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레터

𝘾𝙝𝙧𝙞𝙨𝙩𝙢𝙖𝙨 𝙇𝙚𝙩𝙩𝙚𝙧

통모짜 by 모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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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 할아버지께.

 

산타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제 이름을 말씀드리는 것이 편지를 쓸 때의 당연한 예의겠지만 산타 할아버지라면 제 이름을 이미 알고 계실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저의 이름 정도야, 알려주지 않아도 괜찮으시겠죠? 괜찮으실 거라고 믿어요.

 

산타 할아버지께서는 전 세계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기 위해 바쁘게 돌아다니신다고 엄마가 말씀하셨어요. 할아버지는 무스몬을 타고 세계를 누비신다고요. 저는 무스몬을 실제로 본 적이 없지만, 아빠는 무스몬을 본 적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오로라가 아름다운 곳에서 무스몬을 만났대요, 그 말은 산타 할아버지도 오로라가 아름다운 곳에서 살고 계신다는 뜻이겠죠?

 

오로라는 얼마나 아름다운지 궁금해요. 사진도 보고, 동영상도 보았지만, 실제로 제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어떨지 궁금하거든요. 엄마도 오로라를 본 적이 있다고 하지만, 그 오로라는 보통의 오로라가 아니라고 했어요. 보통의 오로라가 아니라면, 특별한 오로라가 있는 걸까요? 그렇다면 산타 할아버지는 특별한 오로라가 생기는 곳에서 거주하시는 걸지도 모르겠어요. 뭐, 의미는 없겠죠. 산타 할아버지가 어디에 사시든, 제가 알아서 달라지는 것은 별로 없을 테니까 말이에요. 하지만 그래도 궁금한 이유는, 할아버지께서 무스몬을 재촉해야지만 우리 집으로 올 수 있을지, 그 사실이 걱정되기 때문이에요.

 

우리 집까지 오시는 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지 모르겠지만, 부디 오시는 길이 평안하기를 바라요. 무스몬이 지쳤다면, 꼭 무스몬을 쉬게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저에게도 친구 디지몬이 있는데요, 이름은 어니몬이에요. 엄마가 말씀하시길, 곧 피요몬으로 진화할 수 있을 거래요. 올해 저의 키가 많이 자랐으니까, 어니몬도 함께 자랄 것이라고 그러셨어요. 하지만 저의 성장이 어째서 어니몬의 진화에 영향을 미치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엄마의 피요몬은 언제쯤 피요몬이 되었을까요? 그렇다면 가루다몬과는, 엄마가 아빠와 결혼했을 때 비로소 만난 것일까요?

 

사실 이건 엄마의 거짓말이라고 생각해요. 어른들은 간혹 그런 얘기를 하잖아요. 아이들은 어려운 얘기를 모를 거라는 전제를 깔고, 아이들을 위해 쉽게 풀어 설명해준다면서 실상 거짓말과 비슷한 이야기를 늘어놓죠. 물론 엄마는 절대 거짓말을 하실 생각은 아니었을 거예요, 하지만 엄마의 말이 온전한 진실을 담고 있지 않다면 그게 곧 거짓말이 되기도 하겠죠. 이런 얘기를 저번에 코시로 아저씨에게 말했는데, 아저씨는 눈썹을 긁적거리더니 어깨를 으쓱거렸어요. 저도 어렸을 때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거짓말이라고 생각해도 좋지만, 그것은 진실의 파편일 뿐이니, 미진한 진실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옳다고요. 미진한 진실, 어려운 단어지만 멋있어 보여서 그날부터는 그렇게 생각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아직 제가 알지 못하는 진실이 많다면, 조금 기다려 보겠다고요.

 

즉 저는 올해도 착한 아이였다는 뜻이에요. 산타 할아버지께서는 전 세계의 아이들을 다 둘러보아야 하시니까, 이렇게 미리 편지로 알려드리면 편하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편지를 부치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었어요. 아빠한테 부탁했거든요! 아빠는 최근 집에 돌아오셨지만, 아빠가 아는 사람들에게 부탁하면 산타 할아버지가 사는 곳으로 편지를 부치는 건 일도 아니라고 하셨어요. 동생의 편지도 같이 동봉하니, 꼭 읽어봐 주셨으면 해요. 동생이 어떤 내용으로 편지를 썼는지 안다면, 이에 대해서도 제가 미리 요약을 하면 좋겠지만…… 저는 동생의 사생활을 지켜주는 누나랍니다. 아주 착한 아이라고 할 수 있죠?

 

이제부터 본론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따로 말씀드리지 않아도, 제가 받고 싶은 선물을 꿰고 계실 거라고 생각하지만 혹시 모르니까요. 엄마께서는 만일의 상황을 항상 대비하셔야 한다고 하셨어요. 상황 자체가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저 자신을 위해서도 대비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요. 누군가에게 강하게 의지하거나, 혹은 나 자신을 너무 과신하거나. 그게 아니라면 자기 자신의 생각에만 매몰되어 주변을 둘러보지 못해 앞서나간다거나 하는 이야기요. 또 다르게는, 타케루 삼촌에게서 들은 얘기인데요. 마냥 상황에 순응하며 견디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 맞서서 최선의 답을 찾다 보면 자연스럽게 엄마가 말씀하신 대로 대비를 할 수 있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저는 이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서 산타 할아버지께 편지를 쓰는 거예요. 편지가 길어져 버렸지만, 산타 할아버지께서는 저 말고도 다른 아이들의 편지를 읽으실 테니 기본적으로 속독하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갖고 싶은 선물은……. 다음 해에 꼭 디지털 월드에 가보는 거예요. 갈 수 있을까요? 엄마가 말씀하시길, 아직 제 나이가 어려서 안 된다고 하셨거든요.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제 동생이 어려서 그런 거 같아요. 저는 다 컸거든요. 연필을 들고 이렇게 길게 편지를 쓰는 걸 보니 저는 다 큰 게 분명하다고 죠 아저씨가 말씀하셨는걸요. 아빠는 죠 아저씨의 말을 듣고 웃기만 했지만……. 그러니까 꼭 내년에는 디지털 월드에 가고 싶어요. 모험을 바라는 건 아니에요, 그런 모험에 제 동생을 데려갔다가는 큰일이 날 거예요! 특별한 오로라가 생기는 곳에 가보고 싶어요.

 

특별한 오로라가 생기는 곳이 왜 디지털 월드냐고요? 그야, 엄마는 확실하지 않은 일을 단정짓지 않는데도 ‘특별한 오로라’(얼마나 강조하고 싶었는지 작은따옴표에 잉크 자국이 번져 있다)라고 말씀하셨으니까요. 이 지구상에서 볼 수 없는 오로라라면, 당연히 디지털 월드에 있지 않겠어요?

 

그러니까 산타 할아버지. 잘 부탁드려요. 선물이 아니니까, 아마도 엄마와 아빠를 설득하셔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할아버지의 연륜을 믿어볼게요. 그럼 이만 줄일게요!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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