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fido

3부 17화

저녁 연회..와 배고픈 시도폰

교황보단 젊게 보이는 국왕이 행렬의 맨 앞에 서 있었고 그의 옆엔 왕비가, 뒤엔 왕가의 자식들이 줄을 이었다. 개중 가장 앞에 선 왕자가 시도폰과 비슷한 연배로 보였는데, 사소한 문제가 하나 있었다. 그와 시도폰의 체격이 비슷해 보인다는 점이었다.

‘괜찮으려나….’

시도폰은 그를 보다가 베론을 흘끔 쳐다보았다. 아까 급하게 춤 연습 상대가 되어줬던 베론과 시도폰은 머리 하나만큼의 키 차이가 있었고 시도폰도 당연히 그 정도의 차이가 익숙했다. 문제는 그것만 있는 게 아니었다. 베론은 춤을 추는 내내 시도폰에게 제발 힘을 빼라고 이야기했고, 시도폰은 뺀 거라고 변명했다.

‘손에도 힘 빼십시오. 이러다가 상대방 손이 빠지겠습니다. 저야 버틸 수 있지만, 후방의 인간들이 이걸 견딜 수 있을 거라고 보십니까?’

‘또! 허리에 힘주고 버티지 마십시오, 동작이 너무 뻣뻣하잖습니까. 이럴 거면 차라리 당신께서 남성 포지션을 맡으시는 게 낫겠군요.’

베론이 한 말에 시도폰이 무심코 그래도 되냐고 물었고, 바로 퇴짜를 맞았었다.

‘남한테 몸을 맡기는 게 너무 어색해!’

연회장으로 이동하기 직전, 시도폰은 그렇게 말하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베론은 그를 한심하게 쳐다보다가 갈 시간이라고 냉정하게 말하고 돌아섰다.

대충 그런 생각에 빠져있던 시도폰은 어느새 교황과 국왕의 축하 인사가 끝나고 사람들이 그에게 인사하러 다가오는 걸 알아차렸다. 교황과 함께 그에게 다가온 국왕이 먼저 시도폰에게 고개를 숙였다.

“우리의 등불이신 집행자를 뵙습니다.”

“이 땅의 대행자에게 인사드립니다.”

시도폰은 미리 준비해둔 인사를 건넸다. 모든 땅의 주인은 당연하게도 위대하신 한 분뿐이었으므로 국왕은 함부로 그 땅의 주인이라 자칭할 수 없었다. 국왕의 뒤로 그의 자식들이 줄줄이 시도폰에게 인사를 올렸다. 초상화와 이름을 비교해가며 사람들의 얼굴을 살피던 시도폰은 익숙한 얼굴을 발견하고 무심코 미소를 지었다.

아세쿠토레는 국왕의 명령으로 사제가 아닌 왕가의 자제로서 참석하였는데, 그의 금발과 푸른 눈에 잘 어울리는 짙은 하늘색 옷이 바닥에 닿을 듯 말 듯 움직이며 시도폰에게 다가왔다. 옷 끝단엔 왕실을 상징하는 하얀 백합이 수놓아져 있었고, 꽃의 테두리는 금실로 되어있어 촛불 아래에서도 반짝반짝 빛났다.

“우리의 등불이신 집행자를 뵙습니다. 아세쿠토레 수페르피키에스, 인사 올립니다.”

“반갑습니다. 아페 전하.”

시도폰이 그의 애칭을 부르자 국왕은 흡족한 듯 미소를 지었고, 아페는 잠깐 멍하니 그를 바라보다가 급하게 고개를 숙이고 뒷사람에게 자리를 비켰다. 마침내 모두의 인사가 끝나고 잔잔한 음악이 울렸다. 사람들은 곁에 있는 친지나 약혼자에게 먼저 손을 건넸고, 이들은 음악의 박자에 맞춰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예상했던 대로 왕자가 시도폰에게 춤을 청했는데, 그 순간 시도폰은 제 뒤통수를 누군가 빤히 응시하고 있다고 느꼈다.

“왜 그러십니까?”

“아니, 아무것도 아닐세.”

빠르게 뒤를 돌아본 시도폰은 제 뒤에서 팔짱이나 끼고 있는 두코를 발견했다. 하지만 두코는 막 돌아본 시도폰의 움직임에 반응해 그를 쳐다본 것 같아서, 시도폰은 두코에게 창을 맡기고 되돌아서 왕자의 손을 잡았다. 눈높이가 비슷했던지라 시선 처리가 어려웠던 시도폰이 대충 먼 곳을 바라보며 몸을 움직였고, 왕자는 몇 발자국 떼고 나서야 시도폰에게 말을 걸었다.

“수행자가 아닌 속세의 인간이라 춤 신청을 받아주지 않으시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괜한 걱정이었나 봅니다.”

