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돌

[천아공/NCP] 찬연한 모든 순간들

천재 아이돌의 연예계 공략법 2차 창작, 온라온 중심

길잡이 by R

백업 :: 2021. 07


알잖아, 좋아하는 것들이 색을 입을 때.

 

 

*

 

 

하얀 구름으로 얼룩진 파란 하늘에 하얀 태양이 내리쬐자 자잘한 물결이 구름을 배처럼 몰아 지나갔다. 더운 공기 사이로는 차가운 물기를 머금고 바람이 불었다. 하늘을 연장선으로 펼쳐지는 수면은 투명하게 빛나고, 바닥에 깔린 하얀 타일과 포인트로 칠해진 깨끗한 하늘색이 시원함을 더했다. 가만히 눈을 감고 바람을 즐기며 절로 느긋하게 늘어지고야 마는 평화로운 장소였다. 아스라이 부스러지는 웃음소리가 청량한 물소리에 파묻혔다.

그들이 있는 프라이빗 풀빌라는 겨울이면 돌아오는 프레젠트 연금으로는 모자라다는 듯 여름 연금을 노리는 반가을 대표의 야심찬 포부가 덕지덕지 붙은 곳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곳곳에 무더기로 존재했던 촬영 장비들이 싹 빠져나가고, 오늘은 완연한 휴가지의 면을 뽐내고 있었다. 참방거리는 물소리와 새파랗게 터져 나오는 웃음들이 시원하게 부스러졌다.

분명 어제와 같은 장소일 텐데 온라온은 마치 새로운 장소에 도달한 기분이었다. 흥겨움에 들뜨는 마음이 가벼운 걸음걸이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라온아, 네가 마실 것도 가져다줄까?”

“아냐. 난 이따가 성하 나오면 성하한테 시킬게.”

나란히 옮기던 걸음을 멈추고 묻는 서문결의 말에 온라온이 대꾸했다. 당사자가 들으면 왁왁 소리 지를 말이라는 것을 아는 온라온이 장난스러운 얼굴로 씩 웃었다. 오늘의 날씨처럼 말간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서문결이 조금 늦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하고 답했다. 싸우지 말라는, 으레 하는 말을 남긴 서문결은 온라온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자리를 옮겼다.

그 뒷모습을 일별하고 온라온은 풀장으로 다가갔다. 핸드레일을 붙잡고 쪼그려앉은 온라온이 물에 손을 집어넣었다. 몇 초도 지나지 않아 얼음물에 손을 넣은 사람처럼 손을 빼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허공으로 비산하며 반짝이는 물방울 탓에 잠시 허공에 시선을 주었다. 다시 수면을 바라본 온라온은 쪼그려 앉아있던 자세에서 엉덩이를 붙이고 발을 물에 담갔다. 차가움에 몸을 웅크리는 것도 잠시, 얼굴에는 즐거움이 간지럽게 피어올랐다.

아직 해가 하늘 높이 떠오르지 않았는데도 햇볕에는 열기가 가득했다. 그 탓인지 물에 잠긴 발끝에서부터 전해지는 서늘함이 기분 좋았다. 물에 들어가지도 않고 온라온은 가만히 발장구를 쳤다. 리듬감 있게 수면을 두드리며 그는 주변을 느긋하게 구경했다.

“와, 이거 놔라. 강지우.”

“그렇게 말하면 내가 ‘네’하고 놔줄 거라 생각했냐?”

“했겠냐?”

“축하한다. 정답이다.”

