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fido

3부 3화

“우리의 등불이신 집행자를 뵙습니다.”

피에르가 먼저 인사했고 뒤이어 후보자들이 한 명씩 자신을 소개했다. 카리타스의 호위를 맡을 사람이라고 하니 시도폰도 그들을 면밀히 살폈는데, 집행자를 대면했다는 사실에 긴장한 이들만 있을 뿐, 다행히 문제가 있어 보이는 이는 없었다. 다만 시도폰이 보기엔 이들의 무위가 다소 부족해 보였다는 게 문제였다. 피에르는 그런 시도폰의 시선을 알아채고 급하게 덧붙였다.

“귀인을 호위하는 직책이니 모든 조건을 따져 뽑은 이들입니다. 물론 바로 투입되는 것은 아닙니다. 적어도 2년은 제가 함께 근무할 예정입니다.”

“…믿겠네. 어떤 이가 그분을 지키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누가 되더라도 잘 부탁하네. 그분이 계시지 않았다면 나도 여기 없었을 테니까.”

시도폰이 말을 마치고 자리를 뜨자, 피에르와 후보자들은 그의 뒷모습에 고개를 숙였다. 사실 시도폰은 피에르가 따졌다는 조건에 신분이 포함되어 있었는지 묻고 싶었지만, 당연히 그랬을 거라는 사실을 굳이 확인하고 싶지 않아서 생각은 그것만으로 그쳤다. 수행단 숙소로 돌아오자 두코와 프라이에가 기다리고 있었다며 맞이했다.

“너희가 있으니까 여기가 북부 같네.”

시도폰이 소파에 몸을 묻으며 눈을 감았다. 너무나 편해 보이는 모습에 두코는 이제 남부가 어색해진 게 아니냐고 물었고, 시도폰은 여전히 눈을 감은 채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안 온 지 너무 오래됐어. 신전은 남부에 살 때도 잘 와보진 않았으니까…. 그냥 여기 자체가 어색한 느낌이야.”

“다음부턴 아예 거주관에서 자는 게 어때?”

프라이에가 물었다.

“나쁘지 않은 생각이다. 오토 대주교님도 오랜만에 직접 뵙고.”

“참, 내가 제안해놓고도 이런 말 하면 좀 그렇긴 한데, 그분이 널 독방에 가두셨었다고 들었던 것 같아. 만나도 괜찮겠어?”

“그…몇 번 가봤더니 그렇게 끔찍하진 않더라고. 내가 규칙을 자주 어기기도 했고.”

“좋네, 그럼 다음번엔 거기서 자자. 내 방은 이미 누군가한테 뺏겼겠지만.”

두코의 말에 시도폰이 정신을 차렸다.

“아냐, 거기 방 부족할 거야. 우리 살 때도 거의 정원이 다 찬 상태였고 빈방이 없었잖아. 가면 창고 방에서 자야 할걸? 아니면 대주교님 집무실이나.”

“아아…, 좋다 말았네.”

어느새 거주관에 있을 적의 이야기로 화제가 넘어갔고 세 사람은 저녁 식사 전까지 이야기꽃을 피웠다. 한편, 카리타스는 시도폰이 가고 난 후 방문한 피에르와 그 무리를 맞이했는데, 시도폰이 후보자들을 살폈던 것과 다르게 그는 그들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다.

‘엄밀하게 고르고 고른 교황의 끄나풀이겠지. 신전 안에서 칼부림 같은 일도 없고, 있다고 해도 내가 다치는 게 더 힘들 텐데 무위를 제대로 봤을 리가.’

피에르의 소개를 흘려듣던 카리타스는 잘 듣는 척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모두 빠져나간 뒤 카리타스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인 포장지와 리본을 잘 개어서 책상에 넣은 뒤, 카리타스는 물병에 담긴 꽃에 다가갔다. 그는 먼 거리에서 만개한 꽃의 향기를 맡다가, 조금 더 고개를 숙여서 얼굴을 꽃다발 속에 파묻었다.

