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변태우주창고

K+S, 봉오리

꺽창고 by 변태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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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나카솔

아 얼른 솔요일 됐으면 좋겠어여 어서오라 켈나카소류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01.


나뭇가지 끝에 모여드는 꽃봉오리. 터질 것 같이 오므라들었다가 다음 순간 만개하는 꽃잎들. 이파리 위에 구슬같은 이슬방울들. 그 안을 들여다보면 수술과 암술들이 꼭 마치 숲을 아주, 아주 작게 축소해서 심어둔 것처럼- 숲 안의 나무 안의 꽃 안의 숲 안의 나무 안의 꽃 안의…








02.


처음 봤을 때, 솔은 네 살이었다. 켈나카는 그것보다는 훨씬 더 나이가 많았을 테지만 아무도 켈나카가 몇 살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었다. 눈물이 짓물러서 분홍색으로 달아오른 얼굴, 울면 안된다고 입술을 꼭 깨물고 바지 옆이 주름이 지도록 작고 동그란 주먹으로 꽉 쥐고 있던 네 살의 솔, 그때까지 봤던 그 어떤 나무보다도 키가 크고 이상한 말을 하고 눈이 어딜 보는지도 잘 모르겠는 털복숭이의 거대한 존재를 보고 온몸의 힘을 동원해서 참고 있던 눈물을 터뜨린 것도 당연한 일일 터였다. 



목청이 찢어져라 울면서 누군가에게 기댈 수 없을까, 솔은 울면서 뒤로 주춤주춤 물러섰지만 이제 막 모든 것을 두고 온 네 살의 아이를 안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데려왔던 제다이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가 않았고 켈나카는 너무나 컸고, 솔은 울면서 뒷걸음질을 치다가 주저앉았는데 켈나카가 턱, 턱, 무릎을 꿇었었다. 뒤로 멀찍이 물러나면서 그저 가만히 솔을 쳐다보기만 했었다. 손가락을 내밀지도, 해치지 않을 거라고 말을 걸지도 않고 그저 솔을 쳐다보면서, 울다가 울다가 제풀에 지친 솔이 히끅거리면서 울음을 멈출 때까지 켈나카는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 무릎을 꿇고 어깨를 한껏 옹송그려서 커다란 몸을 작게 만들려고 최대한 노력을 하는 모습으로. 



공포와 서러움이 떠나간 곳에 천천히 호기심이 차올랐다. 솔의 커다란 눈에, 눈물이 고여있던 그 커다랗고 까만 눈동자에 호기심이 떠오른 것을 본 켈나카는 그제야 아주 조심스럽게 검지 손가락 하나 만을 아주 조심해서, 정말이지 너무나 조심해서 내밀었다. 솔의 손 앞에 검지만을 내밀고 솔이 먼저 잡기를 기다렸다. 솔은 양손바닥으로 눈물을 벅벅 닦은 다음 그 검지 손가락을 조심해서, 정말 너무 조심하면서 만져봤는데 손은 정말 컸고, 생각보다 털이 뻣뻣했고, 그런데도 부정할 수 없게 따듯했다. 그 감촉이 신기해서 솔이 더 용기를 냈다. 양손으로 검지 하나에 매달리듯이 전부 잡아도 봤다가 손이 조금 더, 조금 더. 켈나카의 손은 아주, 아주 컸고 솔의 양 손을 다 올려도 손바닥이 전부 가려지지 않을 정도였다. 



손바닥까지 털이 가득했다. 솔의 손이 꼭 켈나카의 손바닥 위에서 숨바꼭질이라도 하는 듯이 보였다. 아이는 금세 꺄르르 웃었고 웃음소리는 아주 높고 가벼웠고- 켈나카는 울어서 코가 맹맹해진 아이가 바닥에 철푸덕 주저앉아서 꺄르르, 노란색, 하늘색, 연두색, 분홍색으로 웃으면서 즐거워하는 이마를 한참이나 내려봤다. 아이는 한참이나 켈나카의 손을 가지고 놀았고 켈나카는 무릎을 꿇고 어깨를 최대한 구부린 채로 손을 쭉 내민 이상한 자세로 아이를 기다렸다. 아이가 꺄르르, 웃으면서 일어나려다가 다시 콩. 넘어졌고 켈나카가 솔의 통통한 배를 한 손으로 받쳐줬다. 손이 정말이지 컸다. 네 살 배기의 통통한 배가 손으로 전부 덮힐 지경이었다. 



