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인 1석

“⋯케인 경은 이 방으로 가시면 될 겁니다.”

“예.”

이름이 불린 기사는 방의 열쇠를 들고 사라졌다. 미소와 함께 열쇠를 건네고 그 자리에 남은 콜린은 턱을 쓸며 골똘히 생각했다. 곧 돌아올 기사이자 친우와 자신이 들어갈 방만 있으면 방 분배는 얼추 끝난다. 예상보다 길어진 출정 탓에 급히 선회한 영지에 꽤 규모가 큰 여관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2주라는 다소 오래 휴식 해야 할 곳으로는 시설도, 규모도 안성맞춤이었다. 일단 급한 일을 하나 해결했으니 내일 있을 일정을 정리해야 한다. 보고서 작성이나 여관비 지출 등 이런저런 생각을 골똘히 하던 찰나, 뒤에서 여관 주인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리, 기사님들은 다 오신 거지요?”

“아직 한 사람 더 있습니다.”

“예에?”

화들짝 놀라는 여관 주인의 목소리에 덩달아 눈을 조금 크게 뜬 콜린은 잠깐 눈을 끔뻑였다.

“무슨 일입니까?”

“그게 저, 남은 건 조금 큰 1인실 밖에 없는지라.”

“예?”

순간 머릿속에서 정리하던 내일의 일정이 전부 날아가는 느낌이었다. 방이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고? 분명 계산했던 것 같은데. 다시금 머릿속에서 기사단의 인원을 꼽아가다, 우습게도 본인을 체크하지 않았다는 걸 깨닫는다. 콜린은 숨을 푹 내쉬며 갑주의 허리를 짚었다.

“⋯저를 안 세었군요. 피로하면 가끔 이런 실수를 하더랍니다.”

“아이고, 어쩌지요. 사흘은 지나야 방이 겨우 하나 나옵니다. 이맘때쯤 다들 여행을 가는 사람이 많아서⋯”

완연한 봄의 시기였다. 길 어디든 고개를 조금만 돌리면 자잘한 들꽃부터 풍성히 피어난 꽃밭까지. 말을 타고 가는 길 여기저기, 자연이 싹을 틔우는 모습을 구경하며 왔던 기억이 콜린의 피로로 가득한 머리 한구석에서 피어났다. 이 시기에는 여행객이 많지. 큰 전쟁도 끝났으니, 다들 저마다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어 했을 것이다. 골똘히 생각하다가 그는 결국 그 방을 받기로 했다. 사흘 정도야, 밖에서 잠을 취하기에 무리도 아니었으니. 여관 주인 에게 열쇠를 건네받고, 잠시 그것을 바라보던 콜린의 뒤에서 절그럭거리는 갑주 소리가 들렸다. 뒤이어 투구를 옆구리에 끼고 들어온 장발의 훤칠한 청년이 눈에 들어왔다. 기다리던 친우이자 동료가 보이자 우선 반가운 마음도 잠시, 콜린은 이 사실을 어떻게 전달할지 고민 중이었다.

“기다리셨습니까, 콜린 경?”

“예에, 그렇습니다. 발렌 씨, 이 열쇠를 받고 가시면 됩니다.”

손에 쥔 열쇠를 조금 천천히 건네자, 발렌은 콜린의 뒤쪽을 흘끔 바라보고 잠시 말이 없었다. 그 시선은 다시 콜린을 바라봤다. 괜히 기습 공격을 당한 사람처럼 흠칫 몸을 움츠린 콜린은 발렌의 덤덤한 시선을 슬쩍 피했다.

“⋯방이 모자랍니까?”

마침 아직 카운터 앞에 있던 여관 주인이 싹싹한 말투로 수습하려는 듯 다소 급하게 대답했다.

“예에, 사흘이나 되어야 하나가 나옵니다요. 죄송합니다, 기사 나리.”

콜린은 고개를 돌려 뒤쪽의 여관 주인을 한 번 바라보고 다시 발렌을 바라봤다. 서로 눈이 마주치자, 발렌은 작은 미소를 지었다. 콜린은 어쩐지, 아주 옛날 잘못을 저질러 상관에게 빤히 바라봐졌던 느낌이 드는 것 같았다. 숨을 폭 내쉰 콜린이 몸을 다시 돌려 여관주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혹시 방 안에 쇼파 같은 것도 있겠습니까?”

질문을 들은 여관 주인은 화색 하며 고개를 빠르게 끄덕였다.

“예에, 그럼요. 하나 있습니다. 침대도 조금 크니까 어쩌면 두 분이서도 괜찮을 겁니다요.”

후자의 말을 들은 콜린과 발렌은 서로를 흘끔 바라봤다. 신장이 1.8미터를 조금 넘는 훈련된 기사 남성 둘이, 1인실의 큰 침대를 같이 쓸 수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았다. 먼저 시선을 뗀 콜린이 멋쩍게 웃으며 여관 주인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떻게든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예에, 뭔가 필요하시면 언제든 내려오십쇼!”

여관 주인은 안도한 기색을 숨기지도 않고 조금 빠른 잰걸음으로 여관 안쪽으로 사라졌다.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라 여관에 들어올 사람도 없는 적막. 콜린은 속으로 자신의 실책을 탓하며 다소 주눅이 들어있었다.

