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변태우주창고

제키+솔 01

아기 뿔병아리와 엄마 닭의 코러산트 생활

꺽창고 by 변태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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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감기



이마에 크고 부드럽고 시원한 손이 올라왔다. 제키는 조금 놀랐지만 놀란 것을 티내고 싶지는 않았다. 허리를 똑바로 세워 앉으면서 눈을 떴는데 걱정스러움이 가득 담긴 갈색 눈동자를 보자마자 세워앉았던 허리에서 힘이 빠지면서 꼭 어리광이라도 부리고 싶은 기분이 되는 것이었다. 제키, 열이 좀 나는 구나. 솔은 말할 때 눈썹이 같이 움직였고 그게 대화를 하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곤 했었다. 열이요? 제키가 조용하게 따라 말했다. 



머리가 아프니? 솔이 다시 물으면서 손을 조금 더 펼쳐서 이마를 완전히 덮었다. 손이 시원했다. 아프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고 그렇다고 아프지 않은 것도 아닌 상태, 제키는 아프다기 보다는 몸 상태가 온전하지 않은 것에 짜증이 조금 난 상태였다. 아프진 않습니다. 제키가 야무지게 말했는데 솔이 다정하게 웃었다. 눈썹이 아래로 쭉 내려가면서 눈꼬리가 완전히 쳐지고, 광대가 동그랗게 올라오면서 입꼬리는 호선을 그리도록 웃었다. 제키가 자기도 모르게 살짝 따라 웃게 되는 웃음. 언제나. 아픈 것 같은데. 솔이 조용하게 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키는 약간 어리둥절한 상태로 따라서 일어났다. 



명상실 문 밖으로 나와서 조용히 걸어간다. 제키는 또 솔을 쳐다보게 된다. 닮고 싶다. 똑같이 하고 싶다. 마스터의 키가 너무 크고 제키는 키가 너무 작아서 올려보기에도 목이 아플 정도다. 목을 돌려서 올려보고 있으면 머리가 조금 더 띵했고 관자놀이에서 심장이 뛰는 기분이 들었다. 마스터의 걸음이 조금 느려진다. 제키의 어깨에 손이 올라왔다. 시원하고 부드럽고 아주 큰 손. 아픈 걸 알아차리는 것도 중요한 능력이란다, 솔의 목소리는 아주 낮아서 크게 말하지 않아도 멀리 퍼지곤 했다. 제키는 그 목소리가 자신을 질책하지 않는 점이 좋았다… 



몰랐어요. 제키가 솔직하게 말하면 솔이 웃는 소리가 났다. 그래. 

솔은 웃었고, 아까보다 걸음이 조금 더 느려졌고, 제키의 어깨에 올라온 손이 제키를 토닥였다. 다음엔 바로 알 수 있겠지? 올려보면 눈을 장난스럽게 찡긋거리는 다정한 눈이 보였다. 제키가 씨이익 웃으면서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고개를 끄덕이면 머리가 다시 띵하고, 다시 관자놀이에서 심장이 뛰는 기분이 들었고, 그래서 찡그리고 싶었는데 솔에게 찡그린 얼굴을 보이고 싶지도 않았다. 그 순간에 솔이 가볍게 찡그렸고, 제키도 거울반응처럼 같이 찡그렸고, 



정말 짜증나지, 나도 이런 편두통이 정말 싫어. 



솔이 가볍게 말하면서 엄지를 들어서 제키의 관자놀이를 가볍게 문질렀다. 제키는 어른의 손 안에서 사뿐하게 머리가 흔들리면서 웃었다. 짜증난다는 말을 했다. 마스터 솔이, 짜증난다고 했어. 아이의 생각엔 그게 세상에서 제일 웃긴 일인 것 같았다. 솔은 자상한 마스터였고 제키에겐 늘 웃는 얼굴만을 보여줬었고, 다른 마스터들도 전부 솔의 앞에선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면서 존경하는 그런 대단한 제다이 마스터인데. 짜증난다고. 짜증은 감정이고, 그것도 아주 어린 아이들- 제대로 갈무리를 못하는 아이들이나 느끼는 감정처럼 들리는 걸. 



차를 좀 마시고, 낮잠을 좀 자도록 하자. 일어나도 괜찮아지지 않으면 약을 먹으면 될 거야. 



