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멸] 고생했어

여주x사비토 드림

Dream by 임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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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는 가르칠 게 없구나.”

우로코다키의 밑에서 물의 호흡에 대해 배우기를 약 6개월, 여주는 그런 말을 들었다.

“.....그런가요?”

“나머지는, 전부 너한테 달렸다. 배운 것을 너의 것으로 체화시킬 수 있을지는.”

“..............”

그렇게 말했으나, 우로코다키는 여주라면 혹시,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자식같은 아이들이 선별 시험에서 모두 죽어나갔다. 모두 약한 아이들이 아님은 분명했다. 

자기 눈으로 직접 보고 가르쳐 보낸 아이들이다. 하찮은 혈귀에게 덧없이 꺾여버릴 목숨들이 아니었다.

아니, 그러나 선별시험에 어떤 혈귀가 기다리고 있는지 자신은 모른다.

자신이 귀살대에 몸 담았던 것은 벌써 몇 십 년도 전이니.

그곳엔.... 괴물이 살고 있는 것인가.

더 이상 아이들을 사지로 내몰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여주라면.

보통 자기 밑에서 훈련을 배우는 기간이 1년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여주의 6개월이라는 훈련기간은 가히 대단한 것이었다.

그래. 처음 봤을 때부터, 여주의 몸은 혈귀 사냥꾼, 즉 귀살대원으로 만들어지기에 너무나도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였을지도 모른다.

이 아이라면, 하고 부모를 잃고 숲속에 웅크리고 있던 여주에게 손을 내밀었던 것은.

“.....따라와라.”

우로코다키가 짧게 말한 후 앞장섰고, 여주는 묵묵히 그 뒤를 따랐다.

여주가 우로코다키를 만났던 것은 대충 봄 즈음이었고, 봄부터 여름까지. 우로코다키는 그저 여주를 먹이고 입히고 재워주며, 편히 지내게 해줄 뿐이었다.

그리고 마당에서 매미가 울던 여름 즈음,

우로코다키는 멍하니 하늘을 보고 있는 여주에게 물었다.

“네 가족을 죽인 혈귀에게, 복수하고 싶으냐.”

“...............”

복수.

그런 말을 들었으나, 여주는 딱히 혈귀에 대한 분노감이 들지는 않았다.

그저 우로코다키와 함께 하는 이 평화로운 생활이 너무 좋았다. 그래서 아니라는 뜻으로 고개를 저으려는 순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혈귀가, 이번엔 스승님을 잡아먹으면 어쩌지?

“................”

등골이 오싹하다. 

내가 혈귀에게 부모를 잃고도 비교적 멀쩡하게, 행복하게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다 스승님 덕분인데, 만약. 정말 만약 스승님이 혈귀에게 먹힌다면.........

“.............!”

우로코다키는 순식간에 여주에게서 뿜어져나오는 살의에 순간 멈칫 하고 말았다.

내려다본 여주의 작은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분명, 혈귀가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운 것이다.

우로코다키는 스스로도 살의를 주체할 수 없어 입술을 꾹 깨문 채 몸을 부들부들 떠는 여주의 어깨를, 가만히 자기에게 끌어당겨 주었다.

“그거면 대답이 되었단다.”

“...............”

그리고 다음날부터였다.

혹독한 훈련이 시작된 것은.

여주는 우로코다키가 다정한 것과 같은 정도로 엄한 사람이라는 것을, 그날 처음 느꼈다.

항상 우로코다키의 집에서 편한 생활을 하며 늘어진 몸은, 갑자기 산소의 밀도가 극도로 낮은 산에 들어서자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스승,님........!”

부족한 산소에 가슴을 움켜쥐고 바닥에 웅크리기를 몇 분. 무심코 다정한 제 스승님을 찾았으나, 우로코다키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윽.”

이미, 훈련은 시작된 것이었다.

더이상 그곳에 자기에게 따듯한 손을 내밀어 줄 누군가는 없었다.

여주는 호흡을 진정시키려 애쓰며, 웅크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겨우 한 발을 내디딘 순간, 사방에서 통나무가 빠른 속도로 날아와, 여주가 서 있는 자리를 노렸다.

“.........윽......!”

가까스로, 몸을 굴려 사방에서 날아오는 통나무를 피했다. 본능적으로 몸을 피한 것이라 피한 곳에 뭐가 있는지는 미처보지 못했고, 여주는 곧이어 움푹 파인 구덩이 같은 곳으로 어찌 할 수도 없이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몸이 사정없이 나뭇가지와 마른 풀잎들에 긁혀 생채기가 나고 피가 흘렀다.

여주는 멍하니 구덩이 속에서, 하늘을 바라봤다. 노을이 지고 있었다. 

스승님은, 설마하니 날 죽일 생각이신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혹시....

“..............”

내가 훈련을 포기하기를 바라시는 건가.

“..............”

그런 생각이 드니, 절대 여기서 포기하고 싶지 않아졌다.

나는 이 훈련을 이겨내고, 그 선별 시험이라는 것을 통과해, 스승님을 지킬 것이다.

그렇게, 강해져야만 한다.

“후우.........”

여주는 부족한 산소에 아까부터 쿵쿵 속도를 더하며 뛰고 있는 심장을 , 천천히 호흡함으로써 진정시켰다.

부모를 잃고 우로코다키를 만나기 전까지, 여주는 숲 속에서 혼자 살았다.

많은 짐승들과 위험들로부터 여자아이가 숲 속에서 혼자 버티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니었음이 분명했다.

“................”

여주는, 주먹을 두어 번 꾹 쥐고는, 구덩이를 벗어나기 위해 벽에 박힌 돌을 꾹 쥐었다.

그때의 경험을 기억해낸다면,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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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현재.

여주는 그렇게 우로코다키의 훈련을 모두 이겨내고, 물의 호흡까지 훌륭히 몸에 익혀냈다.

아마 지금의 상태만으로도, 귀살대의 제일 밑 계급대원정도로는 바로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강할 것이다.

그런데.......

“.......이건........?”

여주의 목소리가 황망히 들렸다. 그도 그럴 것이, 제 앞에 있는 것은 제 스승님보다도 그 키가 커다란 바위였다.

어디 그 높이 뿐만이겠는가. 바위는 폭만 해도 여주가 두 팔들 벌린 채 다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설마, 하고 불안한 느낌이 들었고.....

“이 바위를 벴을 때, 선별 시험에 가는 것을 허락하마.”

“.............”

불안한 예감은 항상 틀리지 않았다.

스스로도 자기가 강해졌다는 것은 이미 느낄 수 있는 여주였지만, 그것은 짐승이라던가 혈귀라던가.....벨 수 있는 어떠한것에 한해서다.

바위를 , 대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며 뭐라도 억울함을 토로해보려 번쩍 고개를 돌렸을 때, 우로코다키는 이미 여주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

마치 반 년 전의 그 날처럼.

훈련은 또다시 시작된 것이다.

결국 여주는 , 약해지려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검을 빼내 들었다.