“⋯죄송합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발렌 경?”

발렌은 여전히 은은한 미소를 띠고 있었을 뿐이었다. 콜린은 발렌이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앎에도, 어쩐지 그 눈빛이 무언가 담고 있는 것 같이 느껴져 괜히 위축되고 있었다.

“경께서 불편하지 않으시다면 저는 물론 괜찮습니다.”

역시 그는 상냥한 사람이었다. 발렌의 답변에 잠시 숨을 작게 내쉰 콜린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고맙습니다. 다 세어놓고 저를 빼먹었지 뭡니까, 이거 참.”

멋쩍게 웃은 콜린을 보고 발렌은 작은 웃음소리를 냈다. 부끄러움에 콜린은 괜한 헛기침을 하며 계단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2층으로 가는 계단은 정작 그렇게 많지 않았는데도 콜린은 그 시간이 마수와 대치하는 시간보다 더 긴장됐다고 단언할 수 있었다.

방에 도착해서 문을 열자마자 방금의 긴장이 무색하게, 콜린은 당황해야 했다. 방은 확실히 널널했다. 아마 평범한 여행객이었다면 둘은 편하게 묵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건장한 기사 남성 둘이 눕기에는 어림도 없었다. 혼자가 눕기에도 꽉 들어찰 것 같은 침대를 보고, 콜린은 황급히 눈길로 소파를 찾았다. 침대 근처에 다행히 테이블과 꽤 긴 소파가 있었다. 저 정도면 감지덕지다. 짐을 정리하고 당연하게 소파로 발걸음을 향하다가 옆에 있던 발렌이 같은 곳으로 향하는 걸 보고 콜린은 그를 바라봤다. 발렌 역시 의아함을 담은 눈길로 콜린에게 시선을 돌린 차였다. 그렇게 멈칫한 두 사람이 잠시 침묵하다가, 콜린이 먼저 입을 열었다.

“차라리 제가 소파에서 자겠습니다, 발렌 씨. 제 불찰로 생긴 일이니까 말입니다⋯.”

“이대로 발렌 씨를 불편하게 잠들게 하면 제 마음이 오히려 편치 않을 것 같습니다.”

분명 아직 밤에는 서늘한 날씨임에도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았다. 콜린은 이대로 염치없이 침대에 눕기까지 하면, 벌을 받아 가위에 눌릴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그럴 운명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발렌은 콜린이 벌벌 떨며 하는 말을 듣더니, 뭔가 생각하는 듯 턱을 괸 채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 여전히 개의치 말라는 듯 미소 띈 얼굴로 고개를 살짝 저었다.

“아닙니다, 경. 급하게 구해야 하는 상황이었잖습니까. 오히려 모두 밖에서 야영하지 않게 된 것이 다행이죠.”

“그렇게 심각한 불찰도 아니니 너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짜피 저는 잠이 짧은 편이고, 잠자리도 크게 가리지 않습니다.”

“정말 괜찮으니 콜린 경께서 쓰십시오.”

발렌의 한 마디가 이어질 때마다 콜린은 죄책감에 손끝이 살짝 저리는 것 같았다. 이야기를 마친 발렌이 콜린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면, 콜린이 눈을 끔뻑이다가 숨을 푹 내쉰다. 상냥함에 배려받아 멋쩍음과 동시에 여전히 죄책감이 피어오르는 탓이었다. 콜린은 발렌에게 작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시선을 방의 구석으로 던졌다.

“일단⋯ 먼저 씻으시겠습니까? 그 뒤에 생각해도 늦지는 않을 겁니다.”

발렌은 확답 대신 돌아간 미적지근한 답에도 여전히 싱긋 웃고 있었다. 결국 작게 웃음소리를 흘리는가 싶더니 고개를 살짝 기울인 채, 자신의 짐 가방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입을 열었다.

“그래도 똑같을 겁니다, 경. 배려는 감사히 받겠습니다.”

발렌은 가방에서 옷가지와 개인 도구를 챙겨 욕실로 향했다. 이 상황이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콜린은 그 모습을 눈으로 좇다가 발렌이 욕실에 들어가서 문을 닫는 것을 보고 숨을 푹 내쉬며 소파에 반쯤 몸을 뉘었다. 남의 불행을 빈 적은 태어나서 한 번도 없었는데, 콜린은 사흘 남았다는 방의 주인들이 갑자기 돌연 변덕이 일어 조금 일찍 남은 여행길에 올랐으면 하는 바램을 담았다. 그것은 발렌과 함께 있는 것이 싫어서는 아니었다. 콜린은 그를 좋은 친우이자 훌륭한 기사단 동료로 생각하고 있다. 다음 기사단 부단장으로도 꼽히고 있는 수재기도 하고, 인간적으로 됨됨이 역시 괜찮은 사람이다. 그렇지만 기왕 불편한 잠자리가 있다면 콜린은 그 자리를 자처하는 사람이었으니. 그날따라 유독, 이대로 눈을 감고 평소에 부리지 않던 억지를 한 번 부려볼까 진지하게 생각하는 긴긴 시간이 지나갔다. 콜린은 지금껏 행했던 어떤 작전보다, 발렌을 침대에서 자도록 설득하는 일을 설계하는 것에 더 열심히 궁리 중이었다.

아무래도 기나긴 사흘이 지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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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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