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극

居場所

Lucian

(그는 한참 동안 성도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牡丹

루~쨩, 뭘 그렇게 보고 있어? (자연스레 그의 곁에서 바깥을 바라보면 그저 언제나의 설원이었다) 날씨도 엄청 추운데.

Lucian

뭘 보겠어. 이슈가르드는 언제나와 같은걸... ... 예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더 이상 용의 침공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겠지. (그러고는 그를 보며 슬쩍 웃었다) 그냥 옛날을 생각하고 있었어. 내가 어렸을 땐 - 아니,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 이슈가르드의 풍경은 지금과 사뭇 달랐거든.

牡丹

그 점은 이 영웅님께 감사하도록 해. (그는 제 가슴께를 자랑스레 툭툭 치다가, 이내 겸연쩍어했다) ... ... 나 혼자만의 힘으로 일궈낸 건 아니지만! 예전에는 어땠는데?

Lucian

너 혼자 한 건 아니지만 네가 없었다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겠지. 고맙게 생각해. (드물게 부드러운 투로 말하고는) ... ... 예전에는 말이지, 이슈가르드에도 녹음이 우거지고 꽃이 피었어. 재해가 닥치고 모든 것이 바뀌어 버렸대도 나는 그 풍경을 기억해.

牡丹

뭐야, 부끄럽게~. 난 너나 오르슈팡이 아니었으면 이슈가르드에 발도 못 들였을걸? (부끄러워 눈을 굴렸다) 상상이 잘 안 돼. 내가 본 이슈가르드는 항상 새하얀 눈으로 뒤덮여 있었잖아. 루는 그 시절이 그리운 거야?

Lucian

그리운 걸까? 모르겠어. 그 시절에 좋은 추억이라고는 조금도 없는데. 나는, 그냥... ... (고심하던 그는 조금 침통한 낯이 되었다) ... ... 그 풍경을 너에게도 보여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나는 이곳이 어떤 모습이든 사랑하지만, 너에게 이슈가르드는 너무나 삭막한 곳이 아닐까 싶어서. 네 말마따나 우리가 아니었다면 넌 이슈가르드에 못 들어왔을 거야, 그다지 정다운 나라가 아니니까. 그게 좀... ... 별로네, 응.

牡丹

Lucian (가만히 그의 말을 듣다가 문득 조금 웃었다) 나에게도 고향이 있잖아? 이제는 잘 기억도 안 나지만, 거기는 항상 날씨가 좋았어. 온화하고 푸르렀지. 다들 아무 불만도 없어 보였어. (이내 손을 뻗어 눈송이 하나를 손에 올려놓았다. 그것은 순식간에 녹아 없어졌다) 그리고 한참을 떠돌다가 이곳으로 왔어. 여기서 눈이라는 걸 처음 봤는데, 정말 예쁘다고 생각했어... ...

Lucian

(그는 괜히 비죽거리듯이 말했다) 처음 봤을 때나 예쁘지, 매일 보면 진절머리가 날 걸.

牡丹

그렇게 될까? 아직까지는 좋던데. (후후 웃고) 아무튼, 날씨 같은 건 상관 없어. 좋은 날씨가 계속되는 곳을 사랑하지 못했듯 악천후가 이어지는 곳도 충분히 사랑할 수 있을 거야.

Lucian

말은 잘하지... ... 나는 이곳이 너에게 마음 붙일 수 있는 장소이기를 바라. 그리고 그게 쉽지 않다는 것도 알아. 그래서 예전 같은 날씨였다면 너에게 더 나았을까 싶었어. (그가 숨을 내뱉자 새하얗게 흩어졌다) 네가 대뜸 알라미고로 떠났을 때 나는 화가 났었지. 이제서야 그 이유를 생각하건대, 네가 이곳을 그다지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그랬던 것 같아. ... ... 내가 이슈가르드를 좋아하지 않았대도 너는 여기가 좋았을까?

牡丹

그다지 좋지 않았겠지. (그는 고민도 없이 답했다) 날씨도 너무 춥고 사람들은 맨날 화나 있고. 그렇지 않아?

Lucian

그래, 그중에서도 내가 제일 화나 있지.