천천히 호흡을 들이마시며, 발을 어깨 넓이보다 반 만큼 더 벌린다.

그리고 몸의 반동을 이용해 힘껏 바위 위로 검을 내리쳤을 때......

“.......윽.....!”

여주는 무심코 제 손목을 붙잡고 몸을 수그렸다.

검은, 바위에 어떠한 생채기도 남기지 못한 채 튕겨져 저 멀리 땅에 내리꽂혔다.

여주는 땅에 박혀버린 검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칼날이 부서지지 않은 것만 해도, 일단은 다행인 걸까.

“...............”

자꾸만 마음이 약해지려 해서, 여주는 두 손을 들어 제 뺨을 짝 소리가 나도록 내리쳤다.

...너무 세게 때렸나 싶었다. 

그래도, 두 뺨의 얼얼한 통증과 함께, 나약한 마음이 조금은 다잡아진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여주가 다시 검을 들고 기합을 넣으며 바위를 내리쳤을 때, 검은 또다시 날아가고 말았다.

“............하아.”

여주는 분한 마음에 이를 바득 갈았다.

누가 포기할 줄 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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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일주일이 지났다.

여주는, 퀭한 눈밑을 하고, 척 봐도 퉁퉁 부은 손목을 가지고 부들부들 떨며 검을 들었다.

이런 몸 상태를 가지고 베려 해봤자, 바위는 더더욱 베이지 않을 것이다. 그건 여주 자신도 알고 있다.

그러나 여주는, 제 몸을 혹사시키기라도 하지 않고서는, 마음이 초조해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그리고 여주가 손목에서부터 느껴지는 통증에 미간을 좁히며 검을 들었을 때, 갑자기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너. 그러다 영영 검을 들지 못하게 될 거다.”

“?!”

분명 아무 기척도 느끼지 못했는데....?! 생각하며 여주가 검을 꾹 쥐고 몸을 돌렸을 때, 앞에 있던 그는 쯧. 하고 짧게 혀를차더니, 여주의 뒷목을 가볍게 손날로 내리쳤다.

“윽,”

소리를 내며 여주의 눈이 스륵 감기고, 그는 바닥에 엎어지려는 여주의 허리를 단단히 받쳤다.

감기는 눈꺼풀 사이로, 언뜻 타오르는 듯한 주황빛의 머리칼을 본 것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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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주는, 반짝 눈을 뜨자마자, 재빨리 몸을 일으켜 제 허리춤의 검부터 찾았다.

그러나.....

“어?”

허리춤에는 아무것도 잡히는 것이 없었다.

당황한 여주는 바닥을 이리저리 쳐다보고 있는데...

“이걸 찾는 건가.”

“...........?”

문득 위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여주는 본능적으로 반 걸음 휙 물러나며 그에게서 안전거리를 확보했다.

그리고 목소리의 주인공은.....

여우가면을 쓴, 사비토였다.

사비토의 손에는, 여주의 검이 들려있는 채다.

“........너는.....”

이 사람이, 아까 날 기절시킨 건가.

생각하며 여주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너무 세게 깨물고 있는 탓에 입술이 하얘지고 있다.

사비토가 누구인지 궁금하기도 했으나, 졸지에 기절시키고 검을 뺏은 것은 저 쪽이다.

이정도는, 해도 되겠지.

생각하며, 여주는 재빠르게 몸을 움직여 사비토의 뒤를 향했다. 그리고, 사비토가 그런 여주를 보며 천천히 고개를 돌릴때,

그 얄미운 가면을 발로 차서 날린 채, 여주는 사비토를 제압하려 했다. 

아니, 그랬어야만 했다.

“.............”

여우가면을 써서 대체 지금 무슨 표정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는 그는, 조용히 팔등만을 들어 여주의 공격을 방어했다.

분명 방어만 했을 뿐인데도, 단단한 팔에 가로막힌 공격에, 여주는 공격의 약 두 배 정도의 반동으로 밀려났다.

“윽.........!”

겨우 낙법을 사용해 바닥에 몸이 곤두박질 치려는 것을 막았다.

분명, 내 쪽이 더 빠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여주는 인상을 찌푸리고 사비토를 노려보고 있었고, 사비토는....그런 여주를 바라보며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신입은, 고집이 센 편이군.

“그렇게 싸우고 싶다면야.”

“?!”

무슨 꿍꿍이인가 싶었는데, 사비토는 여주에게 검을 툭 던져주었다.

“............뭐야.”

그런데 던져준 것은 목도였고, 정작 본인이 여주의 진검을 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양심없는 놈을 봤나.

여주가 어이없다는 듯 목도를 내려다보자, 사비토는 쯧 혀를 찼다.

“아직 모르는 모양인데, 이이상 진검을 휘두르면니 팔목. 전부 아작이 나고 말 거다.”

“.................”

그래도 아직 여주가 못믿겠다는 듯 눈을 찌푸리고 사비토를 바라보자, 사비토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는 천천히 검을 뽑았다.

저 양심없는 놈이 기어코 진검을........

생각하고 있는데, 사비토는 뽑은 검을 툭, 바닥에 떨어뜨린다.

“................?”

여주는, 대체 뭘 하는 건가, 싶어 눈만 깜빡이고 있었다. 

그리고 검을 버린 사비토는.....검을 담고 있는 검집만을 손에 쥐었다. 그러더니 검집을 가볍게 몇 바퀴 돌려 손에 감으며내뱉는다.

“이거면 충분해.”

“..................”

지금, 설마하니 나를 검집만으로 상대하겠다고 한 건가.

나. 그렇게 약해보이나.........

여주는 갑자기 사비토에 대한 적의감이 활활 불타올랐다. 저쪽이 검집이든 뭐든 무조건 이기자.

이겨서 “너, 강하구나...” 라는 소리를 들어내고 말테다.

여주가 결심한 듯 자세를 고쳐잡고 목도를 쥐자,

사비토는 가볍게, 한 번 들어와보라는 듯 손짓했다.

사비토의 그런 여유로운 행동마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여주는, 있는 힘껏 기합을 넣고, 사비토에게 달려갔다.

그러나.........

공격을 휘두른 자리에, 사비토는 없었다.

대체 언제, 생각하며 주위를 휙 둘러보는데,

문득 여주는 텅 비어버린 자신의 등 뒤에서 사비토의 기척을 느꼈다.

“............!”

이 얼마나 빠른 속도인가.

여주가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끼며 재빠르게 몸을 돌리려 했지만......역시 이번에도 사비토가 빨랐다.

사비토는 검집으로 여주의 목도를 내쳐 저 멀리 떨어뜨린 후, 또다시 여주의 뒷목을 손등으로 내리쳤다.

고집 센 녀석들은, 일단 기절시키고 봐야지.

“.................”

나무 사이 어딘가에서, 또 다시 사비토의 품 안으로 픽 쓰러지는 여주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마코모가 두어 걸음 사비토에게로 다가왔다.

“이번엔, 여자애구나.”

“아아.”

마코모는 사비토에게서 여주를 조심스럽게 받아내 바닥에 눕혀주었다.