덜 핀 꽃봉오리와 녹색의 잎에서 풋풋한 냄새가 났다. 그게 꼭 제 앞에서의 시도폰 같아서, 카리타스는 그렇게 서서 한참을 꽃을 끌어안고 있었다.


저녁 시간이 끝나고, 두코는 부른 배를 두드리며 만족스럽게 복도를 거닐었다.

“해를 길게 받아서 그런가? 채소 요리가 그렇게 맛있을 줄 몰랐어. 카리타스는 매일 이런 거 먹고 사는 거였구나, 부러워.”

그 뒤에선 비슷한 자세로 뒤뚱뒤뚱 걸어오는 프라이에가 있었다.

“정말… 맛있었어.”

“그나저나 우리 대장, 아니 집행자께서는 어디 가셨대?”

“아까 네가 열심히 먹고 있을 때 카리타스랑 같이 일어나서 나가는 것만 봤어. 난 너 기다린다고 앉아있느라 그 이상으로는 못 봤고.”

“또 거기서 자고 오려나.”

“그건 아닐 것 같은데, 지난번에 그랬다가 쫓겨났다고 하지 않았나?”

“아냐, 바닥에서 따로 자는 거로 합의 봤다나 봐.”

집행자를 바닥에 눕혀두고 혼자 침대에서 자는 성녀라니, 프라이에는 어이가 없어서 한숨을 쉬었다. 두코는 비슷한 상황을 상상하다가 웃음을 터트렸고, 술을 마실 생각이 있냐고 물었다.

“술? 신전엔 없을 거 아냐. 밖에 나가자고?”

“응, 오랜만에 길거리 구경이 하고 싶거든.”

“그래 가자, 너 혼자 보내기 무서우니까. 대신 다른 애들한테 말해두고 가게 숙소는 들러야 해.”

네에-라며 장난스럽게 대답한 두코가 제복 망토를 벗으며 달리다시피 걸었다.

“이미 몇 잔 마신 거 아냐?”

뒤따르는 프라이에는 그렇게 지적하면서도 덩달아 들떠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마을에 도착한 두코는 이미 정해놓기라도 한 것처럼 한 술집으로 직행했다. 술집의 문을 열자 왁자지껄한 소리가 터져 나왔고 그 소리에 프라이에는 약간 위축된 몸짓으로 두코를 따라 들어갔다.

주문도 하지 않고 두코가 누군가가 이미 앉아있는 테이블에 털썩 앉아버리자 프라이에는 서둘러 자리 주인의 얼굴을 확인했다.

“이디스랑 오드샤? 뭐야 이미 약속이 있었던 거였어?”

“딩동댕, 이디스가 오랜만에 자기 언니랑 만난다고 하길래 나도 가겠다고 했어.”

프라이에는 왜 미리 말하지 않았냐고 핀잔을 주는 대신 오드샤에게 인사했다.

“이쪽도 잘 지냈다. 사실 신전은 너무 평화로워서 할 일이 순찰 말고는 거의 없다시피 하지. 그런데 집행자님은 어디에 두고 너희만 왔나?”

술을 주문한 두코가 대답했다.

“아마 카리… 성녀님이랑 잘 놀고 계실 거야. 저녁 식사 이후로 같이 사라지셨으니까.”

“북부에 있을 때처럼 여전히 두 분은 사이가 좋으시군.”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인 오드샤를 보며 프라이에가 미묘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디스가 세 사람의 북부 수행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말하는 바람에 그쪽으로 화제가 이동했다.

술과 이야기가 뒤섞이면서 테이블의 분위기는 점점 고조되었다. 마침내 시도폰이 각성한 이야기까지 나오자, 이디스는 왜 자신은 그걸 볼 수 없었냐고 한탄하며 술잔을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두코는 시체를 치우느라 심적으로, 육체적으로도 지쳤다는 말은 굳이 꺼내지 않았다.

“네가 없었던 게 다행이었지. 거기 있었으면 넌 분명 크게 다쳤거나 죽었을지도 몰라. 함부로 그런 이야기 하지 마라.”