牡丹

하하! 맞아, 어떤 녀석처럼 고약한 엘레젠들만 모여 있지. (호탕하게 웃고는) 그럼에도 나는 이슈가르드를 좋아하기로 했어. 어떤 고약한 녀석이 여기가 좋다잖아. 걔가 좋으면 나도 좋아!

Lucian

고작 그 이유로 되겠어? 너무 얄팍해. 내가 좋아하는 거지 네가 좋아하는 게 아닌걸.

牡丹

얄팍하지 않을걸. 내가 널 엄청 좋아하거든.

Lucian

듣기 좋은 말만 해서 좀 짜증 나네... ..... 이봐, 난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거든?

牡丹

루~쨩, 부끄러워? (옆구리 콕 찌름) 나도 진지해. 네가 좋은 건 나에게도 얼마든지 좋아. 그러니까 네가 좋아하는 것들을 더 알려줘... ... 예전의 이슈가르드는 어땠어? 더 살기 좋았나?

Lucian

찌르지 마. (한껏 짜증스러운 얼굴을 했다. 그는 란이 제 마음에 드는 행동을 할 때 종종 이런 낯짝을 하곤 했다) 용시전쟁은 여전했지만 날씨는 좋았지. 적어도 한파 때문에 죽어가는 사람은 없었어. 어머니는 산과 들에 나는 약재들을 모아 부상병들을 치료해 주곤 하셨어. 그때는 나도 연금술사가 될 줄 알았지만... ... 옛날 일이네, 이제는.

牡丹

넌 마법을 엄청 잘하는데 연금술만 하면 아까워. (비죽 웃고는 꾸물꾸물 품 속으로 파고들었다) 초록초록 이슈가르드는 상상이 잘 안 되네. 눈 덮인 라자한처럼 묘한 느낌이야... ... 다시 예전처럼 기후가 바뀌기를 바라?

Lucian

(툴툴거리면서도 녀석을 슬쩍 안은 채 말을 이었다) 이제 와서 다시? 생태계가 파괴될걸. 몇 년간 얼어 있던 용들의 시체에서도 어떤 독성 물질이 나올지 몰라. 그러니까... ... (눈을 굴리다가) 온난한 곳이 있다면 너랑 같이 관광이나 갈래. 네가 데려가 줘.

牡丹

좋지! 라자한이 좋겠다. 네가 꼴사납게 에테르 멀미를 하던 게 생각나. (키득키득 웃었다) 그리고 곧 황금향인가 뭔가에 가기로 했는데 거기도 날씨가 좋으면 데려갈게. 그래도 '관광'이라니, 이슈가르드에서 떠날 생각은 없다는 거지?

Lucian

황금향? 가려면 뱃멀미를 하거나 에테르 멀미를 하거나 둘 중 하나겠지. 어렵네, 모험가를 사랑하는 거. (혀를 찼다) 라자한은 좋은 도시지. 나는 특히 지혜로운 태수가 부럽더라. 그가 이슈가르드 부근에 살지 않아 다행이야. (그는 라자한의 현명한 태수가 형제들과 달리 근심 없이 살기를 바랐다) 당연하지. 사람이 살 수 없는 환경이 되지 않는 한 나는 여기서 떠나지 않아.

牡丹

흐흐. 루~쨩이 어렵게 좋아하는 사람이 나라서 기쁘다. (품에 머리를 비볐다) 글쎄. 브리트라라면 이슈가르드 사람들도 좋아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면 신기하네. 너나 에스티니앙이 이렇게까지 용에게 호의적으로 변한 거 말이야. 나야 뭐, 언제나 내 편이면 다 좋지만. (생각해 보면 항상 그랬다. 내 편이면 좋고, 아니면 별로. 그런 식으로 살다 보니 정작 이 땅에서 마음 붙인 건 많지 않아. 미움받을 용기를 내면서까지 사랑하고 싶은 건 별로 없으니까.) ... ... 설령 그렇게 된대도 이슈가르드를 재생시키고 싶어할 것 같아, 루는.