그리고 사비토는, 그런 마코모에게 

“뒤를 부탁한다.” 한 마디만을 남긴 채 걸어가기 시작했다. 

마코모는 멀어지는 사비토를 물끄러미 바라보았고, 곧 사비토는 몇 걸음 발음 옮기다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뒤를 돌아, 마코모에게 말을 걸었다.

“...아. 그 녀석 진검 못들게 해.”

“...............”

마코모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입가에 웃음을 띄운 채 사비토를 바라봤다.

이윽고 사비토가 멀어져 시야에서 보이지 않게 되자, 그때서야 마코모는 중얼거린다.

“걱정되면, 직접 말하면 될 텐데.”


여주는, 익숙한 감각과 함께 두 눈을 번쩍 뜨며 몸을 일으켰다. 어느새 하늘은 어둑어둑해져 사방엔 어둠이 내려앉아있다.

“괜찮아?”

“.........!”

막 일어나서 멍한 귓가에, 앳된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주가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초록빛의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아이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줄곧, 나를 지켜보고 있었던 걸까?

“너는......”

자세히보니, 여자아이의 머리에도 아까의 여우가면을 쓴 그 아이와 같은 여우가면이 매어져 있었다. 

친구인 걸까.

“나는 마코모. 아, 아까 그 애는 사비토야.”

마코모와 사비토.

마코모는, 그 이후 자기들도 우로코다키의 제자이며, 내가 전집중호흡을 몸에 체득했는지, 어떻게 하면 전집중호흡을 더욱 몸에 익혀 사용할 수 있는지 등을 설명했다.

전부 이해한 것은 아니나, 어쩐지 그게 뭔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아까 여우가면을 쓴, 그러니까 사비토가 공격을 하기 직전에는...어쩐지 가슴 근처가 좀 부푸는 것 같다...고, 생각했었으니까.

그게 바로...

“전집중호흡....”

어쩐지 조금 부끄러웠다.

나는, 무의식 중에 내가 꽤 강한 편이라고 자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누가 보더라도, 명백히 강한 것은 사비토의 쪽이다. 

“.............”

이래서야, 스승님을 지키기는 무슨, 당장의 선별 시험조차 통과하지 못할 것이다.

여주는 분한 마음에 손을 그러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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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음날.

진검을 사비토와 마코모에게 뺏겨버려 목도로 훈련하는 여주의 뒤에, 익숙한 인기척이 어렸다.

천천히 고개를 돌린 그곳엔.

“..............”

어제와 똑같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사비토가 서 있다.

여주의 눈동자가 커지고, 여주는 사비토가 무슨 말을 내뱉기도 전에 그에게로 몇 걸음 달려가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도와줘.”

“...............”

여주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말을 이어나갔다.

“나도.....나도 너처럼 강해지고 싶어. 스승님을 지키고 싶어. 다시는 누군가를, 잃고 싶지 않아.”

“..............”

여주는 꽤나 고집이 센 편일 거라고, 사비토는 생각하고 있었다.

어쩌면 어제 단칼에 나 버린 승부에, 박살 난 자존심에 자기에게서만큼은 도움을 받으려 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고, 사비토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

자기 앞에 서 있는 여주는, 예상치도 못하게 자기에게 고개를 숙이고 부탁해오고 있는 채다.

자존심이 없어서는 아닐 것이다.

그저 그것을, 우로코다키씨를 지킬 수 있을 만큼 강해지고 싶다는 욕구로 누르고 있는 것이겠지.

“그래.”

사실은, 딱히 여주가 고개를 숙이고 부탁하지 않아도 어떻게든 여주를 훈련시킬 생각이었다.

이전의 모든 아이들이 그랬듯이, 여주는 그것을 베어야만 하니까. 

그래도 그건 잠시 비밀로 해두자.

“...........!”

뜻밖에 사비토가 흔쾌한 승낙의 대답을 해오자, 여주의 눈이 놀라 동그래졌다.

몇 번은 거절당할 각오를 하고 있었는데.

“어.....정말로.....?”

너무, 쉬운 거 아닌가.....? 하는 생각에, 여주의 고개가 갸웃 기울어진다.

“....싫은 건가?”

사비토가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며 발걸음을 돌리려는 시늉을 하자, 여주는 놀라 다급한 마음에 자기도 모르게 사비토의 옷소매를 붙잡았다.

“아, 아니.....!! 잘 부탁합니다.....!!”

“...........”

사비토가 그런 여주를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이번 아이도, 꽤 괜찮은 녀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우로코다키씨가 데려오는 아이들은 언제나 하나같이 좋은 녀석들밖에 없었지.

“그래.”

짧은 한 마디와 함께, 여주의 머리 위로 단단하고 큰 손이 내려앉는다.

“.............”

분명 여우가면에 가려 보이지 않는데...

여주는 왜인지, 지금 사비토가 웃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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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부터, 여주는 사비토와는 대련 훈련을, 마코모와는 전집중호흡으로 폐를 키우는 훈련을 하게 되었다.

예상했던대로, 사비토는 정말 강했다.

그리고...

“일어나.”

순식간에 검을 놓치고 바닥에 쓰러진 여주에게 무심한 말을 건넬 정도로, 엄했다.

.....마치 스승님 같아.

여주는, 아무런 불평 없이, 검을 주워 일어나 자세를 고쳐잡았다.

그리고, 두 사람의 기합이 맞닿은 순간, 그 순식간에 대련은 다시 시작되었다.

사비토와의 훈련에 쉴 틈 같은 것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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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렇게 훈련하기를 약 한 달.

“............”

사비토는 자기 앞에 서 있는 여주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어쩐지 여주가 자신과의 첫 만남에서 자신감에 차 있던 이유를, 그리고 죽어나가는 아이들을 보다 못해 한동안 아이를 육성하지 않았던 우로코다키씨가 여주를 데려온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여주는 원래부터 귀살대가 되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그 신체적 조건이 특출났고

이전에 사비코가 훈련시켰던 다른 모든 아이들 중에서도 유독 배우는 속도가 빨랐다.

딱히 사비토가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해라 라고 직접적으로 가르쳐 준 것도 없는데도,

여주는 대련 중의 사비토의 몸짓 하나하나를 눈으로 배우고, 그걸 천천히 자기 것으로 만들어 나가고 있었다.

물론 아직은 미숙한 채다.

그러나,

“.............”

정말 이녀석이라면. 

여주라면, 그 녀석을....

그때, 여주가 짧게 “윽,” 소리를 내며 미간을 찌푸렸다.

무심코 생각을 끝내고 여주에게로 시선을 돌리니, 빨갛게 부어 있는 여주의 손목이 눈에 들어왔다.

사비토가 계속 검을 들고 싶으면 막무가내로 몸을 험하게 다루는 짓은 하지 말라고, 협박 아닌 협박까지 했는데도, 혼자 무리를 한 모양이었다.

여주가 이렇게 단기간에 배우는 것이 빠른 이유는, 단순히 선천적인 조건 때문만은 아니었다.