시도폰은 툭하면 놀아달라고 자신의 옷자락을 잡아끄는 북부의 아이들을 떠올렸다. 아이들은 아직 집행자가 어떤 존재인지, 기사단장이 어떤 직위인지 몰랐기에, 시도폰을 그들을 잘 놀아주는 착한 기사님 정도로 보고 있을 것이다.

“아닙니다. 제가 무엇하러 저하의 호의를 거절하겠습니까? 사회는 수행자들로만 이끌어 갈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는 모두 한 분의 은혜 아래에서 태어났으니 그런 것을 염려하실 이유가 없지요.”

왕자는 그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도폰은 왕실과 교회에 관한 문답을 왕자와 주고받으면서도 계속 자신이 제대로 춤을 추고 있는 게 맞는지 신경이 쓰였다. 왕자는 당연히 능숙하게 춤을 이끌었다.

‘둘 다 못 추는 것보단 한 사람이라도 잘 추는 게 낫지. 다행이다.’

시도폰은 자신이 박자만 맞추고 있을 뿐, 춤을 추고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에 조금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박자라도 맞추는 게 어디냐고 위안했다. 조금 빨라진 음악에 소매가 아까보다 크게 펄럭였다. 잠깐 드러난 하늘색 줄에, 왕자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손목에 리본을 메셨군요. 이제야 발견했습니다. 남부로 들어오실 때 아이들이 주신 것도 그렇게 써주시다니, 위대하신 분의 은혜가 저 아래까지 흐르는 걸 보는 것 같아 감격스럽습니다.”

자수가 다소, 아니 좀 많이 삐뚤게 되어있기는 했지만, 아이들이 만들었다고 보일 정도였던가. 시도폰은 카리타스의 명예를 위해 진실을 입속으로 삼켰다. 그래도 변론은 해야 했으니 시도폰은 간신히 입을 열었다.

“모양이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이걸 만들어서 전해주기까지의 마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제로서는 참으로 모범적인 대답이었으나 그것은 왕자의 말에 숨겨진 뜻을 알아채지 못한 듯한 대답이었다. 우연히 그 두 사람을 지나치던 솔라가 그 대화를 듣고는 미세하게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상대로 춤을 추고 있던 크로마는 솔라에게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니라면 표정이 그럴 리가 없지요. 집행자께서 저분께 무례한 말을 하셨을 리는 없고, 그 반대입니까?”

솔라는 의외라는 표정으로 크로마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알아챘냐고 물어볼 필요는 없었다. 시도폰이 다섯 발자국은 멀어지고 나서야 솔라가 입을 열었다.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하도록 그는 목소리를 낮추어 왕자가 한 말을 전달했다. 크로마는 마찬가지로 작은 목소리로 탄식했다.

“왕족이 참여하는 연회에 그런 걸 하고 오냐고 아주아주 돌려서 말씀하셨군요. 집행자께선 사람을 의심하지 않는 편이신 데다 이번 연회에서 왕족과 친밀해질 의향이 있어 보이셨으니… 굳이 숨겨진 뜻 같은 걸 찾을 생각은 하지 않으신 거겠죠.”

“모르시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감히 저분께 저런 말을 하는 이유가 궁금하군요.”

솔라는 그 뒤에 이어질 몇 마디를 삼켰다. 다만 그는 평소에도 딱히 좋은 표정이 아니었기에 그의 차가운 분노를 알아차린 건 크로마뿐이었다. 시도폰은 이후로도 짝을 바꿔가며 여럿과 춤을 추었다. 완전히 지친 그는 누구와도 춤을 추지 않고 교황 옆에서 가만히 서 있는 카리타스를 발견하고 부러워했다. 곡이 끝나고 기운이 쭉 빠져서 돌아온 시도폰을 프라이에가 맞이했다. 성녀를 부러워하는 집행자라니, 프라이에는 그의 한탄을 듣고는 이렇게 대답했다.

“감히 누가 성녀님 몸에 손을 대겠습니까? 집행자께선 정치적 입지가 있으시니까 다들 잘 보이려고 춤 신청을 하는 거지만, 성녀님은 완전히 중립이시니 신청할 핑계도 없지요.”

프라이에의 말에 시도폰은 양심이 콕콕 찔려왔다.

‘그런 말을 하면 같이 잘 때마다 그 애를 껴안고 안 놔준 내가 뭐가 돼….’

“큼, 나도 알고 있네. 하지만 부러운 건 어쩔 수 없잖은가? 너무 많은 사람을, 그것도 쉴 틈 없이 상대했더니 이젠 슬슬 사람들 이름이랑 얼굴이 기억나지도 않아. 이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중얼거리던 시도폰에게 프라이에가 접시를 내밀었다. 그는 테이블에서 떠나지 않고 꾸준히 음식을 먹고 있는 북부 기사단을 가리키며 가보라고 말했다. 어정쩡한 자세로 접시를 든 시도폰이 테이블로 다가갔고, 기사들은 열심히 입을 움직이며 ‘단장님 오셨습니까?’, ‘음식이 정말 맛있습니다.’, ‘이것도 드셔보십쇼.’라고 말했다. 한 기사가 건넨 포크와 나이프를 받아든 시도폰이 디저트부터 집으며 말했다.