Lucian

좋아? 나는 짜증 나, 왜 너일까? 나는 좀 내 곁에서 안정적으로 머물러 주는 사람이 좋은데. (분명 진심이다. 그렇지만 상관은 없어. 널 사랑하는 마음 또한 진심이니까.) 그 진실을 알고도 이슈가르드 사람들이 죄가 없다 부르짖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 그랬다가는 토르당처럼 꼴사나운 말년을 맞이할 뿐이야. 그러니 나는 용에 대해 더 잘 알고 싶어. 다시는 그런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그는 녀석의 동글동글한 뒤통수를 살살 어루만졌다) 분명 그렇겠지. 너는... ...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어?

牡丹

내가 네 이상형보다 더 멋진 사람인가 봐, 흐흐.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렇다면 라자한이 너에게 참고가 많이 되긴 하겠다. 브리트라가 태수인 걸 밝힌 지는 얼마 되지 않았긴 하지만. 참. 라자한에 제로가 다녀간 후로 엄청 매운 카레가 잘 팔리는데, 너도 먹어 보면 좋겠어! 먹으면서 네 생각 나더라. (즐겁다는 듯 이야기하며 그의 손길에 눈을 감았다.) 모르진 않지. 아이테리스를 포기하지 않으려고 했던 사람들의 마음과 같잖아. 그렇지만 완전히 이해하느냐고 하면 글쎄. 나는 꼭 여기가 아니어도 돼, 어딜 가나 그랬어.

Lucian

흥, 말은 잘하지. 아무튼 카레는 의향 있어. 제로 씨는 잘 지내시나 모르겠네. (아니, 나는 그 정도 대답으로는 안 돼. 너에게도 꼭 여기였으면 좋겠어... ...) ... ... 같이 나가 볼래? 좀 걷자.

두 사람은 시시콜콜한 잡담을 주고받으며 눈길을 거닌다.

牡丹

네 말대로 나와 보니까 언제나처럼 엄청나게 춥네.

Lucian

그렇지. 7재해 전에도 안 춥지는 않았어. 이 정도는 아니었지만. 조금만 걸으려 하면 눈보라가 거세져서 집으로 돌아와야 하고... ... 나는 그 변화를 정말 싫어했었어.

牡丹

음, 나도 그리다니아가 하루아침에 추워지면 좀 슬플 것 같기도 하네. 그곳을 너만큼 애틋하게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나도 의리라는 게 있잖아? 하물며 잘 살던 곳이 하루아침에 그렇게 변해 버리면…… 뭐랄까, 좀 낯설잖아. (주위를 둘러보면 언제나처럼 눈이 내렸다. 눈발이 점차 약해지는 게, 조만간 그칠 것 같기도 했다. 최후의 보루를 뒤로 하고 걷다 보면 건국 열두 기사상이 눈에 들어왔다)

Lucian

그리다니아가 추워지면 정령들은 다 어떻게 될까? 짓궂은 호기심이 드네. (후후 웃었다) 네 말대로야. 나도 하루이틀 정도는 눈보라를 신기하게 여겼던 것 같아. 그러나 일 주일간 폭설이 그치지 않았을 땐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했고, 어스름 요새와 그 안의 병사들을 모두 버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참담했지. (그는 고개를 들어 열두 기사상을 눈에 담았다) 그래도 나는 믿었어. 이슈가르드는 올바른 결단을 내릴 거라고. …… 희망 사항에 지나지 않게 되었지만.

牡丹

분명 다들 나약하게 얼어……까지만 하자. 이런 소리 했다가 나중에 검은장막 숲에서 혼쭐 난다. (그를 따라 키득키득 웃었다) 아, 기억난다. 백골이 되어서도 나를 때리려고 달려오던 유헬메릭 경 말야. 그때는 그냥 비극적인 일이구나~정도로 여겼는데, 너와 가까워지니까 마냥 남의 일처럼 생각하지는 못하게 됐어. (이내 그에게 팔짱을 꼭 끼었다) 그때도 다른 곳으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은 안 했어?

Lucian

그건 정말 놀랐지. 에오르제아는 신들에게 사랑받는 땅이라고 하지만 나는 잘 모르겠어. 그렇게 마물이 된 사람들은 죽어서도 편히 쉴 수 없잖아. (우리 어머니는 아예 불타 죽어 버리셔서 다행이라고. 그리 말하지는 않고 그저 눈을 껌뻑거렸다) 말로는 타지에서 살아도 좋겠다고 떠들었지만 진심은 아니었지. 그때는 쇄국 정책이 막 시작되던 때였기도 하고, 무엇보다... ... 이슈가르드에서 아파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낫게 하고 싶었어. 그러려면 이곳을 떠날 수 없잖아.

