면서 내심 좋았다. 최동오 이 자식, 은근 콩깍지 심하잖냐.

대만의 허가가 떨어지자마자 동오는 향수를 결제하고 대만의 가방 안에 고이 넣어 놓았다. 몇 ml 이상부터 기내 반입이 안 되더라. 동오는 50ml가 조금 넘는 향수병을 보고 고민하다가 동오를 보았다.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는 것처럼 그는 지긋이 대만을 보고 있었다. 대만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고개만 갸웃거리다가 시선의 방향을 눈치챘고, 곧 웃음을 터트렸다. 알았어 알았어. 대만은 연신 사과하며 동오의 손에 그를 위한 향수병을 꼭 쥐여주었다. 동오는 귀한 선물이라도 받은 양 포장된 향수병을 살살 만지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 뿌려봐도 돼?」

「여긴 사람이 많으니까…. 잠시만.」

대만과 동오는 가게를 나와 화장실로 향했다. 다행히 안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웬일로 여기가 한산하네, 대만은 중얼거리며 세면대 앞에 섰다. 동오가 향수병을 까 대만에게 건넸다. 대만은 소매를 걷게 하고는 손목에 한 번씩 뿌려주었다.

「이렇게 손목에 묻히고 팔꿈치나 귓불처럼 혈관이 많이 지나가는 데에 톡톡 두드려. 분사할 때는 최대한 멀리에서 쏘고. 향수가 흐를 만큼 가까이에서 하면 안 돼.」

대만의 설명을 들으며 동오는 조심스럽게 팔꿈치와 귓불, 목 등에 향수 묻힌 손목을 톡톡 두드렸다. 대만은 동오의 향수를 다시 상자에 담아주었다.

「나는 허공에 분사한 다음 그 아래를 지나가는 식으로 쓰지만, 그건 아직 어려울 거 같고. 샤워한 직후에 보습하고 뿌리면 향이 오래 가. 향수병은 무조건 해가 들지 않고 습하지 않은 곳에 두어야 하고….」

「향수라는 거, 의외로 귀찮구나.」

예민하고 섬세하게 생겨선 손이 많이 가는 것을 싫어한다. 고등학생 때 건축과를 선택한 것도, 전선과 나사는 너무 복잡해서 다루다가 성질이 날 것 같다는 이유였다. 참 엉뚱한 녀석이야, 그래서 대만은 동오를 좋아하게 되었다. 마냥 어른스러워 보이고 웬만해서는 침착하지만, 그만큼 불쑥 튀어나오는 감정은 선명하고, 알게 모르게 특이한 구석이 있어서. 그것이 그가 추구하는 농구와도 닮아서 대만은 비슷한 듯 상반된 동오에게 끌렸다.

「그래도 배워야 나중에 나 만날 때 써먹지.」

귓가에 대고 속삭이니 또 쑥맥처럼 얼굴을 확 붉힌다. 아, 최동오 왜 이렇게 잘 놀라냐. 계속 놀리고 싶게. 대만은 속으로 웃으면서 동오가 사준 제 향수를 세면대 위에 올렸다. 동오가 의도를 모르고 눈을 굴리자 대만이 향수병을 검지로 나른하게 두드리며 재촉했다.

「뭐 해. 배운 대로 나한테도 뿌려줘야지.」

그제야 동오는 더듬거리며 상자를 풀어 향수병을 꺼냈다. 분사해 달라고 하면 너무 많이 뿌릴 것 같으니, 대만은 오랜만에 초보처럼 뿌려보기로 했다. 소매를 걷어 손목 안쪽을 내밀자 또 얼굴이 빨개진다. 저러다가 진짜 터질 거 같은데, 싶을 즈음에 동오가 손목에 향수를 뿌려주었다. 고급스러운 호텔에서 목욕하고 나왔을 때의 향이 퍼진다. 대만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천천히 몸에 두드린 다음 한 번 더 향을 맡았다. 한 번도 이런 포근한 향이 어울린다고 생각해본 적 없는데. 동오가 골라준 향수라 그런지 몰라도 향이 제법 마음에 들었다.

집에 있던 데오드란트 대신 한동안 이걸 써볼까. 고개를 들자 눈을 제대로 못 맞추고 있는 동오가 보인다. 이러면 또 놀리고 싶어지지. 대만은 일부로 그의 눈앞에 제 손목을 가져다대며 물었다.

