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fido

3부 2화

남부 도착했어요

“꽃도 생화가 이만큼이나 묶여있으면 무겁구나, 두코 나랑 교대 좀 해줘.”

“든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교대야? 조금만 더 들고 있어 봐.”

두코와 프라이에는 시도폰의 뒤에서 서로에게 꽃다발을 넘기고 있었다. 남부 행 출발 전날, 시도폰은 어떤 꽃다발을 들고 갈까 고민만 했지 정작 어디에서 그것을 살 것인가는 생각해두지 않고 있었다.

프라이에가 여정의 반이 지나갈 때 폰에게서 그 이야기를 듣고는 ‘가는 길목에 꽃으로 유명한 마을이 있으니 거기서 사면 되겠군요.’라고 말했고 그 결과가 지금의 꽃다발 떠넘기기가 된 것이었다.

시도폰은 두 사람의 만담을 무시하고 콧소리를 내며 말을 몰기 바빴다. 남부로 가는 내내 비슷한 상태였기에, 수행단 아이들도 그를 따라 들뜬 분위기였다.

‘솔라를 혼자 두고 온 게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피데이스랑 베론이 함께 있으니 괜찮겠지.’

걱정도 잠시, 어느새 교회 부지의 경계를 나타내는 성벽이 보이자 선두를 이끌던 시도폰이 속도를 높였다. 두코에게 꽃다발을 넘겨주려던 프라이에는, 제 앞의 그림자가 사라지듯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보았다.

“안됐네, 끝까지 네가 들고 가야겠다.”

다급히 꽃다발을 품으로 회수한 프라이에를 두고, 두코가 그를 지나쳐갔다. 프라이에는 어쩔 수 없이 한숨을 쉬며 그 뒤를 따랐고, 그들이 차례로 성문으로 입성하자 평소처럼 꽃비가 쏟아져 내렸다.

헤일로 기사단장의 장례식 때와는 전혀 다른 축제와도 같은 분위기에, 두코는 웃으려다가 만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조용해졌고, 프라이에는 그런 두코를 보지 못하고 시도폰에게 꽃다발을 언제 가져갈 것이냐고 물었다.

“숙소에 도착해서 가져갈 건데? 지금은 바로 교황 성하를 뵈러 신전으로 가야 하니까.”

“근데 성하 것은 안 사고 카리타스 것만 사도 되는 거야?”

“…아차.”

정말로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며 시도폰이 난처한 웃음을 지었다. 프라이에는 꽃다발을 수행단 마차에 두는 건 어떻냐고 물었다.

“어차피 아이들 내리고 나면 공간이 생길 거니까 거기 두면 될 것 같네. 아이들이 마차에서 내리기 전까진 꽃다발은 적당히 내 망토로 가려두면 되지 않으려나.”

“고마워. 다음부턴 그런 것도 생각해야겠어.”

두코는 속으로 ‘보통 성하께 드릴 걸 먼저 생각하지 않나?’라는 의문을 품었지만 내뱉지 않기로 했다.


“위대하신 분께서 내려주신 우리의 등불을 뵙습니다. 제가 일행을 위해 매일같이 기도를 올렸습니다. 어찌, 평안하셨습니까?”

“덕분에 남부까지 내려오는 동안 무탈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성하.”

말에서 내린 시도폰이 교황과 인사하며 그 뒤에 서 있는 사제들과 눈을 마주쳤다. 카리타스가 보이지 않자 당황했지만, 시도폰은 내색하지 않고 평소처럼 교회로 들어가면 되느냐고 물었다.

“예. 으레 해주시던 말씀을 대중들 앞에서 한 번 해주시면 됩니다. 내려오느라 고생하셨을 텐데 이것저것 시킬 생각은 없으니 편히 계시지요.”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시도폰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교황의 뒤를 따라 교회로 들어갔다. 그는 회중석을 양옆에 둔 카펫 위를 따라 걸어가며 많은 환호와 박수를 받았다.

