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아공/NCP] 5월 5일
천재 아이돌의 연예계 공략법 2차 창작, 온라온 중심
백업 :: 2021. 05 전력 90분 참가, 주제 [어린이날]
“지우 형, 말씀드릴 게 있는데요.”
결심이 선 얼굴로 제게 다가온 견성하를 바라보며 강지우는 마른침을 삼켰다. 들뜨는 입꼬리를 점잖게 누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홀로 긴장한 탓에 견성하는 아직 눈치채지 못한 기색이었다.
‘드디어!’
언제쯤 말을 털어놓을까 눈치를 보던 것은 강지우도 마찬가지였다.
견성하는 아침부터 강지우에게 할 말이 있음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머리도 말리지 않은 채로 강지우가 들어간 욕실 앞을 서성거리질 않나, 식탁에서는 반찬이 떨어진 줄도 모르고 젓가락을 이 사이에서 잘근거렸고, 연습실에 도착한 뒤로도 숨만 돌릴라치면 데구르르 구르는 눈이 강지우를 향했다. 이를 신경 쓰지 않는 것은 천성이 주변 일에 무던한 서문결 정도였다. 온라온은 눈치챈 듯했지만 상대가 견성하다 보니 모른 척하려는 것 같았다. 반요한은 연습실로 오는 길에 진작 강지우의 옆구리를 찌르며 이유를 물어온 터였다.
“그래, 성하야. 말해 봐.”
견성하의 걱정 많은 성격은 이미 연습생 시절부터 진득하게 겪어온 일이었다. 그러므로 이렇게 가라앉아있는 얼굴에도 강지우는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았다. 최근에 또 키가 크는 것 같던데, 성장통 때문이려나? 그럼 연습 시간을 줄이고 개인 몸풀기 시간을 늘려줘야… 예상하는 문제 몇 가지를 떠올리며 태연하게 답을 준비하던 강지우의 얼굴은, 곧 견성하보다 심각하게 굳었다.
“새 판 시작하게 빨리 끝내라고!”
“시작 30초 만에 웅덩이 떨어진 울보 말은 안 들리는데~”
얄밉게 대꾸하는 온라온의 모습에 견성하는 눈을 삐쭉 치켜들었다. 반 갈라 회색으로 변한 화면에는 바닥에 주저앉아 펑펑 울고 있는 캐릭터가 표시되고 있었다. 어쩐지 견성하에게 너는 꼭 이 캐릭터를 골라야 한다고 박박 우기더라니. 울고 있는 캐릭터를 바라보는 얼굴이 잔뜩 구겨졌다. 반면 계속 맵이 형형색색으로 변화하는 반대쪽 화면에서는 캐릭터 하나가 겅중겅중 달리고 있었다. 온라온의 조작키를 마구 눌러 플레이를 방해할 법도 하건만 견성하는 입으로만 잠시 투덜거릴 뿐이었다.
5월 5일. 오늘은 시드의 휴일이었다.
국가가 정한 공휴일을 딱딱 챙겨주는 엔터테인먼트가 어디 있겠냐 싶었지만 놀랍게도 시드가 그걸 해냈다. 한 달도 전부터 사내 게시판에 고지되더니 정말로 매니저들도 어지간한 스케줄은 전부 거절하는 모습을 보였다. 유감스럽게도 다른 공휴일과는 관련이 없었고, 딱 어린이날 하루뿐이었다. 이에 대해 워낙 공휴일이 많은 달이라 쉬는 날 없는 소속 연예인들이 심히 우울해하는 일이 많아서라던가, 대표님이 또 어디서 다른 점쟁이를 만나고 왔다던가, 연습하다 미친 반요한이 가서 담판을 지어 얻어냈다던가. 물어보는 사람들마다 다른 이야기를 꺼내는 게 진짜 이유는 아무도 모르는 듯했다. 어쨌든 휴가는 좋은 일이었고, 다들 군말 없이 휴일을 즐기기 위해 떠났다.
오르카라고 해서 크게 다른 것은 아니었다. 다만 특이한 것은 멤버들이 전부 숙소에 남았다는 정도였다.
강지우는 하루를 꼬박 투자해야 하는 이름도 어려운 요리에 도전한다며 새벽부터 팔을 걷어붙이고 있었고, 반요한은 처음 듣는 이름의 케이블 채널에서 다큐멘터리를 켜놓고 책을 읽었다. 작곡 노트에 음표를 끄적이던 서문결은 어느 순간부터 무지 노트를 펼쳐놓고 제 시야에 걸리는 멤버들을 그리고 있었다. 일찍 일어나 한 바퀴 달리고 온 견성하는 일반 모드 설정으로도 피로도를 0에 가깝게 만들 정도로 푹 자고 일어난 온라온에게 붙잡혀 지금까지 게임 삼매경이었다.