“다 먹고 말해도 되네. 그런데 자네들은 춤 신청 안 받았나? 연회 초반부터 계속 뭘 먹고 있었던 거 같은데.”

순간 테이블엔 정적이 흘렀다. 바쁘게 움직이던 기사들의 포크와 나이프가 시간이 멈춘 것처럼 굳어버렸고, 이 싸늘한 기류에 시도폰은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누군가가 물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저희한테 신청해봤자 뭐가 떨어지겠습니까?”

“눈 맞으면 북부로 꼼짝없이 가게 되는데 누가 귀한 자식들이 저희랑 어울리게 두겠습니까?”

“안 그래도 어떤 영애께 춤 신청을 하려고 했는데 뒤에서 저를 노려보는 영식들이 있으시더군요…. 저희도 단장님처럼 사람들이랑 춤도 추고 하고 싶었습니다.”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거였다니, 시도폰은 훈련으로 다져진 근육으로 팽팽해진 기사들의 팔이 남의 손을 잡는 게 아니라 식기나 잡은 게 안쓰러워 보였다. 그렇다고 남의 집 자식들을 강제로 데려올 순 없었으니, 시도폰은 우리끼리라도 하면 안 되겠냐고 물었다.

“그렇게 하면 평소 저희 식사랑 뭐가 다릅니까?”

누군가가 반론했다. 시도폰이 음악이 다르지 않냐고 답하자 반론을 제기했던 목소리가 사라졌다. 확실히 평소 식사의 반주는 술 취한 기사들의 민요였으니, 궁정에서 데려온 악사들의 음악과 비견될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상대방에게 춤 신청을 하는 기사들은 나오지 않았다.

크로마가 솔라를 깊이 존경하고 두 사람이 자주 짝을 이루어 작전을 수행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기에 아까 두 사람이 춤을 추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지만, 그 정도도 아닌 두 사람이 춤을 춘다는 것은 염문이 나기에 딱 좋은 근거가 될 게 뻔했기 때문이다. 다들 눈치만 보며 선뜻 나서지 못하자 시도폰은 한숨을 쉬며 부대장들이 모범을 보여달라고 부탁했다.

“갑자기 부대장을 들먹이시다니, 제가 아까 놀려서 그러시는 겁니까?”

두코가 삐쭉거리며 앞으로 나섰다. 급하게 입가에 묻은 것들을 닦아내느라 여전히 냅킨을 한 손에 쥔 상태였다. 크로마가 제 상관의 그런 꼴을 보다 못하고 냅킨을 뺏어서 가버렸고, 이디스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굳어있는 프라이에를 끌고 왔다. 그러곤 크로마가 이디스에게 손을 내밀어 버려서 그들의 상관이 되는 두 사람도 어쩔 수 없이 손을 맞잡았다.

“저기, 이디스 저기 저분이 네 언니시지? 너무 닮았는데 표정 때문에 순간 못 알아봤어.”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크로마가 이디스의 등 너머의 누군가를 가리켰고, 이디스는 한숨을 쉬었다. 그는 괜찮다고 말하며 스텝을 밟았고, 테이블에서 멀어졌다. 얼떨결에 두코가 내민 손을 잡은 프라이에는 굳은 표정 그대로였다.

“싫은 거면 말해, 적당히 추는 척만 하면 다른 녀석들이 자기들끼리 추느라 바빠서 이쪽은 안 볼 테니까. 내가 어떻게든 해보지 뭐.”

프라이에의 표정을 살핀 두코가 애써 무심한 척 말했다. 시끄러운 속마음을 감춘 두코가 정말로 태연해 보여서 프라이에도 긴장을 풀었다. 그는 기사들이 긴장한 것과 다르게 춤 신청은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두코가 움직이는 대로 따라갔다.

“…싫지 않아, 그럴 리 없잖아. 그냥 내가 춤이 익숙하지 않아서 그래. 네 발이라도 밟으면 어떡하지?”

“그럴 일 없게 해야지. 할 거면 집중해서 잘 따라와.”

그렇게 말하며 두코가 손에 힘을 주었다. 방금 대화를 크로마가 들었다간 한소리 들었을 게 뻔하다. 제 부관이 귀가 어둡길 바라며 두코는 프라이에를 이끌었다. 분위기가 변하자 기사들도 제 옆에 있는 동료에게 손을 내밀었고, 동성일 경우에 포지션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동전 앞면, 뒷면으로 결정하자며 여기저기서 동전을 던져댔다. 다시 살아난 분위기에 시도폰이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 누군가 그에게 다가왔다.