그 손아귀가 너무 따뜻하고 단단하고, 솔은 보호받고 있다고 느꼈다. 알고 지내던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 솔은 이제 겨우 네 살이었지만 자신이 가족들과는 너무나 다른 사람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가족 중 다른 아무도, 솔이 하는 것처럼 말하지 않는 것의 소리를 듣는 사람도 없었고 직접 잡지 않고도 만질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그런 힘을 다루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가야하는 길이 정해져있다는 것도, 솔은 알고 있었다. 그건 누가 알려줘서 알아낸 것이라기 보다는- 꼭 마치, 그걸 아는 것까지가 솔이 가지는 힘의 일부이기라도 한 것처럼, 솔에게는 당연한 것이었다, 하늘은 높고, 멀고, 땅은 단단하고, 가까운 것처럼 당연한 것. 



알았다고 해서 아프지 않은 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솔은 켈나카가 조심해서 세워주는 것을 느끼다가 헤헤 웃으면서 아장, 아장, 걸어가서 켈나카의 앞에 똑바로 섰다. 알고 있었다고 해서 아프지 않은 것은 당연히 아니다, 알고 있었다고 해서 헤어짐이 슬프지 않았던 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시는 볼 수 없다, 솔이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을 다시는 볼 수 없다. 그럼에도 솔은 이렇게 되어야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적어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건 당연해 보였으니까. 아주 자연스럽게. 가족들과 나는 다르고, 나는 다르니까 우리는 헤어져야하는 것이라고… 



이름이 뭐예요? 솔이 머뭇거리다가 똘망하게 물었고, 아이는 네 살 치고는 대단히 분명한 발음을 사용했지만 한참 울다가 만 목소리는 평소보다도 더 어리게만 들렸다. 이름이, 뭐예요? 솔이 묻고 코를 크게 훌쩍, 들이마셨고 켈나카가 웃는 것처럼 보였다. (얼굴을 다 덮은 길고 빽빽한 털 때문에 확실하진 않았지만) 켈나카는 뭐라고 말했지만 솔은 그걸 알아들을 수 없었고 목소리가 아닌, 어떤 울음소리에 가까운 것 같은 켈나카의 목소리에 솔은 놀랐다. 켈나카는 바닥에 손가락으로 뭔가를 써줬으나 그때 솔은 글을 읽을 줄 몰랐다. 바닥에 그어진 어떤 그림같은 문양을 보다가, 그걸 그리는 켈나카의 검지손가락을 보다가, 헤헤 웃으면서 켈나카의 무릎 꿇고 있던 허벅지 위에 톡 앉았다. 



눈을 처음으로 똑바로 마주보고, 켈나카는 그 눈 안에서 모든 걸 봤다. 거의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거의 푸르게 보일 정도로 무섭게 하얀 눈자위, 안으로 칠흑같이 어두운 커다란 눈동자. 두려움. 외로움. 슬픔. 그리움. 낯섦. 그리고 체념과, 그 모든 것 뒤로 배경처럼 번진 따뜻함. 켈나카가 아이의 눈 안에서 길을 잃은 사이에 아이가 꺄르르 웃으면서 켈나카의 이마 쪽으로 손을 뻗었다. 켈나카가 얼른 몸을 더 숙여서 아이의 앞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아이는 약간 겁에 질렸지만 꺄르르, 꼭 누가 발바닥을 간지럽힌 것처럼 다시 웃은 다음 켈나카의 머리쪽 털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켈나카의 키가 너무 크고 아이는 너무나 작아서 허벅지 위로 올라서서 팔을 힘껏 뻗어야 겨우 손이 이마 위쪽에 닿을 지경이었다. 



