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엔드 히어로즈

[야고라이] 너, 내가 죽는 게 무서워?

제대로 된 답변을 기대한 물음은 아니었지만 말야.

- 이터와의 전투로 중상을 입은 야고가, 잘 보이지 않는 눈으로 라이죠를 관찰?하는 이야기


야고 유우세이는 눈을 떴다. 정확히는 눈을 뜨려고 했지만, 속눈썹에 뭔가 엉겨 붙어서 눈이 잘 뜨이지 않았다. 그나마 비치는 시야도 붉고 까매서, 온통 흐릿하기만 하고 잘 보이지 않는다. 뭔가 사람 그림자 같은 덩어리가 가까이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것만 얼추 알 수 있는 정도였다.

“…뭐야, 이 덩어리.”

“덩어리가 아니라 라이죠 시구레다. 나 참… 눈을 뜨자마자 하는 소리가 그건가? 아니,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정도였으니, 깨어난 건 다행이긴 하다만….”

제 말에 대꾸한 건 라이죠의 목소리였다. 어쩐지 피와 흙먼지의 냄새에, 부자연스럽게 이상한 냄새가 섞여 있다 싶었다. 야고의 머리 위에서 라이죠가 뭐라 중얼거리던 게 멈추고, 부드러운 게 뺨을 더듬는 느낌이 이어졌다. 아마도 라이죠의 손일 거다.

“앞이 제대로 안 보이는 건가, 이 나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그 자신감은 뭔데. …전부 뿌옇게 보여서 구별 안 가.”

“눈가의 피 때문인가. 일단 닦아 두도록 할까.”

아무래도 속눈썹에 엉겨 붙은 이건 피인 것 같다. 이마나 머리를 다치기라도 한 걸까 싶다. 통증을 못 느끼고 감각도 둔한 축인 야고는,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 같은 건 인지하지 못한다.

뭔가 보들보들한 게 이마에 닿더니, 눈가 근처를 조심스레 닦기 시작했다. 아마 라이죠의 손수건이다. 끈적거리던 게 떨어지니 시야가 조금 밝아져서, 얼추 라이죠의 형태를 알 것 같다. 다만 아직 또렷하게 보인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정도였다.

“이제 잘 보이나?”

“아까보다는. 그래도 흐려.”

“그렇다면 출혈의 영향인가…. 임시방편이지만 지혈을 해 두도록 하지.”

라이죠가 분주하게 움직이는가 싶더니, 곧이어 배에 압박감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배에도 상처가 생긴 모양이다. 머리에 배인가. 어쩌다가 이렇게 다쳤더라?

그러고 보니 아까, 이 녀석과 둘이서 이터를 잡았던 것 같다. 중형 치고는 제법 근성이 있던 그 이터는, 야고의 마무리 공격을 먹고 소멸하기 전, 발악으로 제게 반격을 날렸더라. 그리고 야고는 그걸 맞았다. 대충 거기까지는 기억이 난다. 그래서 지금까지 기절해 있었던 걸까.

“응급 처치는 끝났다. 곧 지휘관이 의무반과 함께 올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그 말에 야고는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바로 억세게 어깨를 누르는 라이죠의 손에 제지당했다. 방해하지 말라고 불만을 담아 라이죠를 바라보아도, 라이죠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하긴, 이 정도로 물러날 녀석이었다면 귀찮을 일이 없었을 거다.

“움직이지 마. 출혈이 심해지기라도 하면 어쩔 거냐.”

“지혈해 뒀다며.”

“어디까지나 응급 처치고, 나는 메구루처럼 전문가도 아니야. 아까도 말했지만, 의무반이 곧 올 테니까 가만히 있어.”

“누워 있으면 졸린데.”

“그 몸으로 잘 생각은 마라, 죽고 싶은 거야? 바보.”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되면 어쩌란 거야.”

“얌전히 기다리는 것도 못 하겠다니, 너는 훈육이 안 된 짐승인가?”

“시끄러~. 성가시게 진짜.”

