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엔드 히어로즈

[240318] 태극전기AU 아키메구+야고라이

1일1최애CP

- 태극전기AU (옥족 후운지 + 인족 라크로와)


절벽의 끝자락에 걸터앉아, 히사모리는 동쪽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둡게 가라앉은 색에 조금씩 빛이 섞여가고 있으니, 곧 아침이 올 것이다.

“야고 씨, 이쪽이에요.”

발밑에서 익숙한 기척이 돌아다니는 것이 느껴져, 히사모리는 목소리를 높여 그 기척의 주인을 불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절벽을 올라오는 야고의 모습이 보여 히사모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위험하게 굳이 험한 길로 오지 마세요.”

“이게 빠르잖냐. 근데 너, 왜 이런 데 있냐.”

“여기가 일출이 잘 보일 것 같아서.”

절벽 끝에 도착한 야고는 가뿐하게 발을 내디뎌 섰다가, 히사모리의 옆에 있는 것에 시선을 두었다. 평소의 멍하게도 보이는 무표정한 얼굴에 의문이 스친다.

“이건 뭔 덩어리냐?”

“찾고 있던 옥족이요.”

야고도 찾고 있던 것을 히사모리가 먼저 발견하여, 제압하고 끌고 온 것이다. 계속 도망치려고 해서 움직일 수 없도록 실로 칭칭 감아 두었다. 히사모리의 특기인 주술로 만들어낸 실이니, 히사모리보다 약한 옥족의 힘으로는 끊을 수 없을 것이다.

“입까지 꼼꼼하게도 감아 뒀네.”

“그건 조용히 해 달라고 해도 말을 안 들어서요. 정말이지… 시끄러운 비명 듣는 건 정말 질색이에요.”

“너도 늘 시끄럽게 비명 지르잖아.”

“누구 탓이라고 생각하세요?!!”

“시끄러워.”

히사모리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 사람 상대로는 일반론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 반응하게 되니, 참 어쩔 수가 없는 노릇이다. 속으로 꿍얼거리고 있으니, 야고가 묶인 옥족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고작 이런 놈에게 당한 거야? 촌스럽게.”

“…라이죠 씨 이야기인가요? 그때는 아이들을 지키는 게 우선이었을 테니까 어쩔 수 없죠. 평소의 라이죠 씨였다면….”

“이미 당했는데 그런 만약의 이야기에 뭔 의미가 있냐.”

“뭐어… 그렇긴 합니다만.”

어젯밤, 라이죠가 이 옥족에게 습격당했다. 길을 잃어, 해 질 녘이 되어도 귀가하지 못한 아이들을 찾아서 돌아오던 길이었다. 아이들은 상처 하나 입지 않았지만, 라이죠는 등과 어깨에 깊은 자상을 입은 채였다. 그래도 지킬 수 있어 다행이었다고, 라이죠는 창백하게 질려서도 평소처럼 당당하게 웃었다. 상처를 본 키리야는 분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고, 새빨갛게 벌어진 상처를 치료하던 사이키는 분명히―.

“그거, 안 죽일 거면 줘.”

“어쩌려고요?”

“죽일 건데.”

야고의 즉답에 히사모리는 잠시 귀를 의심했지만, 아무래도 잘못 들은 건 아니었던 듯하다. 야고는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야고 씨, 화났어요?”

야고는 싸움을 좋아할 뿐이지, 굳이 숨통을 끊는 것에 집착하지 않는다. 오히려 저보다 약한 것을 일방적으로 괴롭히는 것을 꺼리고, 상대에게 각오가 없다고 판단하면 되도록 살려서 보내 주는 편이다. 살육과는 제법 거리가 먼 그런 부분도 정말 옥족답지 않은 사람이라고, 히사모리는 자주 생각했다. 그런 야고가 ‘죽일 거다’라고 대놓고 말하는 건 굉장히 드문 일이다.

“…딱히.”

“에에… 그런 말 하면서 설득력이 없네요.”

“시끄러워. 안 죽일 거면 내놔.”

“히익, 부탁에서 명령이 됐다… 주, 죽일 거니까 안 돼요.”

짜증을 숨기지 않고 인상을 구기는 야고에게서 풍기는 위압감에, 히사모리는 어깨를 움츠렸다. 옥족이 저보다 강자인 옥족을 거스르려면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평소의 야고는 딱히 제게 진심으로 명령을 하지 않기 때문에 히사모리도 부담 없이 반발하고는 하지만, 지금은 진심이 섞여 있는 탓에 상당히 주춤하고 말았다.