기상시간이 상이해 아침은 각자 챙겨 먹었고, 점심에는 언제 나갔다 온 건지 반요한이 사 온 햄버거를 먹었다. 중간에는 강지우가 챙겨준 간식에, 몇 시간 뒤엔 탄산수를 사러 편의점에 다녀온다던 서문결이 봉지로 들고 온 아이스크림을 먹고… 매니저가 보면 이마를 짚고 쓰러질 만큼 먹고 누워 굴러다니고 있다 보니 어느덧 저녁시간이었다.
게임 난이도가 올라가는 것을 틈타 실수인 것처럼 게임오버를 만든 온라온이 새 게임을 막 시작하려던 때였다.
“견성하! 온라온!”
문밖에서 반요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둘 다 잠깐 나와 봐!”
문 앞에 와서 하는 말이 아니라 거실 반대쪽에서 외치고 있는 건지 소리가 멀었다. 견성하가 고개를 돌리고 새 게임을 시작하려던 온라온은 손을 멈췄다. 깜빡이는 두 쌍의 눈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갑작스러운 부름에 두 사람이 대꾸 없이 눈을 꿈뻑거리는 동안, 급한 일이었는지 재촉이 이어졌다.
“어서!”
제법 급한 기색이 묻어 나오는 목소리에 둘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문과 가까웠던 견성하가 문고리를 당기고 온라온이 틈새로 몸을 쏙 내밀었다.
“무슨 일인데, 요한이 ㅎ…”
펑!
“……형.”
커다란 소리에 저도 모르게 놀라 몸이 크게 들썩였다. 하던 말이 끊겼다가 뒤늦게 흘러나왔다. 그러고 나서야 눈앞으로 색색의 종이 끈이 하늘거리며 떨어졌다.
불이 꺼진 거실은 어두웠다. 그러나 캄캄하지는 않은 것은 거실 중앙에서 서문결이 들고 있는 케이크에 꽂힌 커다란 초 때문이었다. 벙벙한 눈으로 자신들을 보고 있는 두 동생들의 모습에 반요한이 큰소리로 웃었다. 그런 반요한의 등을 퍽 소리 나게 때린 강지우가 목을 가다듬더니, 먼저 자신의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온라온으로서는 처음 듣는 곡이었으나 반요한과 서문결이 아무렇지 않게 따라 부르는 것을 보아 이곳의 노래인 모양이었다. 노래를 부르는 목소리가 감미로운 탓에 한참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가 뒤늦게 가사와 장르를 인지한 온라온이 입을 떡 벌렸다. …동요?
점차 빛을 잃어가는 죽은 눈으로 견성하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놓을 새가 없어 잡고 있던 문 손잡이를 밀어 다시 닫으려는지 문이 끼익거리는 소리를 냈다. 혼자 도망가려는 견성하의 작태를 알아차린 온라온이 문틀 사이에 발을 끼워 넣었다. 잘 닫히다 말고 툭 걸리는 온라온의 발을 견성하가 노려보았다. 그 사이에 히죽거리며 다가온 반요한과 강지우가 두 사람을 질질 끌어 케이크 앞으로 데려왔다.
“우리 어린이들~ 초 불어야지!”
“아니. 형들… 잠깐 들어봐, 내가 나이가…….”
“어어! 촛농 떨어진다! 빨리 불어!”
초를 불라며 호들갑을 부리는 반요한의 기세에 밀려 온라온이 지독하게도 어색하게 초를 불었다. 그마저도 당황하여 ‘후’ 하며 바람은 불지 않고 입으로 소리만 내는 바람에 한 번 실패했다가 주변의 적극적인 코치를 따라 재도전하고서야 성공할 수 있었다. 작정하고 어린이 취급을 하기로 했는지 잘 껐다며 머리를 마구 헤집는 손길을 온라온이 뿌리쳤다.
