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Knows

옹수의 상뱅 by 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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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음소리가 들렸다. 번잡한 번화가의 대로변이었다. 승용차 한 대가 끼어들어 버스가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으며 놀랐는지 커다란 경적소리를 냈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교복 입은 학생들이 배를 잡고 웃었다. 연신 사과를 남발하며 바쁜 걸음 하는 정장 입은 사내가 식은땀을 흘리며 핸드폰을 귀에 꼭 붙인 채로 곁을 지나갔다. 박병찬은 검지로 귓구멍을 후볐다. 걸음을 멈춘 건, 의도적인 행동은 아니었다. 환청에 가까운 울음소리에 감정적으로 동요한 것도 아니다. 다만 울음소리가 들렸고 무의식적으로 걸음을 멈췄을 뿐이다. 박병찬은 걸음을 한 발자국 뒤로 물렀다. 나란히 서있는 고층 건물 사이의 골목을 보기 위해서다. 마땅한 흡연 장소를 찾지 못해 숨어드는 직장인들의 흔적이 골목부터 고스란했다. 담배꽁초 몇 개가 나뒹굴었고, 내용물이 빈 카페용 테이크아웃 컵이 구석에 쌓여있고, 바닥엔 침을 뱉어 생긴 것이 분명한 얼룩이 있었다. 박병찬은 눈알을 굴려 정면을 보았다. 골목의 안쪽에 열 살 남짓한 남자 아이가 주저앉아 울고 있었다. 작은 손으로 얼굴을 푹 가린 채, 어깨를 흔들며 작은 소리로 흐느꼈다. 퍽 애처로운 광경이었다. 박병찬은 교복 바지에 쑤셔 넣은 진단서를 구겨 쥐었다. 어쩌다 저런 구석에서 울고 있는지, 소년을 향한 연민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박병찬은 자신이 직접 그에게 다가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괜찮은지 물어 볼만한 여유가 없었다. 매정해진 마음을 질책할 기력도 없는 박병찬은 멈춰 선 자신의 등 뒤로 아이 따위 발견하지 못한 채 걸어 나가는 사람들처럼 고개를 틀었다. 도대체 이 한 낮에 초등학생 쯤 되어 보이는 녀석이 저런 곳에서 울고 있는 거람. 마침 중학교 수업이 마칠 시간이다. 병원 때문에 조퇴한 고등학생인 박병찬의 주위엔 부근 중학교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눈에 띄었다. 박병찬은 세 발자국 나아간 걸음을 멈췄다. 나이와 상관없이 타인을 착취하는 행동으로 하여금 본인의 우월을 느끼는 녀석들은 반드시 있어 왔다. 어린 초등학생을 골목길로 불러 푼돈을 뺏는 중학생은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다. 박병찬은 한숨을 옅게 흘렸다. 본인의 억하심정 하나만으로 울고 있는 아이를 외면한 스스로가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정작 박병찬이 겪게 된 절망의 현실도 어린 박병찬의 고통을 외면한 어른들 때문이 아니던가. 박병찬은 서둘러 몸을 돌려 몇 발자국 뒤의 골목길 안으로 튀듯이 들어갔다. 그러나 그곳에 더 이상 우는 아이는 없었다. 놀란 박병찬이 눈을 커다랗게 떴다. 보이는 건, 가장 구석에 서서 담배를 물고, 마흔 쯤 되어 보이는 성인 남자 두 명 뿐이었다. 다급한 박병찬의 등장에 두 사람도 적잖게 놀란 모양이다. 그들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아직 멍한 박병찬을 향해 ‘무슨 일이라도?’ 물었다. 박병찬은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혹시 여기 초등학생 한 명이 울고 있지 않았어요?”

“응? 언제.”

“방금. 진짜 방금이요.”

“우리 10분 전부터 여기 있었는데, 없었어요.”

그런가요, 박병찬은 민망함에 뒤통수를 긁었다. 제가 잘못 봤나 봐요, 고개를 꾸벅 숙이고 박병찬은 어리둥절한 그대로 골목을 나왔다. 분명 있었는데, 생각하던 박병찬은 헛웃음과 함께 주머니에 말아 둔 진단서를 근처 쓰레기통에 내던졌다. 본인의 처지에 빚어 본 환상이라 생각하니 조소뿐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심하게, 중얼거리며 박병찬은 다시 걸었다. 발걸음이 무거웠다.

GOD KNOWS

 

 

불과 1년 전만 해도 신은 존재조차 불가사의한 일종의 관념이었다. 종교인과 비종교인의 갑론을박은 각자 나름의 타당성이 있다지만, 무엇 하나 넓게는 우주 좁게는 인간을 관장하는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길은 없었다. 박병찬은 초등학생 때 같은 반 친구가 떡볶이를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회유에 교회를 몇 달 다녀 본 일도, 날 좋은 가을 조부모님을 따라 산 속 절에 가는 일을 즐기기도 했지만, 굳이 따지자면 무신론자였다. 젊고 건강한 박병찬은 매우 훌륭한 성실함으로 본인의 일상을 유지해나갔고, 기질처럼 타고난 긍정적인 성격과 현재에 몰두하는 집중력 덕분이었다. 종교나, 신, 우주 같은 광활하고 한 개인의 삶 상위에 있을 미지의 영역을 깊게 생각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예 그러한 분야에 대해 무관심한 태도를 유지하는 건 아니었다. 박병찬은 쉬는 날이면 곧잘 독서를 즐겼기 때문에, 독서 후 찾아오는 허무함과 외로움이 뒤섞인 여운 또한 즐겼다. 아주 잠시간은 고상한 철학들을 머릿속에 깊이 고찰했다. 그러나 박병찬은 천성이 스포츠 인이었다. 여가에 즐긴 어렵고도 복잡 미묘한 사고는 순간이었다. 농구 코트 위를 농구화 신은 발로 누비며 공을 튀길 땐, 어떤 사념도 들지 않았다. 그리고 그 시간들이 박병찬의 삶 대부분을 차지했다.

대학 강의실에 앉아 교수가 들어오길 기다리는 박병찬 앞에 앉은 학생 둘이 이마를 맞대 진지한 대화를 하는 소리가, 박병찬의 귀에까지 닿았다.

“내가 신이라면 오늘 휴강되기를, 바랄 거야.”

“한 번 진지하게 빌어 봐. 혹시 알아? 네가 신일지.”

박병찬은 턱을 괸 채, 강의실 앞문을 응시했다. 시간이 되자 어김없이 교수가 들어오고, 박병찬 앞자리에 앉은 학생 둘은 각자 눈을 마주치며 키득거려 웃었다.

불과 1년 전의 일이다. 이제 전 세계의 누구도 신의 존재를 부정하지 못한다. 과학적으로 완벽한 증명을 성공해냈기 때문이 아니다. 일전 없었던 신기한 현상이, 인류 전체의 경험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 날은 박병찬도 기억하고 있다. 한 여름의 낮이었다. 박병찬은 땀에 젖은 몸을 뒤척이며 본가의 거실에 누워 막 낮잠에 빠져든 참이었다. 꿈을 꿨다. 온통 흰 색으로 빛나는 공간에서 박병찬은 목소리를 들었다. 듣기만 했을 뿐인데 돌연 눈물이 치밀 정도로 존귀한 목소리였다. 그렇게 인식되었다. 그 목소리는, 분명 박병찬의 귓가를 감동적으로 울렸는데 도통 남성인지 여성인지 노인인지 아이인지 만큼은 구분할 수 없었다. 심지어 목소리가 말하는 언어가 영어인지, 불어인지, 한국어인지조차 불분명했으나 박병찬은 전부 알아들을 수 있었다. 잠에서 깬 박병찬은 기묘한 꿈을 꾼 까닭에 잠시간 현실감을 찾을 수 없었다. 이것이 한 낮의 의미 없는 꿈이 아니었음을 깨달은 건 그다지 늦지 않았다. 나 방금 이상한 꿈을 꿨어, 라고 박병찬의 모친이 거실 소파에 앉아 중얼거렸다. 바닥에 누워 배를 까고 있던 박병찬 역시 몽롱한 그대로 눈을 꿈뻑이다 ‘나도.’ 대답한 것이다. 꿈을 꾼 건, 박병찬 모자만 겪은 일이 아니었다. 동시다발적으로 꿈에 대한 증언이 쏟아졌다. 한국에 국한 되지 않았고, 동아시아에 국한되지 않았다. 지구란 행성에 존재하는 인류 전체가 겪은 일인 것이다. 이례적인 현상에 언론과 SNS는 종일 시끄러웠다. 고릿적 종말론부터 허무맹랑한 외계인의 지구 정복을 위한 인류 최면 사태 가설까지, 사람들은 이 압도적이고 설명 불가능한 현상을 각자의 상상력으로 메꾸기 위해 무던한 애를 썼다. 단체들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본인이 신이라 사칭하는 이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으며 편의대로 해석 된 꿈 속 계시가 허접한 찌라시로 돌았다. 사회는 유례없는 혼란 속에서도 제 기능을 잃진 않았다. 어찌되었든, 인류에게 내린 계시는 정확히 세 가지였다. 박병찬은 이만큼은 혼동 없이 기억하고 있다.

첫 번째, 인류의 열 두 명이 신의 권능을 받게 될 것.

두 번째, 신의 권능이란 맹목적 상상의 실현을 가능케 한다는 것.

세 번째, 권능을 받은 자들의 신체엔 성흔이 존재한다는 것.

하여간 이러한 계시에 각국의 종교적 인사들은 본인이 계시를 받은 열둘의 신 중 하나임을 설파했다. 그러나 실제로 신이 세상에 모습을 보였을 때, 경악할 수밖에 없던 것이다.

실시간 방송 플랫폼에 갓 열일곱 살이 된 일본인 남학생이 방송을 켰다. 그는 초췌하고 피로한 안색이었고, 더벅머리 아래 광대가 도드라지고 뺨이 푹 꺼진 마르고 볼품없는 남자였다. 생기 없는 눈동자로 그는 시청자 수가 두 명 뿐인 방송에서 한참 침묵했다. 두 명의 시청자는 초라한 남자의 행색을 걱정하다 이내 조롱했다. 침묵이 이어지자 그들은 도대체 무슨 방송을 할 생각인지 물었다. 우울하기 짝이 없는 낯을 계속 보고 있노라면, 응당 그가 어떤 생각을 할지 짐작이 가기 마련이다. 괜찮냐는 얼굴도 모를 익명의 채팅을 응시하던 그가 작고 어눌한 발음으로 긴 고백을 뱉었다.

