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정유해

쿼카굴 by 쿼

군식구가 생겼다. 언덕 아래 복덕방은 그렇게 표현했다. 동네에서 가장 큰 그 집에 서울 살던 남자애 하나가 모난 돌처럼 굴러들어왔다는 이야기는 한 달쯤 화젯거리였다. 어디를 가나 진 씨 일가가 어쩌다 소년을 떠안게 되었는지 추측하는 말소리가 난무했다. 뒤늦게 마주친 혼외자라더라. 파산한 친척이 버리고 갔다더라. 때로 그 집 사모나 애아버지가 그럴 만한 성정이냐는 둥 사람 일은 모르는 것이라는 둥 추레한 공방이 오가며 시장바닥을 달궜다. 소문은 진 씨 부부가 이방의 소년을 이끌고 시내 백화점을 다녀온 목격담이 들려오며 서서히 수그러들었다. 그 집 외동아들의 배다른 형제라고 하기에는 남자애를 대하는 부부의 태도가 여간 살가운 것이 아니었고 떠맡은 친척 식구라고 하기에는 그 애가 워낙 하얗고 곱상해 진 씨 핏줄 같은 데가 없었다. 푹 들어간 눈두덩과 곧게 솟은 콧날이 두드러지는 얼굴이었다. 교복을 맞추어 입은 불청객은 막 중학교에 들어가는 연배답지 않게 키가 크고 후리후리했다. 이름은 준수였다.

준수는 그 집에 몇 년 간 머물렀다. 1층 화장실 옆의 작지 않은 손님방이 소년의 공간이었다. 올 때도 손에 든 것이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살며 짐이라고 부를 만한 것을 어지간하게 만들 줄 알았는데 수개월이 지나도록 차지한 방은 달라지는 바가 없었다. 그 나이 애답게 이부자리를 좀처럼 정리하지 않는 것 말고는 방이 단정하다 못해 휑할 지경이었다. 그 집 내외는 아들과 동갑내기인 소년이 새 집에 정을 못 붙여 그러는 것인가 염려하며 액자도 걸어보고 책도 꽂아보고 했지만 그는 저녁 식사 자리에서 감사하다고 무뚝뚝하게 인사할 뿐 새 물건을 거의 들여다보지 않았다. 그것이 준수가 무정한 식객이었다는 뜻은 아니었다. 새 집에 마음을 열지 못하고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 역시 아니었다. 준수는 그럴 만큼 섬세하지 못했다.

낯선 소년에 대한 입씨름은 동네 아이들이 새 학기를 맞는 3월이 되며 잦아들었다. 수군거리던 복덕방 내외에게는 이제 막 국민학교에 입학하는, 딸 부부가 맡기고 간 손녀가 있었다. 군식구가 생겨 그 집 사람들이 불편하겠어. 내외는 그런 말로 자신들의 처지를 은근하게 비관하는 듯했다. 기생 오라비처럼 생겼더구먼 아드님이 나쁜 물이라도 들면 어떡해. 그즈음 복덕방 내외에게 맞장구를 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마저도 준수가 동네 하천에서 신발을 잃고 엉엉 울던 복덕방 손녀를 둘러메고 돌아온 뒤로는 쏙 들어가 버렸다. 다음 날 아침 복덕방 앞에는 그 집 애가 잃어버린 리본 달린 새 구두가 물기를 머금은 채 돌아와 있었다. 누가 찾아온 건지 말은 않았지만 교복을 쫄딱 적신 준수는 그날 체육복을 입고 등교해 호되게 야단 맞았다.

“얼마 전에 들었는데….”

3월이었고 김해의 어느 교외 마을은 이르게 봄을 맞아 춥지 않았다. 그러나 소년은 감기로 일주일을 내리 앓았다. 어려서도 엄동설한의 낯짝이었으니 철인이라도 된 것처럼 아플 일이라고는 없을 것만 같았는데 정작 열이 오른 그는 한없이 나약해 보였다. 희던 얼굴이 불그스름했다. 하필 진 씨 부부가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보호자 없이 혼자 앓는 어린애의 불쌍함이 도드라졌을까, 가정부가 아침저녁으로 드나들며 물수건을 갈아주었지만 소년은 좀처럼 자리를 털고 일어나지 못했다. 인제 와 돌이켜보면 그것은 신고식 같기도 했다.

“복덕방 금마는 아직도 그 구두를 신줏단지처럼 모셔둔다데.”