거실 불을 켜고 온 강지우가 테이블 위의 그릇 뚜껑들을 모두 열고는 제법 커다란 상자 두 개를 내밀었다. 그 사이 케이크를 내려놓고 초를 뽑은 서문결이 작은 상자와 소파 위에 있던 액자를 온라온과 견성하에게 하나씩 안겼다. 두 사람의 모습이 색연필과 물감으로 분위기 있게 그린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강지우와 서문결이 먼저 안긴 상자 위로 반요한이 크고 작은 몇 개의 상자를 익숙한 이름들과 함께 하나씩 쌓아올렸다.
“이건 고모, 주열음 이사님, …”
끊이지 않을 것 같던 이름의 나열은 마지막으로 올라오는 선물과 함께 끝이 났다.
“그리고 이게 내가 주는 거.”
폭풍 같은 선물 증정식이었다. 눈을 깜빡이는 것도 잊고 멀뚱히 서 있는 온라온과 달리, 견성하는 한숨과 함께 자신이 받은 상자들을 방에 가져다 두고 돌아왔다. 그런 견성하를 서문결이 불러 케이크 커팅을 시키고, 강지우는 앞접시와 포크를 들고 돌아왔다. 그러는 와중에도 멀뚱히 우뚝 서있던 온라온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게 다 뭐야?”
“응? 그야 어린이날 선물이지.”
싱글벙글한 얼굴로 온라온의 곁에 있던 반요한이 대답했다.
“……선물?”
선물이라는 말을 처음 들은 사람처럼 온라온이 어색하게 반응했다. 반요한의 대답이 해답이 되지 못한 듯이 온라온은 여전히 어리둥절한 기색이었다. 거실에는 초를 태운 냄새가 케이크의 설탕 냄새와 함께 섞여있었다. 투덜거리면서도 얌전히 강지우에게 “감사합니다.” 대꾸하는 견성하라던가, 아직도 이해할 수 없지만 품 안에 가득한 선물상자들이라던가. 그 풍경 속에 저도 함께 서 있으면서도 온라온은 내내 어색한 기색이었다.
“어린이날인데 왜 나한테 선물을 줘?”
“오늘은 어린이날이고, 너는 우리보다 어리니까?”
“……?”
“…….”
반요한이 있는 줄도 몰랐던 고깔모자를 가져와 온라온에게 씌웠다. 평소라면 하지 말라며 손을 내치거나 짜증이라도 부렸을 온라온은 혼란스러운 얼굴이었다. 좀처럼 케이크를 받으러 올 생각을 않는 두 사람에게 강지우가 다가왔다. 어려운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도 상자를 쥐고 있는 손에 저도 모르게 잔뜩 힘이 들어가 있는 것이 강지우의 눈에 보였다. 서로가 서로에게 선물을 주고받는 크리스마스 파티에도 아무렇지 않게 어우러들던 온라온이 지금은 이상하다는 감정을 감추지 않고 있었다. 견성하처럼 방에 두고 오라고 말하는 대신, 상자를 안고 있는 온라온의 팔뚝을 붙잡아 걸음을 옮겼다.
“그러니까, 왜…”
“잘 모르겠으면 그냥 선물 받는 날로 생각해.”
선물상자를 바로 옆에 내려놓게 하며 자리에 온라온을 앉히고는 삐뚤어진 고깔모자를 고쳐주었다. 서문결이 기다렸다는 듯이 케이크를 덜어 온라온의 앞에 내려주었다. 뒤따라 온 반요한이 자기 자리를 찾아가 앉았다. 은근슬쩍 자기는 주인공이 아닌 척 형들 사이에 끼어앉은 견성하의 얼굴은 태연하기 짝이 없었다. 어느샌가 주변에 빙 둘러앉은 멤버들의 시선이 온라온에게 향했다.
“5월 5일은 온라온이 형들한테 선물 받는 날.”
포크를 손에 쥐여주며 강지우가 웃었다.
“그거면 됐지?”
-지우 형, 말씀드릴 게 있는데요.
-온라온이요, 어린이날도 계속 혼자 보냈나 봐요. 저번에 대화하다가 우연히…….
-…다음 휴가에 같이 숙소에서 보내면 어떨까 하고요.
“…그래서, 깜짝파티를 하자고?”
“참고로 너한테 안 한다는 선택지는 없어.”
“아니. 네가 간만에 맘에 드는 소리를 하길래.”
소리를 낮춰 쑥덕거리는 소리는 오랫동안 그치지 않았다. 두 개의 머리가 세 개가 되고, 단 두 사람에게만 비밀로 한 채 더 많은 인원에게 이야기를 흘려 상자를 가득 뜯어낼 때까지도.
모든 것은 어린이날이 오기 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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