“저는 이전 계시가 말한 신이라는 존재입니다. 이것이 성흔 입니다.”

그 날 이후, 본인이 신이라 자칭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두 명의 시청자 중 한 명은 코웃음을 치며 퇴장했고, 한 명은 늦은 새벽, 누군가의 헛소리나마 듣고 싶었는지 ‘성흔을 보여줘.’ 말했다. 소년은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나 셔츠를 올렸다. 갈비뼈가 보일 정도로 마른 상체엔 구타의 흔적이 가득했다. 구타는 지속적이었던 것 같다. 갓 생긴 멍울 옆에 색이 누렇게 변색 된 멍이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는 뭉툭한 손가락으로 제 옆구리를 짚었다. 그곳엔 긴 날붙이고 찔린 것만 같은 흉터가 착색 되어 있었다.

“이, 이런 흉터는 제게 없던 것인데요. 꿈을 꾼 날 곧바로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제가 신이라는 생각을 했을 리가 없지요. 저 같은 게, 그런 게 될 리 없잖아요. 하지만 간절히 바랬던 것도 같아요. 그냥, 저는 이 삶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그는 셔츠를 내리고 차분하게 자리에 앉았다.

“이 방송은 어떻게 남게 될까요. 간절히 바라옵건데 영원토록 남길 바랍니다.”

소년은 말이 없는 채팅창을 보다 어깨를 크게 흔들며 울기 시작했다.

“학급 내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있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요. 그래 마땅하다는 이야기를 부모님에게 들었습니다. 그 날 저는 부모님이 세상에서 사라지길 간절히 기도했어요. 다음 날, 부모님은 사라지셨습니다. 아침 식사를 하는 식탁 위에 아침은 따뜻한 채로 남아 있고, 아버지의 차키나 구두도 자리에 있었습니다. 세탁기는 돌아가고, 갓 널어놓은 빨래가 베란다에서 흔들리는 것을 보았을 때, 전 압도적 평화를 느꼈고요. 그리고 전 부모님이 연기처럼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아야 했습니다. 저는 부모님의 존재를 소멸 시켰을 지도 모르는 자신의 저열한 본심이 괴로웠습니다. 하루는 죄책감에, 하루는 분노에, 하루는 억울함에 울다가 문득 생각해보았습니다. 과연, 제가 사라지길 바라는 건 부모일까요? 아니면 매일 같이 제게 수치를 강요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학급 내 가해자들일까요? 아니면 가해자들의 조롱 섞인 웃음 뒤로 방관을 일삼아 마치 평화로운 것처럼 장난스럽게 웃고 떠드는 학급 친구들의 일상일까요? 나를 혐오시설처럼 바라보는 선생님의 눈길? 모르겠어요, 그러다 오늘 만약 내가 신이라면 무엇을 없앨지 결정한 것입니다.”

장황한 말들이었다. 그는 초연한 사람처럼 빤히 카메라 렌즈를 응시했다.

“여러분은 맹목적 상상의 실현이란, 어설픈 권능을 이해할 수 있나요? 전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어요. 무의식과 의식의 사이, 내가 진정 이뤄지길 바라는 어떠한 소망. 이 능력이 정말이지, 자애롭고 대단히 박애주의적인 인간에게 갔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랬다면 전 이러한 소망을 기도하지 않았을 텐데도.”

소년은 웃었다.

“괜찮은지 물어봐줘서 고마워요. 익명의 K씨. 그럼에도 도리 없던 선택이었음을 이해해주세요. 제가 진정 이뤄지길 바라는 건, 이 나라 전체의 소멸입니다. 전부 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70억 인구의 원망이나 지구란 행성의 존속은 저 같은 인간에겐 감당할 수 없는 무거움입니다. 더불어 전, 정말이지 제가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바랍니다. 저를 제외한 열 한 명은 부디 행복한 하루를 보내길. 자신이 신이란 오만에 빠지지도 않고, 저처럼 타인의 생사를 결정하는 비극적인 선택을 하지 않길.”

박병찬은 영상을 끝까지 보지 않았다. 뉴스에 종종 나오는 편집 된 화면을 파편으로 보았을 뿐이다. 소년의 이름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당연하다. 소년이 말한 대로, 일본이라 불리는 열도는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소멸했기 때문이다. 바다 위의 커다란 섬은 지도상에서도, 지리적으로도 사라졌다. 인접 국가들은 비행기와 배를 띄워 사라졌을 리 없는 땅을 찾기 위해 애를 썼으나, 망망대해 앞에서 모두 아연실색할 뿐이었다. 위성으로 확인한 결과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제 세상 사람들은 그의 바램대로 오래토록 남을 영상을 곱씹으며 열 한 명의 신이 아직 존재함을 믿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류의 존속은 한 개인의 기분에 좌지우지 되는 절대적 무력의 영역이 되었다. 흉터를 지닌 사람들이 자신이 신이라며 횡포를 부리는 일이 늘어나고, 각종 범죄들 역시 성행했다. 그럼에도 사회는 붕괴되지 않았다. 대단한 공포이자 두려움이 분명한 사건을 뒤로 하고도, 사람들은 제 자리에서 제 몫의 일을 해냈다. 배가 고프다면 밥을 먹었고, 본분에 맞는 일을 했으며, 여가 시간엔 사랑하는 이들과 시간을 보냈다. 박병찬 역시 매일 뉴스에 떠오르는 신에 관련한 이슈들을 넘기고도, 평범한 대학 생활을 영위하고 있지 않은가. 박병찬은 사실, 정말 대단한 건 사회 속 개인의 일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강의가 끝났다. 박병찬은 짐을 챙겨 강의실을 나왔다. 올해 스물넷이 된 박병찬은 염원하던 준향 대학교의 체육 교육학과에 입학해 농구팀에 들었다. 실력에 당연한 처사로 에이스를 꿰찬 박병찬은 곧 있을 드래프트를 노리는 중이었다. 사실, 빠른 데뷔를 모두가 기대했는데(박병찬 본인조차도.)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교통사고를 당해 재활 하는데 시간이 걸린 것이다. 큰 사고였다고 가족들도, 의사들도 혀를 내둘렀는데 정작 박병찬은 정말 큰 사고였는지 묘한 기분이었다. 실감이 잘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든 장기간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고, 혹시 모를 후유증이나 부상에 대비한 재활을 받던 박병찬은 스물넷의 나이에 복학할 수 있었다.

“어, 병찬 햄.”

강의실을 나오자 약속한 자판기 앞에 서서 박병찬에게 인사를 건넨 건, 기상호였다. 기상호는 반가운지 눈썹을 아래로 내려뜨리고 온순한 표정으로 긴 팔을 들어 휘휘 흔들었다. 박병찬은 웃음기는 적지만 들뜸이 역력한 기상호의 전신을 보고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오래 기다렸어?”

박병찬이 묻자 기상호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망설이는지 눈알을 굴렸다.

“어, 조금 많이?”
“진짜?”

“그러니까 햄이 학식 사주시면 안 돼요? 오늘 제육볶음 나온대요.”
“이 자식, 이러려고.”

“헤헤.”

기상호는 제법 바보같은 얼굴로 웃었다. 순진하기 짝이 없는 기상호의 낯을 앞에 두고 박병찬은 어깨를 으쓱했다.

“제육볶음은 정문 앞에 있는 이모 식당이 맛있어. 시간 되면 학식 말고 거기 가자.”

“괜찮아요?”

“너야말로. 다음 수업 지장 없어?”

“네! 없어요!”

항상 햄한테 얘기 듣고 먹어보고 싶었는데, 신난다. 기상호는 정말 신난 사람처럼 보였다.

“그럼 가자.”

박병찬은 기상호의 목에 팔을 둘렀다. 신장이 비슷했기 때문에, 남들보다 유독 큰 박병찬이 어깨동무를 해도 불편함이 적었다. 박병찬의 무게가 몸에 실리자 기우뚱하던 기상호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얌전히 박병찬과 발걸음을 맞췄다. 박병찬은 제 시야에 들어 온 기상호의 움찔거리는 귀가 빨간 걸 보았다.

기상호는 박병찬보다 4살이 어린 후배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사실 빠른 년생이라 따지자면 5살 차이기도 했다. 기상호를 처음 만난 건, 박병찬이 스무 살 때의 일이고 준향 대학교에 재학하는 선후배의 관계가 된 건, 최근의 일이다.

그래, 박병찬은 스무 살, 기상호를 처음 만났다.

교통사고를 당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다. 박병찬은 사실, 교통사고에 대한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체육관에 남아 늦도록 혼자 슛 연습을 하다, 구비 된 샤워 실에서 샤워를 마치고 나왔다. 어쩌면 콧노래를 불렀던 것 같기도 하다. 박병찬은 자신의 몸을 덮치는 차에 대한 기억도 없었다. 하다못해 사고를 겪은 환자들이 흔하게 말하는 번쩍이는 자동차 불도 기억하지 못했다. 다만, 희미하게 남자 한 명을 본 듯도 했다. 아마 그가 박병찬의 이름을 불렀을 지도 모른다. 박병찬이 우뚝, 멈춰선 채로 뒤를 한 번 돌아봤으니까. 박병찬보다 열 발자국 멀리 서있던 남자의 입술이 달싹였다. 무언가, 말하는 듯도. 눈을 가늘게 했을 때, 암전이 찾아왔고 의식이 들었을 땐 병원의 침대 위였다. 박병찬의 모친은 박병찬의 양 손을 붙들고 울고 있었다. 어리둥절한 박병찬은 신호를 무시한 채 질주하는 승용차 한 대가 횡단보도를 건너던 박병찬의 몸을 박았다는 사정을 듣고 나서, 내심 이 불명확한 기억들이 의미하는 바를 추측할 수 있었다. 뭐, 어찌되었든 이 정도는 필연으로 완전히 피할 수는 없구나. 알고는 있었다만 신이란 건 전지전능 하지는 않군. 박병찬은 생각했다.

그랬다. 박병찬은 이 놀라운 능력을 미지의 존재로부터 부여 받은 열 두 명의 인간에 속해있었다. 물론 이것을 믿는데 꽤 긴 시간이 걸렸음은 말할 것도 없다. 박병찬은 꿈을 꾼 후의 어느 날, 자신의 무릎에 남은 수술 흉터 중 낯선 것을 발견했다. 그 때의 박병찬은 현재 사람들이 인지하는 박병찬과 상당 부분이 다르다. 박병찬은 본인의 기억 속에만 남은 과거의 박병찬의 삶을 가끔 떠올렸다. 그래, 박병찬은 자신의 무릎을 들여다보던 중, 낯선 흉터를 발견하자 무심코 마음에 든 ‘내가 설마.’ 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리고 이전보다 조금 더 맹렬하게 소원하기 시작한 것이다. 부상을 없던 일로 할 수만 있다면!

