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아, 주먹이 참 단단해 뵈는구나.
도원괴이담4
기실 그랬다. 추억이라 불릴만한 기억의 유일한 등장인물은 어머니다. 단출하니 올리기 쉬워 연출가가 좋아할만한 인생이었다. 천도량의 감정일랑 대부분 어머니를 통해 체험할 수 있는 종류였다. 이외에는 가주로부터 현현된 얕은 불쾌감, 두려움 등의 감정이 전부였으리라. 개구리가 우물 안에 있다하여 아무도 탓하는 이가 없었다. 두레박 길은 마을 우물도 아니고 천씨가문에서 사심 담아 깊숙이 숨긴 우물이니 당연한 결과다. 천도량은 학당에 들기 전까지 또래와 말 섞은 적이 손꼽을 정도로 적었다. 입학 첫날, 선배의 농에 속아 친구를 팔로 가두고 친구하자고 당당하게 외친 일은 필연인 셈이다. 그로부터 해와 달이 여러번 기울고서야 벗이라고 할만한 이들과 교류할 수 있었다. 날아갈 듯한 가벼움은 관계에 한해 새로움의 다른 말이기도 했다. 이제는 제법 널널해진 품에 갇힌 이 중에는 청현도 있었다. 이래도 저래도 무감한 청현에게 먼저 들이댄 자야말로 천도량이었으므로.
이제와 밝힐 것도 없이 청현에게 지닌 감정은 단연코 부러움이다. 정확한 말은 아니나 가장 비슷한 단어로 정의하자면 그랬다. 가졌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이 있다기엔 항상 결론은 가지지 않는 쪽이었다. 간혹 이랬으면 어떨까- 하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만드는 점에선 대상이 맞았다. 볕들지 않으면 묵빛으로 착각할 법한 짙은 진청색의 머리칼이 부러웠다. 신체로 하는 전반의 것을 잘하는 점 또한 마찬가지다. 감정의 근원을 뜯어보자면 단연 천씨가문의 사람처럼 보인다는 지점으로 귀결되었다. 이를 눈 앞에 드밀어도 천도량은 부정할 수 없었다. 깊은 근원을 지닌 감정을 깨닫기까지는 늦가을까지의 시간이 걸렸으나 더 길지는 않았다. 찬바람 불던 날의 마력은 간혹 인생 전반을 되돌아보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만든 탓이다. 더불어 감정의 대상에게 유달리 ‘나댔던’ 점에 대한 의문도 해소되었다. 성정상 숨기는 것이 불가능하여, 상대에게 들킨 사건도 해묵은 일로 남았다. 깨달은 겨울, 곧바로 ‘너 사실 청랑사람 아냐?’ 라든지, ‘네가 더 천씨같잖아-.’ 라는 투정으로 인하여 들통난 지 햇수로도 삼년이 되어간다. 그나마 천도량은 질투나 시샘 따위의 감정에 좀먹히지 않는 사람이었다. 질투는 하되, 음해하진 않았다. 간혹 청랑인인 점을 들어 푸름을 탐내긴 했으나, 오로지 취향의 결과로 그로 인하여 천씨가문에서 인정받고자 상상은 애진작 접었다. 그 언젠가 무릎을 베고 누우면 붉은 머리 담뿍 쓰담던 이의 손길이 선연했다.
3자의 시선이 정확한 구석이 있는 것처럼 과거또한 벗어나야 관찰할 수 있듯이, 현재의 천도량은 코웃음칠 일이었다. 지금 청현을 보는 천도량의 시선은 대충... 곰, 아니면 그에 준하는 털동물과 밭에서 갓 캐낸 꼬질꼬질한 흙 묻은 감자에 가깝다는 점을 유념한다면 더더욱. 물론 그 감자가 좀 단단해서 맞으면 아프긴 하지만서도.
“때렸어.”
어쨌든 이제는 벗이다. 사심없이 진심으로 친한 벗. 전쟁처럼 한쪽의 생각만으로 결정되는 일이 아니라 해도. 천도량의 입장에선 이것저것 들쑤셔도 생각보다 잘 참아주는 귀한 벗이었다. 가끔 이리 농을 던질 때도 있는데 그또한 기꺼웠다. 편히 여긴다는 방증같아서. 아무렴. 그래서 농담으로 치부했다. 천도량이 들고있는 붓의 궤적이 필히 웅묘닮은 꼴로 만든 주범이나 이것이야 그가 허락한 결과지 않나. ...그러고보니 허락을 했던가? 거부를 안하긴 했는데. 허락을 맡았다기엔 궁색한 구석이 있었다.
“살려, 주세요...?”
“별로, 때릴 생각은 아니었는데.”
“내가 만든 것처럼 눈에 푸른 멍이 들게 할 생각이 아니었단 말야?!”
“뭐... 원한다면.”
아, 진짜! 나 맞는 취미 없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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