4년 전, 막 각성했을 때의 어리숙함이 씻긴 것처럼 사라진 시도폰은 당당하게 사람들 앞에 섰다. 본래 목적은 무사히 일정을 마친 수행단을 치하하고 그들이 어엿한 사제가 될 준비를 마쳤음을 알리는 것뿐이었지만, 시도폰은 북부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연설을 마무리했다.

우레와 같은 호응을 뒤로하고 단상에서 비켜선 시도폰은 곧이어 제가 있던 자리에 서는 카리타스를 바라보았다.

‘꽃은 언제 줄 수 있으려나.’

하지만 이후 행사는 전부 카리타스가 진행했기 때문에 시도폰은 행사 중에 빠지지 못하고 계속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고, 꽃이 시들까 봐 노심초사하며 망토 속에 가려진 손을 꼼지락거렸다.

“이것으로 행사를 마무리합니다. 뒷줄부터 차례로 퇴장해주시기 바랍니다.”

마무리였다. 시도폰은 누구보다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카리타스에게 다가갔다. 너무 오랜만에 마주하게 된 얼굴에, 시도폰은 말문을 어떻게 터야 할지 고민하며 카리타스를 바라보기만 했고 그런 고민을 아는지 모르는지 카리타스는 입꼬리를 살짝 올린 채 그를 마주 보았다.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두코는 빨리 무슨 말이라도 해보라며 시도폰의 허리를 살짝 찔렀지만, 그것조차 전혀 알아채지 못했던 시도폰은 미동도 없었다. 프라이에는 분위기를 살피다가 꽃다발을 가지러 마차 쪽으로 달려갔고, 그가 무거운 꽃다발을 들고 돌아오자 그제야 시도폰이 입을 열었다.

“보고 싶었어. 이렇게 오랫동안 못 볼 줄 몰랐는데, 잘 지냈어?”

카리타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로 답을 해주지 않아 의아했던 시도폰이, 행사 때문에 목이 쉬었느냐 물었고 카리타스가 재차 고개를 끄덕였다. 인파들은 빠져나가느라 바빴고 교황도 퇴장한 지 오래였다.

아쉬워하는 시도폰에게 카리타스는 가까이 오라는 듯 손짓을 했고, 마침내 한 뼘 남짓하게 가까워졌을 때 카리타스는 폰의 손을 잡고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예상치 못한 힘에, 시도폰이 허리를 살짝 숙였다.

“나도 정말로 보고 싶었어.”

시도폰에게만 들리도록 작고 간결하게 속삭인 카리타스가 말을 마치자마자 손을 놓아주었고, 폰은 제 귀에 닿았던 숨에 놀라 자리에서 그대로 멈추었다. 태연한 표정으로 카리타스는 프라이에에게 꽃을 받아들었다. 살짝 고개를 숙여 꽃의 향기를 즐긴 카리타스가 아주 맑은 목소리로 말했다.

“좋은 꽃이네, 고마워. 방에다가 장식해두라고 할게.”

“목소리… 멀쩡하잖아?”

그 말에 카리타스는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헛기침을 하고 돌아섰다.

“속았네, 속았어.”

두코가 어이없어하며, 그들에게서 멀어지는 카리타스와 그를 따라 허둥지둥 걸어가는 시도폰을 눈으로만 쫓았다. 비슷한 기분으로 서 있던 프라이에가 먼저 뒤돌았다.

“숙소로 가자. 폰은 한참 뒤에나 오겠지.”

“그래그래, 좋은 생각. 밥 먹을 때나 다시 보겠지. 남부 밥은 북부보단 맛있었던 거로 기억하는데.”

“안 먹어 본 지 꽤 되어서 기억이 잘 안 나네. 먹어보면 알겠지.”


한편, 카리타스는 제 방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며 복도에 쏟아지는 향기를 즐겼다. 시도폰이 어떻게 지냈냐고 묻는 말에 하루하루가 같았다고 답하면서, 카리타스는 들뜬 입꼬리를 다시 내렸다.