“…알겠어요, 죄송합니다, 언니.”

오드샤는 당연한 지적을 했지만, 이디스가 시무룩해지자 두코가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이디스는 집행자님 잠버릇 알아? 주변에 있는 거 꼭 끌어안고 자는 버릇이 있거든. 항상 성녀님이 그거에 당해서 곤란해하셨지.”

“이건 또 새로운 이야기네요? 제가 봤을 땐 항상 혼자 주무시는 것 같았는데요.”

“그야 지금은 집행자니까 개인실을 쓰는 거지, 일반 수행원일 때는 카리…아니, 성녀님이랑 같이 주무실 때도 있었어.”

이디스가 눈을 빛내자 프라이에도 끼어들었다.

“오늘도 아마 성녀님 방에서 자고 올걸? 지난번처럼 바닥에서 잘 거라고 하시던데.”

“잠깐, 두 분이 지금도 같이 주무신다고? 그렇게 직책이 있으신 분들이 왜 같은 방을 쓰지?”

“정확하게는 같은 방을 쓰는 게 아니라 잠만 거기서 자는 거야, 뭐가 그렇게 이상한데?”

프라이에가 물었고 두코와 이디스는 침묵했다. 프라이에는 자각하지 못했지만, 그 테이블의 네 사람 중 평민은 프라이에 혼자였고 나머지 셋은 귀족이었다. 예법을 제대로 배운 입장에서 그 두 사람의 동침은 확실히 이상한 것이 맞았다. 오드샤는 잠깐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다소 극단적인 예시이기는 하지만…, 베론 부 기사단장님과 교황 성하께서 같은 방에서 주무신다고 생각해봐라. 아무리 베론 님께서 바닥에서 주무신다고 한들, 전시가 아닌 이상에야 그런 상황은 어색하지 않겠나?”

“그건 확실히 이상한 것 같긴 하지만….”

프라이에는 그런 광경을 상상하다가 그것만으로도 죄를 짓는 것 같아, 생각을 떨쳐내고자 고개를 세게 저었다. 조용해진 테이블에선 술을 넘기는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이디스는 언니가 눈치를 좀 더 챙겼으면 좋았으리라고 생각하며 두코에게 뭐라도 해보라는 눈짓을 보냈다.

“그, 두 사람은 그런 직책을 맡기 전에 친했으니까 그런 거야. 네 비유랑은 좀 다르지 않나?”

“맞아요. 게다가 북부랑 남부가 잘 지내면 좋은 거죠, 그죠 언니?”

오드샤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이디스를 바라보았다.

“나머지 두 사람이야 그렇다고 해도, 네가 그런 말을 하다니 의외구나. 누구보다 행동거지에 엄격하게 구는 게 너였을 텐데.”

‘그러고 보니, 이디스는 오드샤가 귀족적이지 않은 행동을 했던 게 부끄럽다고 했었지. 그렇게 생각하니까 이디스가 이상하게 구는 것 같기도 하고.’

술을 한 모금 마신 두코는 폰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를 떠올렸다. 북부에 있을 적, 이디스는 어떤 사람이냐고 두코가 물었을 때 폰은 잠시 고민한 후 대답했었다.

‘그게… 이디스는 오드샤의 태도가 문제라고 지적하긴 했지만, 그 비판의 근거가 도덕성이 아니라 귀족적이지 못하다는 거였다는 게 좀 꺼림칙하긴 했어. 그 자리에서 그런 것까지 지적하고 싶지 않아서 넘어갔지만 말이야.’

어떤 대답이 나올지 궁금했던 두코는 이디스를 돕지 않고 바라보기만 했다.

“사, 사람이 예외를 두고 싶어질 수도 있는 거죠. 어떻게 항상 똑같을 수가 있겠어요?”

안쓰러울 정도로 떨리는 목소리에, 오드샤는 손을 내저으며 술을 들이켰다.

“됐다, 넌 여전히 속을 모르겠구나.”