“아페 저하.”

“안녕하세요, 아까 춤 신청을 못 드려서 와봤어요. 부탁드려도 될까요?”

당연히 괜찮다며 시도폰이 접시를 내려놓고 아페가 내민 손을 잡았다. 그는 아페가 많이 컸다며 미소를 지었지만, 아페는 시도폰보다 여전히 작다며 불만스러워했다.

“목표가 저였습니까? 그럼 저도 멈춰있으면 안 되겠군요.”

시도폰의 농담에 아페도 입꼬리를 올렸고, 천천히 시도폰의 움직임을 따라 발을 옮겼다. 아까보다는 차분한 음악이었던 데다가, 시도폰은 본인이 더 편한 포지션을 맡아서 그런지 동작이 능숙했다. 그와 마주 본 아페는 뒤통수에 내리꽂히는 시선을 느꼈지만, 개의치 않고 꿋꿋하게 춤을 마무리했다. 아페의 손을 놓은 시도폰이 다시 빈 접시를 집어 들자 아페는 어떤 게 맛있는지 옆에서 가르쳐 주었다.

“아, 그러고 보니 제 입맛에 맞는 것들이라 단장님께 맞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다 맛있어 보이는걸요. 감사합니다. 혹시 이건 어떤 과일을 썼는지 알고 있으신가요?”

“그럼요. 이번 연회 음식은 제가 총괄했으니까요. 어디 보자….”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을 보던 카리타스는 억지로 그들에게서 시선을 떼어냈다. 그는 교황과 왕이 얼굴에 철판을 깔고 서로에게 덕담 같은 험담을 던지는 것을 구경하는 데 지쳤기에 허공을 바라보았다. 사람이 할 일이 없으면 잡생각이 늘어나는 법이다. 카리타스의 머릿속엔 단장 임명식과 그 이후로 시도폰과 나눈 대화가 재생되었다.

 


분명 시도폰을 보기 전까진 그를 기다리는 게 즐거웠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하느라 바빴는데 막상 임명식 때 만난 시도폰에겐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아니, 정확하겐 제 의지로 그에게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신은 제 몸을 빌려 멋대로 말하고 행동했다. 시도폰의 얼굴을 감쌌던 것도 제 손이었으되 제 손이 아니었고, 그의 이름을 받아내며 기쁘다 했던 것도 자신이었으되 자신이 아니었다.

시도폰은 신이 빙의했기 때문에 자신이 무리했다고 오해했다. 사실은 아니었는데, 그런 것쯤이야 얼마든지 티 내지 않고 견딜 수 있었다. 단 한 방울의 눈물도 이제는 흘리지 않을 정도로 익숙하니까. 카리타스를 정말로 괴롭게 만든 건, 또 자신이 시도폰을 신에게 바쳤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각성했던 그 날부터 예정되어있던 일이었지만, 막상 직접 경험하니 자괴감이 남달랐다. 이미 일어난 일이니 털어내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카리타스는 과거를 반추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기만 할 수 있는 인간이 아니었다.

그는 죄책감과 자괴감에 발이 묶여, 석상처럼 교황의 옆에 서서 시도폰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자리를 지켰다. 애초에 춤을 출 수도 없긴 했다. 연회 내내 시도폰이 제 쪽을 흘끔거린다는 걸 알았지만 쳐다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도 어쩔 수 없이 시선이 갈 때가 있었는데, 시도폰은 그걸 기가 막히게 알아차렸다. 연회가 끝으로 갈수록 그의 집중력도 흩어져, 아페와 춤을 출 때는 제 시선을 느끼지 못한 것 같았지만.

‘그래도 이젠 뭘 좀 먹네. 다행이다.’

“이제 좀 괜찮으십니까?”

메릭의 목소리에 카리타스가 고개를 들었다.

“뭐가요?”

“오늘 연회 내내 안색이 좋지 않으셨습니다. 무리하신 건 아니신지요? 집행자께서도 그걸 걱정하셔서 혼자서 쉬도록 자리를 비켰다 하셨습니다.”

‘아까 복도에서 나눈 대화가 이거였구나.’

“걱정하지 마세요. 연회 때문에 오래 서 있어서 조금 피곤한 것 말고는 없으니까요.”

“그렇습니까.”

정말로 괜찮아 보이는 카리타스의 옆얼굴에 메릭도 더 묻지 않고 제 위치로 돌아갔다. 연회가 끝나고 왕족들은 궁전으로, 사제들은 신전으로 돌아갔다. 카리타스는 모처럼 일이 없는 날이니 쉬어야겠다며 일찍 메릭을 물렸고, 혼자 조용히 책을 읽으며 밤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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