맞은 편에서 다른 사제들이 걸어와 두 사람에게 인사를 건넸다. 의례적인 미소라도 지어내는 폰과 다르게 카리타스는 아까완 다른 굳은 표정으로 답했고, 그들은 익숙한 듯 두 사람을 지나쳐 걸어갔다.

‘혹시 아까 내가 물어봤던 게 마음에 안 들었나?’

“폰, 무슨 일이야? 왜 그렇게 봐?”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시도폰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카리타스를 바라보았지만, 카리타스는 그런 시도폰이 의아할 뿐이었다. 다시 은은한 미소를 짓는 카리타스에게, 차마 속으로만 생각한 것을 말하지 못한 시도폰이 다른 질문을 던졌다.

“꽃다발에서 특히 마음에 드는 꽃 있어? 취향을 잘 몰라서 내 마음에 드는 거로 사 왔는데, 기왕이면 네가 좋아하는 거로 받는 게 좋잖아.”

“다 좋은 것 같아서 하나만 꼽긴 어렵네…. 굳이 꼽자면 이거, 히아신스라고 하던 것 같았는데.”

시도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그는 향을 기억해두겠다고 꽃다발 쪽으로 몸을 기울였고 카리타스는 은근슬쩍 꽃다발을 제 쪽으로 당겨 안았다. 장난치지 말라고 말하는 시도폰도, 미안하다고 대답하며 다시 다가온 카리타스도 둘 다 웃음을 숨기지 못했다.

카리타스의 집무실에 도착한 시도폰은 방문을 지키고 있는 낯선 이를 발견했다.

“원래 호위해주던 분은 어디 가셨어?”

“피에르 경을 기억하고 있었구나. 나이도 있고 하시니까 오래 호위 기사를 맡기는 힘들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 바로 일을 그만둘 정도로 건강이 나쁘다거나 하신 건 아니야, 대신 교대근무로 서 있는 시간을 줄이고 계셔. 지금은 아마… 후임자들 교육하러 가셨을 거야.”

“후임자들 후보가 여럿이구나. 좋은 사람이 뽑혀야 할 텐데.”

‘그래 봤자 교황의 끄나풀이겠지만.’이라는 생각을 삼킨 카리타스가 맞장구쳤다. 시종이 꽃다발을 받아 포장지를 제거하고 꽃은 화병에 꽂았다.

“성녀님, 포장지와 리본은 어떻게 할까요?”

“두고 나가게. 차는 이번에 새로 들어온 거로 내오고.”

카리타스는 업무용 책상에 포장지와 리본을 옮겨두고, 접객용 책상으로 향했다. 이미 앉아있던 시도폰은 창문으로 보이는 바깥을 감상하다가 제 맞은편에 앉는 카리타스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차를 내온 시종이 물러가고 나서야 시도폰이 입을 열었다.

“프라이에 통해서 준 거 정말 큰 도움이 됐어. 고맙다고 직접 말해주고 싶었어.”

“내가 특별히 노력해서 얻어낸 돈이 아니니까 그렇게 고마워하지 않아도 돼. 기부 물품 중에서 내 쪽으로 들어온 것들을 팔아서 마련한 거야.”

“그래도 나랑 기사단이 고생할 걸 걱정해서 준 거였잖아. 난 그게 고마웠어.”

카리타스가 뭐라 변명하지 못하게 시도폰은 웃으면서 대화를 마무리해버렸다. 그러곤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조금 쓴 맛이 나지만 향이 좋다고 감탄했고, 카리타스는 쿠나블라에서 건너온 귀한 차라고 대답했다.

“이름은 잘 기억이 안 나. 차 종류가 많아서 다 외우고 있진 못해. 맘에 들면 돌아갈 때 챙겨갈 수 있게 해둘게.”

“고마워. 북부에 사는 아이들은 이런 걸 접할 일이 없으니까 알려주고 싶었거든.”

“네가 마실 건 남겨두고 줘.”

시도폰은 카리타스가 그런 말을 할 줄 몰랐다며 자기 몫은 챙겨두겠다고 답했다. 카리타스가 근황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지 않으니 시도폰은 화제를 찾으려고 고민하다 누군가를 떠올렸다.