타지로 이사 와 모르는 사람 사이에서 부대끼며 최소한의 비위만 맞추는 것으로 아슬아슬하게 자신을 단속하던 소년은 경계를 완전하게 내려놓을 기회만 엿보고 있었던 것이다. 한 번 아프기 시작하자 제 마음대로 일어날 수가 없었다. 녹아내린 긴장은 끈적한 사탕 같았다. 들러붙는 감각은 찝찝했지만 진득한 손가락을 핥으면 그 맛이 달달했다.

가정부는 그 집 아들에게 감기 옮으니 손님방은 얼씬도 말라고 당부에 당부를 거듭했다. 현명한 처사는 아니었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이른 오후에 가정부는 준수에게 막 약을 먹이고 나와 주방에서 봄나물을 다듬고 있었다. 그때는 흔히 도련님이라고 불렸다. 낯간지러운 호칭 같으면서도 너무 어릴 적부터 도련님 도련님 하는 소리를 들으며 큰 그는 어디가 어떻게 이상한지를 정확하게 짚어내기 어려웠다. 그는 대체로 말 잘 듣는 기르기 쉬운 어린애였지만 왕자 대우받으며 자란 것들이 으레 그러하듯 제멋대로인 구석이 있었다. 노크도 없이 연 문 너머에서 잠들지 못하고 멀뚱하게 앉은 준수와 눈이 마주쳤다. 문득 도련님 소리 듣는 것이 조금 민망해졌다. 침대에 앉은 준수는 마르고 파리했는데 그 모습이 누구보다 도련님 같았다. 어쨌거나 3월에 하천을 좀 헤집었다고 일주일을 꼬박 앓아누운 것만은 바보 같기도 했다. 재유는 예나 지금이나 그렇게 생각했다.

“니가 그거 찾아놓고 감기로 죽다 살아난 거 알기는 아는 모양이다.”

코끝에 부딪히는 바람은 그 무렵의 것보다 훨씬 차가웠다. 윗지방의 겨울을 김해에서 나고 자란 재유는 유난스럽다고 느꼈다. 이렇게까지 기승 부리지 않아도 어련히 겨울인 줄 알아줄 텐데 누구 좋으라고 칼바람은 쌩쌩 부는지. 웃옷 주머니에 두 손을 꽂자 어깨가 둥글게 말렸다. 그 자세가 바닷가의 추위를 견디는 데 도움이 됐다.

준수는 온몸으로 바람을 맞으며 뒤따라왔다. 여미지 않은 코트가 바람결에 맞춰 부산하게 나부댔다.

“기억나네. 너 없었으면 낫는 데 더 오래 걸렸을 것 같다.”

손님방에 숨어든 어린 도련님은 매번 주머니가 불룩했다. 하루는 알사탕이고 하루는 초콜릿이고 하루는 반 가른 바나나였다. 그런 간식 밀반입이 황당했으나 준수는 군말 없이 받아먹었다. 재유라고 이걸 꼭 먹으라 보챈 것은 아니었다. 침대 가장자리에 두고 금방 쌩 나가는 날이 있는가 하면 고급스러운 양철통에 든 과자를 나누어 먹으며 학교에서의 일을 들려주는 날도 있었다. 둘 다 붙임성 좋은 성격은 아닌지라 이야기를 하다가도 자주 침묵이 찾아왔다. 가시내들이 니 보고 싶다고 난리다. 쫌 나아가 학교도 나오고 해라. 준수가 대답하지 않자 역시나 손님방은 바로 조용해졌고 둘은 사탕이나 녹여 먹었다. 점점 작아지는 설탕 덩어리가 도각도각 소리로 입 안을 굴러다녔다. 멋쩍게 썰렁한 방이나 눈길로 훑는 재유의 얼굴을 쳐다봤다. 준수는 그 시간이 싫지 않았다.

