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fido

3부 5화

거주관에서 코지를 붙들고 시도폰이 있었던 일을 미주알고주알 털어놓자, 코지는 또 그랬냐며 놀리기 바빴다. 당연하게도 두 사람이 함께 자는 게 뭐가 문제냐고 물었던 코지는 동행한 두코의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 사실 이렇게 반말로 대면하는 것도 누가 알면 큰일 날 일인데 말이야.”

코지가 살짝 거리를 두는 시늉을 하자, 시도폰이 우는 소리를 내며 따라붙었다. 그런 유쾌한 소동이 무색하게, 신전으로 돌아온 시도폰은 카리타스의 방에 찾아가 앞으로 잠은 따로 자야겠다고 통보했다. 은근히 붙잡아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시도폰이 느릿느릿 말을 이어갔지만, 카리타스는 참을성 있게 그걸 다 듣고는 알겠다고 대답해버렸다. 시도폰이 떠나고, 카리타스는 그가 하지도 않은 생각을 지레짐작하며 또 슬픔에 잠겨갔다.

‘폰에게만큼은 미움받고 싶지 않았는데, 내가 어쩌자고 그랬을까? 멋대로 몸에 손을 대서 미안하다고 사과하긴 했지만…, 정말 싫었나 봐. 그냥 놔뒀으면 같이 있을 수 있기라도 했을 텐데.’

애꿎은 베개만 꾹꾹 누른 카리타스가 평소와 다른 바 없는 제 방을 둘러보았다. 원래 없던 사람이 없을 뿐인데, 왜 이렇게 텅 비어 보이는 건가. 마음 같아서는 꽃다발이라도 끌어안고 자고 싶은 카리타스였지만, 꽃을 안고 잤다간 다 뭉개어지고 말 걸 알기에 그럴 수 없었다.

‘우리가 함께 있는 걸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 건 꿈속에서뿐이겠지.’

그마저도 예언이 내려오면 그것에 뒤덮여서 사라지겠지만, 카리타스는 자신이 원하는 꿈에 안착하길 바라며 눈을 감았다. 한편,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돌아온 시도폰은 카리타스의 표정이 계속 맴돌아 잠을 잘 수 없었다.

‘엄청 실망한 얼굴이었지…. 우리야 외부로 오래 나가 있으면 다 같이 잘 일이 많지만, 카리타스는 나를 알기 전부터 지금까지 쭉 혼자 밤을 보냈을 테니까. 지금이라도 돌아가서 취소한다고 할까?’

제 자존심 같은 거야, 카리타스 앞에선 딱히 챙긴 적 없었던 시도폰이 자리에서 살며시 일어났다. 그걸 눈치챈 두코가 자라고 중얼거리듯 말했지만 막을 생각은 크게 없어 보였다. 시도폰과 함께 가서 카리타스의 표정을 목격했기 때문인지 피곤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시도폰에겐 호재였다. 살금살금 걸어가 문을 열려던 순간, 밖에서 나는 두 개의 발소리에 시도폰은 그 자리에서 숨을 죽인 채 그가 사라지기만을 기다렸다.

“그나저나 이제 집행자님께선 성녀님 방엔 안 가시나 보네, 두 분 싸우셨나?”

“유치한 추리는 삼가. 이제 두 분도 성년이 되기까지 얼마 안 남았으니까 그러실 때도 됐지. 아무리 친한 사이라고 한들 각자 맡은 자리가 있으신데.”

“그렇겠지? 바깥이었으면 각자 약혼자가 있을 나이가 되셨으니까…. 그리고 이쪽 영감님들이 티는 안 내려고 해도 두 분이 그렇게 붙어있는 걸 좋아하지 않는 게 보이던데 그걸 의식하셨을지도 모르겠네.”

문고리에 올라갔던 손을 거두고, 시도폰은 자기 자리로 돌아와 누웠다. 발소리야 멀어진 지 오래였지만 그는 잠들지도 못했고 나가지도 못했다. 어정쩡한 기분으로, 어정쩡한 상태에서, 그대로 의식이 끊기듯 시도폰은 잠들었다.

