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엔드 히어로즈

[240320] 태극전기AU 아키메구

1일1최애CP

- 태극전기 AU (옥족 후운지 + 인족 라크로와)


히사모리가 사이키와 계약할 때 사이키가 대가로 요청한 건 ‘일의 도움’이었고, 히사모리는 승낙했다. 그리고 도와야 할 일이 십자당의 접객이라고 들었을 때는 상당히 난감해졌다. 아무리 계약자가 있다지만 두려움의 대상인 옥족이 찻집 점원을 하다니, 분명 손님들에게 겁을 줄 게 뻔하다. 사이키답지 않은, 상당히 무리가 있는 업무 선정이다. 게다가 정식 점원 의상의 대담하기 짝이 없는 디자인을 본 순간 역시 다른 일을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은 더더욱 확고해졌다. 하지만 거절하기에는 라이죠의 기쁜 미소가 너무나도 눈부셨다.

그게 일주일 전 일이다. 우려한 대로 십자당에 온 손님들은 점원으로 일하는 히사모리를 보고 상당히 불안해했지만, 금방 익숙해져 히사모리를 평범하게 점원으로 대했다. 아무래도 라이죠의 스스럼없는 태도와 사사쿠마의 귀여움 덕에 다들 빨리 긴장을 푼 것 같다.

“그런가? 나는 네 언행도 한몫했다고 생각하는데.”

“엣, 그런 거야…? 옥족답지 않다는 말은 이전부터 자주 듣긴 했는데….”

사이키의 말에 히사모리는 멋쩍은 얼굴로 뺨을 긁었다. 옥족답지 않다는 말은 워낙 자주 들어서 이제 와서 별생각 들 이유는 없을 텐데, 사이키에게 직접 들으니 왠지 묘한 기분이 든다. 불쾌한 것은 아니고, 쑥스러움과 머쓱함이 섞인 감정에 가깝다.

“히사모리는 성실하게 일하고, 상냥한 어투로 말을 거니까. 그런 모습을 계속 보면 경계가 풀리는 것도 당연하겠지. 야고 씨는 라이죠의 호위와 밤 순찰 위주로 움직이는 탓인지 아직도 경계 대상 취급이니까….”

“아…… 야고 씨의 경우는 그것뿐만은 아니라고 생각해. 야고 씨, 안 그래도 강한데 눈매까지 나쁘니까….”

강한 옥족에게는 기본적으로 다른 종족도 느낄 정도의 위압감이 있다. 외형과 태도로 적당히 숨길 수 있긴 하지만 야고는 절대 그러지 않는다. 게다가 야고의 새까만 홍채와 사나운 눈매는, 무표정하게 있는 것만으로도 위압감을 더한다. 얼굴을 찌푸리며 노려보면 더더욱 무서워져서, 가끔은 히사모리도 기가 죽을 정도다. 그 야고가 미간을 양껏 구기며 쏘아봐도 태연하게 제 할 말을 하는 라이죠는 다른 의미로 무섭긴 하다만.

“뭐, 야고 씨의 일이니 라이죠가 알아서 하겠지. 지금은 히사모리가 점원 일에 익숙해진 걸 축하하도록 할까.”

“에에, 사이키 군에게 축하받아도 좋을 정도로 익숙해지진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특히 이 옷은 아직도….”

히사모리는 십자당의 점원 의상을 걸친 제 몸을 내려다보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부드럽고 질감이 좋은 데다 튼튼하기까지 한 좋은 옷이지만, 문제는 디자인이다. 팔이 비쳐 보이는 반투명한 옷소매에, 허벅지 바깥쪽에 마름모꼴로 트인 구멍. 대체 왜 이렇게 대담한 디자인인 건지 전혀 모르겠고, 무엇보다도.

“엄청 부끄러워.”

“…의외네. 무리 생활을 하지 않는 옥족에게도 부끄러움의 개념이 있는 건가?”

“아무리 옥족이 궁극의 개인주의자라고 해도 그 정도는 있어….”

“그런가? 야고 씨는 없던 것 같았지만.”

“그 사람은 여러모로 규격 외니까, 묶어서 생각하지 말아 줬으면 해….”

절대 같은 취급 받고 싶지 않다는 뜻으로 히사모리가 고개를 휘휘 저으니, 사이키는 잘 모르겠다는 듯 눈을 깜빡이면서도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그 옷, 잘 어울려.”

“그, 그래? 아무리 생각해도 라이죠 씨처럼 키 크고 비율 좋은 미인이 아니면 소화할 수 없을 것 같은 옷인데?”

“뭐, 확실히 눈에 띄는 옷인 만큼 라이죠에게 잘 어울리는 건 사실이다만… 나는 히사모리에게도 충분히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

“……우와, 뭔가 다른 의미로 엄청 부끄러워. 그래도 칭찬 고마워….”

어울리는 건 잘 모르겠지만, 별개로 옷이 품은 기운과의 궁합 자체는 굉장히 좋다. 외견의 이야기가 아니라 기의 이야기이다. 옥족은 음의 기운의 결정체 같은 거다 보니, 옷처럼 장시간 직접 닿는 물건은 바로 음의 기운의 영향을 받는다. 그러다 보니 옷처럼 튼튼하지 못한 물건은 잠시 걸친 것만으로도 쉽게 헤지기 마련이고, 튼튼한 소재라 하여도 기의 궁합이 맞지 않으면 음의 기운 탓에 부식되거나 파괴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이 옷은 아직도 어디 하나 상한 부분이 없다.

“그러고 보니 이 옷, 사이키 군이 갖고 있었지? 새 옷 같진 않았는데, 누구 옷이었어?”

“아, 원래는 내 옷이었다. 아무래도 정식 점원은 아니니까 입은 적은 몇 번뿐이지만. …보관과 세탁도 제대로 했고, 네 치수에 맞춰 수선도 했다만 혹시 옷에 무언가 문제라도 있나?”

“…….”

없다. 문제는 아무것도 없다.

다만 사이키가 몇 번인가 입었던 데다 보관까지 했다면, 분명 이 옷은 사이키의 영향을 받았을 거다. 그렇다면 이 옷의, 히사모리가 멋대로 궁합이 좋다고 생각한 기운의 주인은….

“히사모리? 괜찮아? 얼굴이 새빨개졌는데.”

“……멋대로 혼자서 생각해서 정말로 죄송합니다…….”

“…갑자기 무슨 말이야?”

그날 히사모리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다는 인족의 속담을 처절하게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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