아이는 한참 장난을 치고, 거의 까치발로 선 채로 낑낑대면서 켈나카의 머리를 모아서 하나로 잡았다. 꼭 머리카락 안에서 작은 요정들이 숨바꼭질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고 켈나카가 결국 큭큭 웃었다. 무릎 꿇은 켈나카의 허벅지 위에 작은 아이가 까치발까지 하고 서서 낑낑대면서 머리를 묶어주려고 하고 있었고, 아이의 얼굴이 켈나카의 얼굴 바로 앞에 있었고, 아이에게선 초여름 새벽의 냄새가 났다. 체온이 높았고, 약간 땀이 났는지 조금 촉촉했고, 아이의 손이 작고 손끝이 야무지지 못해서 털이 조금 강하고 빠듯하게 당겨지는 기분까지. 켈나카는 한참이나 아이가 털을 조물딱거리는 것을 전부 가만히 기다렸다. 



열심히 그러모으긴 했으나 머리 끈이 없었다. 아이가 시무룩한 얼굴로 털을 놓아주고 똑바로 섰고, 켈나카는 작게 웃으면서 아이의 몸을 가볍게 들어서 다시 편하게 앉혀줬다. 바닥에 고마워, 라고 썼지만 아이는 글을 읽을 줄 몰랐다. 대신 켈나카의 검지가 움직이는 모양에 마음을 온전히 뺏겨서 눈을 반짝거렸다. 발을 구르고 꺄르르 웃은 다음 또 그려주세요, 라고 말했고 켈나카는 웃으면서- 또 아무래도 좋을 말들을 쭉 썼다. 아침, 저녁, 밤. 달, 별, 하늘. 구름, 바다. 숲, 나무, 꽃. 꽃봉오리 안의 숲. 네 눈 안의 슬픔. 



아기는 작고, 작고, 정말 작았으며 방금까지 울어서 평소보다도 더 뜨끈뜨끈했다. 아기는 켈나카의 손가락이 바닥에 이것 저것을 쓰는 것을 보다가 하품을 하고 눈을 조금씩 느리게 깜박, 깜박, 하다가 아직 너무 작고 어려서 몸에 비해 큰 것같이 보이던 고개가 옆으로, 앞으로, 뒤로, 뒤뚱뒤뚱 흔들리다가 툭, 떨어졌는데. 켈나카가 다른 손 손바닥으로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잡아 받쳤다. 



그게 첫만남이었다. 아주 나중이 되도록 켈나카는 그 모습을 잊지 않았다. 크고 하얗고 검은 눈 안 가득 두려움과 서글픔, 슬픔과 외로움, 체념, 그런 것을 가득 넘실거리고 노랗고 파랗게 꺄르르 웃던 작고, 작고, 작은 아기였던 솔. 






03. 



시간이 흘러서 솔이 켈나카의 말을 할 수 있게 된 다음에도 둘은 대화가 많은 사이는 절대 아니었다. 말이 필요한 사이는 아니었다. 말이 아니고서는 상대를 이해시킬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사이였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켈나카는 아기였던 솔이 조금 낯을 많이 가리지만 똑똑하고 똘망한 어린이가 되었다가 성격이 조금씩 밝아지면서 보통의 십 대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약간 성질이 급해지는 것을, 그리고 점차 스스로를 알아가면서 차분하고 따뜻한- 말하자면 지금의 솔에 가까운 젊은 남자가 되는 것을 전부 지켜봤다. 켈나카 본인은 지켜봤다는 말을 쓰지 않을 것이다. 켈나카는 솔이 스스로 자랐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굳이 챙기고 물을 주고 햇빛이 드는 쪽으로 돌려주지 않아도 알아서 때를 아는 꽃봉오리처럼. 깊은 숲의 키가 큰 나무의 위에 피어난 꽃봉오리, 숲의 안의 나무 안의 꽃, 그 안에 숲 자체를 품고 있는 그 꽃처럼. 솔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켈나카는 알았고 그러니 켈나카는 자신의 역할이 그 꽃에게 물을 주거나 햇빛이 드는 쪽으로 돌려주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 꽃이 스스로 터져나오는 것을 가만히 보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느끼고 있는 것을 솔이 알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작고, 정말 너무나 작고, 정말이지 너무나 작던 아기였을 때. 그 시퍼렇게 하얀 눈 안을 다 차지한 검정색 눈동자, 구슬같은 눈물방울 너머로 켈나카는 봤었다. 슬픔, 서러움, 외로움, 두려움, 낯섦, 약간의 무력감, 그럼에도 체념, 그리고 가장 낮은 곳에 사금처럼 반짝이던 호기심,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감싼 따스함. 꽃봉오리 안에 작은 숲이 들어있는 것처럼. 