그 말을 끝으로 술자리가 흐지부지 마무리되었고, 이디스는 오드샤가 걱정된다며 그를 따라 제2 신전으로 향했다. 남은 두 사람은 이 이야기를 폰에게는 숨기기로 하고 숙소로 돌아갔고, 다음 날 아침 댓바람부터 투덜거리며 돌아오는 시도폰을 볼 수 있었다.


네 사람이 술자리에서 찌들어 가고 있을 때, 침대에 기대앉은 카리타스는 제 방의 바닥에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있는 시도폰을 내려다보다가 물었다.

“정말 거기서 자려고? 감기 걸려, 올라와도 괜찮아.”

“아냐, 나 여기서 자도 돼. 게다가 벌써 4월인데 뭐.”

씩씩하게 대답한 시도폰은 여전히 서류를 붙들고 있는 카리타스를 빤히 쳐다보았다.

“언제 잘 거야?”

“미안… 좀 걸릴 거야. 먼저 자.”

하지만 시도폰은 의리를 지키겠다며 고개를 젓고는 카리타스의 침대에 등을 기댔다.

‘일을 도와주고 싶어도 방법이 없네. 그냥 방으로 돌아가도 카리는 별로 신경 안 쓸 것 같지만 같이 있고 싶은걸. 아까 일도 있으니까 조금만 더 지켜보자.’

카리타스는 서류 끄트머리에 닿을 것처럼 보이는 갈색 머리통을 발견하고 조용히 미소지었다. 복슬복슬해 보이는 머리카락이 동그랗게 말린 채, 시야 한구석에서 숨소리에 맞추어 오르내리고 있었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카리타스가 서류를 다 처리하고 누워야겠다고 다짐했을 때, 시도폰은 이미 곯아떨어져서 새근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런 모습에 장난기가 돌아, 카리타스는 시도폰의 머리카락 덩어리를 살짝 잡아보았다.

‘내 머리카락이랑 다른 것도 없는데 왜 이렇게 재밌지?’

조금 더 괴롭히고 나서, 카리타스는 폰의 머리에서 손을 뗐다. 그리고 침대에서 조심히 일어나 시도폰을 피해 방을 건넜고 문을 열어 시종을 불렀다. 시도폰을 들어서 침대 위로 옮기라는 지시에 시종이 망설였다.

“다리 쪽을 들게, 상체는 내가 들 테니까.”

그제야 안심한 시종이 카리타스를 도와 시도폰을 침대에 올렸다. 체구가 그리 큰 편이 아니어서 올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렇지만 침대의 반 이상이 이미 차버렸고 카리타스가 아무런 말 없이 시도폰을 보고만 있자, 시종이 눈치를 보았다.

“성녀님, 그러면 빈방을 준비할까요? 공간이 부족할 것 같습니다만.”

“아…아니, 괜찮네. 이만 나가보게.”

시종이 나가자마자, 카리타스는 허리를 숙여 시도폰의 머리끈을 풀었다. 뭉텅이로 풀리는 머리카락이 엉키지 않게 다듬은 카리타스가 다시 일어났다.

지난번처럼 아예 침대와 바닥처럼 분리된 공간에서 자는 건 원하지 않았기에, 카리타스는 천장을 보고 누운 시도폰의 몸을 살짝 굴려서 벽을 보게 했다. 그리고 곤히 잠든 몸을 더 밀어서 자신이 누울 공간을 확보한 카리타스가 드디어 침대에 누웠다.

‘이러면 괜찮겠지. 평소랑 다르게 침대가 따뜻하네.’

그렇게 카리타스가 눈을 감았고, 다시 떴을 땐 해가 뜨기 직전이었다.

적막한 새벽, 카리타스는 제 몸에 얹어진 팔을 보고 한숨조차 쉬지 않았다. 한 뼘 반 정도 되는 거리에서 시도폰이 숨 쉬고 있었고, 그의 팔은 카리타스를 베개처럼 꼭 안은 채 미동도 없었다.