손이 얼굴에서 떨어질 때 제키는 약간 아쉬움을 느꼈다. 기억조차 거의 나지 않는 어린 시절에는 누군가 이렇게 만져줬었던 것 같은 아련함과 그리움 같은 것이 손과 함께 제키에게서 떨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다고 아쉬움을 표시내어서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런 걸 티 내는 건 제다이답지 못한 일이니까. 손이 완전히 떨어지기 전에, 솔이 다시 웃으면서 제키의 어깨를 두드렸고 역시 조금 느린 발걸음으로 걸었다. 제키는 얼른 손을 뒷짐을 지고 솔을 따라간다. 솔의 발걸음을 따라하면서 따라간다. 무릎을 가볍게 굽혔다가 발꿈치가 사뿐하게 먼저 내려앉고, 꼭 노래에 맞춰 춤이라도 추는 것처럼 로브가 흔들리고, 상체는 거의 고정된 것 같은데도 보폭은 작지 않게. 솔이 제키의 집중한 정수리를 내려보면서 웃는다는 걸 제키는 몰랐을 테지만 아이가 알 수도 없는 일이었다. 아이는 얼른 어른이 되고 싶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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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이 살짝 어둑해질 때 눈을 떴고, 아까보다 확연히 나아지지도 그렇다고 아주 나빠지지도 않은 기분을 느끼면서 제키가 일어나서 앉으려고 했다. 어깨에 다시 손이 올라왔다. 어둑한 공기 너머, 아주 다정한 온기같은 것이 또렷하게 전해졌다. 더 자렴. 눈꺼풀 위를 손바닥이 덮었다. 손이 크고, 부드러우면서도 아주 살짝 단단했고, 시원했다. 아이의 작은 얼굴이 거의 전부 가려질 정도로 크고 시원한 손. 제키가 기분이 좋아져서 살짝 웃으면 솔이 목 안으로 웃는 소리가 났다. 더 자, 아직 더 자도 괜찮단다. 



손이 시원해서 붙잡고 싶어졌다. 붙잡으면 안된다고 생각도 했다. 몸 옆에 나란히 놓인 팔, 그 끝에 주먹을 꽉 쥐고 누워서 아이는 미열에 들뜬 머리로 솔에게 어리광을 부리면 안된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솔의 손이 미지근해졌고, 솔이 가볍게 숨을 내쉬면서 손을 바꿔서 다시 올렸다. 다시 처음처럼 시원했다. 제키가 또 웃으면서 발을 가볍게 구르면 솔이 또 웃는 소리가 났다. 제키, 하고 조심스럽게 부르는 소리. 제키는 얼른 일어나서 똑바로 앉으려고 했는데 솔이 한숨처럼 또 웃었다. 



너무 빨리 자라지 않아도 괜찮아. 



솔의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제키는 귀를 더 쫑긋 세웠다. 지금 당장은 이해가 가지 않더라도 마스터의 가르침이니까, 이렇게 누운 자세로 듣는 게 말이 안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너무 예의없는 일 아닐까? 그런 걱정이 들어서 솔의 손목을 잡았다. 손목도 시원했다. 아이의 손바닥이 뜨거워서 더 그랬다. 제키가 잡고 있던 곳은 곧 미지근해졌다. 솔의 손바닥도 미지근해졌다. 손이 얼굴에서 떠나간다. 제키는 아쉬웠다. 쇄골 약간 아래쪽으로 손이 올라와서 꼭 아주 느린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일정하고, 느리게 토닥거리기 시작한다. 솔이 어떤 노래를 아주 작게 흥얼거렸는데 제키가 처음 듣는 노래였다. 아이가 자기도 모르게 눈을 비볐다. 솔이 손바닥으로 덮어주고 있던 곳이라 눈이 약간 어둡게, 조금 흐리게- 



무슨 노래예요? 



제키는 물은 다음, 질문해도 되냐고 물었어야 된다고 생각을 했다. 솔이 웃으면서 계속 토닥거렸다. 내가 집을 떠나기 전에, 우리 엄마가 자주 불러주던 노래. 엄마. 제키가 따라서 말했고 솔이 푸스스 웃었다. 그래, 엄마. 



엄마는 어떤 사람이에요? 



아이가 멍하니 물었고 손이 잠깐 멈췄다. 제키가 알아차리기 전에 다시 손이 일정하게 토닥, 토닥, 제키가 헤헤 웃으면서 발을 또 가볍게 굴렀다. 몽롱하게 기분이 나쁘던 아픔 같은 것이 일정한 박자에 맞춰서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다. 엄마가 기억이 나지 않니? 솔이 낮게 웃으면서 말해서, 제키도 다시 웃으면서 고개를 살살 흔들었다. 잘 모르겠어요. 



그럼, 제키가 코러산트로 오기 전에. … 오늘처럼 아픈 날에는, 누가 제키를 안아줬니? 



