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엔드 히어로즈

[야고라이] 내일이 있다면

그런 생각을 해도 괜찮지 않나 싶어졌으니, 분명 머리가 어떻게 된 거겠지

- 새벽에 해가 뜰 무렵 이터 토벌을 마친 야고가, 라이죠와 대화하는 이야기


갑자기 이터가 급습했다고, 새벽에 두들겨 맞아 일어나는 꼴이 되었다. 어떤 때라고 해도 강한 녀석과 싸우는 건 즐거웠지만, 잘 자던 도중 일어난 탓에 잠이 덜 깬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런 상태로 토벌을 끝냈다.

말하자면 이터와 싸운 흥분은 남아 있는데, 그 와중에 또 졸리다는 거다. 그러니까 머리가 어떻게 되었어도 뭐, 이상하진 않을지도 모른다.

“야고, 일어나.”

부서진 건물 벽 중 괜찮은 걸 골라서 기대앉아 잘 생각이었는데, 뭔가 종아리를 툭툭 쳤다. 머리 위에서 들리는 잘 아는 목소리에 별로 반응하고 싶지 않았지만, 종아리를 치는 힘이 점점 강해지는 게 느껴졌다. 아프지도 간지럽지도 않지만, 계속 무시하면 더 귀찮아질 걸 알고 있기에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뭐야, 귀찮게 굴지 마.”

“귀찮게 굴 수밖에 없는 짓을 한 걸 자각해라. 나 참, 아무리 싸움이 끝났다지만 이런 곳에서 자고 싶은 거냐? 너는 정말이지….”

팔짱을 낀 채 이쪽을 내려다보는 라이죠는, 다른 녀석한테는 보이지 않는 불만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다. 자세를 보아하니 방금 내 종아리를 친 건 이 녀석의 손이 아니라, 발인 것 같다. 늘 나한테 교양이 없다느니 조야하다느니 잔소리를 해 대면서, 정작 본인은 나보다 발을 쓰는 버릇이 나쁘니 웃기지도 않는다. 사람을 발로 차서 깨우는 녀석도 충분히 교양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 건지.

“졸린데 어쩌라고… 돌아갈래.”

“안 돼. 지휘관 군과 시라호시 측의 피해 확인이 끝날 때까지는 제대로 기다려라. 거의 끝났으니까.”

“뭔데, 그게.”

“너, 지휘관 군의 설명을 또 한 귀로 흘린 건가. 원래 교전지로 예정된 곳이 아니었던 걸 급히 빌렸다고 분명 말했을 텐데… 하긴, 들었다면 이렇게 멋대로 죄다 부수면서 싸우지는 않았겠지….”

“시비 거는 거야?”

“네 부주의를 지적하는 것뿐이다만? 시비처럼 들린다면 네가 찔리는 게 있어서겠지.”

한 마디를 안 지고 따박따박 대꾸가 돌아오니, 역시 짜증이 난다. 이 녀석과 말싸움하는 것만큼 열받는 것도 없을 거다. 무어라 반응하는 것보다는 그냥 여길 떠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몸을 일으켰는데, 라이죠의 시선이 이쪽을 떠나 하늘을 향했다.

“…이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 슬슬 해가 뜰 것 같구나.”

그 말대로, 싸울 때까지만 해도 까맣던 하늘은 어느새 보라색이 되어 있었다. 조금씩 해가 뜨는 건지 주변도 아까보다 밝게 보인다.

“근사한 하루의 시작이야.”

졸리지도 않은지, 라이죠는 또렷하고 밝은 목소리로 그런 말을 내뱉었다. 그 눈은 여전히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잠도 제대로 못 자서 졸리기 짝이 없는데, 뭐가 근사한 하루인지 모르겠다. 이후 그런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큰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건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나는 더더욱 그렇다. 지금이야 멀쩡하지만, 당장 5분 뒤에 생을 마감할 만한 발작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몸이다. 만약 어찌저찌 ‘근사한 하루’를 보낼 수 있다고 쳐도, 그 내일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입밖에 내뱉지 않은 건, 그게 딱히 화가 나지는 않아서다. 시시한 중딩 시절이었다면 제법 짜증을 냈을지도 모르겠지만.