저런 식으로, 엄청난 노력을 해온 덕분이겠지.

“..............”

가만히 여주를 쳐다보던 사비토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여주에게로 성큼성큼 걸어온다.

“..........?”

뭐지, 화내려는 걸까.

여주는 무심코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비토를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어쩐지, 두 손을 보이면 안될 것 같아 등 뒤로 슬금슬금 숨기는 채다.

그리고 사비토는, 말없이 여주의 앞에 선채, 손을 내밀었다.

“.............?”

여주는, 사비토의 손을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사비토의 얼굴도 올려다봤다가...결국 자신의 손을 찬천히 사비토의 손에 올려놓았다.

마주닿은 손은 단단하고 따듯하다.

그리고 사비토는 하오리 안쪽에서 붕대를 꺼내 여주의 손목에 조심스럽게 감기 시작했다.

“고집 센 녀석.”

“..............”

그렇게 핀잔을 주었지만, 여주의 손목에 붕대를 감아주는 손짓은 퍽 다정했다.

여주는, 어쩐지 가까이에서 자신의 손목에 붕대를 감아주고 있는 사비토를 제대로 쳐다보기가 어렵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가까이 서 본 적이 없어서 그런 걸까.

자기 앞에 서 있는 사비토는 그 체격도, 키도, 모두 자신보다 훨씬 커서...

딱히 그동안 의식하지 않았던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사비토도, 남자구나.

“.............”

어쩐지 심장 근처가 간지러운 기분이 든다.

무심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니, 사비토가 “가만히 있어.” 라며 여주의 손을 잡고 동그랗게 주먹을 쥐어주었다.

그리고 양쪽 손목에 모두 붕대를 감아주고 나서야, 사비토는 여주에게 “또 다쳐오면, 국물도 없을 줄 알아라.” 하며 여주의 머리를 두어번 쓰다듬어주고, 어딘가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

물끄러미 사비토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여주의 얼굴이 붉다.

그날 밤, 여주는 왜인지 들뜨는 기분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어쩐지 심장은 쿵쿵 뛰고, 손목에 감긴 붕대를 보니 마음이 따듯해지는 것 같았다.

머리에 닿았던, 손에 마주 닿았던 사비토의 손의 감각이 자꾸만 되풀이되어 떠오른다.

“.............”

나, 왜 이러지?

.

.

.

.

.

.

.

.

.

.

그리고 또 시간은 흘러, 두어 달이 지났다.

그사이 여주는 더욱 강해졌고, 사비토와 마코모와는 더욱 가까워졌다.

물론 “그런데, 왜 날 도와주는 거야?” 

“우로코다키씨의 제자인데, 왜 같이 살지 않는 거야?”

라는 물음에는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았지만, 그래도 같이 지내면 말 없이도 오고 가는 감정이 있었으니까.

나도 스승님에 대해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아니니, 분명 그럴 만한 사정이 있는 거겠지.

억지로 물어보진 말자.

마코모와 여주는, 어느새 따듯해진 날씨에 꽃이 피기 시작한 언덕에서 화관을 만드는 중이었다.

꽃을 조심스레 하나하나 엮으며, 마코모가 말했다.

“나는 우로코다키씨가 너무 좋아.”

이것은 마코모의 말버릇이었다.

돌아본 마코모의 얼굴에 행복한 웃음기가 어려 있다. 

분명 우로코다키씨를, 너무나도 좋아하고 있는 거겠지.

마코모를 바라보는 여주의 얼굴에도 웃음이 따라 퍼진다.

“나도. 나도 스승님이 너무 좋아.”

여주가 웃으며 화답하자, 마코모는 화관을 만들다 말고 여주에게 폭 안기며 말한다.

“여주도, 너무 좋아.”

어느새 마코모와 이 정도로 친해졌구나.

나도, 스승님 이후로 새로 생긴 친구가 너무나 좋았다.

“나도 마코모 좋아해.”

여주는 이렇게 말하며 헤헤 웃는다. 그리고.... 여주의 품에 안긴 마코모가, 고개를 들더니 아무렇지 않게 물어왔다.

“사비토는?”

“.......어?”

“사비토도, 좋아해?”

“..............”

여주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다.

스승님도, 마코모도, 쉽게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었는데....

어쩐지 사비토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은 좀 어렵다. 분명 마코모의 좋아해? 라는 물음은, 스승님와 마코모에 대한 감정과 같이 사람으로서의 애정을 묻는 것일텐데. 난 뭘 의식하고 있는 걸까...

여주가 입을 달싹이며 아무 말도 못하고 있자, 마코모가 “응?” 하며 대답을 재촉해온다.

“..........응. 사비토도......좋아해.”

그렇게 대답하는 여주의 얼굴이 타오르는 듯 새빨갛다. 여주의 표정이 이번 "좋아해"는 그 전의 "좋아해" 와는 전혀 다른 감정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대답을 듣고 나서야, 마코모는 웃었다.

“그렇구나.”

그리고, 마코모는 여주에게서 고개를 빼꼼 돌려 여주의 뒤쪽을 보며, 이어 말했다.

“그렇대, 사비토.”

“.................?!”

사비토가, 여기 있었어.......?!

여주가 깜짝 놀라 고개를 뒤로 홱 돌렸다.

돌아본 그곳엔, 사비토가 가만히 서 있었다. 인기척을 지우고 왔던 모양이라, 여주의 뒤쪽으로 걸어오던 사비토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뭐야. 뭐야......? 대체 언제부터.....

아니, 설마 들었을까? 들은 건가?

초조한 마음에 안절부절 못하며 사비토의 표정을 살피려 해 보지만..... 여우가면에 표정같은 것이 있을 리가 없다. 겉보기에는 평소와 뭐 하나 다를 것이 없었다.

사비토는 가만히 선 채로 아무 말이 없었고, 제발 아무 말이라도 좀 해......! 생각하는 여주의 품 안에서,

마코모가 아무렇지 않게

“사비토는? 사비토도 우리가, 여주가 좋지?”

하고 묻는다.

여주는 속으로 숨을 헉 들이삼켰다.

마코모, 후퇴라고는 없구나....어쩐지 후련한 것 같기도, 아니 너무 직접적인 거 아냐....? 싶기도 하며 마음이 긴장된다.

“................”

여주는 무심코 침을 꿀꺽 삼키고, 사비토를 올려다보았다.

사비토는, 뭐라고 대답을 할까.

바람이 세 사람이 서 있는 언덕을 스치고, 순식간에 나무와 풀잎들이 쏴아아 소리를 내며 흩날렸다.

사비토가 뭐라고 말하는 것 같은데, 조금 떨어진 거리와 순식간에 휘날리는 나뭇잎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에.....

그 소리는 묻히고 말았다.

윽......하필 지금 바람이 불 게 뭐야.

여주는 조금 초조한 마음에, 사비토를 올려다보며

“방금, 뭐라고 했어?”

하고 물었다. 

사비토는 여주의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내려다보다가......

“...대련시간이다.”

한 마디만을 남긴 채 먼저 앞서 걸어간다.