“아페 저하랑은 어떻게 지내?”

찻잔을 들고 있던 손을 내리며 카리타스가 답했다.

“둘 다 일이 바빠서 거의 사무적인 대화만 나누고 있어. 그래도 사이가 나쁜 건 아니니까 걱정하진 마. 참, 그분도 북부 기사단에 지원하려고 하는 것 같던데 혹시 이야기하신 게 있었어?”

“응, 너도 알고 있었구나. 2월에 따로 보낸 편지에 그렇게 적혀있더라고. 아페 님이 지원해주신다면 북부도 좀 더 안전해질 거야. 그래서 말인데, 아페 님의 능력에 대해 지난번에 말한 적이 있었잖아.”

카리타스는 기억을 더듬는 듯 허공을 잠깐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불안을 감지할 수 있다는 능력이 정확하게 어떤 건지 알 수 있을까?”

“내가 하는 예언이랑 비슷하다고 보면 돼. 하지만 그분께서 인지할 수 있는 것들은 나와는 조금 다른 것 같아. 더 흐릿하고 애매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도 그런 느낌만으로도 알 수 있는 것들이 많으니까, 아페 님께서 가주신다면 너희는 더 안전해지겠지.”

시도폰의 기억 속에서, 북부 수행 당시 아페는 가끔 근거 없이 무언가를 확신 있게 말할 때가 있었다. 신께서 귀띔해주신 사실이었다면 그렇게 행동했던 것도 이해가 되었다. 폰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곤 목을 가다듬었다.

“예언을 직접 듣고 느끼는 건 어떤 기분이야? 난 집행자라고 불리는데도 전혀 그런 걸 느끼지 못했으니까 항상 궁금했거든.”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카리타스는 제 어깨를 짓누르는 무형의 존재를 의식했다.

“한참 옛날부터 그랬으니까 뭐라고 말하기가 어렵네, 지금은 그냥 생활의 일부분 같은 거라서. 생생해서 정말 일어난 일인가 하고 놀랄 때가 있기는 한데, 아, 자주 들리거나 보이는 건 아니야. 그리고… 가끔은 왜 이걸 나에게 알려주시는 걸까 궁금해질 때도 있어, 한낱 인간인 내가 함부로 판단하거나 하면 안 되니까 거기서 더 생각하진 않지만 말이야.”

[거짓말이 아주 유창하게 나오는구나.]

키득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리자 카리타스는 바짝 긴장했다.

‘실수했어. 이 정도도 솔직하면 안 되는 거였구나.’

다행히 시도폰에겐 들리지 않았는지, 그의 얼굴은 변함없이 천진했다. 떨리는 손을 감추고자, 카리타스는 찻잔을 내려놓은 뒤 소매 속으로 손을 숨겼다. 지끈거리는 고통이 목을 타고 올라오는 게 느껴졌고, 곧이어 머리가 울렸다.

‘익숙하잖아. 참을 수 있을 거야.’

혹여 신의 목소리가 제 입을 타고 흘러나올까 봐 걱정하며 카리타스는 입을 닫고 미소를 지어 보이려 했다. 하지만 그의 웃는 얼굴을 가장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그런 연기가 먹힐 리 없었다. 걱정스러운 표정의 시도폰이 자리에서 엉거주춤 일어나 카리타스 쪽으로 다가갔다.

“안색이 안 좋아, 혹시 몸이 안 좋은데 내가 억지로 붙잡고 있었던 거야?”

“아냐, 괜찮아. 멀쩡해. 문제없어.”

카리타스는 머리를 벽에 갖다 박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계속 괜찮다고 대답했다. 시도폰의 시야엔 눈을 반쯤 뜬 채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하는 사람이 있었는데도. 의식을 잃지 않으려고 카리타스가 안간힘을 주었지만, 시야가 점차 흐려졌고 꿈을 꾸는 것처럼 몽롱한 느낌이 몰려왔다.