한쪽 시야에 강지우와 반요한의 모습이 보였다. 조식 때부터 투닥거리던 두 사람이 지금까지도 서로를 붙잡고 아웅다웅하고 있었다. 경계심도 강한 인간을 요령 좋게 밀어 빠뜨리질 않나, 물에서 빠져나오려는 반요한을 강지우가 머리를 눌러 방해하고, 조금 있으니 물에 들어가지 않으려는 강지우를 기어코 물에 빠뜨리는 둥. 일반 수영장이었다면 모르는 사람인 척 지나가고 싶을 만큼 유치한 싸움이었다. 목소리는 점차 커졌지만 어제 촬영 중에 당했던 일들을 복수하겠다는 야심에 찬 선언에 귀 기울이는 이는 없었다. 오히려 난장판인 그 옆을 서문결이 자신의 음료 컵을 들고 무심히 지나갔다. 서문결의 얼굴에는 견성하가 챙겨오고 온라온이 훔쳐 와 씌워준 선글라스가 본래 제 몸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강지우와 반요한, 두 사람의 황당하다는 시선에도 개의치 않고 없는 사람처럼 무시하고 지나간 서문결은 가까운 곳에 있는 썬베드에 태연하게 자리 잡았다.

낯선 휴양지에서도 지나치게 일상적인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깨끗한 웃음소리가 울리자 멀리서 놀고 있던 멤버들의 시선이 옮겨왔다.

그보다 먼저 다가온 견성하가 물속에서 갑자기 고개를 쑥 내밀었다. 조식을 먹는 둥 마는 둥 서둘러 나간 견성하는 내내 돌고래의 환생처럼 풀장을 돌아다니고 있던 중이었다. 기껏 다가온 견성하가 온라온의 얼굴을 보자마자 뱉은 말은 지난밤에 공지로 올라온 게임 업데이트에 관련된 것이었다. 새로 시작하는 여름 이벤트와 신규 패치에 대한 투덜거림을 주고받고 있으려니 햇볕이 부쩍 뜨거워졌다. 조금 뒤, 두 사람을 부르며 나머지 세 사람이 다가왔다.

“얘들아, 이따 점심에으왁!”

첨벙.

쨍하게 내리쬐는 햇빛에 물방울이 반짝이며 부스러졌다. 빛방울들이 비눗방울을 불어 올린 것처럼 빛나며 하늘이 수놓았다. 휴전이라도 했는지 나란히 걸어오던 반요한이 기어코 기습으로 강지우를 물에 빠뜨리는 소리였다. 얼결에 물 폭탄을 맞아 흠뻑 젖어버린 머리카락이 무겁게 늘어졌다. 놀란 눈이 크게 뜨였다.

“야! 반요한!”

젖은 머리를 쓸어넘기며 바닥을 딛고 일어선 강지우가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결아, 걔 잡아! 빨리!”

“결이 너 지금 나 잡으면 배신이야. 반지 빼는 거다.”

“요한이 형이 그렇게 말하면 듣지 말라고 오늘 아침에 라온이가….”

“……아! 온라온!”

첨벙.

또 한 번의 물소리가 흘러나왔다.

여전히 커다랗게 뜨인 눈으로 있던 온라온은 잠시 멍하니 눈만 꿈뻑거렸고.

“……풉.”

이내 누르지 못하고 새어 나온 웃음을 시작으로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형들은 후반전 싸움을 시작하고 서문결은 그 자리에 서서 형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곁에 있다가 얼결에 함께 물을 맞은 견성하가 눈을 찌푸린 채로 얼굴에 매달린 물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렸다.

“너 요즘 표정이 좋다?”

언뜻 듣기엔 빈정거림으로 들릴 수 있는 말이었지만 오해할 이유는 없었다. 웃음을 멈추고도 미소가 지워지지 않았다. 질문을 던진 견성하를 바라보다가 온라온은 고개를 돌렸다. 뻥 뚫려있는 시야에 담기는 것들이 온통 선명한 색으로 빛났다. 구성요소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것들이 다정하게 그를 둘러싸고 있었다. 바랜 빛깔마저도 찬연하고,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반짝이는 것 같은 세상의 모든 요소들. 마음을 주고 사랑하게 된 세계의 모든 것. 결국 다시 환한 얼굴로 웃음을 터트린 온라온이 입을 열었다.

“음, 그거야….”

 

 

*

 

 

알잖아, 좋아하는 것들이 색을 입을 때.

날 부르는 소리가 간지러운 울림으로 빛날 때.

 

이 땅에 살아있음을 실감케 하는 모든 순간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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