“.............! 치사해.......”

분명, 무언가 말한 것 같았는데.

어차피 이번에도 아무 말도 해주지 않겠지.

여주는 결국 체념한 채 하아, 하고 한숨을 폭 내쉬고 사비토의 뒤를 따라 내려간다.

그런 두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마코모는, 다시 손 안에 놓인 화관에 꽃을 엮기 시작했다.

“사비토도, 여주만큼만 솔직해지면 좋을텐데.”

여우가면에 가려 표정은 보이지 않아도, 사비토의 귀 끝은 붉게 물든 채였다는 걸 여주는 봤을까?

풀잎 소리에 묻혀버린 사비토의 말은,

“좋아해” 였다.

바람의 변덕으로

사비토 본인 말고는 아무도 듣지 못했지만.


그리고 그날 이후로 시간은 흘러 며칠.

어느날의 대련시간이었다.

사비토가 문득 대련 중 움직임을 멈췄던 것은.

“................”

여주와 대련훈련을 하기를 벌써 세 달.

여주는 어느새 사비토만큼 강해져 있었고...

더이상 대련 중에 검을 놓치지도, 압도적 차이에 바닥에 쓰러지는 일도 없었다. 

최근엔 전집중호흡을 사용해 사비토의 호흡과 속도를 따라오기까지 했다.

그런 여주를 보며 어느새 사비토가 검집이 아닌 목도로 여주를 상대하고 있었다는 것을, 여주는 대련에 집중해 딱히 눈치채지는 못했다.

그래도 아직은, 간발의 차든 어쨌든 여주는 항상 사비토에게 지는 채였으니까.

“.............”

그리고 그날의 대련 중에, 사비토는 문득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리고 그자리에 가만히 선 채, 여주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두 사람의 대련을 중간에서 지켜보고 있던 마코모는 사비토를 힐끗 쳐다보았다가, 사비토의 시선을 따라 마찬가지로 여주를 눈에 담는다. 마코모의 입가에 얼핏 미소가 어렸다.

말로 내뱉지는 않았지만 사비토와 마코모 모두, 여주가 바위를 벨 수 있을 정도로 강해졌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당장 몇 번의 대련만 더 반복하더라도 여주는 금방 바위를 베어버릴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그만하도록 하지.”

사비토는 짧게 말한 후, 목도를 천천히 바닥쪽으로 향했다. 더 싸우지 않겠다는 뜻이다.

“...........?”

대련 시작한지 얼마 안됐는데...

어쩐지 아쉬운 마음에 여주가 “사비토.....?” 하고 사비토의 이름을 불렀으나, 어느새 사비토는 멀리 걸어가는 채라 듣지못하는 것 같았다.

“............”

여주는 치켜세웠던 검을 잠시 바닥을 향했다가... 다시 고쳐잡았다.

오늘은, 혼자 연습이라도 더 해야겠다.

“...............”

사비토는 목도를 쥔 손이 하얘질 때까지, 무심코 손에 힘을 주고 있었다.

곧 사비토의 발걸음이 느려지고 , 사비토는 그 자리에 멈춰선 채 생각했다.

여주를, 선별 시험에 보내기가 싫다고.

 우습고 치사한 생각이었다.

그러나....우로코다키씨가 자신들을, 그리고 다른 많은 아이들을 선별 시험에 보내기 싫어했던 이유도 이제야 좀 알 것 같았다.

그 아이들이 너무나도 소중하니까.

여주가 너무나도 소중한 존재가 되어버렸으니까.

처음 봤을 때 부상을 입은 채인데도 이를 악물고 자신에게 맞서 싸우던 모습도,

자신의 엄한 훈련에도 한 마디의 불평 없이 묵묵히 따르던 성실한 성격도,

어느새 자신을 “사비토.” 하고 부를 때마다 붉어지는 여주의 얼굴이,

“사비토도....좋아해.” 하고 웃으며 말하던 여주가.

너무나도 소중했다.

여주를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여주는 충분히 강해졌다.

그러나, 우로코다키씨가, 그리고 자기가 훈련시켜 보냈던 모든 아이들 역시 약해서 죽은 것이 아니었다.

모두 바위를 벨 정도로 강했다.

그러나.....

살아돌아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

“..................”

내가 여주를 사지로 내몰고 있는 것은 아닌가.

다름 아닌 내가 여주를 죽이게 되는 것은 아닌가.

사비토는 지긋이 입술을 깨물었다.

너무 세게 깨문 탓에 입안에 피맛이 감돈다.

다른 모든 아이들을 훈련시켜 선별시험에 보내 결국 모두 죽게 했으면서도 여주만은 그곳에 보내기 싫다니.

자신이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다.

스스로가 너무 치졸해 견딜 수가 없었다.

“...........사비토.”

어느새 사비토의 뒤를 따라왔던 것인지, 마코모가 사비토의 이름을 불렀다. 마코모의 시선은 사비토의 하얘진 손끝에 머무른다.

“...............”

사비토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마코모는 그에 상관하지 않고 천천히 말을 이어나간다.

“여주는 강해.”

“..................”

아아. 그랬지.

그녀석은 이제 약하지 않았다.

그건 매일같이 대련한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

분명, 그것도 베어낼 것이다.

그럴 것이다.

“사비토. 여주를 믿어줘.”

그래. 가르친 내가 믿어주지 않으면, 대체 누가 그녀석을 믿어준다는 거냐.

여주는 살아돌아올 것이다.

“........그래.”

여우가면 아래로, 사비토는 어렴풋이 미소를 지었다.

여주는 살아돌아올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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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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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음날.

“........어?”

당연하게도 목도를 손에 들었던 여주에게, 사비토는 진검을 던져주었다.

당황하면서도 반사적으로 진검을 손에 받아든 여주는, 자신의 진검과 그걸 던져준 사비토를 번갈아보았다.

그리고 사비토는 천천히 검집에서 자신의 검을 꺼내들었다.

그것은, 진검이었다.

“...............!”

그렇구나.

드디어, 진검으로 싸워주는 거구나.

여주는 대련 직전인데도 어쩐지 좀 기뻐졌다.

사비토에게 인정받은 느낌이었다.

그렇다면 나도...제대로 임하자.

스승님과 사비토에게 배운 것을, 마코모가 가르쳐준 것을 모두 내보이자.

여주는 오랜만에 잡아보는 진검을 , 두 손에 단단히 감았다.

오랜만에 잡는 것인데도 낯선 감각 따윈 없었다.

오히려 전보다도 두 손에 딱 알맞게 검이 감기는 느낌이었다.

“..............”

사비토와 여주가 마주본 채 서고, 곧이어 두 사람의 기합이 말없이 맞닿았을 때, 대련은 시작되었다.

여주는 천천히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온몸에 혈액이 돌고, 심장의 고동은 빨라진다.

그리고 체온이 올라 몸이 뜨거워지기 시작한다.

“..............”

확신이 들었다.

오늘은, 사비토를 이길 수 있다.

정면 승부는 단순했다.