牡丹

사랑받으면 으레 시기와 질투도 따라붙기 마련이니까 그렇지 않을까? (그는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다가, 이내 웃으며 말했다) 어쩐지 베네스 님과 비슷하네, 그거.

Lucian

하이델린은 나보다는 너와 더 비슷하지. 그렇지 않아?

牡丹

그분도 세상과 사람들이 좋아져서 별바다로 돌아가지 못했다고 했거든. 어쩐지 그거랑 비슷해서. (읏샤. 그는 석조 의자에 아무렇게나 앉았다. 엘레젠 체형에 맞게 설계되었으니 그에게는 다소 컸다) 루도 이슈가르드에 남아 있을 이유가 더 많은 사람인가 봐. 그리고 나는 베네스 님과 엄청 달라!

Lucian

... ... 그런 건 말도 안 돼.

牡丹

뭐가?

Lucian

그는 죽을 수 있는 이유를 찾고 있다고 했지. 그런 건 말도 안 돼. 사랑은... ... 사랑이란 계속 곁에 머무르고 싶은 거야. (그는 석조 의자에 걸터앉은 채 창천을 바라보았다) 좋아하는데 어떻게 떠나고 싶어질 수 있어?

牡丹

…… 나도 모르겠어. 이래서 베네스 님과 나는 많이 다른가 봐. 너무너무 오래 살면 우리와는 아예 다른 관점을 갖게 되는 것일지도. (그는 잠시, 세상을 너무나도 사랑한 나머지 혼조차 남지 않은 이를 떠올렸다) 그런 거라면 루는 이슈가르드를 정말 많이 좋아하네.

Lucian

그래. 하필이면 이곳을 정말 많이 좋아하지. 정작 이슈가르드는 나 같은 사람의 존재를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데도. (가문을 이어받지 않았다면 그는 계속 그레이스톤으로 남았을 것이다. 그는 죽어서도 포르탕이 되지 못한 이를 떠올렸다.) 하지만 아무리 대단한 곳에 갈 수있다 해도 나의 있을 곳居場所은 언제까지나 여기 이슈가르드일 거야. 그리고 난 너에게도 그런 장소가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어.

牡丹

짝사랑이네, 그건. (이내 손을 뻗어 그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는 그의 눈빛이 자신의 것과 닮았다고 생각하면서.) 생각해 보면, 나는 아주 오랫동안 이곳저곳 떠돌아다녔지. 그래서 어디든지 괜찮다고 생각했어. 달리 말하면 어디에도 그다지 마음을 붙이지 못했다는 거겠지. ('있을 곳'이라. 많은 사람들이 그런 장소를 찾아 헤매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어. 그곳이 이슈가르드든 그리다니아든, 또는 저 먼 우주의 바깥이라도…… 나는 네 옆이면 그저 좋은데.)

있지, 서부고지에 갈래?

Lucian

너는…… 서부고지를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았어. 이유가 있나?

牡丹

뭐랄까…… 엄청 넓잖아?

Lucian

그게 좋아할 이유가 되나?

牡丹

자, 자! 일단 가서 천천히 설명을 들어 봐. (대뜸 그의 옷소매를 붙들고 텔레포를 탔다.)

Lucian

(도무지 그의 의중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눈보라가 멎은 서부고지의 풍경은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 ... 어쩐지 오랜만에 오는 것 같아. 용시전쟁이 이어질 때에는 거의 매일같이 서부고지에 왔는데.

牡丹

지금은 그때보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다닐 수 있겠네. ... ... 새삼 신기하지, 내가 여기 처음 왔을 때만 해도 너랑 단둘이 오붓하게 데이트를 할 줄은 몰랐는데 말야! 내가 가진 탈것 중 가장 낭만적인 녀석을 타자. (피리며 호루라기 따위를 뒤적거리다가) 아르고스가 좋겠다.

