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

「명사」 어떤 상태나 상황을 그대로 보존하거나 변함없이 계속하여 지탱함.


찬바람이 들었다. 밤사이 집안으로 비집고 들어온 새벽 공기가 폐로 들어와 오랜 잠을 깨웠다. 시계를 보지 않아도 눈에 들어오는 것들로, 어림짐작은 이미 끝냈다. 비어있는 옆자리와, 창문이 있던 방향을 떠올리면 해는 머지않아 올라올 것이다. 오랜만의 숙면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인지 등불을 끄고 간 손길을 발견하고서야, 간신히 어둠에 시야를 온전히 회복할 수 있었다. 이윽고 테스는 머릿속에 찐득한 것들이 가득 찬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오랜 불면 끝에 찾아온 휴식은 뇌에 남은 것들을 뱉어내기엔 모자랐던 걸지도 모른다. 숨을 내쉴 것이 필요한 시간이었다. 호흡은 생명을 살게 하기에.

비술사는 입에 담배를 하나 물고 성냥을 챙겨들어 거처 마당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뜨기 시작한 햇빛으로부터 이어지는 꼬리가 눈가를 간지럽혀 저절로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무의식적으로 반대편으로 돌린 그곳에는 아직 저물지 않은 초승달이 푸르스름한 새벽하늘에 아직 자신을 보이고 있었다. 오전 5시에서 6시로 가는 길목, 봄의 밤하늘은 의외로 아무런 것 없이 깨끗했다. 테스는 그 달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미 내려온 밤의 커튼에 슬 몸을 감추러 가는 그 모습을 보며 다른 이들처럼 대단한 감상이 들지는 않았다. 그저 시간을 가늠하고 할 일을 떠올릴 뿐이다. 그래서 그는 성냥을 쥐고, 호흡했다. 여느 때처럼 오늘도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적당히 바람을 쐬고 집안으로 들어왔다. 들어오면서 태양이 온전히 떠올랐기에, 햇빛이 창문을 타고 선객으로 집에 들어와있었다. 테스는 잠시 그 풍경을 바라보다가 침대 가로 향하려던 발걸음을 돌려 책상으로 걸어갔다. 호흡으로도 떨쳐내지 못한 남은 찌꺼기를 펜촉에 묻히고, 양피지를 펼쳐서 그 찐득한 것으로 천천히 적어내리기 시작했다.

[별빛 2월 16일⋯]

슬슬 손목이 뻐근하고 글거리가 좀체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때까지 사각거리다, 어느새 거슬릴 만큼 쓰라린 위장에 정신이 들었다. 조금 뻐근한 눈을 돌려 창가를 바라보니 이번엔 해가 내려오며 다시 꼬리를 드리우고 있었다. 더 이상 움직이는 것이 귀찮았지만, 어쩔 수 없이 의자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인간을 살게 하는 것을 또 할 때가 왔다. 늘 그랬듯이 익숙하게 빵을 꺼내고 입을 열었다. 양분 역시도 생명을 살아가게 한다.

식사라고 하기에 비록 부족하더라도, 나름대로 섭취를 마친 테스는 잠시 고민하다가 서가로 향했다. 문득 갑자기 의문이 드는 것이 생기면 그것을 탐구하고자 발걸음 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전에 여기 둔 책에 서술되었던 내용을 본 기억이 났기 때문이었다.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으면 그것을 알고자 하는 것은 생존에 필요한가? 혹자는 그것이 생존과는 직결되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이 비술사에게는 필요했다. 그러니 이것 역시도 생존에 필요한 것이다. ‘테스’ 에게는.

모든 유지를 해결한 테스는 이제 다시 창문으로 눈길을 돌렸다. 하루는 생각보다 짧았다. 어느새 짙게 깔린 어둠에, 그제야 책상에 있는 램프가 빛의 전부라는 것과, 미리 고지된 부재가 있었음을 깨닫는다. 드물게 어떤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어떤 것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가슴 작은 곳에 마치 잘못 들이마신 씨앗이 꿈틀거려 간지러운 감각이었다. 하지만 따스한 것은 아니었다. 제멋대로 침입한 그것에 가슴 안쪽은 시큰거렸다. 종종 이런 기분이 들 때가 있었다. 친숙했고, 어쩌면 느꼈다고 표하기도 애매한 그것의 이름은⋯ 유지에 별로 필요하진 않았다. 어쩌면 필요할지도 모르겠으나, 적어도 테스에게는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들고 있던 깃펜을 내려놓고 주방으로 다시 향했다. 쌓인 것들을 내보내고 나서는 그 안이 이따금씩 공허해지기 때문에, 따스한 것을 마시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주전자를 손쉽게 데우며 테스는 그것을 그저 바라봤다. 밝은 불꽃이 타오르는 것을 보며 그 자리에 서있는 사람을, 램프의 불빛이 길게 늘여 창가로 보냈다. 따스히 온기를 전하는 찻잔을 들고 창가에 선 테스는 생각했다. 이렇게 하늘을 종종 바라보며 어떤 생각들이 떠오르는 것은 무엇에서 비롯된 것일까. 오전 2시, 잠들지 못한 그림자가 의자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선은 거둘 필요를 느끼지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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