이렇게 될 줄 몰랐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었다. 어쩌면 이런 상황이 생길지도 모르겠다고 예상하기도 했고, 내심 기대한 것도 있었다. 자기도 모르게 카리타스는 손을 들어 시도폰의 볼을 찔렀다. 살짝 미간을 찡그리긴 했지만, 시도폰이 깨는 일은 없었다.

‘조금만 더 가까이 가봐도 괜찮으려나.’

두 사람의 거리가 반으로 줄었다. 긴장한 카리타스는 숨을 죽이고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로 가득 찬 머리를 들었다. 들키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이 들었지만, 들킨다고 해도 시도폰이 싫어할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더 강했다.

‘거창하게 고백이라는 것도 하지 말고 그냥 자연스럽게 그런 사이가 될 수 있다면, 그게 더 좋을 것 같긴 해.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게 있으니까.’

머리 한구석으로 이성을 밀어놓고 카리타스는 조금 더 다가갔다. 마침내 입술이 닿으려던 그 순간,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에 놀란 카리타스가 제자리에서 멈췄고, 설상가상으로 시도폰이 눈을 떴다. 당황한 카리타스가 뭐라고 변명하고자 입을 열었을 때, 시도폰은 새빨개진 얼굴로 거리를 벌렸다.

너무 빠르게 멀어지는 바람에 폰은 벽에다가 머리를 박고 낑낑거렸고 그 모습에 카리타스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고민했다.

쾅-하는 엄청난 소리가 들리자 시종이 허락도 없이 문을 열었다가, 카리타스의 서늘한 목소리에 재빠르게 문을 닫고 물러났다. 문을 노려보던 카리타스는 고개를 돌려 여전히 제 머리를 감싸고 있는 폰을 향했다.

“깨우려고 가까이 갔던 거였어. 머리는 괜찮아?”

“…금방 치유됐어. 알잖아, 이럴 것 같아서 내가 지난번처럼 바닥에서 자겠다고 했던 건데. 치사하게 내가 자는 동안 옮겨버리고.”

이불을 돌돌 말아 자신을 감싼 시도폰은 고개를 들지 않고 대답했다. 시도폰의 기분을 풀어주고자 카리타스가 허락도 없이 몸에 손을 대서 미안하다고 사과했지만, 이불 덩어리는 풀리지 않았다. 되려 단단해진 듯한 모습에, 카리타스는 다른 문제가 있냐고 물었다.

“있지. 엄청 커다란 문제가.”

“어떤 문제인지 말해줄래? 해결해볼게.”

“네 잘못이 아니라서 그건 힘들 거야. 내 입으로 말하기 부끄럽긴 한데, 내가 너무 강하다는 게 문제거든. 내가 널 세게 껴안아서 어디 다치기라도 하면 어쩔 뻔했어?”

“진심으로 네가 날 다치게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거야? 여태껏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도?”

“이번이 그 한 번이 될 수도 있었잖아.”

생각보다 진지하게 화를 내는 폰의 모습에, 카리타스는 망설였다. 자신도 다치면 금방 회복이 된다고 말해봤자 역효과만 날 것 같았다.

결국, 카리타스가 계속 미안하다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여러 번 사과한 뒤에야 시도폰이 이불을 걷었다. 그런데도 화가 풀린 건 아닌지 시도폰은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나가겠다고 말했고, 대답도 듣지 않은 채 망설임 없이 방을 나섰다.

혼자 덜렁 남겨진 카리타스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렇게까지 반응할 일이었던 건… 아닌 것 같았는데.’

시종이 죽을죄를 지었다고 연신 사과했지만, 카리타스의 귀에 그런 조잡한 말은 닿지 않았다. 그것보단 폰이 왜 저렇게 민감하게 대응한 건지 알아내는 게 중요했으니까.

아무리 머리를 굴려보아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카리타스는 휑하게 열려있는 문을 허탈하게 바라만 보다가 침대에서 일어나 일과를 시작했다.