 


그렇게 어색한 밤이 몇 번 지나고 시도폰과 기사단은 북부로 출발했다. 카리타스는 시도폰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말들이 달려가는 방향을 보고 있다가 돌아섰고, 시도폰은 가끔 뒤를 돌아보다가 베론에게 지적당했다. 위험하다는 경고였지만 시도폰에겐 영 달갑지 않은 충고였다.

‘성내라서 말을 빠르게 몰고 있지도 않았는데 되게 싫어하네. 내가 남부에 미련을 가질까 봐? 아니면 그날 밤, 지나갔던 사제들처럼 베론도 내가 카리타스랑 친한 게 달갑지 않은 걸까?’


첫 워프 게이트에 도착했을 때, 시도폰은 콘피테오르가 새겨진 돌에 신성력을 넣으려는 사제들에게 물었다.

“지금 주입하는 신성력으로는 두 번째 워프 게이트로 이동할 수 있다고 알고 있는데 맞는가? 음, 혹시 더 많은 신성력을 주입하면 세 번째 워프 게이트로 바로 이동 가능한가?”

“해본 적은 없습니다만…, 이론상으론 불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워프 게이트와 이어져 있는 건 두 번째 게이트뿐이라, 애초에 목적지로 정해지지 않은 세 번째에는 도달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아쉽군, 그게 가능했다면 북부에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빠르게 넘어갈 수 있었을 텐데.”

“아니면 한번 실험해보는 건 어떨까요?”

옆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프라이에가 물었다. 시도폰이 어떻게 실험할 수 있겠냐고 하자, 프라이에는 작고 예쁜 펜던트를 하나 꺼내 들었다.

“체온 유지용으로 쓰는 신성 도구입니다. 신성력은 차 있는 상태라 워프 게이트를 이용할 수 있는 물체인 데다가 반짝거려서 찾기도 쉽죠. 이걸 저희가 출발하기 전, 신성력을 주입한 게이트에 먼저 던져넣어 보는 겁니다. 그리고 펜던트가 사라지고 나면 다시 신성력을 주입해서 저희는 두 번째 워프 게이트로 도착하면 되는 거죠.”

일을 두 번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투덜거리려던 사제들은, 그거 좋은 생각이라며 자신이 신성력을 주입하겠다는 집행자를 말렸다. 실험을 제안한 프라이에조차 그건 아닌 것 같다며 고개를 저었지만, 시도폰은 포기하지 않았다.

“자네들 신성력만으로는 부족할 거로 생각하네, 이번 한 번만 해보겠네.”

그 말을 부정하지 못했기에 사제들은 집행자에게 자리를 비켜주었다. 사제들을 따라 시도폰이 손을 뻗었고, 게이트는 평소보다 배로 빛나며 펜던트를 집어삼켰다. 두코는 워프 게이트로 들어가며 프라이에를 돌아보았다.

“괜찮겠어?”

“뭐가? 펜던트는 반짝거리니까 금방 찾을 수 있을 거야.”

“만약 그게 세 번째 워프 게이트까지 갔다고 하면 괜찮겠지만, 더 멀리 가면 어떻게 하려고? 아무리 봄이라지만 7번째부터는 분명 추울 텐데.”<-워프 게이트는 10개가 있다.

“설마 거기까지 가겠어?”

프라이에가 신께서 도와주지 않는 이상 그렇게까진 되지 않을 거라고 말하는 것치곤 사시나무 떨리듯 떨자, 두코는 한숨을 쉬었다. 그 말을 듣고 앞서가던 시도폰이, 추우면 자기가 책임질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든든하게 소리쳤다.

“어떻게 해주시려고 그러십니까? 제 몸에 불붙는 건 사양이거든요!”

“아니 베론이 했던 것처럼 열만 나눠줄 수 있네, 뭐… 그것도 싫으면 양팔로 꼭 안아주든가 할 테니 걱정하지 말게.”

“그쪽이 더 걱정되는 방법이네요. 전 나무에 꽂힌 고기가 되고 싶진 않습니다.”

갑자기 웬 나무냐고 물어보려던 시도폰은 워프가 끝나서 토할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프라이에를 보고 다시 앞을 보았다.

“없는 것 같습니다. 두코, 그쪽은? 거기도 없어?”