그로부터 시간이 조금 더 흐른 후에야 본인에게 직접 들을 수 있었던 사정은 기실 동네 어른들이 쑥덕거리던 바와 크게 다르지도 않았다. 집안 사정이 어려워져 먼 친척의 지인 댁이라는 이 김해까지 내려왔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진 씨 부부는 성격이 모나지 않고 살림도 넉넉해 아들 또래의 남자애 하나를 더 거두어 키우는 것이 그리 고단치 않았다. 녀석은 말썽꾸러기도 불량배도 아니었다. 하나 있는 아들과 나이가 같으면서 서먹하게 지내는 것이 딱 하나 마음에 걸리는 점이었는데 준수가 그렇게 일주일을 꼬박 앓고 일어난 뒤로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픈 모습을 보여서인지 시간을 두고 탐색을 마쳐서인지 여하간 둘의 사이가 제법 친밀해진 뒤였다. 일주일의 마지막 날에는 학교에서의 체육 수업이 고되었던 재유가 침대에 기대 깜빡 잠든 것을 내버려 두었다. 동그란 정수리가 이불에 모로 눌려 새근새근 잤다. 침대 끝의 벽에 붙어 앉아 그를 한 시간쯤 구경하였을 때 가정부가 들어왔다. 재유는, 감기 옮으니 안 된다고 하지 않았냐며 저녁 식사 자리에서까지 혼이 났다. 다음날부터 준수는 학교에 나갈 수 있었다.

그 일이 있은 뒤로 복덕방 손녀는 준수를 졸졸 따라다녔다. 복덕방 내외는 티 나게 준수에게 잘해주었다. 학교 마치는 시간에 맞추어 가게 앞의 평상에서 그를 기다리다가 우유 하나씩을 쥐여주는 것이다. 재유는 그의 등하교를 함께하게 되었다. 국민학교까지는 차를 타고 다녔다. 그런데 중학생이 되어서까지 검고 기다란 승용차를 타고 학교 정문에 내리는 것은 우스운 일 같기도 했고, 준수는 자전거 타는 것을 좋아했다. 둘은 자전거를 한 대씩 마련했다. 알고 보니 국민학생 적부터 자전거로 학교를 오갔다는 모양이다. 자기 뒤에 동생을 태우고 다녔다나.

“지수는 잘 지내드나.”

“그냥저냥 똑같지 뭐. 기껏 대학 가놓고 허구한 날 딴짓거리야, 걔는.”

나 없으면 어쩌고 살려나 모르겠다. 재유는 바람에 휘날리는 머리카락을 정리하는 체하면서 그를 돌아봤다. 준수는 웃지 않았는데 그렇다고 빈정이 상한 낯도 아니었다. 그게 어떤 의미의 표정인지 모르지 않았다. 가끔 재유는 서울에서 온 군식구에게 동생이 없었더라면 어땠을까 상상했다. 그의 성격상 잘 알지도 못하는 소년의 동생에게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일어 오래 상상하지는 못했지만 그런 생각을 할 만큼 지수의 존재는, 지수가 준수에게 가지는 존재감은 재유의 마음을 묵직하게 달구고는 했다. 애를 탓할 생각은 없더라도 안부를 묻는 입 안이 묘하게 쓰다.

“니가 지수한테 지극정성인 거겠제. 얼라 적부터 그러더만.”

자전거를 산 중학생 준수는 다음 달부터 신문 배달을 돌았다. 새벽같이 일어나 동네를 한 바퀴 돌고 학교 갈 시간에 맞춰 돌아왔고, 학교에서는 점심 때까지 종일 졸았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안 진 씨 부부가 그럴 것 없이 용돈이 필요하거든 말하라 했건만 준수는 그 짓을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 했다. 고등학교를 들어갈 적에 신문 배달을 그만둔 것은 돈을 모을 만큼 모아서가 아니라 단지 등교 시간이 앞당겨졌기 때문일 뿐이었고 대신 주말마다 시내로 나가 전단 돌리는 일을 했다. 준수가 공부하는 것을 본 적이 드문 만큼 돈 쓰는 일도 보기 힘들었다. 그렇게 악착같이 돈을 모아 어디다 쓰려는 것인지 궁금했다. 답은 아주 멀리 있었다.

“그 나이에 동생한테 용돈 부치는 오래비가 어디 있겠나.”