Lucian

그러게 말야. 처음 만났을 때의 너는... ... 꼬질꼬질한 망나니였지. 연애 감정은커녕 가까이하고 싶지조차 않았어. 후후후... ... (작게 웃고,) 아르고스는 나를 싫어하잖아?

牡丹

야, 그건 너무했다! 나는 너 되게 잘생겼다고 생각했는데. 비록 좀 깐깐하고, 꼬장꼬장하고, 재수없고, 성질머리 희한하고, 싹바가지 없고, 샌님 같고, 투덜거리고, 친해지기 어려워 보인다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아무튼 아르고스, 이 녀석 좀 태워 줄래?

Lucian

(둘로 나뉜 아르고스는 그를 영 못 미더워하는 듯했으나 란의 부탁을 거부하지는 않았다.) 강한 걸 좋아하는 개 사역마라니, 하이델린은 취향이 참 이상하네.

牡丹

취향이라기보다는 주인의 기질이 반영된 거 아닐까? 그분은 나도 때리고 아젬인가 아재인가도 때려 봤대.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는 취향이실지도. (이내 아르고스에 훌쩍 올라탔다.)

Lucian

음... ... (그는 무언가 생각하다가 대뜸 란의 머리를 똑똑 두드렸다) 나는 돌머리도 두드려 보는 취향이야.

牡丹

아르고스! 이 개자식 물어!

Lucian

개 앞에서 개자식이래... ... 얼마나 교양이 없니? 너를 존중하지 않는구나. (은근한 목소리로 아르고스에게 말했다. 아르고스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牡丹

나만큼 아르고스를 사랑하는 사람은 없을 거야, 그렇지? (아르고스는 살갑게 머리를 비벼 왔다.) 아무튼 진짜로 가자. 어디 보자…… 흑철교로 먼저 가자!

Lucian

(아르고스는 훌쩍 날아올라 란의 뒤를 따랐다. 그는 서부고지를 내려다보며 문득 생각에 잠겼다.) …… 난 처음에 검은 초코보를 타는 걸 무서워했어. 그래서인지 서부고지를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내려다보는 날이 올 줄은 몰랐어. 높낮이의 차이가 심한 곳이라 종종 절벽에서 내려다보는 일은 있었지만 말야.

牡丹

나도 처음 날게 되었을 때는 정말 신기했어. 그리고 할 게 없어지면 종종 서부고지에 와서 이렇게 날아다니곤 했어. 여기는 정말 가도 가도 새하얗게 보이고, 눈보라가 심하게 치는 날이면 세상에 나밖에 없는 기분이 들기도 했어……. 그게 어쩐지 자유롭다고 느꼈어. 예전과 달리 나는 책임져야 할 게 많은 사람이지만, 서부고지 위를 날고 있으면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고 지내던 모험가 시절의 내가 생각났거든.


Lucian

그때가 그리워?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고, 나와 이슈가르드를 몰랐던 시절이.

牡丹

그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거겠지. 그뿐이야. 얼마를 준대도, 무엇을 바꾼대도 그때로 돌아가진 않아. (이내 아르고스는 두 사람을 흑철교 앞에 내려주었다.) 용시전쟁 때에는 여기로 용들이 엄청 들어오던데. 여기서 용들이랑 많이 싸웠지?

Lucian

뭐 이렇게 미련이 없는 녀석이 다 있담... .... (툴툴거리며 그는 거대한 다리를 올려다 보았다.) 응, 그랬지. 이렇다 할 유쾌한 추억은 없지. 너는 어떤데?

牡丹

나는 있잖아, 여기 위에서 탐험수첩을 채우려고 고군분투했어. 어떻게 해도 안 올라가져서 몇 번이고 올라갔다 떨어졌다를 반복하고 있었는데... ... 맑은 하늘에 오로라가 뜨는 거야! 그래서 잊지 못할 추억이 됐지. 그런 건 처음 봤는데, 첫눈에 마음을 빼앗겼어. (활짝 웃고,) 루~쨩도 오로라를 좋아해?

Lucian

다리의 좁은 틈에 어떻게든 올라가 보려 하는 영웅이라니, 몹시 바보 같았겠네. 옆에서 봤어야 했는데, 후후후…… (그 모습을 상상하며 조금 웃었다.) 글쎄. 언젠가부터 서부고지에서 오로라를 보면 느껴지는 건 아름다움이 아니라, 더 이상 이슈가르드가 예전의 푸르름을 되찾을 수 없겠다는 막막함이었어. 그래서 그다지 좋아하진 않지만 그 아름다움을 부정할 수는 없겠지.