04.



처음 시작은 아마도, 솔이 파다완이 되기 직전의 일이었던 것으로 켈나카는 기억했다. (켈나카처럼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과거는 뭉뚱그려 기억되므로 정확하지는 않을 수도 있지만- 아마 그 즈음이었을 것이다) 뭔가 어떤 일이 있었고, 별 일은 아니었지만 솔은 마음 상해 했었다. 아마 솔이 잘못하지 않은 일로 함께 혼났거나 그 정도의 해프닝이었을 것이다. 솔은 아주 어른스러웠지만 그래도 아직 어린아이였다. 솔은 마음이 상해있었고, 마음이 상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고도 있었고, 적어도 실제로 마음이 상했더라도 그것에 휩쓸려서는 좋은 제다이가 될 수 없다는 것 역시도 알고 있었다. 



켈나카는 입술이 댓발은 나와서 씩씩대던 솔을 조용히 불러냈다. 솔은 기분이 상해있었고, 그래서 켈나카가 왜 불렀는지도 묻지 않았으며 그냥 두 걸음 정도 뒤에서 켈나카를 따라왔다. 켈나카는 계속 걸었다. 턱, 턱, 턱, 턱, 하고 발소리가 일정하게 나도록 계속 걸으면서 솔은 기분이 상해있었데다가 그 나이대, 그러니까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남자애들이 그렇듯이 이상한 자존심 같은 것을 부리고 있었어서 켈나카에게 어디 가시는 거예요? 라고 물어보지도 않았다. 켈나카는 계속 걸었다. 도시를 벗어나서 외곽의 조용한 길, 야트막한 오르막, 이어서 작은 숲. 



그쯤 돼선 솔의 기분도 조금 풀려있었다. 정확히는 솔이 계속 그때까지 마음으로 되뇌던 것- 분노는 버려야한다, 억울함은 좋지 못한 감정이다, 이런 것들이 약간씩 효과를 내고 있었다고 해야할 것이다. 켈나카는 귀를 쫑긋이 세우고 솔이 불퉁하게 탁탁 내려놓던 발소리가 가벼워지고 단정해지는 것을 전부 들었다. 



숲, 깊은 곳.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가장 오랜 나무. 가장 오랜 나무는 키가 크진 않았고 옆으로 가지가 길게 뻗어있었다. 켈나카는 그 가지의 끝으로 걸어갔다. 가지를 조심해서 잡아서 솔이 볼 수 있도록 부드럽게 내렸다. 가지가 유연하게 살짝 휘듯이 내려왔고, 그 바람에 나무가 같이 흔들려서 앉아있던 어떤 새들이 꼭 투덜거리는 것 같은 날개소리를 내면서 다른 가지로 옮겨앉았다. 솔은 어리둥절하게 켈나카가 하는 것을 보고 있었다. 베이지색의 로브가 단정하게, 이제 키가 막 커지고 어깨가 넓어지기 시작했던 솔의 눈 앞에 켈나카가 나뭇가지를 조금 더 내밀었다. 



나뭇가지 끝에 연분홍의 꽃. 터질 것 같이 오므려진 꽃봉오리. 켈나카는 아무 말 없이 솔이 그 꽃을 보는 것을 지켜봤다. 솔은 처음엔 어리둥절하게 켈나카의 얼굴과 꽃을 번갈아보다가, 어느순간 부드럽게 웃으면서 꽃 안을 깊게 쳐다봤다. 꽃 안, 단정하고 빼곡한- 세상에서 제일 작은 숲을 가지런히 꽂아둔 것 같은 그 꽃 안. 너의 눈. 이 세상의 모든 감정을 다 담고 있던 그 광활한 눈동자. 켈나카는 솔이 마침내 홀가분하게 웃으면서 똑바로 설 때까지 나뭇가지가 끊어지지 않게 부드럽고 느리게 나뭇가지를 내려줬다. 