「어때, 냄새 괜찮아?」

동오는 움찔거리며 조심스럽게 맡더니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얘는 대체 어쩌자고 나한테 이런 시련을 자꾸 내려주는 것인가. 동오는 다시 한숨을 쉬는 대신 멀뚱히 눈동자만 굴리는 대만을 꼭 끌어안았다. 목덜미에 코를 묻자 손목에서 나던 것과 같은 향이 느껴졌다. 항상 시원한 물냄새였는데, 지금은 갓 씻고 나와 이불에 몸을 던졌을 때와 같은 냄새가 난다. 제 하숙집 방 침대에서 골아떨어져 있던 그와 숙소에서 조심스럽게 안고 잔 몸이 떠오른다. 이걸 두고 어떻게 견디지, 그러나 동오는 그럭저럭 잘 지낼 것이다. 이 바르셀로나에 대만의 흔적이 묻어 있을 테니까.

「나 비시즌까지 어떻게 기다리지….」

그렇다고 헤어짐이 아쉬운 건 아니라서, 동오는 대만의 상체를 꼭 끌어안으며 투정을 부렸다. 몸을 부비는 척하면서 자신이 골라준 향수를 몸에 묻혀본다. 소심하게 내뱉은 본심에 대만이 큭큭, 낮게 웃으면서 따라 몸을 끌어안았다.

「그러게. 그치만 잘 지낼 거야. 그치?」

「응. 농구 열심히 해야지.」

「그래 그래. 난 최동오가 이래서 좋더라.」

「혹시 그립다고 울면 싫어할 거야?」

아니 얘는 대체 사고회로가 어떻게 짜여 있길래 이런 생각을 해. 대만은 살짝 어이가 없어서 동오의 볼을 꼬집었다. 젖살도 볼살도 없어서 잡히는 것도 없었다. 쳇, 알맹이랑 다르게 껍데기가 너무 어른스럽잖아. 대만은 속으로 투덜거리며 말했다.

「그래. 그럼 조금 그리워하고, 조금 칭얼대. 나 이제 일주일에 한 번은 인터넷 접속할 수 있을 테니까.」

「응. 괜찮아. 나는 매일 메일 보낼게. 너는 한 번만 답장해줘도 돼.」

「어이구, 이 콩깍지를 어찌하나.」

대만은 동오의 이마에 제 이마를 마주 대며 싱긋 웃었다. 화장실 안쪽으로 안내 음성이 흘러 들어왔다. 이제 정말로 비행기를 타러 가야 하는 순간이 왔다. 대만은 동오의 손목을 잡고 화장실을 나와 게이트로 향했다.

수속을 이미 마친 상태였기에 그대로 비행기를 타고 떠나기만 하면 된다. 대만은 게이트 앞에서 다시 동오를 끌어안았다. 그의 더블팩에는 스페인에서 산 조개 모양 키링이 달려 있었다. 그날 바닷가 노점상에서 산 기념품이다. 그들은 등을 두어 번 토닥이곤 멀어졌다.

「한국 무사히 들어가면 연락해.」

「응. 너도 꼭 받아야 해.」

「밤을 새서라도 받을게.」

「야 그건 솔직히 좀 오바다.」

대만은 푸스스 웃고는 게이트 안으로 사라졌다. 동오는 오랫동안 대만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비행기가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통유리로 대만을 태운 비행기가 이륙해 새파란 하늘에 점이 되어 사라질 때까지, 계속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서운하다기보다는 후련하고 시원했다. 우성과 헤어질 때나 졸업을 할 때도 이렇게 산뜻한 느낌은 아니었는데. 그제야 동오는 자신이 기대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단순히 헤어진 게 아니라, 다음을 그리고 있기 때문에 시원한 거라고. 그래서 전혀 외롭지 않다고.

동오는 이제, 바르셀로나를 더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훈련이 끝나자마자 대만은 지하에 있는 컴퓨터실로 향했다. 국가대표 선수들이라고 속세와 완전히 연을 끊고 살지는 않는다. 일주일에 한 번, 딱 한 시간 동안 인터넷을 쓰거나 통화를 할 수 있다. 이날은 집요한 눈치 싸움이 벌어진다. 대체로는 고참이 먼저 좋은 자리를 선점하지만, 남자 농구팀은 선선히 막내 정대만에게 1등 자리를 양보해주었다.

아직 컴퓨터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번 주도 정대만이 1등이다. 대만은 인터넷을 열자마자 메일함에 접속했다. 스팸과 몇몇 친구들의 메시지 사이로, 매일 같은 시간에 전송된 일곱 개의 메일이 눈에 띄었다. 정직하고 정갈하게, 매일 밤 10시에 날아온 메일, 최동오. 대만은 흐뭇하게 웃으며 맨 밑에 있는 메일을 열었다.

 

보고 싶은 대만이에게

그 첫마디에 대만은 다시 바르셀로나로 돌아간다. 그 어느 때보다 더웠던 스페인의 10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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