보다 강하고, 보다 빠른 쪽이 이기는 싸움이다.

그리고 이날은......

더 빠른 것은 나였다.

세 달 만에 처음으로, 내 검끝이 사비토에게 먼저 닿았다.

사비토의 가면이 두 동강 나 바닥에 천천히 떨어지고....

“........아.........”

나는 이날, 처음으로 사비토의 얼굴을 보았다.

그 전에는 한 번만 가면 벗어보면 안되냐고, 얼굴이 궁금하다고 해도 못들은 척 무시할 뿐이라 사비토의 얼굴을 본 적이없었다.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수백번도 더 상상해본 것 같다.

다정한 얼굴일지, 의외로 사나운 얼굴일지. 

눈썹은 어떤 모양이고 눈동자는 무슨 색일지, 모든 것이 궁금했다.

그리고 이날 내 두 눈에 담긴 사비토는...

웃고 있었다.

어쩐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기도, 내가 드디어 사비토를 이긴 것이 기쁜 표정 같기도 했다.

분명 웃고 있는데, 그 미소가 어딘지 슬프게 느껴져, 가슴이 아파왔다.

“.....사비토.....?”

이름을 불렀으나, 사비토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그저 입가에 미소를 띄운 채였다.

그리고, 내가 눈을 한 번 깜빡이는 그 찰나의 순간, 사비토는 내 눈 앞에서 사라지고...

나는 바위를 베어낸 채였다.

“..........!”

눈 앞에 갈라져있는 바위에 당황하기도 잠시, 드디어 바위를 베었다는 기쁨에 두 사람에게 얼른 이 사실을 말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여주가 “사비토, 마코모.....!!” 하며 뒤를 돌아본 그 곳엔, 아무도 없다.

“..............?”

뭐지......?

분명 방금 전까지 나와 함께 있었는데.

나와 대련하고...나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어쩐지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당황하며 서 있는 사이, 등 뒤로 익숙한 인기척이 어린다.

“....스승님....?”

우로코다키였다.

우로코다키는 여주에게 다가와 가만히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라면, 이것을 벨 줄 알았다.”

“.............”

두 사람의 갑작스런 부재에 당황하기도 잠시, 오랜만에 느껴보는 스승님의 다정한 손길에...여주는 어쩐지 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고생했구나, 여주야.”

우로코다키는 여주의 작은 어깨를 제 품으로 끌어당겨 여주를 안아주었다.

곧 작은 여주의 어깨가 천천히 떨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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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선별시험 날.

우로코다키는 여주에게 든든히 밥을 먹이고, 여주를 불러 여우가면을 건네주었다.

“이건......”

스승님이 하고 있는....

그리고 사비토와, 마코모가 하고 있는 가면과 같은 것이다.

“액소의 가면이다. 너를 나쁜 일들로부터 지켜줄 거란다.”

“....감사합니다.”

어쩐지 마음이 따듯하다.

같은 가면을 받으니 어쩐지 더욱 이들과 가까워진 듯한 느낌이 들어, 여주의 얼굴에는 기쁜 듯 미소가 어렸다.

그리고 다음날,

여주는 우로코다키의 배웅을 받으며 걷다가 문득 생각난 듯 뒤를 돌아 우로코다키에게 말했다.

“아, 스승님! 돌아오면, 사비토와 마코모와 같이 저녁 먹어요!”

두 사람이 왜 나와 같은 우로코다키씨의 제자이면서 따로 살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 정도야 괜찮겠지.

여주는 우로코다키에게 손을 흔들며 멀어져갔다.

그리고 여주를 배웅하던 우로코다키의 손이 굳어진다.

“....네가 어떻게 죽은 그 아이들의 이름을 알고 있는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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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는 선별시험장에 들어가, 순조롭게 혈귀를 해치우는 중이었다.

혈귀를 죽이는 일은...말 그대로 쉬웠다.

사비토와 매일 대련하던 것에 비하면 이 정도는 말그대로 식은 죽 먹기였다.

그런데.....

“윽.”

엄청난 악취에 여주가 코를 막은 순간....

귓가로 

“아아아아아악!!!!!!!!!!!!”

하고 찢어지는 비명이 스친다.

“?!”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보니......

사람이....혈귀에게 잡아먹히고 있었다.

여주가 들은 것은 사람이 혈귀의 입에 들어가기 직전 내지른 비명이었다.

하지만 저건....저게....혈귀인가...?

저건...내가 이제껏 싸워온 다른 혈귀들과는 크기부터가 차원이 다른데.....

무심코 여주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떨리는 눈으로 혈귀를 응시하고 있으니....

아.

등을 숨겼던 나무 뒤로...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여주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사이, 혈귀가 여주에게 눈을 번뜩이며 입을 열었다.

혈귀의 주위에는 같이 입산했던 수많은 아이들의 팔, 다리 같은 시체의 일부분과, 아직 먹히지 않은 아이가 한 명, 쓰러져있다.

“또 왔구나. 나의 사랑스러운 여우가.”

“..........뭐?”

알 수 없는 말에 여주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아니야. 분명 혈귀의 쓸 데 없는 농간일 뿐이다.

일일이 신경쓰지 말자.

여주는 고개를 두어번 흔들고 검을 고쳐잡았다.

두려움에 잠식되어 있어봐야 싸울 수조차 없다.

그러나 여주가 호흡을 크게 들이마시며 전집중호흡을 쓰려고 했을 때, 혈귀는 그 흐름을 깨며 툭 물음을 던졌다.

“너. 우로코다키의 제자지?”

“...........!”

여주는 놀라서 동공이 커졌다.

이건, 농간이라고 넘길 수는 없는 말이다.

“그걸 어떻게 알았지?”

여주가 혈귀에게 물었다.

그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갑다.

혈귀는 여주의 물음에는 대답하지 않은 채...

천천히 자신의 수많은 손들을 모아 손가락을 하나 하나 접어가기 시작한다.

“..........?”

여주가 미간을 찌푸린 채 그런 혈귀를 쳐다보는 동안, 혈귀는 문득

“네가 14번째야.”

하고는 섬뜩한 웃음을 지었다.

“알아듣게 똑바로 말해.”

조금 답답해진 여주가 혈귀를 쏘아붙이자... 혈귀는 무엇이 그렇게 즐거운 건지, 온 몸을 떨며 웃기 시작했다.

그 입은 마치 귀에 걸릴 듯 찢어진 채다.

그리고.....

“나는 우로코다키에게 잡혀 여기에 갇혔거든. 그러니까 나는 그놈의 제자들을 모두 먹어치울 거다. 그리고 네가 14번째가될 거야. 그럼 우로코다키는 무슨 표정을 지을까? 화를 낼까? 웃을까? 울까?”

하고는 히힉.....! 하고 미친 듯이 웃으며 기분나쁘게 눈을 휘었다.

마치 그걸 상상하면 행복해 죽겠다는 듯한 표정이다.

“..............!”

이건, 거짓말일 것이다.

사범님은 그런 말을 해준 적이 없다.