애초에 라이죠는 도장에 다닐 때부터 이런 식이어서, 도장을 떠날 때마다 나한테 ‘내일 또 보자’라고 말했다. 나는 한 번도 받아주지 않았지만, 끈질기고 꾸준하게도 언제나 그 인사를 하고 떠났다. 결국 내가 입원한 사이 도장을 그만둬서, 내일 또 볼 수 없게 되었다만.

그런데도 이 녀석은 지금도 또 이런다. 아마 내 병에 대해서는 히사모리만큼… 아니, 어쩌면 걔보다도 더 잘 알고 있을 텐데, 나를 당연히 내일도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군다.

라이죠가 왜 나한테 이런 식으로 구는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녀석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바보고, 그런 바보를 이해하려 드는 것만큼 바보 같은 일도 없을 테니까.

“뭐, 여전히 졸려 보이는 너는 탐탁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만.”

하늘을 올려다보던 라이죠가 고개를 돌리고, 시선을 이쪽으로 향한다. 당당한 태도를 취하고 있지만, 솔직히 말해 그 모습은 엉망이다.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옷은 군데군데 찢어지고, 머리카락도 흐트러졌다. 평소에 귀찮을 정도로 매무새를 단정히 가꾸어도, 격렬한 싸움 후에는 이런 꼴이 되는 법이다.

그렇지만 이쪽을 바라보는 색이 다른 두 눈은, 언제나 곧고 반짝반짝한 빛을 똑바로 향한다. 쓸데없을 정도로 눈부신 색에 담기는 건, 불쾌함과는 다른 묘한 근질거림을 남긴다.

…그러니까, 아무튼 나는 졸렸다. 그리고 아직도 싸움의 흥분이 남아 있었다. 분명 머리가 어떻게 되었을 거였다.

“좋은 아침이다, 야고.”

그런데 이 바보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아직 보라색이 완전히 가시지도 않은 하늘 아래서, 왠지 기쁜 듯한 얼굴로 웃으면서 그런 말을 하니까.

“…….”

오늘이 어떤 하루가 될지는 얘도 모르고, 나도 모른다. 그리고 분명, 나한테 내일이 있을지도 아무도 모를 거야.

그렇지만 어차피, 나한테 내일이 있든 없든 간에 해는 뜨고 내일은 올 거야. 그리고 분명, 내가 내일 있든 없든 간에 너는 계속 그런 녀석일 거야. 그런 거, 아무래도 좋아.

“야고?”

“…라이죠.”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분명 머리가 어떻게 된 거야. 그러니까 지금,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든 거겠지.

“나 말야.”

야, 만약 네가 나한테 내일이 오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면.

그리고 만약 나한테도 내일이 있다면.

“예전부터 너를―”

나는, 너와.


우오오오 오랜만에 글썼다… 아니 진짜 오랜만이네??? 단문인 건 재활치료중이라서인듯(아닐수도 그냥 이제 긴글이 힘들어진걸지도)

내일이나 미래에 의미를 두는 일도 스스로 생각하는 일도 드문 야고가 라이죠를 볼 때 문득 ‘그 다음’의 이야기를 떠올리고 마는 야고라이를 좋아합니다…라고 전에 말한 적 있었나? 아마 트위터에서 말했겠지(…) 아무튼 당연한 내일이라는 건 누구에게도 없겠지만(암만 오늘 건강하다고 해도 내일 사고가 안 나는 건 아니니까요) 그걸 기대하게 되는 것 또한 삶이겠지요…라는 이야기를…아니 뭔가 거창해지고있는거같은데 오타쿠이야기 맞습니다 야고상 오래오래까지는 아니더라도 즐겁게 길게 살아줘…시구레랑…()

시구레는 정말로 야고상에게 당연한 내일이 올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기보다는, 그렇게 행동하는 걸로 야고상의 기적에 제 소망을 더해가고 있다는 게 뒷이야기입니다만 이 글은 완전히 야고상 시점이라 딱히 밝혀질 일이 없었다고해요(…) 별개로 제가 쓰는 야고상은 왜이렇게 감성적인가를 늘 고민합니다만 결국 제가 이런 걸 좋아해서겠지요 히히 와플팬이 꽝 캐해가 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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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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