신동이라는 말이 아까울 것도 없이, 박병찬은 또래들 중 가장 눈에 띄고 손에 꼽히는 선수였다. 박병찬은 농구를 하는 일이 즐거웠다. 달리는 일이 재밌었고 본인이 할 수 있는 역량을 뽐내는 것에 환희를 느꼈다. 만약 이 즐거운 일을 그만둔다면, 적어도 박병찬의 대수롭지 않은 변덕처럼 박병찬 본인의 의지여야만 했다. 중학교 농구부에서 출전한 경기 도중 무릎이 알싸하게 아파왔을 때, 좀 더 강력히 더 이상 경기를 뛰지 않고 병원에 가기를 요구했다면 박병찬 인생은 상당 부분 달라졌을까? 코치는 무릎이 아프다는 박병찬을 한참 바라보았다. 무미건조한 시선에 담긴 초조함은 박병찬이 ‘선생님, 저 무릎이 좀 아파요.’ 말한 고백이 단순한 엄살이 아님을 눈치 챘음이라. 그럼에도 그는 팀 성적을 위해 박병찬의 등을 떠밀었다. 이 정도로 아프다고 징징대면 앞으로 어떻게 선수할래? 박병찬은 고통을 인내하는 것이 마땅한 일인 줄 알았다. 정말 아팠어도. 어쨌든 결과는 뻔한 일이었다. 무릎이 고장 난 박병찬은 코트 위에서 무너졌고, 몇 번의 수술을 받았다. 박병찬의 플레이 자체가 무릎을 손상 시킬 수밖에 없는 플레이였단 말을 의사로부터 들었을 때가 가장 절망적이었다. 박병찬은 수술 후 긴 재활을 받아야 했으므로 농구를 그만둬야만 했다. 농구를 단순히 그만두는 결심만으로도 힘들었는데, 심지어 박병찬이 재학하는 부연 중학교 농구부 코치는 박병찬이란 인재가 혹여 재활 후 타교의 실적을 올리게 되는 무서운 선수가 될까 두려웠는지, 다시는 농구를 하지 않겠단 장난 같은 각서에 서명을 시켰다. 박병찬은 어렸고 미성숙한 소년답게 여렸다. 울분과 절망 속에서 재활을 마친 박병찬은 1년을 유급해 집 부근 농구부가 없는 고등학교로 재학했다.

인생은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고, 지금이 시작인 거라고. 새로운 일상에 익숙해지는 박병찬의 눈에 띈 것은 박병찬의 입학 당시까지만 해도 없었다가 신설 된 농구부의 존재였다. 박병찬은 매일 체육관 근처를 서성였다. 열린 체육관 문 사이로 신발과 바닥이 마찰되는 소리를 듣는 것만로도 한참이나 시간을 죽일 수 있었다. 멍하니 땀을 흘리며 몸을 부대끼는 덩치 큰 남자아이들을 보고 있을 때, 박병찬에게 말을 건 것은 조형고 농구부의 감독이었다. 농구, 해도 될까요? 박병찬이 도무지 잊히지 않는 즐거움을 위해 용기를 낸 후에도 많은 일이 있었다. 중학생 때 쓴 각서의 효력이 협회에 영향을 주었던 것, 다시 한 번 무릎이 말썽이었던 것, 정말 농구를 그만둬야만 한다, 결심했을 때 자신을 찾아 온 모 대학의 스카우터, 스카우터가 원하는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경기를 뛰던 도중 투혼을 해버리는 바람에 날아간 제안…. 나는 왜 그 때 굳이 투혼을 했을까. 열심히 뛰지 않아도 됐을 텐데. 박병찬은 그 때의 경기가 잘 기억나지 않았다. 어찌나 고통스러웠는지 본인이 기억을 저장하는 곳에서 잘도 그 기억을 끄집어 버렸나 싶었다. 어쨌든 대학 입시에 실패한 박병찬은 남들보다 늦되게 고등학교를 졸업해서 재수생 신세가 되었다. 이쯤 되니 열망할 만한 삶의 목표도, 그래야 하는 이유도 상실한 박병찬은 대체로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책을 읽었고, 낮잠을 잤다. 그리고 어느 여름 날, 전 인류에게 계시가 내려왔다.

박병찬은 무릎을 감싸 쥐고 상상했다. 그리고 바랬다.

겨우 그 뿐이었는데, 정말이지 박병찬은 거대한 시간을 탐험하는 이례적인 여행자가 될 수 있었다. 신기한 경험이었다고 밖에 할 말이 없었다. 우주와 같이 광활한 공간에서, 박병찬은 본인의 삶을 더듬었다. 인간이라면 상상할 수 없을 경험을 해낸 박병찬은 자신이 세상에서 떠들썩한 그 ‘신’임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박병찬은 본인의 삶을 되짚어 부연 중학교 시절, 일찍이 무릎 케어를 시작했고 통증이 느껴지면 경기 도중 벤치로 나갈 것을 강력히 항의했다. 부상 없는 박병찬의 인생은 얼마나 순탄한가. 박병찬은 손에 꼽히는 명문 고등학교로 진학 했고, 명실상부 에이스로 활약했다. 입학 제안을 받아 원하는 대학에 진학한 스무 살, 박병찬은 교통사고를 겪게 된 것이다.

분명 큰 사고였다고 들었는데, 기적적으로 경미한 부상밖에 입지 않은 박병찬은, 퇴원을 손꼽아 기다렸다. 다리 골절과 가벼운 뇌진탕 의심, 4센치 가량 찢어진 팔꿈치가 사고 직후 박병찬에게 내려진 진단이었다. 골절에 대해서 의사는 굉장히 긍정적이었다. 뼈만 붙으면 언제든 운동을 하실 수 있어요. 그러니 입원하는 기간 동안 무리하지 말고 푹 쉬세요. 걱정 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 정도 사고에 이만큼 밖에 다치지 않은 거면 기적이라고 밖에 볼 수 없네요. 운이 좋으십니다. 의사는 은색 테의 안경을 손등으로 올리며 히죽 웃었다. 박병찬은 기적이란 말을 곱씹었다. 일주일 정도 입원해 경과를 보자는 말에, 박병찬은 오른쪽 다리에 깁스를 한 채로 6인실에서 시간을 보냈다. 부모님은 맞벌이었기 때문에 저녁쯤에야 박병찬 병문안을 오셨다. 사과를 아삭거리거나, 다른 병실 침대를 쓰는 환자들의 가벼운 수다 소리뿐인 병실은 상당히 지루했다. 박병찬를 제외한 다섯 명은 대체로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이었다. 그들은 박병찬이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어떻게 들었는지, 첫 날은 종일 박병찬에게 먹을거리를 전해주며 위로를 전했다. 올해 쉰셋이라는 아주머니는 붙임성이 좋은 박병찬이 퍽 마음에 들었는지 ‘내 딸이랑 딱 어울리네. 우리 집 사위로 들어와라.’ 농담을 섞은 진담을 몇 번이고 전했다. 어머님 닮았으면 따님도 미인이겠는데요? 박병찬의 말에 그녀는 까르르, 웃었다. 그런 날들 중, 좀이 쑤셔 병원 부근을 산책하고 돌아왔을 때다.

“어.”

박병찬은 병실 가운데 우뚝 서있는 남자를 보았다. 앳된 인상이었다. 그날따라, 병실엔 아무도 없었다. 오로지 낯선 남자가 서있는 것이다. 열어놓은 창을 통해 들어 온 바람이 남자가 입고 있는 체크무늬 남방을 흔들어댔다. 한낮의 햇빛이 남자의 머리카락을 더욱 옅게 비췄다. 박병찬은 가만히 서있는 남자의 뒷모습을 보았다. 신장은 박병찬과 비슷해보였다. 188cm란 드문 장신이 박병찬과 비슷하단 건, 눈앞의 남자도 마찬가지로 드문 장신이라는 뜻이었다. 박병찬은 문득 구슬퍼졌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병실에서 풍기는 약품 냄새 때문일까. 병실 밖 복도만큼은 어수선했기 때문일까. 작은 구형 TV에서 인기 없는 KBS2 교양 프로그램이 나오고 있었기 때문일까. 남자는 고개를 한 번 붕붕 저었다. 덩달아 숱이 많아 보이는 갈색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박병찬은 쉽게 시골에서 친할머니 내외가 키우던 똥개를 떠올렸다.

“저기요, 누구시죠?”

먼저 입을 연 건 박병찬이었다. 박병찬은 문 앞에 서서 링거 폴대를 한 손에 쥐었다. 손등에 박힌 주사 때문에 팔 쪽이 뻐근했다. 박병찬의 목소리에 남자는 몸을 움직였다. 눈이 마주쳤다. 박병찬은 남자의 눈을 보고 헉, 숨을 삼켰다. 앳되고 순박한 인상과 꽤 어울리지 않는 눈빛이었다. 초점이 또렷하고 어쩐지 속내를 파악하기 어려운 가라앉은 눈빛이었다. 그는 눈을 반쯤 내리 감았다가 다시 눈꺼풀을 들어올리고, 입술을 뻐끔거렸다.

“누구신데 남의 병실에서 이렇게….”

박병찬은 경직 된 어깨를 넓게 폈다. 남자의 목울대가 일렁였다. 침을 삼킨 모양이었다. 그리고 곧 그는 낮지도 높지도 않은 목소리를 냈다.

“아, 아는 분 병문안을 왔는데 무심코 이 병실 TV가 틀어져있는 걸 봤거든요. 좋아하는 프로그램이어가…. 잠깐 본다는 게 그만.”

변명 같은 말이었다. 박병찬은 의아함에 고개를 기울였다.

“죄, 죄송합니다.”

남자는 기이할 만큼 허둥댔다. 마치 범죄를 저지른 사람 같은 긴장이 느껴졌는데, 멀건 얼굴을 보고 있으면 그가 나쁜 일을 저지르고자 마음을 먹었을 것 같진 않았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병실을 휘휘 둘러보았는데, 환자들의 가방이나 침대는 박병찬이 나가기 전과 같은 모습이었다.

“뭐, 그럴 수도 있죠. 좋아해요? 한국 기행.”

“네? 네.”

“전 재미없던데.”

“그래요?”

박병찬은 깁스 때문에 절뚝이며 창가 쪽에 위치한 자신의 병상으로 걸었다. 링거 폴대 밑의 바퀴가 거칠게 굴렀다.

