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도피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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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두통에 시달렸다. 속에 든 것을 다 게워내느라 양동이가 두 개나 가득 찼다. 세상이 빙빙 도는 것 같아서 눈을 도저히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마우리스는 내 행동에 대해 냉담한 태도를 보였던 것과는 별개로 나를 썩 열심히 간호했다. 피와 토사물을 치우고, 땀을 닦아 주는 것 따위의 행동들. 나는 그가 손을 쓰지 않고도 신전을 깨끗이 관리하는 것을 보아
#1. “뒷정리는 끝났니?” “......그래, 끝냈다. 하지만 결국 인간들은 무언가를 직감하겠지-잘못된 것이 있다는 것을. 나도 개입할 수 있는 한계가 있다.” “그 정도면 되었어. 고마워.” “왜 살아 있다고 말하지 않았지? 살아 있었더라면, 우리에게 돌아와야 했다, 너는.” “모든 게 운명이야, 타나토스. 이것도, 저것도.” “……어머니께는 알리지
그날 나는 별 문제 없이 잠에 들었고 심지어 늦잠까지 잤지만 오르피아는 밤을 샌 듯했다. 그는 부인했지만 그의 눈가에는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고 피곤의 기색이 역력했다. “지금 몇 시야?” “대충, 정오 조금 전. 마우리스가 정오 전까지 오라고 했었지? 빨리 가면 시간에 맞출 수 있을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오르피아와 함께 여관을 나섰다. 문
“저기, 너희들.” 마우리스가 그렇게 말을 꺼낸 것은 여름을 다 지나 슬슬 추워지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나가 볼 생각 없니?” “내쫓는 거야?” “아니, 그런 건 아니고, 부탁할 것이 있어서. 외출을 제안하는 거야. 코라 너, 열네 살부터 쭉 여기서 나가지 않았잖니? 바깥이 그리울까 생각했단다.” 마우리스의 말은 맞았다. 여기서 나가지 않은 지도 벌
“코라?“ 오르피아의 목소리였다. 그의 눈가는 약간 빨갰다. 내가 눈을 비비며 일어나자 그가 소리를 내며 웃었다. ”뭐가 웃겨?“ ”당신 머리카락. 구름이 파먹힌 모양새야.“ 그가 잠깐 사라지더니 청동 손거울을 가져왔다. 나는 거울을 보고 얼굴을 찌푸렸다. 머리가 사방으로 부풀어 있었다. 평소의 두 배였다. 곱슬이 심한 머리여서 가끔 아침에 일어나 보
이름을 가지지 못하고 살아감이 어떠한 의미인지 아는가. 나는 오랫동안 이름이 없었다. 나는 남쪽의 작은 나라 산간의 어느 마을, 유복하지 못한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이미 딸이 있었던 나의 부모는 지참금만 축내는 계집아이 대신 일꾼이 될 수 있는 건강한 사내아이를 원했는데, 안타깝게도 나는 계집이었던 데다 건강하지도 않았다.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온갖
“가장 낮은 이들의 구원자에게 보호를 청하는 방법-제물을 바치고, 아무도 없는 공간으로 향한다. 그다음에는 눈을 감고 북쪽으로 열두 걸음, 서쪽으로 다섯 걸음, 그리고 남쪽으로 둘, 동쪽으로 넷, 다시 북쪽으로 여섯.” 아무도 없는 야산, 탁한 금발의 소녀는 눈을 감고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앞으로 나아갔다가 옆, 뒤, 다시 앞으로 걸음을 옮기기를 반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