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라이] 뭐야 이거 꿈인가
그리 생각할 정도로 이상했던 여름의 풍경
- 어느 여름날, 야쿠사 도장 툇마루에 낮잠을 자다 깬 야고의 이야기
야고가 눈을 떴을 때 근처에 라이죠가 있는 건, 사실 제법 자주 있는 일이다. 합숙시설에서 히어로끼리 단체활동을 하고 있으니 별수 없다. 심지어 야고를 깨운 장본인이 라이죠인 경우도 적지 않고, 보통 라이죠가 야고를 깨우는 방식은 발길질이나 벤치를 뒤집어엎는 등의 무력을 행사하는 게 대다수다. 그렇게 야고가 불쾌한 기분으로 눈을 뜨면, 라이죠는 한심하다는 듯한, 또는 화를 감추지 않는 얼굴을 하고 이쪽을 바라보고는 했다. 야고가 잠든 장소나 일어난 시각에 대해서 잔소리를 시작하는 건 덤이었다.
하지만 그날 야고가 드러누워서 낮잠을 잔 곳은 합숙시설이 아니었다. 야쿠사 도장의 툇마루 안쪽, 가장 선선한 자리였다. 그것 또한 자주 있는 일이었다. 도장의 툇마루는 야고의 좋은 낮잠 장소였고, 그건 야고가 도장을 그만둔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언제든지 놀러 와도 좋다고 한 건 다이치였으니 별로 신경 쓸 건 없었다.
그래서, 눈을 뜨자 보인 라이죠의 모습에 야고는 강한 위화감을 느끼고 말았다.
합숙시설이 아닌 야쿠사 도장의 툇마루에, 라이죠가 있다. 하지만 평소처럼 시끄럽게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고,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지도 않다. 그는 야고에게서 등을 돌린 채로, 얌전히 툇마루에 걸터앉아 있었다.
툇마루 바깥은 아직 해가 쨍쨍하다. 라이죠가 걸터앉은 자리는 햇빛이 들어오지 않긴 하지만, 야고가 누워 있는 안쪽만큼 시원하지는 않을 터였다. 하지만 라이죠는 그 자리에 잠자코 앉아서, 움직이지 않는다. 돌아보는 일도 없다.
도장 근처의 나무에는 자리를 잡지 못한 건지, 매미 우는 소리가 평소보다 멀게 들렸다. 아직 처마에 풍령을 달지 않은 건지, 바람이 불어도 별다른 소리는 나지 않았다. 그저 희미한 바람결을 따라 긴 머리카락이 살짝 나부끼고, 썩 좋아하지 않는 꽃 냄새가 야고의 코를 간지럽힌 후 사라질 뿐이다. 라 크로와의 하복인 반소매 셔츠 밖으로 뻗은, 여름 햇볕 같은 건 모른다는 것처럼 하얀 팔을 따라 눈길을 움직여 본다. 각도 때문에 완전히 보이진 않지만, 그 손이 태블릿 같은 걸 쥐고 있는 건 얼추 알았다.
애초에 이 녀석이 정말 여기에 있기는 한 건가 싶을 정도로, 익숙하지 않은 고요.
뭐야 이거, 꿈인가?
분명 잠에서 깨어났을 터인데도 그리 생각해 버릴 만큼, 야고에게 있어 기묘하게 느껴지는 풍경이었다.
…비슷한 걸 예전에도 한 번, 본 적이 있었던 걸 기억한다. 그때도 분명 지금처럼 햇빛이 강한 여름이었다. 기억력이 썩 좋지 않은 야고지만, 이상하게도 그날의 풍경은 또렷하게 떠올릴 수 있다.
여름방학, 아침의 가라테 연습이 끝났을 때는 해가 중천이었다. 뜨거운 햇빛을 받으며 걷기도 싫고 적당히 졸렸던 것도 있어, 야고는 집에 가는 대신 도장의 툇마루로 향했다. 안쪽의 가장 선선한 자리에 누워 눈을 감고 잘 준비를 하고 있는데, 근처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이터 문제라면 많이 늦어질 테고, 밖에 계속 서 있으면 덥잖아. 툇마루에서 기다리는 게 낫지.”
“감사합니다, 쿠가 선생님… 야고?”
“어라, 유우세이잖아. …이 녀석, 또 집에 안 가고 여기서 낮잠인가.”
“…깨우지 않아도 괜찮은 건가요?”
“뭐, 자주 있는 일이니까. 알아서 일어나서 갈 테니까 신경 쓰지 마.”
하나는 다이치,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라이죠다. 분명 평소처럼 먼저 짐을 싸고 도장을 나섰을 텐데, 잘은 모르겠지만 늘 오는 마중이 늦어진 모양이다. 마중이 없으면 집에도 못 간다니 얼마나 도련님인 건지, 야고는 눈을 감은 채로 속으로만 혀를 찼다.