“마, 많이 다치셨나 봐요.”

불편한 거동인 박병찬을 보고 남자가 조심스럽게 말을 붙였다. 박병찬은 남자의 가까운 근처까지 도착해 작게 웃었다.

“교통사고인데, 뭐. 불편하긴 하지만 엄청 아픈 정도는 아니에요.”
“다행이네요.”

“응?”

박병찬은 초면인 남자의 안심한 목소리에 얼빠진 소리를 냈다.

“고마워요?”

박병찬의 대답에 남자는 자신의 뒷머리를 긁적였다.

“몇 살이에요? 어려 보이는데.”

병실을 나갈 생각 없는 것으로 보아, 한국 기행이 어지간히 보고 싶은 모양이라 생각한 박병찬이 으쌰, 하는 소리와 함께 침대에 엉덩이를 붙이며 말을 이었다. 남자는 어깨를 가볍게 튀었다.

“여, 열여섯이요.”

“어리다. 근데 키가 엄청 크네, 운동해요?”

“어…. 어….”

망설이던 남자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가 희미한 웃음과 함께 대답했다.

“잠깐 했었어요.”

“농구?”

“네.”

“계속 하지. 모처럼 큰 키인데 아쉽잖아요.”

“뭐, 큰 편이긴 하지만 막상 코트에 섰을 때 엄청 독보적인 건 아니기도 하고. 실력이 별로에요.”

“흐음.”

“중학생 때까진 농구를 계속 했는데, 고등학교를 올라오니 영 아닌 게 느껴지더라고요. 팀원들 발목이나 잡을 바엔 자진해서 딴 길 찾는 것이 서로 좋은 일이라 생각했어요.”

열여섯이라 하지 않았나? 박병찬은 남자를 보았다. 남자는 자신의 입술을 검지로 문지르더니 이내 어색한 표정으로 이를 드러내 웃었다.

“아, 그러니까 고등학교를 갈 생각하니까 부담 되어가. 말이 잘못 나갔네요.”

“서로 좋은 일보단 본인한테 좋은 일을 생각하는 편이 낫지 않나?”

“그런가.”

남자는 박병찬의 심드렁한 말이 분하지도 않은지 눈썹을 내리고 웃었다.

“미안, 방금 건 너무 무심한 말이었네요.”

“괜찮아요, 좋은 뜻으로 해주신 말이잖아요.”

박병찬은 무덤덤한 목소리로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지만, 낯빛에 서글픔을 드리운 남자를 보고 있자니 영문 모를 연민이 샘솟았다.

“나도 농구해요.”

“아, 그,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요.”

“키 때문에?”

“뭐.”

남자는 어깨를 으쓱했다. 여전히 그는 이 병실을 나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제법 잘하거든요. 나중에 시간 나면 같이 농구공이나 튀겨요.”

박병찬의 선심에 남자는 기쁜 듯 웃었다. 정말, 기쁜 사람 같았다.

“네, 좋아요!”

“역시 미련 많은 것 같은데?”

“그런 것 보다 농구를 그만두니 막상 농구를 같이 할 친구가 없어가. 헤헤, 취미로도 하지 않겠단 각오를 할 정도로 농구를 재밌게 했던 건 아니거든요.”

“그렇구나….”

“형은 언제까지 입원해요?”

“나 다음 주 화요일까지…. 근데 왜 나 형이라고 불러요?”

박병찬은 어이없는 심정으로 물었다. 언제 봤다고, 형이라는 친근한 호칭을 하는지, 어이가 없어 터진 말이지 질문의 답을 듣고자 한 말이 아니었는데 남자는 뺨을 붉게 물들였다.

“헤헤.”

그리고 손등으로 입술을 꾹 누를 정도로 즐거운 웃음소리를 냈다.

“뭐에요.”

박병찬이 눈썹을 살짝 찡그리자 남자는 여전히 히죽 웃는 얼굴로,

“고등학생처럼은 안 보여서요.”

대답했는데 목소리에 물기가 서려있고 목이메인 것처럼 떨렸다.

“제 이름은 기상호에요.”

“아, 어. 그래, 나도 말 놓을게. 난 스무 살이거든. 박병찬이야.”

한국 기행이 끝났다.

“이모 분이 입원한 거라 자주 병문안 올 거 같아요. 나중에 또 봐요, 형.”

“뭐, 그러던가.”

그 말을 시작으로 정말이지, 열여섯의 기상호는 박병찬의 병실을 매일 찾아왔다. 사정을 들으니, 원래는 부산에 살고 있는데 둘째 이모가 입원을 해, 부모님을 따라 서울로 내려온 모양이었다. 별안간 입원을 한 이모의 네 살배기 딸을 기상호 부모님이 돌보고 있었기에 시간이 남는 본인이 이모 상태를 살피러 매일 병원에 오게 되었다고. 이모랑 30분 정도 이야기를 하고 나면, 말할 기력이 없어 이모는 기상호를 돌려보냈다. 기상호는 남는 시간에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어 걸었다고 한다. 기상호는 병원 옥상에 마련 된 정원 벤치에 앉아 조잘조잘 잘도 떠들었다. 박병찬은 문병 선물로 받은 비타500을 마셨다. 너도 마셔, 라며 미리 챙겨 둔 병음료를 기상호에게 내미니, 기상호는 양 손으로 받았다.

“형이랑 이야기라도 할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응? 집으로 가는 게 낫지 않아?”
“은서가 저를 별로 안 좋아해서.”

“은서?”

“이모 딸이요. 제가 좀 키가 크니까, 무섭대요. 가뜩이나 엄마가 입원하고, 부산 살아 잘 보지 못하던 이모랑 지내는 게 불안한데 저만큼 큰 사람이 집 안을 돌아다니는 게 탐탁지 않았나 봐요. 제가 집에 가면 엄청 울어요. 엄마도 가능하면 제가 밖에서 시간을 죽이다 오길 바라는 눈치에요.”

“그럴 거면 부산에 계속 있지.”

“마침 방학이기도 하고. 농구를 그만둔다는 결심을 한 뒤로 엄마가 신경 쓰였는지…. 서울 공기 한 번 맡아보라고.”

“아, 여름 방학이겠네, 지금.”

“대학생도 방학 아니에요?”

박병찬은 빈 병을 벤치에 놓았다.

“방학이긴 한데. 우리는 방학이어도 매일 체육관에 나와 연습하니까. 뭐, 다를 거 없는 일상인지라 방학에 대한 큰 감흥이 없네.”

“그렇구나.”

날이 좋았다. 박병찬은 기분 좋게 기지개를 피며 하늘을 보았다. 푸른 하늘이었다. 3 년 뒤, 세상은 계시를 듣게 된다. 그 일본인 남학생은 지금 지옥을 살고 있을까. 언제 올지 모르는 종말을 기다리며, 구석에 웅크려 울고 있을까? 그는 왜 박병찬처럼 자신의 인생을 더욱 나은 방향으로 바꾸는 데 힘을 쓰지 않았던 것일까? 사라지는 편 보다 낫잖아. 박병찬은 커다란 나라가 뿅, 하고 사라진 이후 뉴스에 보도 된 망망대해를 기억했다. 바람이 불었다. 여름에 귀한 서늘한 바람이었다. 박병찬의 긴 머리가 살랑였다. 환자복을 입은 사람들은 동그란 옥상 정원에 흩어져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거나, 박병찬 마냥 멍하니 하늘을 보았다. 기상호는 영어 글씨가 프린팅 된 검정색 티셔츠에 면으로 된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영락없는 중학생의 모습이었다.

“상호야, 너는 신을 믿어?”

박병찬의 뜬금없는 질문에 기상호는 눈썹을 들썩였다.

“형, 종교인이에요? 전도는 좀 그런데.”

“아니, 아니. 전도 할 생각 같은 거 아니고. 종교인도 아니야. 근데 생각해보니 오해할 만 했다, 미안.”

“음.”

기상호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제 신을 보여드릴까요?”

그리고 다음 날, 기상호는 만화책을 한 가득 가져왔다. 와, 심심했는데 잘 됐네. 일본 작가의 출판 만화였다. 박병찬은 미묘한 기분을 느끼며 만화책을 들었다.

“신이 만화야?”

“아뇨, 아뇨. 그럴 리가요. 그 정도는 아니거든요?”

기상호의 당황한 음성에 박병찬은 기분 좋게 웃었다. 기상호가 찾아오는 날이면, 박병찬과 기상호는 병원 옥상을 찾았다. 병실에서 떠들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박병찬은 기상호가 떠난 뒤, 병실로 돌아갔을 때 TV에서 한국 기행이 나오면 유독 반가웠다. 같은 병실을 쓰는 할머니 분이 좋아하는 프로그램이라 항시 TV는 KBS2 채널에 고정되어 있다는 말을, 옆 침대를 쓰는 아주머니로부터 들었다.

기상호가 가져 온 만화책은 심오한 종교적 내용을 담고 있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평범한 스포츠 장르였다. 박병찬은 야구를 본 기억이 별로 없어, 심드렁하게 페이지를 넘겼다. 기상호 역시 박병찬 옆에 앉아 이미 봤다는 만화책을 들추며 다시금 집중하고 있는 모양새다.

‘아하하하! 바보 녀석. 이거나 먹어라!’

‘저 불량아 녀석들이 사토시군을 향해 뭘 던진 거지? 안 돼, 사토시군! 피해.’

‘자, 잡았다?!’

‘큭, 젠장. 뒤에서 노리는 짓은 그만둬. 하나도 멋있지 않아.’

‘우웃, 괴물인가. 뒤통수에 눈이 달린 게 아니고서야 …. 어떻게 쿠지가 던진 유리병을 잡은 거지?’

박병찬은 페이지를 넘겼다.

‘사토시군, 역시 사토시군은 야구를 해야 해. 사토시군만한 동체 시력은 세상에 또 없어.’

‘미유. 간섭하지 마. 내 몸은 이미 야구를 할 수 없어.’

코 먹는 소리가 났다. 박병찬은 기상호를 보았다. 기상호의 코끝이 빨갛게 되어 있었다.

“너 울어?”

놀란 박병찬이 묻자 기상호는 손등으로 눈을 세게 비볐다.

“아, 아뇨? 안 울었는데요?”

“봐, 슬픈 이야기 나오나?”

“아잇, 형 지금 20권 읽고 있잖아요. 이거 21권이라고요.”

“무슨 상관이야. 줘 봐.”

박병찬은 장난스럽게 기상호 손에 들린 만화책을 뺏어 들었다.