牡丹

안 보여줘서 다행이야, 평생의 놀림감이었겠지! (그를 따라 방긋 웃었다.) 좋았던 시절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나 봐, 에메트셀크의 고대시대가 복구되지 않은 것처럼. 아씨엔들과 부딪치며 깨달은 건, 우리는... ... 과거가 아닌 지금 이 순간의 아름다움을 찾아야 한다는 거였어. 현재를 소중히 할 수 있도록, 지금을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그리 말하는 눈동자는 꿈을 꾸듯 반짝거렸다.) 다음 장소로 가자, 루.

Lucian

그래, 그렇구나... ... 어떻게 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은 분명히 행복하다고 느껴. 이런 순간들이 쌓여서 내일을 기대하게 하는 거겠지. 어제보다 내일이 더 나을 것이라 믿게끔 만들어 주겠지. (그리고 그건 분명 네가 있어 주어야 해. 그는 고개를 숙여 뺨에 입을 맞춰 주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아르고스에 올라탔다.) 다음에는 어디로 가?

牡丹

뭐야, 갑자기~! (당황하여 뒷걸음질 쳤다.) 어... ... 이름이 뭐였지? 그... ...

Lucian

그렇게까지 당황할 일이야? 또 답지 않게 귀엽게 구네. (피식 웃고,) 성 피네아 연대 야영지에는 안 가도 되나?

牡丹

으~ 그렇게 말하지 마! 부끄럽다고! (호딱 아르고스에 올라탔다.) 안 가도 돼, 얼마 전에 안부 인사 했어. 그... ... 골로가유 목장으로 갈 거야.

Lucian

(고르가뉴 목장이구나.) 거기에도 무슨 추억이 있어? 더 이상 목장이라 불리기도 힘든 곳인데. 아, 이단자들의 근거지가 됐었지... ...

牡丹

맞아! 나는 거기서 이젤을 처음 만났어. (얼마 지나지 않아 목장에 당도하고, 그는 훌쩍 뛰어내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애가 하는 말을 들으면서 나는 이젤에 대해서 더 알고 싶다고 생각했어. 이유가 어찌되었든 간에 세상을 적으로 돌리는 건 쉽지 않잖아. 나는 늘 영웅이라 떠받들어지기만 해서, 그런 마음은 잘 몰라…… 아, 울다하에 잠깐 원한을 산 적은 있지만!

Lucian

그 사람에 대해서는 아직도... ... 잘 모르겠어. 이해할 수 없지만 동시에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더 이야기할 수 있었다면 이해했을까? 그때는 이야기를 나눌 필요조차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야 조금 후회가 돼. (비난받을 걸 알면서도 선봉에 서는 건 어떤 용기가 필요할지. 그럼에도 꼭 그런 방식이어야 했을지. 그는 얼음의 무녀라는 칭호가 슬프다고 생각했다. 얼음은 너무나 쉽게 녹아 버리니까.) 그랬었지. 꽁무니 빠지게 도망 왔던 네가 생각나네.

牡丹

난 시바가 아닌 이젤에 대해 알고 싶었던 건데, 그 애는 도통 얘기해 주려 하지 않았지. 그게 두고두고 아쉬워서 사람들의 이야기에 더욱 귀를 기울이게 됐어. 우리 편도, 적도 말이야. (지금의 이슈가르드를 보여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지금은 주인 없는 건물인 옛 이단자의 근거지를 살폈다.) 그때 빠진 꽁무니가 아직도 다시 나지 않았어! 네가 거두어 줘서 다행이었지.

Lucian

다양한 입장을 들어 주려고 노력함에도 적에게는 냉정함을 유지하는 것, 그게 너를 영웅으로 만드는구나. (그는 란의 짧은 뒷머리를 매만졌다.) 그때의 너는 이래저래 최악의 상황에 몰려 있었는데도 이상할 만큼 태연해 보였어…… 기억은 나?