엄청나게 화났잖아요. 역시 라이죠 씨가 자기가 아닌 상대에게 다친 게 싫은 거죠?…라고 하면 제 쪽이 먼저 죽을 것 같았기에, 그 문장은 그대로 삼키고 다른 말을 입에 담았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곧 아침이 오니까.”

“…흐음.”

그 한마디로 상황을 짐작한 듯, 야고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들었다. 아직 태양은 뜨지 않았지만 상당히 밝아진 하늘을 바라보던 야고가 피식 웃었다.

“하, 성격 나쁜 놈.”

“그거야 옥족이니까요.”

그런 말을 하지만 야고도 딱히 말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도긴개긴이다. 애초에 제 입으로 ‘죽일 거다’라고 말했으니 당연하겠지만. 히사모리도 따라 하늘을 바라보며 빙긋이 웃었다.

“태양은 정말 아름답거든요. 죽기 전에 한 번쯤은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예요.”

“하하, 보자마자 죽겠지만.”

음의 기운을 지닌 마물에게 양의 기운 그 자체인 태양은 독과도 같다. 박명의 희미한 빛이라면 버틸 수 있지만, 떠오른 태양의 빛을 견디는 건 불가능하다. 특히 음의 기운의 결정체인 옥족은, 태양빛을 받으면 그대로 증발하고 만다.

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계약하지 않은 경우고, 계약의 증표로 인족의 부적을 받은 야고와 히사모리에게는 과거의 이야기이다. 인족의 주술이 담긴 부적을 지닌 옥족에게, 태양빛은 그저 따스하고 눈부시며 무해한 것이다.

히사모리는 이 빛에 강한 동경을 갖고 있다. 계약의 존재는커녕 인족과 관계를 맺는 법조차 몰라 그늘에 숨어 지내야 했던 이전에도, 낮의 길을 아무렇지도 않게 걸을 수 있게 된 지금도. 그리고 이 따뜻하고 밝은 기운을 지닌 인족에게서도 반짝임을 느껴서, 가끔은 직시하지 못할 정도로 눈이 부신다고 생각해 버린다.

“너야말로 화나지 않았냐?”

“네?”

히사모리는 야고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야고는 여전히 하늘을 바라보며, 무심한 태도로 말을 잇는다.

“평소에는 이런 번거로운 방법 안 쓰잖냐.”

“…뭐, 그렇죠. 화가 났다고는 생각해요.”

“라이죠가 다친 게?”

“그것도 있지만, 사이키 군이 괴로워 보였으니까.”

상처를 치료하던 사이키가, 굳은 얼굴로 입술을 깨물던 것을 보았다. 그 표정은 화를 내고 싶은 것 같으면서도, 무언가 두려워하는 것처럼도 느껴졌다. 늘 침착하고 차분한, 가끔 빈정대긴 하지만 부드러운 미소를 짓던 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아직 인족의 감각을 제대로는 모르겠지만, 사이키 군에게 라이죠 씨가 소중한 건 알아요. 그래서 그때 사이키 군이 그런 표정을 지은 거겠죠.”

점점 박명의 빛이 강해지고, 하늘에 주홍빛이 섞이기 시작한다. 떠오르기 시작하는 태양을 바라보며, 히사모리는 말을 이었다.

“사이키 군이 소중하게 여기는 걸, 저도 소중하게 여기고 싶어요.”

눈부신 것이 모습을 드러내고, 무언가 타들어 가는 듯한 소리가 나기 시작한다. 고개를 돌려, 실로 묶인 것이 발버둥을 치는 것을 바라본다. 반투명한 실은 태양빛을 막아 주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음의 기운이 태양빛과 충돌하고 반응하며, 폭발적으로 부서져 간다. 그럼에도 입을 막아 두었으니 비명도 지르지 못한다. 무엇도 남기지 않고 서서히 증발하며 흩어져 간다.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거든요.”

옥족이 있던 자리에는 흐트러진 실타래만이 남았고, 그것도 히사모리가 주술을 해제한 순간 사라졌다.

“…너 말야, 그런 건 사이키한테 말해.”

“에엣, 싫어요. 부끄럽단 말이에요.”

“나한테 말하는 건 안 부끄럽냐?”

“야고 씨는 괜찮아요. 이런 거 발설 안 하기도 하고.”

“허어. …뭐, 됐다. 먼저 간다.”

“아, 또!!! 같이 좀 가요!!!”

절벽을 내려간 두 옥족이 완전히 그 자리를 떠났을 때, 남은 것은 오직 고요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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