‘사토시군, 하지만…. 팔이!’

‘나는 미유 너를 위해서 뛸 거야.’

‘나를 위해 희생하는 사토시 군을 보고 싶지 않아.’

‘희생이 아니야. 노력이다.’

기상호는 이제 코 끝 뿐만 아니라 안면 전체가 붉었다.

‘하지만 나 사토시 군을 따라갈 거야. 그러니까 …. 나 강해질 거야. 어떤 괴로운 세상의 어둠 속에서도 분명 너는 빛날 테니까.’

박병찬은 눈을 가늘게 했다.

“이거 보고 운거야?”

“큼, 큼…. 이 장면은 항상 소극적이었던 미유가 사토시를 위해 강해질 결심을 하는, 아주 의미 깊은 독백으로써…. 커다란 울림을 주는, 그러니까.”

박병찬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중학생 남자애가 제법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호는 미유 같은 애가 좋은 거구나.”

“병찬 햄은 별로에요?”

기상호가 눈을 천천히 깜빡였다. 박병찬은 고개를 기울였다.

“그림이라서 그런지 잘 모르겠는데.”

“헉.”

“왜?”

“너무, 너무, 무언가. 그림이라고 딱 잘라 말하는 게 거리감이 느껴지는 대답이라 잠깐 당황을.”

“너 진짜 이상하다.”

박병찬은 웃었다.

“그래서, 상호. 네 신은 미유야?”

“아뇨. 사 … 사토시.”

“사토시?”

기상호는 슬그머니 박병찬 손에 들린 만화책을 자신 쪽으로 당겼다. 이미 덮여진 만화책의 표지엔 21권이라 적혀 있었다.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모습이 멋있어요.”

“그것만으로?”

“뭐, 더 자세한 이유가 있는데 그건 비밀로 할래요.”

박병찬은 입술을 실룩였다.

“뭐야, 시시하게.”

“비밀이라지만, 정말 햄 말대로 시시한 이유에요.”

그리고 기상호는 흐흐, 소리 내어 바보마냥 웃었다. 박병찬은 만난 지 이틀 밖에 되지 않은 소년과 보내는 시간이 즐거움을 인정해야만 했다. 내일도 와라, 나 20권 방금 다 읽었으니까. 내일은 21권 읽을래. 박병찬이 깁스한 다리를 불편하게 움직여 말했다. 기상호는 박병찬의 말에 한껏 즐거워하며 고개를 격하게 흔들었다. 박병찬이 퇴원하는 날까지, 정말 기상호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병실을 찾아왔다. 퇴원 절차까지 옆에서 지켜 본 기상호는 부모님과 함께 주차장으로 떠나는 박병찬의 등 뒤에 서있었다. 박병찬은 ‘또 보자.’ 긴 팔을 하늘로 치켜들어 흔들었다. 기상호는 고개만 꾸벅였다. 조용했다. 부모님의 차에 탔을 때에서야, 박병찬은 기상호의 전화번호나 신상에 대해 물은 적이 없다는 걸 알았다. 그래도 박병찬은, 기상호와의 재회가 반드시 올 것이라 믿었다. 그야 박병찬은 신이니까. 박병찬의 마음 속 진실로 기상호와 다시금 만나게 될 날을 그린다면, 이를 테면 기상호가 대학생이 되어 준향 대학교에 입학한다는 맹목적 상상을 한다면, 이뤄질 것이다. 박병찬은 이 세상에 현존하고 있을 신들이 문득 궁금해졌으나 이내 말았다. 분명 아주 평범하고 지루한 사람들이 신이 되었을 것이다. 그들은 본인이 세상을 뒤흔들었던 계시의 주인공임을 알지도 못한 채, 가끔 초콜릿을 하나 더 먹을 수 있는 당첨 운에 기뻐하며 웃을 것이다. 그런 소원만을 간직한 이들이 신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됐어, 어쩌면 미지란 건 행복을 기능하게 하는 윤활유일지도 몰라. 내가 신임을 깨달았을 때, 욕심 낼 건 무릎의 부상을 없던 일로 하는 것뿐이라는 건, 진짜 불행은 내게 있어 미지의 영역인 거겠지. 분명 경외할 만한 욕심이 있는 인간들에겐 주어지지 않았을 거야. 혹자에겐 나는 무척 한심해 보이겠어. 신의 권능이란 걸 받고도 내 할 일에 몰두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게 나인 걸 어쩌겠어. 나는 그냥 이 일상들이 전복되지 않았으면 해. 이 진심은 아주 소중한 거야.’

박병찬은 턱을 괴고 차창 밖을 보다 입을 작게 벌렸다.

“기상호, 어디서 봤던 것 같은데.”

기억은 나지 않았다.

어쨌든, 박병찬의 바램 덕분이었을까? 아니면 단순히 우연의 일치였을까? 박병찬이 받은 권능이란 빵을 먹고 싶으니, 눈앞에 빵을 내놔, 했을 때 곧바로 실현되는 것 따위는 아니었다. 그러니 확신할 순 없지만, 박병찬은 기뻐할 수는 있었다. 기상호는 준향 대학교에 입학했다. 박병찬이 스물넷이 된 해, 그리고 계시가 있던 다음 해 3월의 준향 대학교 교정, 박병찬은 기상호와 재회했다. 기상호도 박병찬을 기억하는 눈치였다. 햄, 하고 달려오는 젖살 빠진 얼굴을 앞에 두고 박병찬은 어쩐지 안도했다.

박병찬은 기상호와 자주 붙어 다녔다. 박병찬의 친구들은 ‘또 그 스무 살 애랑 놀아?’ 라며 도대체 어떻게 타과생과 그리 친해졌는지 물었는데, 박병찬 본인도 명확한 이유를 댈 수 없었다. 성격이 잘 맞는 건 아니었다. 기상호는 박병찬에게 귀염성 있는 동생이었지만, 대화를 하다보면 본인과 기상호가 성격은 물론이거니와 취향까지 비슷한 부분이 전혀 없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박병찬은 기상호와 대화 하는 일이 편했고, 이해할 수 없는 만화를 성경처럼 외는 기상호를 희한한 듯 보는 일이 재밌었다. 기상호는 박병찬에게 항시 애교 있는 태도를 고수했으나 실제로 장시간 함께 하니 과묵하고 내향적인 인간이었다. 어쩐지 서늘한 시선으로 침묵을 유지한 채, 어떤 대상을 빤히 바라보는 기상호만의 정적이 진짜 기상호를 설명할 수 있는 것 같았다.

“어, 사토시도 팔에 흉터 있네.”

“네, 수술 흔적이에요.”

“나도 있어, 교통사고 났을 때.”

박병찬은 입고 있던 셔츠를 벗어 기상호에게 제 팔꿈치를 보여주었다. 기상호는 얼굴을 벌겋게 물들였다.

“헉.”

“뭐야, 얼굴은 왜 빨개져.”

“하지만 햄이 갑자기 스트립….”

“말하지 마라. 얘는 가끔 단어 선택이 아주 희한해.”

기상호는 박병찬의 팔꿈치에 새겨진 흉터를 조심스럽게 검지로 만졌다.

“만져보라곤 안 했는데.”

박병찬이 농담하자, 기상호는 손을 거뒀다. 주말, 기상호의 집에서 만화책을 보며 뒹굴 거리는 중이었다.

“미안해요.”

“응? 뭐가?”

“아, 아니. 그냥. 만져서?”

“같은 남자끼리 뭘.”

박병찬은 벗었던 티셔츠를 다시 입었다. 헛기침이 절로 나왔다.

“어쨌든, 상호는 졸업하면 뭐할 거야?”

박병찬이 물었다. 기상호는 머뭇거렸다.

“그냥, 적당히 공부는 하고 있어요.”

“꿈은 없어?”

박병찬이 기상호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물었다. 기상호는 컴퓨터 공학과를 재학 중이었다. 아직 스무 살인 기상호에게 묻기엔, 이른 질문이겠지만 박병찬은 이상하리만치 기상호가 궁금했다. 기상호는 만화책을 훑듯 페이지를 팔랑였다.

“그냥, 원래는 있었는데.”

“뭐였어?”

“비밀.”

“왜 이렇게 비밀이 많냐. 쩨쩨하게 굴긴.”

박병찬은 긴 다리를 뻗어 기상호의 어깨를 발가락으로 툭, 밀었다. 기상호는 힝 하는 장난스런 목소리를 냈다.

“말해 봐.”

“음…. 사토시처럼 살기?”

그리고 기상호는 멋쩍게 웃었다. 박병찬은 뒤통수에 깍지를 낀 채로 편하게 누워, 여전히 독서에 몰두하는 기상호를 보았다. 박병찬은 돌연 졸음이 쏟아졌다. 가물거리는 눈을 깜빡이며, 기상호에 대해 생각한다. 박병찬은 기상호가 행복하길 바랐다. 기상호 역시 박병찬과 같은 열정을 알았음 했다. 박병찬은 기상호에게 때때로, 함께 농구를 하러 가자고 말하고 싶었으나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왤까? 학교에 커다란 운동장이 있잖아. 그곳에 농구공을 들고 가기만 하면 되는 일인데도. 박병찬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자요? 기상호의 조곤한 목소리가 들렸다. 기상호는 그 후 숨소리도 작게 냈다. 잠든 박병찬을 위해서 일 것이다. 박병찬은 착한 기상호가 좋았다. 기상호는 어쩜 이렇게 착할까. 왜 이렇게 나를 잘 따를까? 생각하니 가슴이 간지러웠다. 기상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박병찬 어깨 위로 이불을 덮어주었다. 바보! 기상호의 자취방은 딱히 이불을 바로 덮어야 될 만큼 춥지 않았다. 잘 자요, 기상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박병찬의 발가락이 움찔 오므라들었다. 박병찬은 기상호가 읽는 만화책 속, 미유를 이해했다. 응원을 받아오며 살았던 박병찬에겐 낯선 깨달음이었다. 박병찬은 기상호가 행복하길 진정 기원했다. 상호야, 나는 신이니까 얼마든지 이뤄줄 수 있어. 그러니 기도할게. 나의 진심으로. 네 가슴 속에 뜨거운 열정이 움트길. 삶이 좀 더 재밌어지길. 때때로 지루하다는 듯 허공을 응시하는 일이 없길. 푸른 유니폼을 입고 땀에 젖어 몸을 낮게 낮춘 기상호가 꿈에서 나왔다. 꿈속의 기상호는 서늘하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표정 없는 얼굴이었다. 커다란 손이 박병찬을 견제하듯 앞으로 내밀어졌다. 기상호가 입고 있는 유니폼은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는 듯도, 아닌 듯도 했다. 박병찬은 어쩐지 당황스럽고 초조한 마음이었는데 그보다 일렁이는 건 호승심이었다. 무리하지 마요, 기상호의 목소리에 박병찬은 전신을 떨었다. 헐떡이는 숨소리가 주변에 가득하다. 삑,삑 운동화 밑창이 매끄러운 코트 바닥과 마찰해 소리를 냈다. 박병찬은 점차 거세지는 고동을 느꼈다. 날 막을 수 있는 건 이 녀석 밖에 없겠군, 이란 오싹한 희열을 깨달았을 때 잠에서 깼다. 기상호는 책상에 큰 덩치를 구겨 앉아 노트북을 두들기고 있었다. 박병찬은 제 어깨에 덮인 얇은 이불을 조심스럽게 당겼다. 기상호는 알이 두꺼운 검정색의 뿔테 안경을 끼고 있었다. 집중한 얼굴이다. 노트북에서 나오는 빛이 기상호의 얼굴을 어슴푸레 밝혔다. 박병찬은 얼굴이 화끈거렸다. 영문은 알 수 없었다.