순간, 고통이 없었던 것처럼 그쳤다. 깜짝 놀란 카리타스가 고개를 들자, 시도폰이 마찬가지로 동그란 눈으로 카리타스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손이 카리타스의 어깨에 닿자마자 고통이 사라졌다. 무의식적으로 손을 댄 것이었는지, 시도폰은 카리타스와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놀라며 손을 거두었다.

[그 애한텐 미움받기 싫으니 여기까지만 하지, 거짓말쟁이.]

카리타스는 깨끗하게 사라진 고통을 되새기며 분노를 꾹꾹 눌렀다. 아까는 무슨 일이었냐며 묻는 시도폰에게, 카리타스는 아침에 먹은 게 체했을지도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너무 걱정하게 하지 않으려고 괜찮은 척 한 건데…. 지금은 정말 괜찮아.”

시도폰이 의심스럽게 쳐다보다가 무어라 말을 하려고 입을 열었을 때, 바깥에선 무언가가 쓰러지는 소리가 둔탁하게 울렸다. 곧이어 누군가의 짧은 비명과 분주한 발걸음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이게, 무슨….”

카리타스는 자리에서 일어나려다가 시도폰에게 제지당했다.

“내가 다녀올게, 여기 있어.”

“….”

문을 연 시도폰 앞에는 조금 전 인사했던 호위 기사가 의식을 잃고 쓰러진 채 죽은 듯 누워있었다. 지나가던 사제가 시도폰보다 먼저 그를 발견했는지 치유술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기사는 나아질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되려 얼굴을 찡그리기까지 하자, 시도폰은 그것을 발견하고 사제에게 치유술을 멈추라고 명령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신성력을 더는 주입하지 않자, 얼마 뒤 기사는 정신을 차렸다.

“의식이 돌아왔습니다.”

“자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나?”

“예…? 아뇨, 그저 평소처럼 서 있었을 뿐이었는데 갑자기 머리가 아팠고…. 네, 그러다가 그대로 쓰러진 것 같습니다.”

“지금은 멀쩡해진 것 같으니 다행이네. 교대 근무자는 언제 돌아오나?”

“교대는 한참 멀었습니다. 괜찮습니다.”

기사는 일어서서 몸을 이리저리 구부리더니 시도폰을 맞이했을 때 자세대로 돌아갔다. 카리타스도 그렇고 기사도 그렇고, 갑작스럽게 사람이 아픈 상황이 의아했던 시도폰이었지만, 원인으로 의심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우연히 두 사람이 동시에 아픈 걸 수도 있겠거니 생각했지만 조금 찜찜한 마음으로 시도폰이 돌아왔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바깥에서 호위를 서던 기사가 쓰러졌었어. 치유술이 통하지 않았고, 오히려 신성력을 주입하는 걸 멈추니까 의식을 차리더라고.”

“신성력을 멈추니까 멀쩡해졌다고.”

“갑자기 머리가 아파서 쓰러졌다는데 다시 괜찮아졌다고 근무를 서겠다더라…. 너도 그렇고 저 사람도 그렇고 왜 갑자기 사람들이 아픈 거지?”

“계절이 바뀔 때라 그런 걸지도 몰라.”

카리타스는 시도폰의 말에서 대충 원인을 짐작할 수 있었지만, 헛소리로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시도폰은 신의 압박에서조차 자유로운 거구나. 나한테, 그 기사보다 더 가까운 거리에 있었으면서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거잖아.’

뒤숭숭하니 먹는 것이나 입는 것을 조심하라고 경고하며 시도폰이 떠났다. 또다시 혼자가 된 카리타스는 기사에게 속으로 사과했다. 당연하게도 입 밖으로 그 사과를 전할 순 없었기에 카리타스는 제 얼굴을 손으로 마구 문질렀다.

‘내가 잘못해서 또 누군가 다쳤어.’

그나마 시도폰이 무사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래, 신조차 너를 해칠 수 없는 거라면 이 세상 누구도 네게 상처입힐 순 없을 거야. 카리타스가 그런 생각으로 침묵할 때 시도폰은 복도를 지나치다가 피에르 경과 그 뒤의 무리를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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