멀리 서울에. 다달이 번 돈의 반은 지수에게 갔고 나머지 반은 준수의 책상 서랍에 차곡차곡 쌓였다. 세 살 터울이거든. 준수는 그렇게 말했다. 내가 스무 살 되면 걔는 고등학생이야. 그리고 공부를 곧잘 한다고 했다. 그는 말을 깍둑썰어 내놓는 경향이 있었으나 잘린 뒷말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하굣길에 종종 들르는 공중전화 앞에서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고 입 모양으로 말했다. 재유는 자전거 두 대를 나란히 세워 두고 통화하는 옆모습을 곁눈질했다. 오빠가 금방 데리러 갈게. 그가 무엇을 위해 돈을 버는지 알게 된 이래로 그의 방을 찾을 때면 책상 서랍으로 자꾸만 눈길이 갔다. 그곳에는 준수의 떠나는 기차표 내지는 과도한 책임감이 흰 봉투에 든 지폐의 모양을 하고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그러나 준수는 한동안 떠나지 않았다. 스무 살에 무슨 마법이 걸려 있는지는 몰라도 그 나이가 되기까지 잠자코 기다리는 것 같았다. 스무 살이 되고 또 그보다 몇 년을 더 살아보니 깨달은 것은 어느 나이가 된다고 모든 일이 기적적으로 나아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십 대 무렵에는 이것을 알기 어려웠다. 준수 역시 그랬을 것이다. 차라리 그가 일찍이 김해를 떠났더라면 어땠을까 재유는 또한 상상했다. 서울 소년은 먼 타지에서 6년을 채웠다. 길고 긴 인내였다.

그동안 둘은 가깝게 지냈다. 못해도 재유가 준수의 자질구레한 사정을 모두 들어 알게 될 만큼은 되었다. 지수가 친척 집에 있다거나 그 댁의 형편이 여의찮아 자신까지 서울에 남을 수는 없었다거나 하는 이야기부터 김해에 처음 와 진 씨 댁이 휘황찬란한 것을 보고 솔직히 조금은 놀랐었다는 둥 네가 도련님이라 불리는 것이 그럴싸하다고 생각했다는 둥 여러 이야기를 했다. 재유의 눈에는 어깨 옆으로 선 그야말로 왕자처럼 보였으니 그런 소리를 듣는 것이 어처구니없었다. 그렇다고 말하자 준수는 자신이 잘생긴 것을 모르지 않고, 또 뽐낼 생각은 없는 것처럼, 몇 초쯤 표정이 없더니 뒤이어 한쪽 입꼬리를 당겼다. 둘은 자전거를 끌며 하천을 따라 걷고 있었다. 잘생긴 미소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즈음 준수는 키가 더 커서 또래 아이들을 훌쩍 내려다보며 다녔다. 부딪히는 시선에는 경사가 있었다. 준수가 고개를 조금 숙이는 것 같은 때에 먼저 눈을 감았다. 준수는 머리카락에 붙은 먼지를 후 불어 떼어주고는 안 그런 척 걸음을 옮겼다.

하천은 물소리가 크지 않았다. 졸졸 흐르는 소리가 돌아가는 길 내내 귓전과 마음을 간지럽혔다. 두어 걸음 뒤에서 자전거를 끌고 따라가는데 준수는 이미 집으로 가는 길을 잘 알았다. 앞서 안내할 필요는 없었다. 올려다봐야 하는 뒤통수 양옆으로 그의 두 귀가 울긋불긋한 것 같았는데 때마침 해가 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저 노을에 물이 든 건지 그가 정말로 부끄러워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재유는 설레발쳤다는 생각에 몹시 쑥스러웠다. 신발 끝이 공연히 자전거 페달을 툭툭 쳤다.

한편 인천은 여전히 날이 찼다. 슬슬 뺨이 얼어붙는 것 같으면서도 재유는 걸음을 멈출 수 없다. 그를 보는 것을 그만둘 수도 없어 슬금슬금 뒤로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 넘어져.” 준수가 얼굴만큼이나 곱상한 말씨로 걱정해왔다. 그의 말하는 모양새가 문제였나. 아니면 동네의 가장 큰 집에서 내내 혼자 큰 자신이 외로웠던 걸까. 그가 잘생겨서 좋았던가. 사춘기의 한가운데에 불쑥 찾아온 이방의 소년은 좋아질 구석이 아주 많았다. 당장 그들이 나온 중학교 고등학교만 해도 준수가 첫사랑이었더라는 학생이 한가득하였다. 그런 그가 자신을 특별히 가깝게 대해주니 거기서 오는 우월감이 좋았나. 그를 좋아할 이유는 너무 많았다. 모르는 집에서 더부살이하는 그였으나 용돈 한 푼 받아쓰지 않고 늘 콧대가 꼿꼿하던, 그런 주제에 모르는 어린애 구두 한 켤레를 찾아주겠다고 밤새 하천을 뒤집어 놓던 그라서 좋았던 걸까. 그는 신비하고도 날 것 그대로였다. 벼리지 않고도 날카롭던 날이 어린 도련님의 마음을 난도질한 지 오래였다.