박병찬의 이후 인생은 순풍에 돛단 듯 했다. 박병찬은 결국 드래프트에 선정 되었다. ‘S’ 구단에 입단하게 된 것이다. 구단 관계자들은 연신 고맙다고 인사하는 박병찬의 넓은 어깨를 두들기며 ‘기다리던 인재였어, 아주 잘 부탁해요.’ 아주 흡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박병찬은 기상호에게 계약 소식을 알렸다. 기상호는 아주 축하한다며, 이미 인터넷 방송을 통해 보았다고 해주었다. 그래, 나 어때 보였어? 박병찬이 핸드폰 너머 기상호에게 묻자 기상호는 잠시 침묵하다가 ‘너무 좋아보였어요, 이런 햄의 모습을 보고 싶었구나, 생각했어요.’ 라는 영문 모를 말을 했다. 박병찬은 목을 가다듬었다. 이따 친구들 몇이랑 호프집에서 축하 파티 할 건데 상호, 너도 올 거지? 꼭 와라. 기상호, 너는 필수 참여야. 왜냐면…. 왜냐면 바늘 가는데 실이 가잖아. 그러니까, 어…. 우리 친하지? 박병찬의 횡설수설에 기상호는 하하, 웃었다. 당연한 소리를! 햄을 축하하는 자리에 제가 안 가면 섭섭하죠! 밝은 목소리였다. 박병찬은 옅게 안도의 숨을 뱉었다. 박병찬은 통화를 마치고, 잠시 양손을 모았다. 나는 이제 됐어요, 이제 농구 선수로 살아가면서 할 일은 전부 내 힘으로 할 거에요. 인간이 가늠할 수 없는 미지의 힘으로 해결하고 싶지 않아. 하지만 만약 가능하다면, 아직도 내가 신이고 권능을 사용할 수 있다면 진정 바라는 건…. 기상호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박병찬은 눈을 질끈 감아 기도를 했다. 계시에 따르자면 진정 신은 자신일 텐데, 누군가에게 기도하게 되는 순간이 우스웠기 때문이다.

‘신이란 거, 사실 별 거 아닐지도 몰라. 언젠가 들었던 어떤 노래처럼, 사람들 중의 하나일 뿐인 거지. 그렇기 때문에 타인을 위한 소원을 기도하게 되었으니, 이런 걸 섭리라고 부르고 싶어.’

박병찬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스케줄을 마친 뒤, 친구들과 약속한 호프집으로 향했다. 미리 들린 자취방에서 정장을 대충 벗어두고 청바지와 잘 입지 않는 체크무늬 남방을 입었다. 기상호는 공대생의 타이틀에 맞추고 싶은지 잘도 체크무늬 남방을 입고 다녔기 때문이다. 만약 오늘도 기상호가 체크무늬 남방을 입고 온다면, 마치 커플룩 같다고 장난을 쳐야지. 박병찬은 키득대며 기상호의 반응을 상상했다. 우리 커플처럼 보여요? 기상호는 어쩐지 순진한 낯에 열을 띄우고 되물을 것 같았다. 아, 박병찬은 올라가는 입 꼬리를 손바닥으로 눌렀다.

박병찬과 평소 알고 지내던 선후배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열다섯 명 남짓 되는 인원에 놀란 건 박병찬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까지 다들 모여주고, 고맙다. 박병찬이 목소리를 키워 말하자 친구들은 하나 같이 ‘병찬이 일인데 당연히 와야지.’ 대답하더니 깔깔 웃었다. 박병찬은 눈동자를 바삐 움직여 기상호를 찾았다. 기상호는 일자로 테이블을 붙여 만들어 낸 중간 쯤에 앉아 있었다. 박병찬과 거리가 너무 멀었다. 기상호와 친한 사람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기상호는 어색한지 술잔만 만지고 있었다. 아, 상호한테 가야겠다, 생각한 시점에서 박병찬의 목덜미에 팔 하나가 걸렸다. 옆자리에 앉은 친구였다. 축하한다, 자식아. 너 오늘 술 빼기 없어. 내 술 한 번 받아라. 그리고 그는 박병찬의 손에 들린 맥주 컵에 소주를 잔뜩 부었다. 호쾌할 정도로 쏟아진 소주에 남자들은 일제 환호를 질렀다. 원샷해! 박병찬은 어깨에 힘을 뺐다. 술을 받아 마시다가, 은근슬쩍 기상호 옆으로 가면 되는 것이다. 박병찬은 단번에 잔을 비웠다. 울렁이는 속을 과자로 달랬다.

“내 것도 받아라!”

시끄러운 호응 속에서 박병찬은 연신 술을 비웠다. 알딸딸해지기 시작할 무렵은, 술자리가 한창 무르익어 갈 때였다. 박병찬은 어지러운 머리를 한 손으로 짚었다. 기상호, 어디 있지. 박병찬은 풀린 눈에 힘을 주며 고개를 흔들었다.

“어, 너 정강이에 흉터 있다?”

기상호 근처에 앉은 남자가 기상호에게 질문했다. 박병찬은 어렴풋한 소리를 들으며 상체를 흔들었다. 취기에 절로 흔들리는 것이었다. 기상호의 목소리가 작았다. 박병찬은 그 와중에 귀를 쫑긋 세웠다.

“네, 어렸을 때 넘어진 적이 있어서. 그 때 남은 흉이에요.”

“근데 너 누구야? 병찬이 친구?”

“….”

상호는, 내가 가장 아끼는 동생이야. 박병찬이 웅얼거렸다. 그런 박병찬의 옆에서 함께 취한 친구가 큰 목소리를 냈다.

“야, 박병찬. 진짜 이제 넌 예쁜 여자 친구 만나서 결혼만 하면 되겠다.”

“병찬이라면 금방이지.”

“세상을 다 가진 새끼라니까.”

그런 추켜세움에 박병찬은 취한 사람의 웃음소리를 냈다.

“뭐, 그런가.”

“얘 연애 소식은 없어?”

“내가 아는 한은 없다. 아주 농구에 미친 놈이셔.”

박병찬은 연애에 대해 생각했다. 연애를 한다면, 그래, 기상호 같은 사람이 좋을 것 같다. 결혼도…. 왜냐면 기상호는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잖아. 제법 의지가 되고, 진중한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알 수 없는 평화를 느꼈다. 박병찬은 기상호 자취방에 누워 과제에 집중한 기상호를 자주 훔쳐보았다. 기상호는 무언가 잘 풀리지 않는가 싶을 때면, 인상을 찡그리고 ‘하….씨.’ 짜증 섞인 한탄과 함께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기상호의 그런 일면을 보고 나서, 박병찬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어쩐지 무거웠던 것이다. 같이 살면 좋겠다, 그런 얼굴을 무심코 보게 되는 일상이 좋겠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박병찬은 그 때를 떠올렸다.

“응, 결혼 할래.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할래.”

박병찬이 고개를 쳐들었다. 기상호와 눈이 마주쳤다. 박병찬이 술이 전부 깨는 기분이었다. 이상했다. 느낄 리 없는 불안이 엄습했다. 뭔가 실수를, 했나? 박병찬은 주변의 공기가 변하는 걸 감지했다. 하하, 옆에 앉은 덩치 큰 친구가 즐거운지 박병찬의 어깨를 세게 내리쳤다. 박병찬은 기상호의 이름을 불러야 된다고 생각했다. 상호야, 라고. 왜냐하면 기상호의 표정이. 눈빛이. 살짝 벌어진 입이. 얼굴이….

“오빠, 또 다른 생각해?”

박병찬은 번쩍 정신을 차렸다. 눈앞에 보이는 건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볼을 부풀린 여성이었다. 박병찬은 물끄러미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어, 미안.”

“나 오늘 회사에서 진짜 힘들었단 말이야. 우리 차장 새끼가 글쎄….”

박병찬은 손등으로 이마를 문질렀다. 악몽을 꾼 것처럼 식은땀이 베어 나왔다. 지금 여기가 어디지, 이 사람은 누구지, 혼란한 머리를 살짝 흔들자 기억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그래, 박병찬과 손가락을 얽어 깍지를 낀 상대는 3년 간 만난 연인이었다. 연인의 직장 부근 카페였다. 그래, 그녀의 퇴근 시간에 맞춰 박병찬은 일부러 회사 앞까지 찾아 온 것이다. 오늘 일이 무척 고됐는데 박병찬이 와주어서 기쁘다며 그녀는 박병찬의 허리춤을 양 팔로 끌어안았다. 박병찬은 앉아 있는 카페의 테이블 위에 미숫가루 라떼와 딸기 스무디를 보았다. 그녀는 작은 머리통을 박병찬 어깨에 기댔다.

“이번 주 주말에 우리 부모님 보러 가는 거 알지? 왜 내가 다 떨리지. 그 날도 오늘처럼 멍 때리고 그래? 아주.”

“미안, 미안.”

박병찬은 어색하게 웃었다. 박병찬은 잠시만, 말한 뒤 연인의 손을 놓고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연락처를 뒤지니 기상호의 이름이 보였다. 손바닥은 땀으로 축축했다. 통제력을 잃은 기분이었다. 간만에, 연락을 해야겠다고. 박병찬은 서둘러 기상호에게 문자를 보냈다. 답장은 빨랐다. 간만이에요, 병찬 햄. 조만간 만나요. 간결한 메시지에 박병찬은 안도의 숨을 길게 내쉬었다.

