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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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모짜 by 모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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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하면서도 어딘가 씁쓸한 초콜릿의 향내가 금방 물러갔다. 겨울이 끝나고 드디어 꽃이 세상을 보기 위해 맥동하는 시기, 핫초코의 여운과 따끈함은 사람들의 마음과 관계에 기나긴 흔적을 남기고 사라졌으리라.

추운 겨울이 저물었다는 것을 알리고, 따스함은 이제 마음속에 묻어두는 계절. 동시에 꽃이 빼꼼 고개를 내미는 것을 시샘한 칼바람이 간혹 들이치기도 하지만, 막상 얼굴을 내민 꽃의 아름다움에 압도된 것인지 금세 뒷걸음질 치는 때가 도달했다. 꽃샘추위라는 말은 참 잘 지은 거 같지, 소라가 차가워진 얼굴을 톡톡 두드리며 고개를 들었다.

 

“많이 추워?”

“아니, 그냥 저 꽃봉오리를 보니까.”

 

분홍색의 꽃봉오리가 움튼 채로 멈춰 있었다. 꽃을 피우기 전에 기지개를 켜는 모습에 소라가 입꼬리를 올렸다. 꽃이 피어나는 걸 시샘하는 바람에, 저 상태로 멈춘 것 같잖아. 고양이가 털실뭉치를 쫓아가듯, 야마토는 또르르 굴러 사라진 소라의 웃음소리를 쫓았다. 귀에 얼핏 남은 웃음소리가 듣기 좋아서, 그는 괜히 귓불을 매만졌다.

 

“그래도 금방 피어나겠지.”

 

꽃샘추위라는 것은 결국 꽃이 피어나는 것을 전제로 한 말이니까. 삼월에는 토끼가 난데없이 차를 마시고, 시린 바람은 퇴장할 순간을 놓치고 잠시 방황한다. 야마토는 이 시기가 좋았다. 왠지 모르게 쓸쓸하면서도, 곧이어 피어날 광경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부러 소라가 추운 날씨에도 산책하자고 권한 것도 그 때문이리라. 얽혀 있는 손가락에 힘을 주며, 그가 가볍게 소라를 끌어당겼다.

 

“벚꽃이 피면 새 학기가 시작할 테고.”

“맞아. 벌써 3학년이라니 상상이 안 되네.”

“시간이 빨라.”

 

그들의 열네 살의 일 년은 정말로 폭풍우처럼 지나갔다. 그 폭풍우의 끝을 장식한 것은 제 곁에 있는 사람이었다. 야마토는 작년 소라가 들고 온 선물상자를 떠올렸다.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는 그와 소라만의 비밀이 되었지만, 진정으로 중요했던 것은 선물의 정체가 아니었다.

친구라고 하기에는 멋쩍었고, 지인이라 하기에는 서로를 너무 잘 알았다. 이상한 일이다. 소라는 그의 친구보다도 더 많은 걸 알고 있었음에도, 그녀를 친구라고 칭하기에는 어딘가에서 거부감이 치밀었다. 소라가 싫은 것이 아닌데도, 소라를 친구라고 명명하는 순간 걷잡을 수 없어질 것만 같아서.

 

‘나는 너에게 뭐야?’

 

소라가 그렇게 물었을 때, 그는 드디어 이 관계를 청산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안정된 형태로, 그러나 그와 동시에 언제든 놓을 수 있도록 가볍게 쥐고 있던 미묘한 관계에 끝을 고해야 한다는 것을.

 

너는 나에게 뭘까, 소라. 그 질문에 답하는 것이 관계의 개벽이었다. 새로운 하늘(空)이 열리고, 그 사이로 내리쬐는 볕에 몸을 맡기는 것을 선택하느냐, 도망치느냐. 도망이라는 선택지는 매력적이지 않았다. 형은 가끔 충동적이더라. 동생이 소파에 누워 얼굴을 한껏 뒤로 젖힌 채 중얼거렸던 말을 떠올리며, 야마토는 뒤늦게 대답했다. 그러게, 타케루. 그에게는 확실히 충동적인 면모가 있었다.

그러나 지지부진하게 주저할 바에는, 충동적으로 무언가를 바라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몰랐다. 그 자신에게도, 그리고 그가 손을 내밀고 싶은 사람에게도.

 

‘너는 나에게…….’

 

그 대답의 형태가 지금이었다. 추우면 조금만 더 걷다가 들어가자. 소라의 코가 살짝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한겨울에 비하면 별것도 아닌 추위였지만, 추위는 추위였다. 봄이 온다는 사실을 애써 숨기려는 듯, 기승을 부려보지만 결국 봄에 자리를 내줘야 한다는 사실에 슬퍼하는 듯이. 야마토는 이 추위가 곧 물러가길 바랐다.

 

‘이 추위가 물러가야…….’

 

봄이 올 것이다. 단순한 봄이 아니라, 빈자리를 메우고 시곗바늘을 돌려 차근차근 시간을 되짚어 나갈 수 있는 시기가 도래할 것이다. 야마토는 봄을 기다리는 동시에, 이 모든 시간이 당연하게 박제될 흐름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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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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