제키는 생각해봤지만 아주 더 어린 시절에, 누군가 안아줬다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그게 누군지는, 얼굴도- 온기같은 것만 아주 어렴풋하게. 꼭 우리가 햇빛을 생각하면 몸이 따뜻해지는 것처럼. 딱 그 정도의 아련함으로 기억이 날 뿐이었다. 제키가 열심히 생각을 되돌리는 와중에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났다. 솔? 제키가 고개를 위로 들어보면 솔의 갈색 눈동자에서- 아이가 알아차리기 힘든 감정이 넘실거렸다. 마스터, 왜 그러세요? 제키가 물었고 솔이 웃음을 터뜨렸다. 웃는데도 눈동자 안의 그 감정이 사라지지 않았다. 큰 손이 아이의 등 뒤로 들어왔고 몸이 공중으로 들렸다. 제키가 가만히 있는 동안 바닥에 앉아있던 솔의 허벅지 위로 제키가 앉아있었다. 



솔의 로브. 마스터 옆에 서면 언제나 바람부는 쪽에서 불어오는 향기같은 것. 꼭 오래된 책이 잔뜩 꽂힌, 너무나 아름다운 도서관같은 그런 향기. 아주 오래 피어서 그저그런 나무보다도 훨씬 강인해보이는 꽃의 향기 같은 것. 눈보라가 몰아치던 곳에 바위틈으로 내려오는 햇빛같은 향기. 솔이 제키를 꼭 안고 이마를 쓸어올린 다음 등을 토닥였다. 몸을 아주 살짝만 앞뒤로 흔들면서 다시 아까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제 막 파다완이 된, 어린 아이가 어색해서 당황한다. 이게 뭔지 알려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꼭 코로 바닷물이 들어갔을 때처럼 코 끝이 맵고 아렸다. 눈 아래가 뜨거워졌고 이것도 아파서 그런걸까, 제키는 생각했다. 꼭 눈물이 날 것 같았는데 그럼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다이라면 부정적인 감정은 멀리 두고, 항상 감정에 잡아먹히지 않게. 관조. 관조해야한다. 멀리 두고 남의 것처럼 봐야 한다. 감정은 파도처럼 불어 닥치고 휩쓸리면 벗어날 수 없으니까. 멀리 두고- 그러니까 멀리 두고, 봐야 하는데. 이렇게 눈물이 나면 안되는 건데. 솔이 몸을 아주 살짝만, 너무 느리게, 손을 토닥이는 박자에 맞춰서 흔들고 있었고 그때마다 너무 커다란 사람의 로브가 같이 흔들리면서 꼭 숲에서 바람을 맞고 있는 것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눈 아래가 뜨거웠다, 우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았다. 왜냐면 마스터 솔 같은 존경받는 제다이가 되고 싶은데, 얼른 되고 싶은데, 그런 사람은 울지 않을 거니까. 



꼭 아주 멀리에서 수많은 새들이 날아오르는 날개소리처럼 낮고 조용한 노랫소리, 사실상 소리보다 제키가 안겨있는 가슴팍에서 울림으로 전해져 오는 것 같았다. 등 뒤를 토닥이는 손짓, 솔의 몸이 이렇게 시원한지 몰랐었다. 아이가 자기도 모르게 솔의 로브 위, 작게 드러난 목에 이마를 비볐고 솔이 다시 숨을 들이마시면서… 제키가 올려보면, 솔의 눈 아래로 눈물같은 것이 고여있었는데 아이는 잘못 본 것일 거라고 확신했다. 방이 어둡고, 지금 아프고, 그래서 잘못 본 것일 거라고- 왜냐면 위대한 제다이 마스터는 울지 않을 테니까. 괜찮아, 솔이 작게 속삭였는데 제키가 헤헤 웃었다. 마스터, 



지금 마스터가 느끼는 감정의 이름을 알려주세요. 



아이가 작게 말해서 어른이 무너졌다. 제키의 몸을 꼭 안고 큰 손으로 등을 토닥이면서, 우는 것처럼 웃는 소리가 났다. 미열로 몽롱했지만 누워있을 때보다 오히려 훨씬 나았다. 울지 마세요. 제키가 말하면서 솔의 등을 꼭 안았다. 몸이 거의 눈치채지 못할 만큼 계속 앞뒤로 흔들리고 있어서 다시 잠이 왔다. 울지 마세요, 아프지 않을게요. 제키가 잠들기 직전에 다시 말했고 솔이 제키의 로브만 꽉 움켜쥐는 걸 느꼈다. 마스터의 엄마, 라는 사람은 마스터가 이렇게 아픈 날에 이렇게 재워주셨던 거구나, 아이가 열감이 남은 머리로 생각하면서 몽롱하게 웃었다. 지금의 제키처럼 어린 마스터 솔을 상상하는 게- 꼭 아까 짜증나지, 하는 말을 마스터 솔이 했던 순간처럼. 말도 안되는 일인 것처럼 느껴졌고 그래서 너무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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