꽤 멀리까지 간 두코가 양팔을 교차해 엑스자를 보였다. 샅샅이 주변을 살펴도 펜던트가 보이지 않아서 일행은 더 나아가기로 했다. 세 번째 게이트에서도 보이지 않던 펜던트는 네 번째에서 발견되었고, 프라이에는 추위에 떨지 않아도 된다며 환호했다.

“이런 식으로 신성력을 높여보면 더 멀리까지 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생물의 안정성을 보장할 수 있을진 장담할 수 없겠지만.”

베론이 워프 게이트를 흘끔거렸다. 지나가던 들짐승을 던져 넣어보면 가장 죄책감이 덜했겠지만, 워프 게이트는 신성력을 가진 사람들만이 사용할 수 있었기에 그런 편법은 쓸 수 없었다. 두코는 미카라도 있었으면 던져 넣어봤을 텐데-라고 생각하다가, 다섯 번째 워프 게이트에선 자신이 들어가겠다고 말하는 시도폰을 붙잡았다. 이번 건은 허락할 수 없다고 모두가 반대하자, 시도폰은 머뭇거리는 눈치였으나, 두코와 프라이에가 그의 양팔을 꼭 끌어안았기에 의견을 곱게 접었다.

“그래도 우리가 남부에 있을 때 북부에 갑작스러운 일이 생기면 빠르게 돌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이 생겼다는 게 기쁘네. 물론 직접 들어가 봐야 그 가능성이 진짜인지 가짜일지 알 수 있겠지만.”

“여전히 미련이 있으신가 보군요. 정 확인하고 싶으시다면… 동물의 몸에 콘피테오르를 새겨서 강제로 신성력을 불어넣는 방법도 있긴 합니다.”

베론이 갑자기 떠올랐다며 내건 제안에 너무 잔인한 방법이지 않냐고 일갈한 시도폰은, 그렇다고 사람을 바로 집어넣을 수 있겠냐고 묻는 프라이에에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었다. 워프가 가능한 홀수 번째 게이트에 또 도착하자 시도폰은 고민하다가 베론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보자, 여기는 일곱 번째니까 아까와 같은 방식이라면 세 번 더 가서 열 번째가 나오겠네. 그럼 집어넣겠습니다.”

버둥거리는 짐승을 던져넣은 베론이 손을 털었다.


며칠 뒤, 수행단을 통솔했던 기사들이 돌아오자 루카와 슈바헨이 마중 나왔다. 루카의 품엔 콘피테오르가 새겨진 흔적만 남아있는 새끼 사슴이 안겨있었고, 이를 발견한 일행이 기뻐하자 슈바헨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물었다. 신난 시도폰이 일의 과정을 설명하자 슈바헨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휘청거렸다.

“확실히 젊으셔서 그런지 강단 있고 호기심 있는 선택을 하긴 하시는군요. 하지만 이 늙은이는 그런 걸 듣는 것만으로 심장이 철렁 내려앉을 수 있습니다. 항상 몸을 소중히 여겨주십시오. 그리고 베론 자네는…. 나중에 이야기함세.”

왜 말리지 않았느냐고 얘기할 게 뻔했기에 베론은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옆에서 루카는 사슴을 시도폰에게 보여주면서 상처는 사슴이 발견되자마자 치료해서 괜찮다고 말했다.

“깜짝 놀랐어요. 워프 게이트 쪽을 순찰 나갔던 기사님들이 신성력이 느껴지는 사슴을 잡아 왔다고 하셔서요.”

“미안하군, 뭔가 써둔다는 걸 깜빡했네. 언제쯤 발견했나?”

“사슴이 게이트에서 튀어나오자마자 거의 잡으셨다고 하셨고, 그게 사나흘 전이었죠.”

“던지자마자 바로 전달이 되었다는 거군. 시차는 없었다고 하니 우리가 직접 사용하는 것도 해 볼 만하겠네.”

베론을 데리고 가던 슈바헨은 시도폰의 말을 못 들은 척하며 그대로 걸어갔고, 먼 여정을 다녀온 기사들은 숙소로 돌아가 짐을 풀었다. 두코는 이디스에게 자신과 같은 방을 쓰겠냐고 물었고 이디스는 제안해줘서 고맙다며 제 가방을 두코의 방에 두었다. 두 사람이 즐겁게 대화하는 방을 지나치던 프라이에는 부관을 뺏기는 거 아니냐며 불안해했다.