솔은 천천히 켈나카의 손목을 톡톡 두드렸고 켈나카가 부드럽게 나뭇가지를 원래대로 돌려놨다. 그리곤 그 나무 밑동에 기대 앉았다. 솔이 다가와서 앉으려고 했는데 나무 아래의 이끼 때문에 솔의 로브가 젖을까봐, 작고 어린 인간의 몸이 상할까봐 걱정이 됐다. 켈나카가 머뭇거리던 걸 보더니 솔이 꺄르르 웃었고 그 목소리는, 이제 막 변성기에 접어들던 목소리였는데도 노랗고, 파랗고, 연두색, 하늘색, 분홍색이었다. 솔은 꺄르르 웃으면서 켈나카의 허벅지 위에 앉았다. 



감사해요, 솔이 다정하게 말하면서 고개를 위로 꺾어서 켈나카를 바라봤다. 말간 아이의 눈빛. 켈나카는 웃고 솔이 편하게 기대 앉도록 몸을 뒤에서 안아줬다. 털에 폭 감싸 안긴 듯한 솔이 큭큭 웃으면서 팔을 쿡 뻗어서 켈나카의 이마 위를 만졌다. 하나로 모아서 단정하게 묶인 곳 앞을 톡톡 쓰다듬고 부드럽게 매만지다가 몸을 뒤로 돌렸다. 인간의 아이는 어느새 많이 자라서- 허벅지 위에 까치발로 서서 온몸으로 낑낑 대던 때에서 그렇게 많은 시간이 지나지도 않았는데도, 어느새 이렇게 많이 자라서. 앉은 채로 팔을 조금 쭉 뻗어서(물론 켈나카가 얼른 허리를 숙여주기는 했으나) 켈나카의 머리를 다시 매만져줬다. 



묶여있던 머리를 풀고, 고무줄을 입술로 문 채로. 손가락을 빗처럼해서 털을 고르게 빗은 다음, 부드럽게 하나로 잡은 다음, 야무지게 하나로 묶은 다음. 씨익 웃으면서 다시 켈나카의 다리 위에 앉으면서 가슴팍에 폭 안기듯이. 멀리에서 잘 모르겠는 새들이 날면서 뭐라고 하는 소리가 들렸고 나뭇가지가 가린 하늘 너머에서 햇빛이 빛났다. 켈나카가 잠시 말없이 있는 동안 솔의 숨소리가 단정해졌고, 일정해졌고, 켈나카는 잠든 솔이 입을 살짝 벌리고 숨을 쉬는 소리가 숲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했었다. 



그리고 그건 둘 사이의 정해진 의식같은 것이 되었다. 솔이나 켈나카가 언제라도 기분이 상할 일이 있으면 둘은 서로를 불러내서 그 곳으로 걸어갔다. 언젠가 심한 폭풍이 불었던 때가 있었고 그 나무가 상할까봐 걱정이 되어서- 밤새 그 나무 밑에서 불침번을 선 적도 있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서 둘은 서로를 불러낼 필요조차 없게 되었고, 그냥 언제라도 상대방이 부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 그 나무 아래로 갔다. 



어린 솔이 봤던 꽃은 당연히 없었다. 그 꽃은 그 해 봄에 할 일을 다 마치고 여름에 열매를 맺었다가 가을에 아래로 툭 떨어져서 다시 그 자리에 씨를 뿌렸고 싹을 틔웠고 다시 다른 꽃이 똑같이 피어나서 또 할 일을 마치고 열매를 맺었다 툭 떨어져서 씨를 뿌리고 싹을 틔웠다- 켈나카와 솔은 언제라도 그 나무 밑동에 기대서 한 마디도 하지 않는 시간을 보냈다.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잠시간 바람소리를 듣다가, 솔이 켈나카의 머리를 다시 묶어주고 나면 둘은 다시 돌아갈 수 있었다. 







05.