어쩌면 언젠가 떠날 그였기에 좋았던 걸지도 모르겠다. 예고된 이별은 연정의 낭만적인 포장지라 재유는 그가 어느 날 서울로 냉큼 떠날 것을 알면서도 좋아하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니 그래 가고서 복덕방 금마가 어찌나 울던지….”

그 날이 아직도 생생했다. 지수가 다닌다는 중학교는 졸업식이 김해보다 하루 늦다고 했다. 졸업장을 받아든 준수는 그것을 책가방 가장 아래에 쑤셔 넣었다. 책가방은 그대로 짐가방이 되었다. 졸업 기념으로 저녁은 외식을 하자던 진 씨 내외에게 허리가 꺾이도록 인사를 하고는 그가 집을 나섰다. 재유가 도착했을 때 준수는 거기 없었다. 자전거 두 대가 마당에 매여 있었고 원래도 썰렁했던 손님방에는 누가 다녀간 흔적도 없이 냉기만 감돌았다. 재유는 책상 서랍을 열었다. 안은 비어 있었다.

복덕방 손녀는 겨우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자신이 받은 꽃다발을 준수에게 주려고 평상 위에 앉아 오매불망 그를 기다렸다고 했다. 버스를 타러 사거리로 나간 준수는 복덕방 앞을 지나가지 않았다. 한참을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는 첫사랑에 어린애가 울음 터뜨리는 것을 재유는 달려 지나쳤다. 자전거의 체인이 팽팽 돌았다. 기차역에 가까워질 때까지 숨이 가쁘게 찼고 복덕방 손녀의 울음소리가 귓가에 사이렌처럼 맴돌았다. 자전거를 버리듯 내팽개치며 역으로 들어설 때 재유는 생각했다. 그래도, 인사만이라도 하고 가지. 이렇게 도망치듯 떠나지는 말지. 그게 재유가 인천 바닷가에 돌연 그를 세워둔 이유였다. 나는 너와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기 위하여.

“그때.”

준수의 하얀 얼굴은 찬바람을 정통으로 맞아 불긋하게 부르터 있었다. 일주일 앓았던 시절과 많이 닮아 보였다.

“너도 울었어?”

바보 같기만 한 것이 여전했다. 재유는 헛웃음이라도 짓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침묵과 어쩔 줄 몰라 하는 무던한 얼굴 표정은 저 또한 그러했노라 시인하는 꼴에 지나지 않았다. 구명줄을 잡듯 뛰어든 기차역에서 준수는 차표와 짐가방을 양손에 하나씩 들고 시계탑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뒷모습을 익히 알았으나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짐작할 수 없었다. 떠나는 이의 속마음이란, 그래. 남겨지는 자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법이라고. 역까지 자전거를 몰고 온 재유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그때 준수는 오직 숨소리만으로 그를 알아본 듯했는데 그 때문에 돌아볼까 말까 고민하는 것 같았다. 준수! 재유가 선수를 쳤다. 부르니 준수는 돌아보았다. 곱상한 얼굴이 이상하게도 아주 약간 일그러져 있었다. 반가워하는 것 같기도 했고 그 반대처럼도 느껴졌다. 지금과는 또 다른 얼굴이었다.

둘은 한참 마주 보고 서 있었다. 내도 데려가도. 고작 한마디 했을 뿐인데 기차 들어오는 경적 소리가 신나게 역을 울렸다. 준수는 경적이 멎을 때까지 대답을 미뤘다. 안 돼. 떠나는 이의 답은 명료하고 담백했다. 사정이 무엇인지 이유가 어떠한지 가타부타 말도 않고 그는 기차표를 들고 떠났다. 그동안 고마웠어. 그건 6년을 함께 자란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남기는 인사라고 하기에는 너무 쉬웠다. 그래서 오래 가슴에 남았다. 변주하여 기억할 거리도 없었다.

“울었겠나. 그냥 쫌 서운하고 끝이었제. 니랑 내가 같이 지낸 기가 얼만데.”