“햄!”

간만에 본 기상호는 밝아보였다. 박병찬은 어째서 자신이 이토록 긴장하고, 불안한 지 알 수 없는 채로 기상호의 밝은 얼굴을 보았다. 간만이다, 인사하며 미리 카페에 앉아 있던 기상호 맞은편 의자를 빼 앉았다. 기상호는 양 손을 허벅지에 올리고 허리를 꼿꼿이 폈다. 뻗친 머리나 검정색 뿔테 안경은 여전했다.

“어쩐 일로 보자고 하셨어요? 간만에 보니 더 멋있어진 것 같아요.”

기상호는 해맑은 얼굴이었다. 박병찬은 자연스럽게 자신이 들고 온 가방에 손을 넣었다. 가방 속에서 손에 잡힌 건, 청첩장이 든 봉투였다. 이게 왜…. 아, 그래. 청첩장이 나왔어. 3년을 넘게 만난 연인과 드디어 결혼을 하게 된 거지. 그런데…. 박병찬은 꽤 오래 전, 입단이 확정 된 날 주점에서 마신 술이 덜 깬 기분이었다.

“상호야.”

박병찬은 테이블에 청첩장을 올렸다. 기상호는 단번에 흰색 봉투의 정체를 알아챈 모양이었다. 기상호는 짐짓 놀랐는지, 표정을 굳히고 ‘아.’하는 멍청한 목소리를 냈다.

“저기, 근데 상호야.”

“병찬 햄. 축하해요.”

진심이에요. 기상호의 목소리, 박병찬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날 밤, 꿈을 꿨다. 박병찬은 어지럽고 일렁이는 공간을 부유 중이었다. 전신의 뼈가 경도를 잃고, 흐물흐물 거렸다. 기이하게 늘어나는 팔과 다리를 느꼈다. 박병찬은 소멸의 과정을 겪는 중이란, 애매모호한 판단을 할 수밖에 없었다. 여름과 겨울이 한데 뒤섞이고, 천지가 무너졌다. 아득한 공간에서 박병찬은 멀미를 했다. 속이 좋지 않아, 몽롱한 정신으로 생각했을 때 목소리가 들렸다. 소년의 목소리였다. 또 봐요, 라고 말했다. 박병찬은 문득 울고 싶었다. 전 병찬 햄이 원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요. 라고 말했다. 그게 뭔데, 상호야? 박병찬은 묻고 싶었다. 기상호에게 묻고 싶었다.

응? 병찬이 너 원래 무릎에 흉터 있었잖아. 응, 그거. 어렸을 때 넘어져서 생긴 거야. 기억 안 나? 혼자 심부름 갔다가 넘어진 거였어. 집으로 돌아온 애가 무릎에 피는 질질 흘리지, 내가 얼마나 놀랬는지. 괜찮냐고 물으니 웃더라. 뭐랬지. 엄청 키 큰 형이 달려와서 무릎에 데일밴드도 붙여주고, 달래줬다고.

박병찬은 눈을 깜빡였다. 조명이 어두워졌다. 익숙한 신부 행진곡이 들렸다. 가슴이 조인다 싶었더니, 불편한 예복을 입고 있었다. 박병찬은 이마가 뜨거운 걸 알았다. 이마를 덮던 머리를 오늘, 왁스로 넘겼기 때문이다. 스포트라이트가 이 행사의 주인공을 비춘다. 환한 드레스를 입은 신부는 부끄러운 것처럼 눈을 반쯤 내리 깐 상태였다. 박병찬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혼주석에 앉은 박병찬의 부모님이 눈물을 훌쩍이며 열렬한 박수를 치는 중이었다. 객석을 채운 사람들의 얼굴도 익숙했다. 전부 박병찬의 지인들이었다. 사이에 기상호도 있었다. 기상호는 넋을 잃은 것처럼 박병찬이 서있는 무대를 응시하는 중이었다. 박병찬은 손등으로 입을 막았다. 어느 새, 박병찬 옆에 도착한 신부는 히죽 웃었다. 단상 위의 근엄한 표정을 한 중년은 목소리를 다듬더니 물었다.

“신랑은 신부를 영원히 존중하고 사랑할 것을 맹세 합니까?”

신부는 애정이 번들거리는 눈동자로 박병찬의 대답을 기대했다. 박병찬은 마른 입술을 열었다.

“근데 있잖아.”

박병찬은 구두를 신은 발이 아파옴을 느꼈다. 통증이 느껴지는 꿈이 있을 리가. 그럼에도 모든 현실이 악몽 같았다.

“이름이 뭐에요? 나랑 결혼한다는데, 오래 사귄 여자 친구라는데, 전, 도통 당신 이름이 기억이 안 나요.”

박병찬은 땀을 흘렸다. 신부는 웃지 않았다. 당연하다. 웃을 이유가 없다. 그녀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김이 낀 것처럼 흐렸다. 박병찬은 발을 한 발자국, 뒤로 물렸다. 객석에 앉아 열띤 환호를 보내는 남자들은 누구인가. 농구 명문 고등학교를 재학하면서 만난 동창들이라고? 같은 구단에서 뛰는 선수들이라고? 준향 대학교 동기들이라고?

“그런 게 중요해요?”

그녀는 말했다. 그 목소리는, 분명 박병찬의 귓가를 감동적으로 울렸는데 도통 남성인지 여성인지 노인인지 아이인지 만큼은 구분할 수 없었다. 심지어 목소리가 말하는 언어가 영어인지, 불어인지, 한국어인지조차 불분명했으나 박병찬은 전부 알아들을 수 있었다. 박병찬은 이 식장을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릎이 아프지 않길 바랐잖아요. 명문 고등학교를 재학하고, 원하는 대학교에 입학해, 원하는 구단에 들어가고, 인기 스타가 되길 바랐잖아요.”
“그게 무슨….”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1) 히브리서 11장 1절

박병찬은 객석에 분명 앉아 있을 기상호를 찾았다. 이 상황이 기이하지 않은지, 진실 된 부부를 보는 것처럼 객석의 모든 사람들은 환한 얼굴로 박수를 치고 있다. 그리고 기상호는 없었다.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2)고린도전서 13장 3절

목소리를 뒤로 하고, 박병찬은 다리에 힘을 주어 식장을 빠져나왔다. 여전히 복잡하고 시끄러운 로비는, 식장과 다른 세상 같았다. 박병찬은 땀을 흘리는 그대로 바지를 더듬었다. 바지 맵시를 위해 핸드폰은 축의금을 걷어주는 친척에게 맡겨둔 것을 기억했다. 다행히 화장실을 다녀 온 그를 마주쳤다. 박병찬은 황급히 핸드폰을 달라 외쳤다. 그는 어리둥절해 하며 박병찬의 핸드폰을 내밀었다. 박병찬은 자신의 핸드폰 연락처를 뒤졌다. 기상호의 전화번호는 보이지 않았다. 기상호 석자 이름도 보이지 않았다. 박병찬은 기억을 더듬어 기상호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없는 번호라는 안내가 떴다. 상호, 형, 상호 알지? 왜, 저번에 형이랑 피시방 갔을 때 상호도 왔잖아. 우리 같이 배그 했잖아. 기억 나? 박병찬은 친척의 양 팔을 쥐었다.

“무슨 소리야? 상호가 누군데. 왜 이래, 병찬아.”

박병찬은 친척의 팔을 놓았다. 전화를 걸었다. 병찬이, 너 그 기상호인가. 걔랑 너무 붙어 다니는 거 아니냐? 언젠가 물은 적이 있던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박병찬은 손톱을 씹었다. 전화를 받았다.

“야, 너 무슨 일 있어? 갑자기 신랑이 사라지는 법이 어디 있어. 인마, 어디야.”

“나, 나 아직. 건물 로비인데.”

“도대체 뭔데.”

“기상호 알지? 왜, 나랑 대학 때 내내 붙어 다녔던.”

상호?

친구는 신랑이 식장을 뛰쳐나간 초유의 사태에서도 잠잠한 음성으로 말했다. 오히려 눈물이 날 만큼 매정했다.

“그게 누군데?”

박병찬은 홀로 서서, 이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을 이해하고자 했으나 머리가 터지는 쪽이 빠를 것 같았다. 박병찬은 무릎을 쥐었다. 아프지 않았다. 박병찬의 무릎에 있는 상처는 성흔이 아니다. 박병찬은 신이 아니었다. 아, 이런 걸 원한 적은 없어. 오히려 기상호가 없는 세계 같은 건 없어도 될 것 같아. 박병찬은 생각했다.

불과 1년 전의 일이다. 이제 전 세계의 누구도 신의 존재를 부정하지 못한다. 과학적으로 완벽한 증명을 성공해냈기 때문이 아니다. 일전 없었던 신기한 현상이, 인류 전체의 경험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 날은 기상호도 기억하고 있다. 한 여름의 낮이었다. 기상호는 땀에 젖은 몸을 뒤척이며 본가의 거실에 누워 막 낮잠에 빠져든 참이었다. 꿈을 꿨다. 온통 흰 색으로 빛나는 공간에서 기상호는 목소리를 들었다. 듣기만 했을 뿐인데 돌연 눈물이 치밀 정도로 존귀한 목소리였다. 그렇게 인식되었다. 그 목소리는, 분명 기상호의 귓가를 감동적으로 울렸는데 도통 남성인지 여성인지 노인인지 아이인지 만큼은 구분할 수 없었다. 심지어 목소리가 말하는 언어가 영어인지, 불어인지, 한국어인지조차 불분명했으나 기상호는 전부 알아들을 수 있었다. 잠에서 깬 기상호는 기묘한 꿈을 꾼 까닭에 잠시간 현실감을 찾을 수 없었다. 이것이 한 낮의 의미 없는 꿈이 아니었음을 깨달은 건 그다지 늦지 않았다. 나 방금 이상한 꿈을 꿨어, 라고 기상호 옆에 누워 있던 박병찬이 하품을 하며 중얼 거렸다. 바닥에 누워 배를 까고 있던 기상호 역시 몽롱한 그대로 눈을 꿈뻑이다 ‘저도요.’ 대답한 것이다. 꿈을 꾼 건, 기상호와 연인인 박병찬만 겪은 일이 아니었다.