발소리 하나가 멀어져서, 야고는 살짝 눈을 떴다. 시야에 들어오는 건 가방을 내려놓은 채 툇마루에 걸터앉은 라이죠의 뒷모습뿐이다. 이쪽이 바라보는 건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몸을 살짝 숙인 채로 팔을 움직이고 있다. 무릎에 둔 노트와 연필을 쥔 손이 흘끗흘끗 보이니, 숙제라도 하는 것 같다.
느릿느릿 눈을 깜빡이며, 야고는 라이죠의 등을 바라보았다. 늘 먼저 시끄럽게 참견해 오는 주제에, 지금은 전혀 돌아보지 않고 숙제에 열중해 있다. 그게 어째서인지 조금 재미없어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저 등을 툭 쳐서 놀라게 할 수도 있었을 테고, 그냥 그대로 다시 눈을 감고 잘 수도 있었을 텐데, 왜 그러지 않았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야고는 그냥 가만히 누운 채로 계속 그 등을, 툇마루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람이 약해서인지 제대로 울리지 않는 풍령. 매미 우는 소리가 멀어서인지 더 선명히 들리는, 필기구가 종이를 사각사각 갉작이는 소리. 툇마루 바깥을 달구는 쨍한 햇빛. 빳빳한 반소매 셔츠 밖으로 뻗은 희고 가느다란 팔. 작은 바람이 불 때마다 가볍게 흔들리는, 야고의 것보다 조금 더 길고 부드러운 머리카락. 돌아보는 일 없는 등.
꿈이 아닌가 생각해 버릴 만치,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고요.
그러다 언제 잠들었는지, 야고는 모른다. 다만 다이치가 야고를 깨웠을 때는 해가 제법 내려간 뒤였고, 툇마루에 등을 보이고 걸터앉아있던 철부지는 어디에도 없었다. 야고가 기억하는 것도 거기까지다.
다시 잠들었다가 깨어나면, 이 녀석은 여기에서 없어지는 걸까. 그때 그랬던 것처럼.
문득 생각한다. 그때 그건 정말로 꿈이었던 게 아닐까. 라이죠는 정말로 거기에 있었을까. 실은 그저 그때 야고가 깨어 있다고 착각하며 본 꿈이었을지도 모른다. 꿈이 아니었다고 해도, 환상 같은 걸수도 있다. 햇볕이 뜨거우면 그런 게 생긴다고 누가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때의 라이죠가 현실이 아니었다고 한다면, 지금의 이 라이죠도 마찬가지로 꿈이나 환상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별로 상관은 없다. 이 라이죠가 꿈이든 환상이든, 야고가 신경 쓸 건 아니다. 그리 생각하면서도 야고는 손을 뻗어, 그 등을 툭 쳐 보았다. 예전에는 하지 않았던 일이었다. 그 가벼운 접촉에 반응하여, 라이죠가 이쪽을 돌아본다. 의아함을 감추지 않는 표정으로, 이전과는 한쪽 색이 다른 두 눈이 야고를 담았다.
“…야고?”
머리 위에서 들리는 목소리에는 대답하는 대신, 야고는 라이죠의 팔을 잡았다. 손바닥에 닿은 온도가 미지근하고, 습기 때문인지 땀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살짝 달라붙는 것처럼도 느껴진다.
시선은 또렷하고 체온이 있으니, 이건 꿈도 환상도 아니라는 걸 실감했다.
“……하핫.”
어느 쪽이었어도 별로 상관은 없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야고는 왠지 모를 만족감을 느끼고 웃었던 것이었다.
“갑자기 사람을 잡고 웃다니, 잠이라도 덜 깬 건가?”
“시끄러워. 그보다 너, 왜 있는데.”
“쿠가 선생님을 뵈러 온 거다. 너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냥 낮잠 자러 온 건데.”
“너 말이다….”
꿈인가 현실인가 모호한 풍경과 돌아보지 않는 등을 바라보는 걸 너무 좋아하는 투명한 유리구슬 같은 취향아~~~~~~(대충 나도 모르겠다는 뜻의 댄스)(와플팬쿵쾅쿵쾅)
제목 왜 이래 싶을지도 모르겠는데 일단 이 썰을 풀었을 때 생각났던 걸 그냥 제목으로 썼습니다. 슬슬 제대로 된 제목을 짓기 귀찮은 것이 분명하다…
뭐 이런 걸 쓴 것과 별개로 저는 ‘쟤는 나 안 봐’라고 생각하면서 서로를 보고 있는 게 야고라이일 거라는 뇌피셜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눈이 마주치면 화들짝 놀라는 시구레와 우주고양이 되는 야고상을 멋대로 추가로 생각합니다. 즐겁다(진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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