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사쿠타 류세이 + 노자마 토모코 (류토모)
일본에서 들어온 신간을 정리하면서, 점원은 한숨을 쉬었다. 일본에서는 이런 다크 판타지 소설이 유행하는구나. 은박으로 포인트를 준 별 모양을 쓰다듬어 본다. 어쩐지 간담이 서늘해지는 느낌이 든다. 점원은 몸을 부르르 떨며 다시 책 두 권을 선반 위에 얹어둔다. 오전 9시를 알리는 뻐꾸기시계 소리가 고요한 서점 안을 울린다. 2시간 뒤에야 첫 손님이 오시겠지. 여유롭게 신간 하나하나 살펴보려던 순간.
딸랑 -
손님이 문을 여실 때 나는 종소리가 격하게도 난다. 그리고 이어지는 다급한 발걸음 소리에, 화들짝 놀라 인사하는 것도 까먹은 채로 뒤를 돌아본다. 묘한 푸른색 슈트를 입은 남자가 숨을 몰아쉬며 서 있었다. 무엇을 도와-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자는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가리킨다. 방금 선반 위에 얹어 놓은 다크 판타지 소설이었다. 그거 한 권 주세요, 가장 처음으로 온 책으로.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카드 하나를 내 놓는다. 이름이 없는 카드라니,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의심하지만 그것도 한 순간이었다. 점원은 가장 처음에 있던 책을 종이봉투에 담아 건낸다. 감사합니다, 남자가 다시 바람처럼 사라진다. 이 책이 그 정도로 재미있나? 점원은 호기심에 책을 펼쳐서 읽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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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로 돌아와서는 단숨에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3시간 가까이 지났을까. 어느덧 마지막 페이지에 적혀있는 글자를 읽어나갔다. ‘이 책을 읽고 있을 비밀의 스파이씨를 위해’, 짙은 파란색에 글리터가 들어가 있는 잉크로 써진 글씨였다. 장갑을 끼지 않은 오른손으로 글씨를 쓸어 만져본다. 이번 책은 파란색이었다. 자신의 서류 가방에서 조금은 낡아버린 옅은 색 종이 뭉치를 꺼내 탁자에 올려놓았다. 글리터에 파란색, 글리터에... 중얼거리면서 종이 뭉치를 넘기다 이내 파란색 얇은 종이 한 장을 꺼냈다. 다시 첫 페이지를 폈다. 종이를 책 위에 올려두면 보이는 비밀의 글자들, 비밀의 스파이를 향한 그녀의 마음임을 누가 알까? 아까보다 더욱 천천히 책을 읽기 시작했다.
어느덧 저녁 시간을 훌쩍 넘겼다. 아프다며 임무를 잠시 뒤로 미루고선 하루 종일 책을 들여다 본 류세이는, 표지에 적혀진 제목을 소리 내어 읽어본다.
“유성이 내리는 밤에는 나를 찾아와줘.”
너무나도 메시지가 뚜렷한 제목이었다. 나도 네가 보고 싶어. 양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중얼거렸다. 인터폴로 활동한 후 부터는 일본에 갈 일도 자주 없었고, SNS를 통해 토모코와 연락을 할 수도 없었다. 그러던 중 토모코가 제안한 방법이 바로 책을 통해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 그녀는 반드시 류세이가 어디에 있더라도 자신의 책을 볼 수 있게 열심히 집필할 것이라고 다짐하였고, 실제로 삽시간만에 인기를 얻어 유명한 작가가 되었다. 그렇기에 류세이는 토모코의 신간을 누구보다 기대하는 한 명의 열혈 독자였다.
책의 표지에 그려진 사람이 너무나도 토모코를 닮았다. 폭신한 소파에 몸을 파묻고 있던 류세이는, 더는 못 참겠어, 중얼거리더니 어딘가로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한 손으로는 연필과 필기구를 꺼내들었다. 수화기 저편에서 안내 음성이 들렸다. 네, 여기는 **항공입니다.
“30분 이내에 일본으로 출발하는 비행기가 있나요? 어느 공항이든 상관없습니다.”
당황한 기색의 음성이 들려왔다. 하지만 이내 침착하게 20분 뒤 비행기 한 대가 있다며, 예약해 드릴까요? 좌석이 불편하지만 괜찮으신지, 하는 물음이 들려왔다. 괜찮습니다. 자그마한 가방 속에 여행 짐을 넣으며 대답했다. 토모코를 만나러 간다는 생각에 류세이의 동공이 자그마하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기관 측에서는 못 미덥게 보겠지만, 토모코를 볼 수 있다면 그 정도 눈초리야 아무것도 아니었다.
“예약자 분 성함은 어떻게 되실까요?”
아. 허리를 꼿꼿하게 피고선 방긋 웃는다. 이번 신간의 주인공 이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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