켈나카는 멍하게 눈을 뜬다. 눈 앞이 흐리고, 선홍색으로 번져보이고, 솔이 울면서 뭐라고 외치는 소리. 심하게 헐떡거리는 소리. 솔의 목소리라는 것은 알 수 있었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는 들리지 않았다. 솔이 급하게, 크게, 답답하다는 듯이 계속 외치고 있었는데 켈나카는 그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냐면 솔과는 대화를 하는 사이가 아니니까. 켈나카가 팔을 휘둘렀고 빛이 번쩍였다. 솔이 날아오르는 듯이 보였고 또 뭔가를 외치고, 거의 울먹이면서 뭔가를 다시 외치고, 켈나카는 그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왜 그래, 켈나카는 처음으로 솔에게 그런 말을 물어보고 싶었다. 왜 그래, 



솔의 마음이 읽어지지가 않았고 솔 역시 그렇다는 것을 켈나카는 알아차렸다. 대화가 한 번도 필요한 적 없었다. 눈을 마주보기만 해도 다 알 수 있었다. 꽃봉오리 안에 자리잡은 숲을 보는 것처럼 당연하고 거의 폭력적으로 느껴지도록. 이해를 구할 필요도 이해를 바랄 필요도 없던 사이였는데, 켈나카는 아주 많은 솔을 전부 지켜봐왔는데. 켈나카는 솔을 공격하고 있었고 솔은 답답하다는 듯이 다시 뭔가를 외치면서 달려들었다. 솔의 목소리, 하지만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어떤 외계의 말을 하는 것처럼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 켈나카는 답답했다. 



소리를 지르지 말고, 솔, 마음을 단정하게, 불어오르는 감정을 멀리 두고 하나하나 지켜봐야한다고, 감정은 너의 칼 위에 찌꺼기처럼 쌓이고, 날이 무거워지면 네가 원하는 것을 지킬 수가 없으니까. 네가 이걸 모를 리가 없는데, 어엿한 제다이 기사가 된 네가 이제와 이걸 헷갈릴 리가 없는데. 왜냐면 켈나카가 처음 봤던 아주 작고, 정말이지 너무나 작던 그 아기였던 솔조차도 거의 본능에 가깝게 그걸 다 알고 있었으니까. 이제와 네가 이걸 모르게 될 수 없을 텐데. 소리를 지르지 말고, 마음을 단정하게, 봄이 되면 꽃이 피고 여름이면 열매가 맺히고 가을이면 떨어지는 것처럼. 하늘, 별, 달, 태양, 태양. 태양. 너의 이름처럼. 너의 눈처럼. 두려움, 무서움, 외로움, 그리움, 서러움, 슬픔, 낯섦, 호기심, 그것들을 감싸던 그 햇볕같은 따스함처럼. 켈나카는 어느새 자신도 답답해서 소리를 지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솔, 왜 그래, 왜 그래. 단 한 번도 할 필요가 없었던 그 말들을. 



왜 그래, 왜 그래. 켈나카는 소리를 지르면서 솔을 진정시키려고 했는데 솔은 계속해서 울면서 뭔가를 소리를 지르면서, 뭔가 계속해서 소리를 지르면서,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고 꼭 거대한 어떤 벽이 둘 사이에 자라나서 영원히 만날 수가 없게 된 기분이 들었다. 이러지말고, 켈나카가 다시 소리를 질렀다. 이러지말고, 그 나무 아래에서 보자, 켈나카는 계속해서 소리를 질렀고- 너무 답답했는데. 솔이 울었다. 울면서 몸이 가볍고 깊게 훅,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왔고 켈나카의 몸이 멋대로 움직여서 솔을 튕겨내려고 했는데. 



어떤 순간에 몸이 딱 굳는 느낌이 들었다. 꼭두각시를 마음대로 움직이던 실들이 툭 잘리듯이. 켈나카가 멍하니 하늘을 올려봤다. 꼭 하늘에서 실이 내려와서 온몸을 얽어맨 다음, 켈나카를 꼭두각시처럼 부리고 있던 어떤 존재가 있어서- 그 존재가 부리던 실을 다른 누군가가 억지로 뜯어낸 것 같은 느낌. 다음 순간 솔의 세이버가 깊게, 날렵하게 들어왔다. 멍하게 솔을 쳐다보면, 솔이 울면서- 켈나카, 제발, 하는 소리가 그제야 들렸다. 그제야 이해가 됐다. 켈나카, 제발, 왜 그래. 