牡丹

지금 그때로 돌아가면 결코 그때처럼 굴지 못할걸. 물론 그때도 새벽 친구들이 소중했지만~ 그때는 막연히 다시 볼 수 있으리라는 낙관이 있었어. 지금은 절대 안 되지, 얄팍한 낙관에 의지하기에는 그 애들이 너무 소중해졌거든. (쓰다듬는 손이 기분 좋아 그는 조금 웃었다.) 그리고 어찌되었든 나 자신에게 부끄러운 짓은 하지 않았으니까 당당했어. 오르슈팡도 나를 믿어 주었잖아. 지금은 이젤처럼 그리운 얼굴이 되어 버렸지만…….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던 그는 돌연 루시안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그렇게 떠나 버린 사람들을 생각하다 보면, 곁에 있는 사람들을 더 사랑해야겠다고 느껴. 후회 없이 보내주고 나중에 웃으면서 만날 수 있도록.

Lucian

…… 란, 나는…… (떠난 이들을 떠올리며 그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 너를 떠나지 않을게. 난 어떤 방식으로든 너에게 상처를 남기고 싶지 않아. 난 언제나 여기 있을 거야, 자리를 옮기지 않는 나무처럼.

牡丹

(바람이 매서워서 눈이 시려. 네 품에서 조금 눈물을 흘리게 될지도 모르겠어. 아, 사람들은 이래서 '있을 곳'을 찾아 헤매나 봐. 혹한이 몰아쳐도 너의 품만은 반드시 따뜻할 테니까.) …… 응. 정말, 정말로 좋아해.

Lucian

…… 우는 건 아니지? 란~쨩.

牡丹

영웅은 태어나서 엄청 많이 우는 법이란다, 흥.

Lucian

부정도 않으니 너답네. (피식 웃고는 란의 손을 잡고 천천히 거닐었다.) 이쪽에 얼어붙은 호수를 죽음의 호수라고 불러. 알고 있어?

牡丹

정말? 처음 알았어! 이름이 너무 무서워~! 이슈가르드식 작명은 정말 직관적이네. 용머리 전진기지도 그렇고, 돌방패 경계초소도 그렇고.

Lucian

귀족 사회를 표방하지만 윗대가리로 갈수록 교양이 없어지는 나라가 이슈가르드야. (그는 피식 웃었다.) 이렇게 말은 하지만, 나는 이곳을 미워할 수 없겠지. 너도 그런 거지? 그래서 네가 좋아하는 장소들을 나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거지?

牡丹

그래. 이곳에서 쌓은 추억을 되돌아보면 이곳을 더 좋아하게 되지 않을까 싶어서. 말했다시피 나는 네가 좋아하는 걸 나도 좋아하고 싶어. (이내 그는 호수 너머의 배를 가리켰다.) 여기에 처음 왔을 때, 저 배가 엄청 좋아 보였어! 이런 곳에 처박혀 있기는 아깝다고 생각했지. 그리고 언젠가 여기에 다시 온다면 나는 그 첫인상이 아닌, 너와 함께했던 지금 이 순간을 떠올릴 거야. 그러면 여기가, 이슈가르드가 더 좋아지겠지!

Lucian

(그래, 이곳에서 나고 자라 자연히 이곳을 좋아하게 된 나와 너는 다르지. 너는 추억을 촘촘하게 쌓아 올려야 비로소 이곳을 좋아하게 되겠구나.) 그렇다면 다음에는 중앙고지에 가자. 그다음에는 하층을 천천히 거닐어 보고, 그다음에는 꽁꽁 얼어붙어 아무도 들어갈 엄두조차 내지 못한 곳을 모험해 볼까. 그리고 나는 그 모든 순간을 함께하고 싶어.

네 기억 속에서 살아가고, 네 옆에서 숨을 쉬고 싶어. 허락해 줄래?

牡丹

(그의 곁에서 고개를 들면 오로라가 너울지고 있었다. 또다시 영영 잊지 못할 추억이 기억 속에 아로새겨진다. 하루아침에 이곳이 나의 '있을 곳'이 되지는 않겠지만, 잊을 수 없는 기억들이 켜켜이 쌓인다면 비로소 그것들이 나를 떠나지 못하게 하리라.)

그럼, 물론이지! 앞으로도 잘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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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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