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ther and sister
압생트와 새장
녹색 술 두병.. 녹색의 악마라고 불리는, 도수가 약 70도 쯤 되는 압생트를 테이블 가운데에 둔 두 사람은 잠시 침묵했다. 따지면… 어쩌다보니 저희집에서 저녁까지 먹고 가겠냐는 제 제안에 수락한 제 오빠가 왜 그랬지, 하고 속으로 한탄하는 것을 보고 있는게 더 정확했다. 녹색머리가 바람에 흔들리는걸 느끼며, 햇빛을 조명삼아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는 꽃들에 시선을 두다, 입을 열어 한마디를 꺼냈다. 반가운 한마디, 그 한마디를 내가 꺼낸 것이다.
“ 그렇게 싫어? ”
어찌보면 그에겐 당연한 발언을 제 앞에 계신 멋드러진… 남성은 정성스럽게 답해주었다.
“ 내가 거지새끼인걸 다행으로 여겨라. ”
정성스러운 답에 웃음을 흘리곤 말을 이었다.
“ 걱정마.. 우리의 자리는 생각보다 멀리 떨어져있을테니까. 그 애들도 혈육이라고 막 붙여두진 않을거야. 내가 장담할게. ”
그러자 그는 내 말을 믿는듯.. 안믿는듯한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러다 내가 웃으며, 준비된.. 네모나게 잘라진 예쁜 얼음이 담긴 잔에다 압생트를 따라주자, 그 잔을 가져가 가벼이 들이켰다. 물론 나도 내 잔에다 따라 같이 몇모금 들이켰다. 가벼이 들이킨 압생트의 맛은 좋다고 할 수는 없었다. 내가 마셔보고 평가한 어느 독한 술이 다 그렇듯.. 나름의 감상평이라고 하자면 몽롱한 기분을 안겨준다. 그것도 술 몇댓잔을 먹은 것처럼. 그리고.. 음.. 자주 마셨다간 정신병자 될지도 모르는 맛.
“ 술은 이런 맛으로 먹는거야? ”
내 시답잖은 질문은 답하기도 귀찮다는듯, 그의 앞에 있던 술 병 하나를 집어와, 잔에 가득 따르곤 목 뒤로 넘겼다. 그러다 이제서야 답이라도 할 생각이 들었는지 잠시 침묵한 그는 입을 때어 말을 내뱉었다. 입에 걸린 피어싱이 햇빛에 살짝 빛났다.
“ 처음 마셔보는 것처럼 그런다. 원래 독한 술이 다 그런거지. ”
“ 이거 계속 마시면 정신병자 될지도 모르겠다. ”
그러다 그가 너는 원래 정신병자 아니었나, 하고 바라보는 시선에 웃음 흘렸다. 따지면 정신병자처럼 구는게 맞다고 해야하나. 아니면 나도 자각 못하는 정신병이 내 안에 있던걸지도 모른다. '
“ 오늘 만찬 메뉴 뭔지 맞춰볼래? ”
“ 나 니집 처음 오거든. ”
그러고선 어이가 없다는듯 픽하고 웃음 내뱉는 그였다. 내려 땋은 머리가 풀어헤쳐진 탓에 잔머리가 삐죽삐죽 튀어나와 흘러내렸다. 오는길에 굴러왔나.. 아니면 누구랑 머리채 잡고 싸웠나, 하고 생각될 정도로 멀쩡한 머리상태는 아니었다. 하지만 옛날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그를 위해 깔끔히 묶었주었던 머리가 하루만 지나도 엉망이 된 적이 많아 그리 이상하진 않았다. 이제보니 그는 달라진게 생각보다.. 아니.. 그렇게 많이 바뀌진 않은 것같다. 귀에 걸린 귀걸이와, 입과 귀에도 걸린 피어싱을 제외하면 그는 달라진게 없었다. 화려한 정장도 이제서야 눈에 띄었다. 내 앞에서 예의라도 차리려는건지, 아니면 과시하는건지 모르겠다. 좋게 생각한다면… 이제 가주가 된 나에게 마지막으로 차리는 예의라고 생각해야지 마음이 조금은 편했다. 내 오라비는 세간에선 그래도 심각할 정도의 말종은 아니었다고 자자했으니까. 그런만큼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곤, 그의 옷을 조금은 자세히 보았다. 의도하진 않았다. 이것도 나름 특이한 제 버릇이었으니까. … 누군가 보면 귀한집이라도 가는줄 알정도로 화려한 정장. 어두운 남색 셔츠 위에, 하얀색 넥타이. 거기다 금색 넥타이 핀도 끼었다. 그리고 그 위엔 하얀색 조끼를 얹었고, 검은색에 금색 자수가 놓인 자켓을 입었다. 그리 화려하게도 꾸민 그를 훑어보다, 이내 가슴팍에 박힌 브로치에 자연스레 눈이 갔다. 금 판 가운데엔 큼지막한 녹색 보석이 박히고, 그 주위엔 자잘한 진주와 보석으로 장식한 화려한 브로치였다.