왜 그래. 켈나카가 아까부터 계속 하던 말이었다. 솔, 왜 그래. 솔 역시 울면서 계속 그 말을 반복하면서, 켈나카, 왜 그래, 



멍하게, 꼭 안개 안에 머리만 따로 떼어두고 온 것처럼 멍한 감각 너머로- 켈나카는 그 나무 아래에서 보자고 말하고 싶었다. 그 나무 아래에서 보자. 왜냐면 그 나무 아래에 앉아있을 때 우리는 말이 필요하지가 않으니까. 서로 왜 그러냐고,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왜 나에게 칼 끝을 겨누냐고 물어볼 필요가 없으니까. 나무 아래에서 보자. 그 꽃을 보자. 그 꽃 너머로 하늘을 올려보다가 너는 내 머리를 고쳐 묶어주고 나는 너를 재워주고, 우리에겐 말이 필요하지가 않으니까. 



켈나카, 왜 그랬어, 도대체 왜 그랬어, 솔이 울면서 그 말만을 반복했고 켈나카는- 



그 나무 아래에서 보자, 우리가 언제나 그랬듯이 거기에서 보자, 열심히 되뇌었지만 말이 통하지 않았다. 도대체 왜 그랬어, 솔이 울면서 켈나카의 얼굴 근처를 쓰다듬었다. 이해가 안 가, 기억이 안 나, 내가 뭘, 너는 뭘. 왜 그랬어. 너는 왜 그랬어.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비명소리가 들렸고 울던 솔이 아주 어릴 때의 솔이 그랬던 것처럼 양손으로 눈물을 닦고 빠르게 달려나갔다. 



켈나카만 거기에 남았다. 올려봐도 밤하늘이었고 별조차 보이지 않았고 계속해서 누군가의 비명소리, 꼭 처음 와 본 어떤 행성의 전쟁터에서 아주 약간만 빗겨난 곳에 누워있는 것같이 끔찍했다. 켈나카를 에워싸고 수많은 사람들이 제각기 살려달라고 비명을 지르는데, 그 말을 다 알아들을 수가 없는데, 그런데도 그 사람들의 고통과 괴로움같은 것이 덩어리로 전부 느껴지는데, 그런데도 알아들을 수는 없고, 하늘은 밤하늘, 별조차 보이지 않는데. 켈나카가 헐떡거리는 숨소리가 너무나 크게 들렸고 심장박동 때문에 귀가 다 아팠는데 솔이 벤 곳이 아프지도 않았다. 



타고, 무너지고, 깨지고, 부서지는 소리. 온 힘을 다해서 들어올린 손, 올려보면 축축하고 아무래도 누군가의 피인 것 같은 것이 깊게 젖은 양손바닥, 뭘 했어, 왜 그랬어, 하던 솔의 모습. 켈나카는 어스름한 달빛을 한참 보다가 눈을 감았다. 눈을 감아도 비명소리는 생생하게만 들렸다.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언어들로 제각기 외치는 단말마의 비명같은 것들. 솔, 왜 그래, 켈나카, 왜 그래, 왜 그랬어, 뭘 한 거야, 도대체 왜 그랬어-



소리를 지르던 솔의 그 처참하던 얼굴이 마지막으로 떠올랐다. 멀찌감치 사람들의 비명소리. 솔이 다치지 않아야 할텐데, 켈나카는 기절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생각했다. 다치지 않아야 할텐데. 누군가가 솔을 지켜줘야 할 텐데. 그 숲의 가장 큰 나무, 그걸 밤새 지켰던 우리들처럼. 솔은 당당한 제다이고 당연히 스스로를 지킬 수 있을테지만, 누군가, 누군가가, 



켈나카가. 솔을 지켜줘야 했는데. 



왜 이렇게 됐을까. 왜 이렇게 된 걸까. 켈나카가 눈을 감고 감정을 정리하려는 동안 누군가가 헐떡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눈가가 뜨거워졌다, 



한참이 지나고서야 켈나카는- 그게, 스스로의 울음소리라는 걸 알아차렸다. 눈가가 아주 뜨거웠고 얼굴이 축축해졌고 숨이 가빠졌고, 멀찌감치 사람들의 비명소리. 코가 맵도록 뭔가가 타는 냄새. 왜 그래, 하던 솔의 그 비참한 얼굴. 밤하늘 아래에 똑바로 누운 채로 켈나카는 한참을 울었다. 한참을 울었는데도 이번에는, 솔은 켈나카를 찾아와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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