그러자 준수가 입꼬리를 올렸다. 비뚤게 그인 입매는 예의 그것이었다. 그 잘생긴 미소를 금번의 재유는 오래 보지 않고 적당하게 눈을 돌린다. 역을 나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자전거를 타지 못했다. 엉엉 울며 돌아온 그의 눈은 불어 터진 수제비처럼 부어 있었다. 그러나 준수가 모든 것을 말하지 않고 김해를 떠났듯 이번은 재유의 순서였다. 떠나는 이에게는 침묵이 금과 같았다. 얼마나 못생긴 얼굴을 하고 울며불며 헤어짐의 순간을 흘려보냈는지, 재유는 시시콜콜 털어놓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어련하게 아닌 척을 하려는데 하필 바닷바람 속에 서성이는 짠 내의 출처가 꼭 자신 같기만 하다.

김해를 떠난 소년이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지 않았다. 그가 작은 공장에 취직해 동생의 고교 생활과 대학 입시를 뒷바라지하는 동안 재유는 경남에서 대학을 다녔다. 종종 편지를 주고받았고 때때로 수화기를 사이에 두고 오래 대화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코 예전 같지 않았다. 그가 안 된다고 못을 박은 날부터. 인사도 없이 기차역으로 향한 날부터. 눈을 감았는데 먼지만 불어주고 만 날부터. 책상 서랍에 돈을 모으기 시작한 날부터. 자전거를 산 날부터. 하천을 헤집다 앓아누운 날부터. 처음 김해 어느 동네의 가장 큰 집에 발을 들인 날부터 세상만사는 전과 같지 않고 달라질 운명이었다. 준수는 시시각각 모든 것을 변하게 했다. 그래서 그가 좋았던 걸까. 낯설고 애틋한 순간을 동시에 감각하게 해주어서. 이제 눈앞에 선 근사한 얼굴은 떠나던 날의 그것에 세월과 고생을 한 겹 덧입힌 것밖에 없으면서 새롭고 멀고, 또 그립게 느껴졌다.

“참 이상타.”

“뭐가.”

“떠나는 건 내고. 이번에는 니가 남겠다는 긴데.”

재유는 경남의 대학을 오래 다니지 않았다. 일 년쯤 지나 군대를 다녀오고서는 학교로 돌아가지 않았다. 학교생활에 문제가 있어서도 준수와의 생이별에 적응을 못해서도 아니었다. 그는 주머니 안으로 잡히는 반 접힌 백만원짜리 비행기 표를 만지작거렸다. 다른 길이 마련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재유는 낯선 땅으로 떠나며 준수가 했던 실수를 똑같이 범하고 싶지 않았다. 인사만이라도 하고 가야지. 너로부터 도망치듯 떠나지는 말아야지.

그의 미국 행은 오래 전부터 정해져 있었다. 어른들이 멋대로 정한 일을 재유가 자세히 알 수는 없었는데 그나마 알 만한 것은 준수의 등장으로 그가 세우지 않은 그의 인생 계획 중 많은 부분이 어질러졌다는 점이었다. 준수라고 이를 알았을까. 김해에서 항공권을 받아든 재유는 인천으로 올라가는 내내 장본인에게 묻지도 못할 그것을 궁금해했고 준수는 인천 앞바다에서 그를 기다렸다. 그의 의문을 해소해주기 위해서. 그때 다하지 못한 작별 인사를 마무리하기 위해서. 혹은 그의 미국 행을 붙잡아 미루기 위해서. 마지막은 재유의 지긋지긋한 내심의 바람과 다르지 않았다. 준수는 코트를 입고 바람에 머리카락이 약간 흐트러진 채로 그곳에 서 있었고 두 사람은 자전거를 끌듯 지난한 걸음걸이로 해변을 따라 걸었다. 파도 소리가 하천의 졸졸대는 물살에는 비할 데 없이 요란했다. 둘 사이로 가라앉는 침묵은 언제고 어색했다. 다만 파도가 이를 촘촘히 메꿔주었다.

오늘 떠나는 것은 그였고 이제 배웅 받을 차례였다. 서울 소년이 길게도 연장해둔 사춘기로부터 행을 갈 때였다. 눈을 감았는데 소년이 입 맞추지 않았던 날에 영영 안녕을 고할 때였다. 몇 되지 않는 빛바랜 날을 모국에 버리고 가는 것은 그였다. 그러니 떠나는 것은 그이고 배웅하는 것은 준수일진대.

“왜 또 버려지는 거 같나 모르겠다.“

연정의 유해를 탓해야 좋을까. 그때 그렇게 포장지로 곱게 싸두는 것이 아니었는데.