기상호는 자신의 정강이에 없던 흉터가 생긴 것을 보았다. 이것이 세간에서 말하는 성흔일 거란 생각은 결단코 없었다. 그런 막중한 역할이 기상호에게 운으로나마 올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상호는 침대에 누워 있는 박병찬의 등을 보았다. 박병찬과 연인이 된 건, 기상호가 대학에 올라와서의 일이다. 박병찬은 전 날 저녁, 기상호와 간만에 술을 마셨다. 취한 박병찬은 기분이 좋아보였다. 상호야, 나 임용 볼 거야. 박병찬은 말했다. 기상호는 이 말을 하기 까지 박병찬이 어떤 실패와 좌절을 겪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박병찬의 각오란 것은, 늘 기상호의 가슴에 통증을 유발했다. 응, 그래요. 선생님 박병찬. 잘 어울려요. 기상호가 대답하니 박병찬은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 눈을 접어 웃었다. 기상호는 계시 따위 아무렴 싶었다. 기상호는 박병찬을 보고 있으면 금방 행복해졌기 때문에, 신이 존재한다면 박병찬이 마땅하다고 믿었다.

“병찬 햄은 만약 신이 된다면 뭘 할 거 에요?”

“으음, 임용 시험 나만 문제 쉽게 나오기. 나만 점수 잘 나오기.”

“엄청 졸렬한 신이다.”

“농담. 글쎄, 뭐가 좋을까.”

“바라는 대로 다 이뤄진다면?”

“으음….”

“무릎 부상도 없앨 수 있어요.”

“그거 혹하네.”

“….”

“진짜 바라는 게 딱 하나 있긴 한데, 이건 비밀로 할래.”

숙취 때문인지 비몽사몽인 박병찬의 머리카락을 넘겨주며, 기상호는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병찬 햄의 인생 전반을 위로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기상호는 박병찬의 귓가에 속삭였다. 맹렬한 기도였다.

전요, 병찬 햄이 원하는 인생을 살았으면 해요.

그 후로 겪은 일을, 누군가에게 속 시원히 고백한다면 믿어 줄 사람이 있을까? 기상호는 정말 박병찬의 생애를 들여다 볼 수 있었다. 한 인간의 과거를 물 들여다보듯 본다는 건, 기이한 감각이었다. 기상호는 그러므로 자신이 세상에서 말하는 신임을 깨달았다.

기상호는 장바구니를 들고 엎어진 작은 아이를 보았다. 돌부리에 무릎이 찢겼는지, 피가 흐르고 있었다. 기상호는 자신의 주머니에서 데일 밴드를 꺼냈다. 애써 눈물을 참기 위해 일그러진 얼굴이 벌겋다. 아이의 무릎에 데일 밴드를 붙이면서, 기상호는 다시는 이 무릎이 다치는 일이 없으니 걱정 말라 일렀다. 그래, 박병찬은 탄력 있는 사람이었다. 어린 아이가 감당하기엔 버거울 통증이었을 텐데도, 박병찬은 기상호의 말에 웃음을 띠우고 자리에서 번쩍 일어났다. 고마워요, 말하며 뛰어 가는 작은 등을 보았다. 사랑이었다. 기상호가 하고 있는 건, 사랑이었다.

기상호는 기꺼이 박병찬의 삶이 원하는 대로 풀리길 기도했다. 그것만으로 만족할 수 있을 거라 자만했다. 박병찬은 부연 중학교를 졸업한 후, 농구 명문으로 유명한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박병찬이 떠난 자리에서 기상호는 어쩐지 농구가 재미없었다. 후보 선수로 외곽에 서서 코트를 누비는 동료들을 보았다. 앞으로 기상호에겐 기회가 오지 않을 것이다. 기상호는 중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농구를 그만뒀다. 기상호는 심심풀이로 보던 만화를 매일 같이 보았다. 이전에도 생각했지만, 이 만화 주인공 사토시는 정말 박병찬을 닮았다. 주인공인 박병찬은 좀 더 주인공처럼 살아야 된다고. 그러기 위해 희생하는 건 엑스트라에 가까운 기상호의 몫이다. 억울하진 않다. 오히려 박병찬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이 대단한 능력이 감사할 뿐이다.

그렇다면 박병찬과 만나는 기회가 더 이상 오지 않는 걸까? 한 번만, 얼굴을, 보면 좋을 텐데.

진심이 만들어낸 몽상이 현실로 되었다. 이모의 갑작스런 병환 소식에 찾은 서울의 모 병원에서 박병찬을 보았기 때문이다. 기상호는 깁스를 한 박병찬을 보고 눈물을 참는데 무척 힘들었다. 결국 기상호의 욕심은 박병찬 인생에 다시 부상의 경험을 만든 것이다. 그럼에도 만났다는 사실이 기뻐,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채로 기상호는 희한한 표정을 지었다.

“응, 결혼 할래.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할래.”

결혼? 그런 걸 왜 하냐. 난 그냥 상호랑 이러고 살 건데.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소실 된 시간에서 박병찬이 뱉은 말은 오로지 기상호 기억 속에 영원하다. 기상호는 손에 힘을 주었다. 자책과 허무가 무섭게 기상호의 가슴을 짓눌렀다. 박병찬의 행복만을 기원한다니! 거짓말! 위선! 기상호의 치장한 거짓말에 박병찬은 사고를 당했고, 팔꿈치에 평생 없었을 흉터를 얻었다. 그것이 두렵고 죄스러웠다면, 박병찬 곁에 알짱거리지 않는 게 답인데도 기상호는 그러지 못했다. 욕심 때문이다. 정말 병찬 햄이 원하는 거라면…. 기상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호프집을 나왔다. 취한 박병찬이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박병찬 신변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기상호가 박병찬의 안전을 기도할 테니.

“신랑은 신부를 영원히 존중하고 사랑할 것을 맹세 합니까?”

박병찬의 행복은 이제 보장 되었다. 아예 굴곡 없는 인생은 어려울 지라도, 이젠 박병찬의 곁에서 애정으로 함께해 줄 동반자가 있다. 언젠가는 아이를 갖겠지. 언젠가는 가족을 이루겠지. 기상호는 박수를 치다 고개를 숙였다.

아, 병찬 햄이 정말로 나를 사랑하지 않아 행복한 세계라니. 차라리 내가 사라졌으면 좋겠어.

기상호는 가라앉았다. 순식간이었다. 기상호는 어지럽고 일렁이는 공간을 부유했다. 전신의 뼈가 경도를 잃고, 흐물흐물 거렸다. 기이하게 늘어나는 팔과 다리를 느꼈다. 기상호는 본인의 기도에 따라 소멸의 과정을 겪는 중이란, 판단을 할 수밖에 없었다. 여름과 겨울이 한데 뒤섞이고, 천지가 무너졌다. 아득한 공간에서 기상호는 멀미했다. 속이 좋지 않아, 몽롱한 정신으로 생각했을 때 목소리가 들렸다.

“웃기지 마.”

박병찬의 목소리였다.

“너는 나를 위한다는 말로 이런 걸 감수했던 거야?”

기상호는 문득 울고 싶었다.

“미안해,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서.”

기상호가 지금 듣는 박병찬의 목소리가 본인이 간절히 바람으로 들리는 환청일까.

“상호야, 아직도 내가 너한테 신이야?”

“네.”

대답은 쉬웠다. 기상호에겐 마땅한 대답이기 때문이다.

“네가 신이라면, 난 정말 신이 된 기분이 들어.”

울음소리가 들렸다. 번잡한 번화가의 대로변이었다. 승용차 한 대가 끼어들어 버스가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으며 놀랐는지 커다란 경적소리를 냈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교복 입은 학생들이 배를 잡고 웃었다. 연신 사과를 남발하며 바쁜 걸음 하는 정장 입은 사내가 식은땀을 흘리며 핸드폰을 귀에 꼭 붙인 채로 곁을 지나갔다. 박병찬은 검지로 귓구멍을 후볐다. 걸음을 멈춘 건, 의도적인 행동은 아니었다. 환청에 가까운 울음소리에 감정적으로 동요한 것도 아니다. 다만 울음소리가 들렸고 무의식적으로 걸음을 멈췄을 뿐이다. 박병찬은 걸음을 한 발자국 뒤로 물렀다. 나란히 서있는 고층 건물 사이의 골목을 보기 위해서다. 마땅한 흡연 장소를 찾지 못해 숨어드는 직장인들의 흔적이 골목부터 고스란했다. 담배꽁초 몇 개가 나뒹굴었고, 내용물이 빈 카페용 테이크아웃 컵이 구석에 쌓여있고, 바닥엔 침을 뱉어 생긴 것이 분명한 얼룩이 있었다. 박병찬은 눈알을 굴려 정면을 보았다. 골목의 안쪽에 열 살 남짓한 남자 아이가 주저앉아 울고 있었다. 작은 손으로 얼굴을 푹 가린 채, 어깨를 흔들며 작은 소리로 흐느꼈다. 퍽 애처로운 광경이었다. 박병찬은 교복 바지에 쑤셔 넣은 진단서를 구겨 쥐었다. 어쩌다 저런 구석에서 울고 있는지, 소년을 향한 연민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박병찬은 자신이 직접 그에게 다가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괜찮은지 물어 볼만한 여유가 없었다.

그래도 박병찬은 고민 없이 골목으로 들어갔다.

“괜찮아, 상호야. 이젠 내가 따라갈게.”

박병찬은 엄지를 세워 어린 기상호 눈에 맺힌 눈물을 닦아 주었다. 박병찬은 기상호 인생 전반을 위로 하겠단, 맹목적 상상을 시작했다. 그렇다면 까짓 거, 무릎이 좀 아파도, 꿈이 잠시간 꺾이는 삶일지라도 어떤가 싶었다. 조형 고등학교에 진학해 출전한 어느 경기에서, 박병찬은 기상호를 만난다. 농구가 재밌지 않았다는 막 되먹은 거짓말을 하는 동생을 이끌어주는 것이 유일하게 사랑하는 신도에게 신이 할 만한 일일 테다. 스스로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볼품없지 않다고, 기상호를 위로 하고 싶었다. 그러니까, 심호흡을 하고 체육관 문을 여는 것이다. 아무도 없을 거라 예상한 체육관에서 공을 튀기는 어리숙한 남자애가 휘둥그레 눈을 뜨고 서있다.

“누군데 남의 체육관에서….”

말하는 목소리에 물기가 서린 걸, 기상호는 의아하게 생각하겠지. 언젠가 기상호에게 말해 줄 생각이다. 언젠가 신이 된다면, 무얼 하고 싶은 지 물어 본 일이 있었잖아. 그 때 내가 생각한 건, 나는 흠이 나고, 부박하고, 때론 초라해질 수밖에 없는 인생이라 해도 기상호 너와 보내는 일상들이 계속 되는 거였어. 그 뿐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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