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돌

[천아공/결온] 상자 안의 마지막 계절이 지나가면

천재 아이돌의 연예계 공략법 2차 창작, 서문결X온라온 (결라온)

길잡이 by R

백업 :: 2021. 10


후웅, 하는 소리와 함께 천장에서 더운 바람이 내려왔다. 환기되지 않은 공기가 먼지 냄새를 내며 부유했다. 그러나 누구 하나 창문을 여는 이는 없었다. 도리어 교복 위에 걸친 외투를 단단히 여미고 하던 일을 이어나갈 뿐이었다. 날씨가 아무리 좋은들 매일같이 올해의 가장 추운 날을 갱신하는 뉴스가 흘러나오는 계절이었다. 먼지 낀 창 너머엔 겨울의 잿빛 하늘이 말갛게 펼쳐졌다. 닫힌 창 틈새로 의미를 알아들을 수 없는 특기생들의 기합소리가 흘러들어왔다. 실내라고 조용한 것은 아니라 다른 의미에서 조용하고도 소란스러웠다. 교사도 들어오지 않는 교실 안에는 실기고사 등의 이유로 주인 없는 자리가 반도 넘었다. 남아있는 학생들도 어딘가 붕 떠있는 채로 학업 아닌 무언가를 해댔다. 가장 큰 시험을 마치고 이제는 졸업까지의 날짜만을 헤아릴 상황에 누군들 탈력을 느끼지 않겠냐마는.

바쁘게 움직이는 손가락이 액정 위를 오갔다. 현란한 부대 배치와 공격, 공성, 수성, 침략, 화려한 이펙트로 꾸며진 전투 컨텐츠 화면들이 순식간에 교차했다. 다시 생산시설을 돌리고, 캐릭터 장비를 손보고, 퀘스트 일람을 확인하고.... 자동전투의 버튼을 누르는 대신 스스로 가장 효율 좋은 루트를 반복하는 손길이 바빴다. 의자 뒷다리만을 바닥에 붙인 채로 앞뒤로 까딱이는 의자가 끼긱 소리를 냈다. 의자 앞다리 대신 바닥에 닿는 실내화가 리드미컬하게 탁탁 소리냈다. 그렇게 흔들리던 의자가 뒤쪽 책상에 부딪쳐 쇳소리를 냈다. 다행히 비어있는 자리였다. 뒷좌석을 곁눈질하는 대신 의자를 얌전히 네 다리 닿게 내려놓았다.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 몸을 돌려 옆자리에 앉은 사람을 등받이 삼아 기댔다. 버티는 몸에 잠시 힘이 들어가는가 싶더니 이내 어깨가 흔들리지 않게끔 펜을 옮겨 쥐는 소리가 났다. 휴대폰을 두드리는 손길은 여전히 바빴다. 그러나 전투가 끝나 화면이 어두워질 때면 액정에 비치는 손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기대고 있던 어깨 위로 흐트러진 뒷머리를 문지르며 입을 열었다.

 

“결이 형.”

“응.”

 

공들여 소리를 키우지 않은 목소리는 기대어있는 서로에게나 들릴 듯이 작아 혼잣말같았다. 이어폰을 끼고 휴대폰을 노려보고 있던 저쪽 분단에서 누군가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힐끔, 교실 안에 남아있는 몇 안 되는 인원들의 시선이 잠시 쏠리지만, 이내 지금껏 그래왔듯이 다들 자신의 할 일에 집중한다. 온라온의 손 안에서는 화면이 또 한 번의 승리 앰블럼을 띄웠다. 보상을 수령하고, 장비를 수리하고, 미션을 확인하고, ... 일련의 과정을 습관처럼 물흐르듯이 이어나가며 게임에 집중하던 온라온이 입을 열었다.

“우리 사귈까?”

사각거리던 펜이 멈췄다가 다시 노트 위를 움직였다.

“…왜?”

듣기 좋은 목소리가 부드럽게 흘러나왔다. 당황 한 점 묻어나오지 않은, 평소처럼 서늘하고 다정한 목소리였다. 지금 무슨 표정을 하고 있는지, 지금도 여전히 남들이 보기에는 무표정하게 보인다는 그 얼굴을 하고 있을지,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지만 한 편으로는 보여주고 물어보고 싶었다. 스테이지를 넘어가며 잠시 어두워진 액정에 온라온 자신의 긴장한 얼굴이 비쳤다. 다시금 검고 하얗게 번쩍거리는 액정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온라온은 덩달아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그냥, 나도 형 좋아하니까.”

갑자기 불어온 거센 바람에 창은 들썩이고, 다른 교실로부터 넘어오는 자잘한 소란은 침묵을 방해했다. 바쁘게 움직이던 손가락은 액정 위에 가만히 멈춰 있고, 조용한 풍경에 어울리지 않는 요란한 이펙트들은 지시 없이도 전투를 이어나가고 있다. 등 뒤의 사각거리는 소리도 부드럽게 이어졌다. 그저 변함없이 그랬다.

“그래.”

힘이 빠진 몸이 다시 어깨 위로 등을 기댔다. 긴장으로 떨어진 줄도 모르고 있었다. 손가락은 계속 그랬다는 듯이 능청을 부리며 바삐 액정 위를 오갔다. 이내 다시금 승리를 알리는 앰블램이 떠올랐다. 검게 변하는 네모난 액정 위로 눈 밭 위로 고개를 내미는 새싹처럼 푸릇하게 미소짓는 얼굴이 비쳤다. 상자처럼 네모나고 작은 우리들의 세계, 그 곳의 마지막 계절이 끝을 맞이해도 모습을 바꾼 계절은 다시금 우리를 찾아오겠지. 휴대폰을 내리면 제 눈 안에 들어올 더 큰 미래를 몇 분 뒤의 자신에게 양보하며, 온라온은 그저 눈앞의 작은 여유를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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