머지않아 비행기가 떴다. 준수는 인천 앞바다에 서서 그것이 그리는 연기의 흰 직선과 투명한 궤도를 오래 쳐다봤다. 점이 되어 사라지는 그것은 태평양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바다 건너 낯선 땅에서 그는 언젠가의 준수가 그랬듯이 이방의 소년이 될 것이다.

바람이 부질없이 휘돌던 소문처럼 어느덧 잦아들었다. 얌전하게 구는 대기 속에서도 으슬으슬 추위가 올라왔다. 콧속을 채우는 시큰함이 전과 같았으나 그때도 준수는 추워서 감기에 걸린 것은 아니었다. 한밤중에 하천을 다녀온 준수는 시침이 자정에 다 닿도록 흙탕물에 젖은 교복을 빨았다. 기척에 안방의 내외가 뒤척였다. 사늘하도록 고요한 김해 시골의 새벽에 준수는 교복을 쥐어짜며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에도 신경질적인 한숨을 쉬더니 정작 자기 젖은 몸이나 머리 같은 것은 닦지도 못하고 방으로 기어들어 갔다. 엉성하게 말린 몸이 새벽 내리 푹푹 쪘다. 김해의 초봄은 서울서 내려온 그에게는 오히려 텁텁하게 느껴지는 데가 있었다. 개도 안 걸릴 감기로 일주일을 뭉갠 것은 그러니 여러 까닭에서였다. 소년은 김해 어느 동네에 완전하게 녹아들 기회만 엿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한 까닭이었고 덥게 느껴지는 이곳 날씨를 얕본 까닭이었다. 그저 앓아누운 방에 동그란 정수리가 들이밀리는 것을 보고 싶어 그랬던 것일지도 모른다고 그가 떠나는 재유의 흔적 없는 뒷모습을 올려다보며 반추했다.

이 동네 가장 큰 집의 외아들이라는 그는 노르스름한 얼굴에 주근깨를 콕콕 박아 어수룩한 인상이었다. 어린 도련님은 뭣 모르고 손님방에 기어들어 왔다. 그 주머니가 불룩했다. 가정부가 챙기고 간 감기약이 워낙 떫어 준수는 마저 잘 생각도 못 하고 우두커니 앉아만 있다가 불쑥 열리는 문과 틈새의 머리통을 발견한다. 혀뿌리에 남은 쌉쌀함을 단숨에 지워낼 수 있는 것을 그는 가지고 있었다. 사탕이니 과자니 하는 것들을 주섬주섬 끌러 놓던 그가 생각났다. 이어 준수는 그가 걱정되었다. 바다 건너 그 땅에도 그가 좋아하던 입에서 굴리면 도각도각 소리가 나는 동그란 사탕이 있을지. 그 땅에도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과자를 먹다가 흥건하게 남은 부스러기를 치워주는 가정부가 있을지. 거기에도 이불 위로 얼굴만 뉘고 자는 모습을 오래 바라볼 누군가가 있을지. 나란히 타던 자전거가 있을지, 그것이 달릴 하천을 따라 난 흙길이 있을지. 어떤 걱정은 사치였고 무용이고, 또 아는 것이 없어 솟아난 기우였지만 준수는 그가 걱정되었다. 재유가 얼마나 단단하게 자랐는지도 어렴풋이 알았다지만. 어떤 사랑은 어리석음이다. 그리고 긴 인내였다.

엘에이로의 오랜 비행으로 재유는 고단해 했다. 날이 훨씬 포근했다.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인천의 쌩쌩 부는 겨울바람을 한껏 머금고 도착한 그에게 이만한 날씨는 도리어 호사였다. 일찍이 미국에서 살림을 차린 진 씨 내외의 막역한 친구가 공항으로 차를 몰아왔다. 외제 차의 탑승감은 모국에서 느끼던 것과 크게 다를 것 없었으나 반듯하게 정리된 도로나 종종 길거리를 장식한 키 큰 야자수 따위는 이곳이 만리타향임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빗방울 맺힌 차창을 응시하다가 찬 유리에 이마를 괴었다. 운전하는 낯선, 그러나 친근한 어른은 얼마간 달릴 테니 한숨 자두라고 했다. 비행기에서 내리 잔 터라 쉽사리 그럴 수 없었다.

