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의 날
효월의 종언
https://youtu.be/77GgnXoY19E?si=i1u6FWNzAf4DO4gF
우리는 최후를 향해 걸어간다. 이 전투에서 패배한 자는 악역으로 승리한 자는 선으로 기록될 것이다. 각자의 선이라 믿는 신념으로 다가올 운명에 맞선다.
태초에 하나의 신이 있었고 그에 맞선 또 하나의 신이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본디 존재한 이들이 아닌 사람들의 염원으로 태어난 존재로니 결국 돌고 돌아 흑과 백의 싸움일 뿐이었다. 신도 인간도, 선도 악도 아닌 그저 탄생과 죽음을 반복하는 과정.
" 이 싸움이 모두 의미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나? "
잔향의 그 사람이 꿈속으로 찾아와 물었다.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이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으로 모인 형태의 모형인지, 그 고대의 마법을 이용하여 직접 찾아온 것인지 판별할 수는 없지만…. 자신의 신념을 그리고 동포들을 평생 새기어 이곳까지 걸어온 이가 묻는 이 질문은 스스로를 져버리는 질문은 아닌가 싶었다.
의미 없는 싸움. 누군가 들으면 화를 낼지도 모르지만, 양쪽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면 결국 그의 질문의 의도가 무엇이었든 자신은 그 말대로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그저 자신들이 살 적의 세상을 되돌리고 싶은 것이고, 우리는 지금 살고 있는 현재를 지키고 싶을 뿐이니. 과거와 현재가 미래를 두고 싸우고 있는 것이었다. 둘 다 미래로 나아가고자 하는 것은 같은데 한쪽은 사라져야만 하는 운명이니 어쩜 조금은 우스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 전쟁은 언제나 의미가 없어요. 정확히는 그 속에 내재된 폭력성과 반복되는 복수심이 말이죠. "
몇 백년을 전쟁 속에서 살아남았다. 몇 번이고 반복되는 사투 속에서 항상 따라오는 것은 신념을 잃은 이들의 복수를 향한 분노였다. 자신을 지킬 줄 몰랐던 시기의 자신 또한 그랬었다. 제가 오라비를 잃었던 이제는 먼지처럼 툭 털어질 듯 희미해진 기억을 더듬어본다. 우습게도 달라가브의 작은 파편을 머리에 맞아 제 가족과 이 전의 기억들이 그리 선명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선명히 파여진 상처는 아예 잊어버리려야 잊어버릴 수가 없는 것이었다. 제 이마의 흉터를 손으로 쓸어내린다. 그러면 떠오르는 것은 창이 어깨에 관통하던 오빠가 쓰러지던 장면과 시체들이 산처럼 쌓여진 곳에서 혹 그곳에 오빠가 있을까 그 속을 뒤지던 제 모습이었다. 손에 묻은 피가 자신의 상처에서 흐른 피인지, 적의 피인지, 시체들의 피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뒤섞인 채의 모습으로.
" 저는 그래서 모험가이고 영웅인 거에요. 선택받았고 이 모든 것을 끝내길 원하니 후회하지는 않아요. 제가 만약 죽음으로써 모든 걸 끝낼 수 있다면 그럴 거랍니다. "
이것이 그의 답이었다. 잔향의 그 사람, 에메트셀크는 평소 짓던 비릿한 웃음을 짓고는 떠나갔다. 별의 바다로. 모든 것이 찬란히 씻겨져 내려가는 안식처로.
그러므로 영웅은 택하였다. 이 안쓰러운 생명체의 손을 잡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희생은 자신만으로 충분하니, 동료를 도망치게 하는 것을.
진실은 얼마나 애달픈 것인가. 외로운 것은 얼마나 차가운가. 우리는 모두 자신의 신념을 품었을 뿐이지만 그것이 종말을 초래하리라곤 알 수 없었으니까.
별의 바다에서조차 안식할 수 없던 하데스와 휘틀로다이우스를, 그리고 이들과 이제는 마주할 수 없는 쪼개진 제 분신을 애도하기 위해서라도 종말의 부재를 만드는 것은 필요란 일이었다. 이 둘이 혼자 남았던 제 앞을 인도해주며 외로움을 달래주었을 때 얼마나 다정함을 느꼈는지. 하데스를, 휘틀로다이우스를, 헤르메스를 별의 바다로. 그곳에 도달하지 못한 메테이온과 베네스도. 니베이아는 대신하여 추억하며 나아간다. 우리는 돌고 돌아 결국 다시 만날 운명이었음을 깨닫고 그것을 받아들이며. 그리하여 또다시 우리는 다른 모습으로 마주할 수 있을 거라고.
멈추지 말고 읽으세요. 멈추지 말고 쓰세요. 멈추지 말고 싸우세요. 우리 모두 여기 이렇게 살아 있으니까요.
-아말 엘모흐타르<당신들은 이렇게 시간 전쟁에서 패배한다>
우리는 살아있다. 이 지상에 발을 딛고, 죽어서 별의 바다를 순환하며 다른 의미로라도 살아있다. 그러므로 멈출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것은 주어진 운명, 주어진 선택. 그 외로운 손을 잡아주며 친구가 되어주기 위해 나는 이 약속의 날까지 걸어왔습니다.
" 우리 다시 꽃다발을 만들까요. "
우리만 기억하는 그날이 이 약속의 날까지 왔습니다. 나는 걸음을 멈추지 않습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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