‘나중에 물어보자,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아까의 일을 잊고자 카리타스는 눈을 꾹 감았다가 다시 떴다. 한편, 급하게 카리타스의 방을 뛰쳐나갔던 폰은 수행단이 머무는 숙소의 문을 조심히 열었다. 북부의 하루는 남부보다 늦게 시작하는 편이라, 아직 깬 사람보다는 자는 사람이 많았다. 물론, 예외는 있었다.

“어라, 일어나자마자 여기 온 거야? 카리타스랑 같이 조식도 먹을 줄 알았는데.”

“…카리타스가 아침부터 바쁘다고 해서 나왔어,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아….”

술을 많이 마신 날의 다음 날엔 원래 일찍 눈이 떠진다고 말하려던 프라이에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둘러댔다. 오드샤와 있었던 일을 어디까지 말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는데, 두코는 아직 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도폰은 다른 방에 들러서 잠옷을 갈아입고 나왔는데, 그제야 프라이에는 그의 표정이 그리 밝지 않다는 것을 알아챘다.

“다들 아직 자는구나, 조식은 지금 가도 주겠지? 나랑 밥 먹으러 가자.”

넌지시 어제 오드샤가 지적했던 걸 언급하려던 프라이에는 입을 닫고 고개만 끄덕였다.

‘그래도 걱정되는데, 남들이 안 좋게 보는 것도 문제지만 저렇게 돌아왔다는 건 둘 사이에도 무슨 문제가 있었다는 거 아니야?’

프라이에의 속이 타들어 가든 말든, 시도폰은 배가 고팠기에 서둘러 식당으로 향했다. 티 나지 않게 주위를 살핀 시도폰은 카리타스가 없다는 걸 확인하고 자리에 앉았다. 두 사람이 식사를 마칠 때까지 카리타스는 식당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나만 두고 밥을 먹고 왔다는 거야?”

어느새 일어나서 숙소 문에 삐딱하게 기대어 선 두코가 툴툴거렸다.

“어…. 한 번 정도는 더 먹을 수 있을 것 같긴 해.”

“됐거든. 어차피 아직도 자는 녀석들 많으니까 그 애들이랑 같이 나중에 먹지 뭐. 그나저나 폰, 왜 이렇게 일찍 돌아왔어? 또 카리타스 껴안고 자다가 쫓겨난 거야?”

두코의 말에 폰이 그를 외면하듯 고개를 돌렸다. 그러곤 중얼거리듯 자초지종을 설명했는데 그걸 듣고 있는 두코의 표정이 가관이라 프라이에는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냥 깨어있을 때만 거기 있고, 잘 때는 오는 게 좋을 것 같네….”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프라이에가 뱉은 말이었다. 폰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아쉬운 듯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 보였는데, 그 짧은 순간 두코는 프라이에와 눈빛을 교환했다.

“사실 폰, 너희 둘이 같이 자는 거 말인데 이 기회에 좀 자제하는 게 좋을 것 같긴 해. 너희가 둘 다 평범한 여자애였으면 별로 문제가 안 되었겠지만, 하나는 성녀고 하나는 집행자잖아. 직책을 생각하면 각자 따로 자는 게 맞아.”

프라이에는 의아해하는 폰에게 자신도 처음에는 뭐가 문제인지 몰랐다고 말해주면서 전날 오드샤가 해준 이야기를 전달했다.

“그게 예법에 안 맞는 일이었다고…. 몰랐어, 그냥 잠을 자는 것뿐이잖아.”

“여태까지야 너희가 볼 시간도 없고 하니까 다들 뭐라 안 하긴 했지만 네가 정식으로 기사단장이 되면 그런 건 뒷말이 나올 수밖에 없어. 우리야 너희가 친하니까 같이 오래 있고 싶은 걸 이해해서 내버려 두는 거지만, 적어도 신전에 있을 땐 조심해야 해.”

이런 말은 하기 싫었다며 두코가 메슥거린다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셋이서 이야기하는 동안 사람들이 하나둘 일어나기 시작했기 때문에 대화는 거기서 끝이었다. 시무룩한 폰에게 프라이에가 기분 전환이라도 할 겸 거주관을 가보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폰은 잠깐 고민을 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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