이런 바보같은 말에 휘둘리지 말자.

그렇게 생각하며 미친 듯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해본다.

여주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사방에 가득한 나무를 지지대 삼아 위로 뛰었다.

혈귀의 크기가 거대해서, 위에서 공격하지 않고는 그 목을 벨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내리친 공격은, 혈귀의 수많은 손들에 막혀 깊게 박히지 못했다.

“............”

여주는 미간을 찌푸린 채 다시 혈귀에게서 벗어나 안정거리를 확보했고,

혈귀는 여주를 빤히 쳐다보더니, 마치 선심을 쓴다는 듯 손가락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톡, 톡 치기 시작했다.

“...........?”

대체 뭘 하는.....

“여우꼬맹아. 이거란다. 이거.”

이거......?

여주가 무심코 혈귀를 따라 손을 얼굴에 가져가는 그때, 여주의 손에 잡힌 것은, 우로코다키가 직접 만들어 준 액소의 가면이었다.

설마......

“흐힉, 그래. 그거란다. 그걸 보면 우로코다키의 제자인 걸 단번에 알 수 있지. 아아- 우로코다키는 제가 만든 가면에 제 제자들이 모두 죽어나가고 있다는 걸 알까? 히힉, 힉.......”

“.............”

혈귀는 그렇게 말하며 여주의 표정 하나하나를 살핀다. 분명, 여주가 분노하는 모습을 보고싶어하는 것이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여기선 정신을 차리고 냉정하게 혈귀를 퇴치해야 하는데,

“..........”

이런 얘기를 들은 이상 그것이 맘대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여주는 이를 바득 갈았다.

온 몸이 자기도 주체할 수 없이 살의에 부들부들 떨려온다.

어떻게든 전집중호흡을 사용해 공격을 가한다.

그러나, 여주 자신도 휩쓸려버린 분노에 공격은 그 정밀도가 떨어졌고, 아까보다도 쉽게 혈귀는 여주의 공격을 피해버린다.

왜, 왜 닿지 않는 거지?

어떻게든, 어떻게든 이 혈귀의 목을 베고 싶다. 죽여버리고 싶다.

마음 한 켠에서 아까부터 생각하기 싫어 미뤄온 것이, 천천히 마음 속에서 확신이 되어나간다.

이 혈귀는.....사비토를, 마코모를.........!

싸움 도중에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아, 여주가 두 눈을 더 부릅뜨고 혈귀에게 공격하는 것에 집중하려던 그때,

“진정해.”

문득 귓가에 그런 말이 들렸다.

그건 혈귀의 목소리도, 아직 쓰러져 있는 아이의 목소리도 아니었으며....

당장 어제도 함께 대련을 했던...

여주와 세 달을 함께 했던,

사비토의 목소리였다.

“...........!”

차마 주체할 수도 없이, 눈물이 여주의 눈가로부터 흘러내렸다.

이어 또다른 목소리가 들린다.

“여주가 할 수 있는 걸 해. 여주는 할 수 있어.

우리가 봐왔는 걸.”

마코모의 목소리다. 그와 함께 머리에 사비토의 단단한 손이 한번 닿았다가 모두 한 순간에 마치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윽........”

여주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두 사람이 실은 죽었든 말든, 그런 건 이제 상관없다.

내가 두 사람과 보낸 시간은 둘에게도, 나에게도 진짜였으며, 허무한 시간이 아니었다.

모두 진짜였다.

그러니까 나는....이 녀석을 해치우자.

해치울 수 있다.

그 둘한테 배웠는 걸.

해치우고, 웃는 얼굴로 스승님께 돌아가자.

“........후우....”

여주는 두 눈을 감고 흐트러진 호흡을 진정시켰다.

전집중호흡으로 심장박동을 늘이는 것과 호흡이 흐트러져 심장이 뛰는 것은 다르다.

천천히 호흡을 들이마셔 폐를 키운다. 

폐를 통해 온몸에 공기를 전달하며 혈액을 돌린다.

그애 따라 심장 박동은 속도에 박차를 가한다.

온 몸이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하고...

여주는 방금 전과는 전혀 다른 움직임으로 혈귀에게 재빨리 다가간다.

“........이 녀석........!”

혈귀는 방금 전과 다른 사람인 양, 엄청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한 여주에게 당황했다.

 

이런 말을 해주면, 그 전의 제자들처럼 평정심을 잃고 쉽게 죽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아-. 그 아이가 떠오르고 만다.

우로코다키의 제자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던.

연주황빛 머리칼을 가진 아이.

그 아이도 이런 얘길 들었을 때 쉽게 흥분하지 않았지.

....지금 저 아이의 눈을 보고 있으면, 그때의 그 아이가 생각난다.

“.................”

맘에 들지 않는구나.

그래. 죽여버리자. 먹어치우는 거다.

혈귀의 몸에 붙어 있는 수많은 손들이, 마치 융화하듯 하나로 합쳐지며 뻗어나간다.

그리고, 노리는 것은 역시나 여주다.

그러나 여주는 혈귀의 손 끝이 여주의 몸에 닿기 직전, 가볍게 위로 날아 올라 그 공격을 피했다.

“...........!”

그리고 융화되 뭉쳐진 혈귀의 팔 위로 가볍게 올라 달리기 시작했다.

아아.

할 수 있다.

할 수 있어.

사비토와 대련하기 직전 들었던 그 감각이 그대로 느껴졌다.

나는, 이 혈귀의 목을 벨 수 있다.

그런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혈귀의 눈 앞에서 물의 형으로 기술을 사용한 순간......

“......아.......!”

공격이 혈귀의 단단한 목에 반쯤 박힌 순간....

그제서야 여주의 눈에 들어온 것은.....

아까의 아직 먹히지 않았던 한 명의 아이가,

자신이 혈귀의 목을 베는 동안...혈귀의 수많은 팔에 사지가 잡혀 찢기기 직전인 상태였다.

어쩌지?

하다못해 저 아이가 미리 도망쳤더라면...

아니면 최소한 내가 지킬 수 있는 범위 내에 있었더라면....

공격을 그대로 박아 넣어도, 이 혈귀는 저 아이 하나만큼은 찢어발기고 사라질 것이다.

대신에 저 아이를 포기한다면.....눈앞의 혈귀를,

스승님과 수많은 다른 아이들을 먹어치운 이 혈귀에게 복수할 수 있다.

여주의 몸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찰나의 순간동안, 여주는 많은 경우의 수를 하나하나 재고 있었다.

그리고......

“도...도와,줘......!”

“..............”

혈귀의 손에 붙잡힌 그 아이와 눈이 마주친 순간, 도와달라는 말을 들은 순간...모든 고민은 끝났다.

내가 스승님에게....그리고 사비토에게 배운 것은, 다른 사람의 목숨을 버림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목숨으로 저울질을 하라고 배운 적 따위 없다.

찰나의 순간이나마 이 아이를 포기해야 할까 생각했던 자신이 수치스러울 정도다.