“ … ”
내가 그의 브로치에 시선을 두자, 그도 내 시선을 느꼈는지 말을 내뱉었다.
“ 그래.. 니도 익숙하겠지, 이거. ”
그리곤 그가 손가락으로 브로치를 가리키곤 말 이었다.
“ 이걸 왜 안 버렸나 궁금할거다, 그렇지? 근데 빌어먹을 이걸 어떻게 버리냐? 이거 보석 하나하나 떼서 팔면 돈이 되는데. ”
가정사 하나 모르고 들은 다른 이들은, 금새라도 ‘ 어휴, 이 돈에 미친 것 ’ 하며 혀를 차고 지나갔겠지만, 음.. 내 입장에선 저 말이 나름대로 다르게 느껴졌다. 그도 집을 나가고 챙긴 마지막 가족의 흔적이 저것밖에 없어서 간직하고 있다.. 라는 감동적이고 눈물나는 해석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게 아니라면 진짜.. 돈이 없어서 나중에 떼서 파려고 했던걸지도. 그랬다면 가족으로써의 사랑이라던가 마지막 믿음에 금이 갔을지도 모르겠다.
“ 돈이 없구나.. 난 이번에 사업 성공해서 돈 많은데. ”
“ 더럽게 좋겠네.. ”
“ 떵떵거리면서 살 수 있는 기회를 제 발로 걷어찬건.. 오라버니, 너야. ”
그러자 대답하기도 싫다는 질문이라도 받았는지 말없이 잔에 담긴 술을 벌컥 들이켰다. 녹색 술이 그의 목구멍 뒤로 넘어가고 있다. 제 앞에 남자를 보다보면은.. 제 다른 오빠가 생각나기도 했다. 쌍둥이라 얼굴이 닮기도 했지만.
“ 벌써 그렇게 술을 마시면 어떡해. 이따 저녁 만찬 때도 술 마실텐데. ”
“ … ”
그 말을 들은 그는, 잠시 얼굴이 미묘하게 불만스러워지다, 내 얘기가 나름 신빙성이 있고 믿을만 했다 판단했는지, 비어있는 잔을 채우기 위해 들었던 술병을 얌전히 내려놓았다. 그가 내 말을 나름 신빙성 있다 판단한 이유는.. 곧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는건 곧 저녁을 먹을 시간이라는걸 뜻했기에, 그도 더 이상 술을 먹으면 이따 저녁에서 먹을 더 좋은 술이 안 들어갈거라 판단했으니까.
해가 나름 져 주황빛 노을이 하늘에 펼쳐졌다. 정원에도 주황빛 조명이라도 비춘듯 꽃들이 약간 주황빛으로 물들어져 갔다. 정원 테이블에서 동시에 일어난 두사람은, 누구라도 약속하지 않았지만 누가 본다면 짜고 친듯 제가 먼저 나간 뒤, 뒤에는 그가 나갔다. 그리고 그는 ‘ 아무리 패륜아라도 레이디 퍼스트는 지켜야지. ’ 라는 말을 남기며 말이다. 우리가 같이 있는 것 자체가 옛 추억을 떠올리기엔 충분했다. 우리에게도 이런 정원은 있었다. 물론 유리로 만든듯한 새장 건물은 없었지만. 같이 차를 마시며 좋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던게 기억이 났다. 물론 지금은 술이지만. 어쨌건 즐거운 기억인건 맞았다. 그도 그 기억이 떠오르기라도 했는지 조금은 옅은 미소가 입에 올라왔다. 금새 없어지긴 했지만.
“ … ”
내 저택의 특징이라고 하면 다른 저택보다 더 옛날식같은 느낌이 들었다. 속된말로 하면 유행에 뒤떨어진 구린 저택. 물론 그런 저택으로 내가 정한건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이 저택은 내가 유년시절에 지낸 저택과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었으니까.. 내가 어릴적에 느끼는 기분 그대로 그가 느끼길 기도하며 같이 그와 저택 안으로 발을 들였다. 그리곤, 그가 저택으로 발을 들이자, 아까도 보았던 곳이지만 제대로 둘러보지 않은 모양이었는지 믿기지 않는다는듯 탄식을 흘렸다. 그리곤 조용히 이리 입에서 중얼거렸다.
“ 옛날에 내가 있었던 저택이랑… 똑같잖아. ”
“ 내가 옛 기억 열심히 끌어모았어. 어때. 마음에 드는지 모르겠다. 덕택에 건물 지어주는 애들한테 많이 혼났지. ”
그는 잠시 침음을 흘리곤, 제 하관을 만졌다. 그리곤 하관을 만지던 손을 그의 주머니에 넣곤 말 이었다.
“ .. 기분 존나 이상하네. 더러운건지 좋은건지 구별이 쳐 안간다, 덕택에… 다신 못 느껴볼 옛날 향수 다 느끼네. ”
그 말을 남기곤, 그는 퉁명스럽게 담배 한개비를 꺼내 그것을 물곤 불을 붙였다. 내가 뭐라 말할 새도 주지 않은채 그대로 안으로 들어간건 덤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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