“네가 전방에 서야 하는데 이디스를 뺏어갈 리가 없잖아. 오래오래 살아야지.”

“방패막이가 되어달라는 소리로 들리는데, 아니지?”

“아, 들켰네.”

꺄르르 웃는 두 사람을 두고 프라이에가 무서운 여자들이라며 도망치자 두코가 문은 닫고 가라고 소리쳤다. 잠시 후 열린 문으로 시도폰이 고개를 살짝 들이밀었다. 우물쭈물하는 집행자의 모습은 굉장히 생소한 것이어서 이디스는 어쩐 일이시냐고 물었다.

“물론 남부에서 돌아오기 전에도 묻긴 했지만, 이렇게 바로 북부로 와도 괜찮겠나? 학교 졸업식도 참석하지 못했다고 들었는데.”

“졸업식에 참석하지 않아도 졸업장은 나오니까요. 그리고 그곳에서 많은 걸 배웠지만 미련은 남지 않아서요, 괜찮습니다. 음…. 또 걱정할만한 거라곤 가족 이려나요? 언니가 잘 지내는 것도 오랜만에 확인했었으니….”

태연한 대답에 시도폰은 안심한 듯 다행이라고 말하며 사라졌다.

곧장 제 방으로 향한 시도폰은 루카의 도움을 받아 옷을 갈아입고 곧바로 욕탕으로 향했다. 집행자의 권위나 특권 같은 건 크게 관심 없었지만, 개인 욕탕을 사용할 수 있는 건 정말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며 시도폰은 따뜻한 물에 몸을 푹 담갔다. 루카가 미리 데워둔 물은 은은한 약초 냄새를 풍겼고, 해가 들어오게 설계해둔 창문에서 하얀빛이 내리쬐었다.

시도폰은 물기를 머금은 욕탕 벽에 머리를 기대고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사용하는 건 한 사람뿐인 욕탕에선, 긴장을 완전히 푼 시도폰이 내쉬는 숨소리만 존재했다. 이따금 떠다니는 먼지가 햇빛에 잠깐 반짝였다가 사라질 뿐, 완전히 정적뿐인 공간에서 시도폰에겐 천천히 제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우리가 안 보일 때까지 거기 서 있었을까? 봄이니까 춥진 않았겠지.’

어깨에서 찰랑거리던 물이 턱 끝까지 오도록 시도폰은 몸을 더 눕혔다. 그는 수압으로 숨이 살짝 막히는 것을 느끼며 생각을 이어갔다.

‘다른 사람들이 날 어떻게 보는지는 상관없었어, 기사단 인원도 남부의 지원 없이 거의 다 충원됐고 성하께서도 나한테 예를 갖춰서 대할 정도의 위치가 있으니까.’

하지만 카리타스는 달랐다. 아마도 평생을 거기에서 살아야 할 사람, 신의 허락으로 눈을 영원히 감게 되기 전까지 그곳을 벗어나긴 힘든 사람에게 해가 될 만한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애꿎은 물을 휘저은 시도폰이 팔에 힘을 주고 상체를 일으켰다.

‘피데이스가 말한 것도 그렇고 사제들이 떠드는 것도 그렇고, 신전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 헤일로 단장이나 카리타스에 대한 태도가 너무 이상하잖아. 성하께선 이런 걸 다 알고 계신 건가? 아니 모르시겠지. 그 사람들이 성하 앞에서 대놓고 그런 말을 하진 않을 테니까.’

이렇게 생각한다 한들, 시도폰이 신전에 직접 쳐들어가서 불손한 이들을 색출해내지 않는 이상 신전의 분위기가 바뀔 리 없었다. 그렇게 한다고 해도 바뀔 보장도 없었고. 한숨을 쉰 시도폰은 종을 울려 루카를 불렀다. 수건을 들고 온 루카가 푹 쉬셨냐 물었고 시도폰은 덕분에 피로가 풀렸다고 대답했다.

카테고리
#오리지널
페어
#GL

해당 포스트는 댓글이 허용되어 있지 않아요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