여주는, 망설임없이 혈귀의 목에 박힌 칼날을 빼내고, 바로 이어 물의 형으로 눈앞의 아이의 사지를 붙잡고 있는 수많은혈귀의 손을 베어냈다.

전부 베어냈으니, 약 몇 초 정도는 재생할 수 없겠지, 생각하던 그때.

“으....으아아아아아악!!!!!!!!”

여주에게 구해진 그 아이는... 여주를, 아니 정확히는 그 뒤의 그것을 쳐다보고는,

공포에 질식당해 어디론가 사정없이 뛰기 시작했다.

“............”

그리고 여주가 반사적으로 검을 휘두르며 뒤를 돌았을 때.

아.

늦었구나.

손이 전부 잘려 재생할 수 없었던 혈귀는, 그 커다란 입을 벌린 채 여주를 향해 다가오는 중이었다.

급하게 휘두른 공격은 어떤 호흡도 실지 못했고,

시야가 순식간에 어두워진다.

으적.

온 뼈가 다 부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여주는 사라져가는 의식 속에서 그런 생각을 했다.

분명 사비토와 마코모도....

다른 수많은 스승님의 제자들도.

약해서가 아니라, 마음이 따듯했기 때문에 죽었을 거라고.

곧 숲 한 가운데에 여주의 검만이 툭 소리를 내며 땅에 박힌다.

그 아이를 구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스승님이라면, 사비토라면, 마코모라면....스승님께 배운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그 아이를 구했을 것이다.

난 해야 할 일을 했다.

그 행동에는 한 치의 후회도 남지 않았다.

그러나 다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따듯한 마음을 가진 스승님이.....

제발, 제발 평생 자신의 가면에 의해 우리가 눈에 띄었다는 사실을 모르셨으면.

그저 내가 약해서, 내가 부족해서....그래서 죽은 것으로, 그렇게 전해지기를.

큰 입으로 여주를 꿀꺽 삼킨 후, 혈귀는 수많은 손을 모아 입을 가린 채 숨길 수 없이 웃음을 흘렸다.

“아아. 역시 우로코다키의 제자놈들은 하나같이 죽이기가 쉽다니까. 다른 사람 따위 버리면 이길 수 있을 텐데. 우로코다키의 제자들은 단 한 명도 다른 사람의 목숨을 포기하지 못했지. 미련해라.”

무엇이 그렇게 웃긴지, 아니면 우로코다키의 제자를 또 하나 먹어치움으로써 우로코다키에게 복수했다는 기쁨이 몰려오는 것인지...

혈귀는 몸을 떨어가며 웃고 있다.

그리고 곧, 다시 채워지지 않는 허기가 밀려들어온다.

“......아까 도망간 녀석이 이쪽이었나.”

.

.

.

.

.

.

.

.

.

.

.

.

여주는 멍한 감각과 함께 천천히 눈을 떴다.

눈을 뜨니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 푸른 하늘과 사방에 꽃이 피어 있는 언덕이다.

나는......죽은 거구나.

멍하니 눈을 깜빡이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문득 옆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아직 감각이 다 돌아오지 않은 느낌이라 시선만 살짝 돌려 옆을 바라보니...

“많이 아팠지..?”

금방이라도 울 듯한 얼굴을 한 , 마코모가 있었다.

“.................”

여주는 가만히 마코모를 응시했다.

그렇게나 나를 도와 애써줬는데.

여주를 바라보던 마코모의 눈에서 곧 눈물이 넘쳐 흐르기 시작하고, 마코모는 여주를 끌어안았다.

“...........마코모. 울지마.”

여주는 가만히 손을 들어 마코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고개를 들었을 때, 

“...........아..”

조금 떨어진 곳에, 사비토가 서 있다.

마코모에게 울지 말라고 했는데, 사비토를 보자마자 여주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나를 위해 세 달동안 애써줬는데.

나는 그 혈귀를 베지 못했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복수를 하지 못했다.

스승님을 지키고 싶었는데, 결국은 스승님을 슬프게 하고 말았다.

억울함과, 미안함과,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이 한 번에 몰려든다.

차마 두 사람을 마주볼 수가 없어 고개를 떨군 채

“미안해-“

라는 울음에 섞인 말을 겨우 내뱉던 그때,

사비토는 그런 여주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마치 그날처럼 웃었다.

그 미소는....여주를 책망하는 것도, 여주의 죽음에 슬퍼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여주를 따듯하게 바라 볼 뿐이다.

사비토는 성큼 몇 걸음 다가와 여주를 그 품에 안았다. 여주의 작은 몸이, 한 품에 자신에게 다 안겨온다.

이 작은 몸으로, 분명 엄청나게 애를 썼겠지.

“..............”

여주를 단단히 끌어안은 그 팔이, 그 품이 너무나도 따듯해서... 여주는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사비토는 가만히 손을 들어 여주의 머리를 자신의 품으로 당겨 끌어안았다.

사비토의 하오리가 여주의 눈물로 천천히 젖기 시작하고, 여주가 겨우 손을 들어 사비토의 등에 손을 올렸을 때,

사비토는 여주의 머리를 따듯한 손길로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고생했어.”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그 손길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따듯하다.

그리고 바위를 베라는 우로코다키의 선언에 당황한 탄지로의 앞에 

사비토와 마코모, 그리고 여주가 나타난 것은 몇 년 뒤의 일이었다.

+사비토가 같은 마음인데도 불구하고 여주에게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았던 건, 여주를 믿었으니까 

여주가 그 혈귀를 벨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

애초에 자신들은 혈귀에게 억울하게 죽고 우로코다키의 다음 제자를 훈련시켜 이 악연의 고리를 끊기 위해 존재하는 것일테니...

여주가 그 혈귀를 베는 순간 자신들의 존재 역시 바로 사라질테니, 어차피 사라져버릴 존재라면 앞으로도 삶을 살아가야할 여주에게 한 치의 부담도 주고 싶지 않았던 것.

그리고 결국 여주가 자기 앞에 나타났을 때가 되서야 사비토는 아직 울먹이고 있는 여주에게

“....그때 못들었던 말.” 하고 문득 말을 건냄.

여주 아직 눈물 뚝뚝 흘리며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개를 들어 사비토를 쳐다보는데,

“좋아해.”

하고 사비토는 웃겠지,,,,,

여주가 “................” 하고 눈만 커다래져서 아무말도 못하고 그저 사비토만 쳐다보고 있으니 그런 여주 바라보면서 다정하게

“좋아해. 이 말이었어. 그날 못들었던 말.”

하고 웃어주겠지,,,,,,,,

그리고 여주 기쁜 건지 슬픈 건지 또 눈물 터져서 울기 시작하니까 결국 또 여주 품에 안고 달래주는데.....

사비토도 자기 좋아한다는 거 믿기지 않는 여주가

울다가도

“정말?”

 “진짜야?” 

“진짜, 나 좋아해?” 

하고 5초에 한 번씩 질문하는 거 

하나도 안무시하고 여주 머리 다정하게 쓰다듬어주며

“그래.”

“좋아해.”

하며 하나하나 다 대답해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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