준수는 성급하게 입을 열었다. “그때 너를 데려가지 않은 건….” 다른 무엇보다도 준수는, 떠나는 그에게 오해를 남기고 싶지 않았다. 사춘기의 기억은 하천과 같아서 원치 않게 불어나는가 싶다가도 어딘가는 얕은 줄기로 오그라들고, 그렇게 불공평했다. 불규칙하게 오가는 물살을 가로질러 준수는 흙탕물을 뒤집어쓰면서도 그 사이를 억척스럽게 뒤적였다. 지난 날을 되짚는 준수가 점차로 바닷바람에 젖어 드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에 아랑곳 않고 물먹은 두 다리로 하천 밑바닥을 디디고 서는 것이 준수 나름의 방식이었다. 어린애의 구두 한 켤레를 찾아 밤새 물 밑을 헤집는 것이, 손님방에 기어들어 온 어린 도련님을 놔두는 것이, 나란하게 타던 자전거를 팔거나 버리지 못하고 뻔히 앞마당에 묶어 놓고 떠난 것이. 눈 감은 얼굴에 더 가까워지지 않고 멈춰 선 것이. 그를 기차역에 두고 간 것이, 김해 시골 마을과 그 동네 가장 큰 집의 외아들에게 녹아드는 준수 나름의 모양새이자 긴 인내의 방식이었다. 하지만 준수는 떠날 채비하는 그에게, 순전히 제 방식 때문에 내가 너를 버린다는 오해를 남기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너한테서 아무것도 뺏고 싶지 않았어.”

이를 테면 보기 좋은 미래라든가 하는 것들. 나열하는 목소리가 금방 흩어질 것 같다. 어떤 사랑은 긴 인내였다. 기차표를 쥐고 그를 떠난 것은 유기라기보단 방생이었다. 그가 준수를 위해 가진 것을 버리지 않았으면 싶었다. 준수는 대개의 사랑에서 그런 혼자만의 수고로움을 감수했다. 김해의 모르는 집에서 곁방살이 하며 서울 사는 동생에게 돈을 보낼 적부터 알아볼 수 있었을 것을 그러지 못했다는 게 내심 우스웠다.

사랑은 오래 참음이라. 그런 준수를 그가 불러 세웠다. 김해에서부터 올라온 그는 서울 어디를 전전하며 이따금 시골 그 동네에서의 6년과 어수룩한 소년을 회상하던 준수를 겨울 바다로 끌어냈다. 해서 준수는 길었던 인내에 마침표를 찍을 때가 온 줄을 알았다. 그는 추운 듯 어깨를 둥글게 웅크리고 있었다. 야무지게 닫힌 코트 앞깃을 조금 더 밭게 여몄다. 준수가 그것을 도와주지는 않았지만 그러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러다가 이제 말해도 되겠구나 싶은 순간에 조금 전보다 성급함을 덜어낸 목소리로 준수가 말했다. 나는 너 좋아했다. 전할 것은 하나였다. 그러니까 기다릴게. 그것만은 자신 있었다.

서울 소년이 김해를 찾았듯 재유는 엘에이 한복판에 서 있었다. 타지는 날씨부터가 그에게 환대적이지 못했다. 도심으로 접어들수록 고층 건물이 빽빽하게 그를 둘러쌌지만 두렵지 않았다.

그 집으로 들어서며 준수 역시 같은 생각을 했을까.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은 준수에게 용기를 주었을까, 미련만 듬뿍 남겼을까. 다만 그는 준수와는 다른 사람이어서 언젠가의 귀향은 그다지 슬프지도 애처롭지도 않은 일이 될 것 같았다. 만일 준수가 그를 기다린다면 그의 귀향은 무언가를 포기하는 것이 아닌 그것을 되찾기 위한 길이 될 것이다. 그가 이별이 아닌 기다림으로 이 마음을, 그 유해를 곱게 감싸 두었다면.

군식구가 생겼다. 언덕 아래 복덕방은 그렇게 표현했다. 동네에서 가장 큰 그 집에 서울 살던 남자애 하나가 덜컥 솟아났다는 이야기는 한동안 화젯거리였다. 하얗고 곱상해 푹 들어간 눈두덩과 곧게 솟은 콧날이 두드러지는 얼굴이었다. 교복을 맞추어 입은 불청객은 막 중학교에 들어가는 연배답지 않게 키가 크고 후리후리했다.

이름은 준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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