그리 잔소리를 하면서도, 라이죠의 손은 분주히 야고의 곳곳을 건드린다. 목에 닿았다가, 눈가에 닿았다가, 코 밑에 닿았다가 한다. 잘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사이키의 흉내라도 내는 게 아닌가 싶어, 성가시긴 했지만 일단 내버려두기로 했다.

“하아… 그래도 일단, 살아 있으니 다행이군.”

노골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큰 소리로 한숨을 내쉬며 그리 말하더니, 라이죠가 손을 떼었다. 그리고 조용해진다. 이쪽을 내려다보는 듯한 건 여전하지만, 시끄럽게 잔소리를 걸어오지는 않는다. 들리는 건, 조금 떨리는 숨소리뿐.

“…….”

여전히 야고의 시야는 또렷하지 않으니, 라이죠의 표정도 잘 보이지 않는다. 라이죠는 그걸 알고 있을 거다. 그러니까 들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그렇다면 이 녀석은 자신을 대체 얼마나 바보 취급하고 있는 걸까.

“너, 평소에는 그렇게 시끄러운 주제에.”

“…….”

“이럴 때는 조용한 거, 왠지 열받아.”

“……?”

손을 뻗어서, 라이죠의 뺨으로 보이는 위치를 짚어 본다. 미적지근하고, 조금 젖은 감촉이 손끝에 닿는다. 생각한 대로였기에, 야고는 헛웃음을 흘렸다.

라이죠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손을 뿌리치려나 생각했지만 그러지도 않는다. 라이죠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까지는, 야고는 알 수 없다. 다만 묻고 싶은 것만은 있다.

―너 말야, 내가 죽는 게 무서워?

그리 내뱉고자 한 말은, 멀리서 이쪽을 부르는 소리에 그대로 지워졌다. 다급하게 저와 라이죠를 찾는 목소리는, 야고도 잘 아는 사람의 것이었다.

“…지휘관 군!!! 이쪽이다!!!”

그에 반응하여 라이죠가 고개를 돌렸다. 이어진 몸짓은, 아무래도 얼굴을 닦는 것처럼 보였다. 지휘관에게 보이고 싶진 않을 테니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후아암.”

둘뿐이어도 제대로 된 대답을 해 줄 거라 기대하진 않았지만, 심지어 다른 녀석까지 왔다면 더는 물어봐야 의미가 없다. 그리 생각하니 잊고 있던 걸 기억해 낸 것처럼 졸음이 몰려와서, 야고는 길게 하품을 했다.

뭐, 어차피 지휘관도 왔으니까 슬슬 자도 괜찮으려나.

그리 생각하며 야고는 눈을 감은 것이었다.


긴 글이 안 써져……이쯤 되면 저주일지도모름………(아닙니다 그냥 슬럼프 같은 것입니다)

조용히 우는 라이죠에게 ‘이럴 때만 조용해지는 거 짜증 나’라고 말하는 야고가 보고싶다는 오타쿠망상에서 태어난 결과물입니다. 사실 망상한 이후에도 쓰는 동안에도 라이죠가 울어? 말이안되지않음? 이랬는데 말이에요(ㅋㅋ 혼자 있을 때도 ‘라이죠 시구레’로서 무대에서 내려오지 않을 남자가 생리적인 게 아닌 이유로 눈물을 흘릴까…? 싶었지만 ‘뭐 라이죠 시구레를 무대에서 끌어내리는 게 야고 유우세이니까 괜찮지 않음?’ 이라는 억지논리로 돌파했다고 합니다. 뭐 이딴 게 다 있담. 뭐 아무튼 울었다는 묘사를 최대한 죽인 것도 그런 이유네요(돌파 덜 됐잖아요(그러게…

여름이라 그런지 아니면 걍 정신건강문제인지 요즘 나른하고 글도 잘 안 써지고 그림도 딱히 안그려지고… 조금씩 재활해야겠다 생각은 하는데 쉽지가 않네요. 근데 계속 이대로 있다간 더 심해질거같아서 채찍질해야함. 철썩철썩. 암튼 힘내겠단 소리임.

카테고리
#2차창작
페어
#BL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