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뱀파이어가 된 메구미 (2)

사흘 전, 후시구로 메구미가 사라진 날은 그의 학급 주번일이었다. 일찍이 동생의 주번일을 확인해 두었던 츠미키는 먼저 집으로 돌아갔다. 그 외에 특이한 점은 없었다. 같은 날 주번이었던 아이는 교문을 통과하던 후시구로를 보았다고 진술했다.

유동 인구가 많은 지역이었다. 주번 일을 마친 아이가 느지막하게 하교했다손 치더라도 교직원의 퇴근 전일 터. 기껏해야 5시. 혹은 그보다 전. 고작 시월이었다. 오후 다섯 시면 해도 다 지지 않은 이른 시간이다. 교문 바깥으로는 어린 손님을 위한 상점이 줄줄 늘어서 있었고, 그 걸음으로 십 오 분 거리에는 아파트단지가 즐비했다. 환한 대낮, 쉴 새 없이 사람이 오가는 번화가. 무엇도 납치범이 활동하기에 바람직한 조건은 아니었다.

그러니 후시구로가 사라진 건 아마 집 앞이었을 것이다. 버스를 타고 30분 남짓. 남매가 사는 아파트는 아이들의 성장에 좋은 영향을 줄 만한 공간은 아니었다. 아파트의 거주민 중에는 이전에 범죄자였거나 차후 범죄자가 될 것 같은 이들이 많았다. 흡혈귀도 아닌 것이, 그들은 해가 뜬 시간에 잠을 자고 사위가 어두워진 후에야 비척비척 일터로 향했다. 제 코가 석 자인 형편에 이웃에 누가 살고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관심이 있을 리 없다. 드물게 모범적인 형사가 종일 탐문수색을 벌였지만 변변한 성과를 얻지는 못했다. 사라진 아이를 보았다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거리에 늘어선 CCTV는 반수 이상이 고장이었다.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정상적인 비디오를 확인했지만 후시구로의 모습은 어디에도 찍혀있지 않았다.

후시구로가 사라진 시점으로부터 사흘. 만으로는 이틀. 서럽게 우는 츠미키를 달랜 고죠는 곧장 가까운 경찰서를 찾았다. 한창 업무 중이던 형사는 사라진 후시구로 메구미의 보호자랍시고 나타난 그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탈색을 세 번은 한 것 같은 백발, 비가 죽죽 내리는 날씨에 어울리지 않는 선글라스. 일찍 부모를 여읜 남매에게 변변한 친척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들어 알고 있던 형사는 불친절한 태도로 일의 경과를 설명했다.

“애가 없어진 지 사흘이에요. 걱정도 안 됐습니까?”

“……해외에 있어서.”

“아, 해외.”

경찰은 고죠를 위아래로 훑었다. 다 쓰러져가는 아파트에 사는 남매의 보호자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귀티가 나는 청년이었다. 큰 키에 어울리는 체격, 입은 옷은 주름 하나 없이 반듯하게 다려져 있었다. 걸친 선글라스도, 반질반질한 구두도 고급품이 분명했다. 심지어 그는 심부름꾼으로 추정되는 남자를 대동한 채였는데 그 부유한 모습이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남매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불친절하다 못해 빈정대는 듯한 경찰의 태도에 이지치는 안절부절 손끝을 만지작댔다. 고죠 사토루는 세상을 발아래 두고 사는 것 같은 인간이었다. 그 삶에 싫은 소리를 들은 경험은 손에 꼽을 정도였고, 개중 이야기를 얌전히 수긍해 넘긴 상황은 없다시피 했다. 재주 많은 남자는 힘으로 상대의 입을 다물리는 일에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 경찰의 태도는 내내 써늘했다. 신중하게 구성했을 문장은 고죠의 자존심을 긁어내리는 단어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인내심이라곤 약에 쓸래도 없는 남자가 지금 당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경찰의 멱살을 잡는대도 이상할 건 없었다.

침묵이 길었다. 고죠는 한마디 대꾸도 없이 쏟아지는 힐난을 감내했다. 그의 얼굴을 확인할 수 없는 위치에 선 이지치는 불안하게 눈을 굴렸다.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빗소리가 요란하다. 이야기를 마친 경찰이 고죠를 내려다보았다. 짧은 고요의 끝에 고죠가 입을 열었다. 네, 감사합니다. 그게 다였다. 차분한 목소리는 한없이 정중했다. 고죠는 불편하게 구겨져 있던 다리를 펴고 몸을 일으켰다. 파란 쿠션이 달린 싸구려 접이식 의자가 끽, 소리를 내며 뒤로 밀려났다. 의외라는 듯 눈을 깜빡이는 경찰에게 꾸벅 허리를 숙인 고죠는 그대로 경찰서를 나섰다. 이지치가 허둥지둥 그의 뒤를 따랐다.

문 앞에 선 고죠는 가만히 정면을 응시했다. 들고 있던 우산 중 하나를 편 이지치가 그 손잡이를 고죠를 향해 내밀었다.

“실수했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에는 한 톨의 감정도 담겨있지 않았다. 이지치는 흘낏 고죠의 얼굴을 확인했다. 선글라스에 가려진 눈동자가 심해의 바닥처럼 고요했다. 우산을 넘겨받은 고죠는 가타부타 설명도 없이 계단을 뛰어내렸다.

변변한 정보는 없었다. 경찰이 아는 건 기껏 후시구로가 사라진 날의 행적이 다였다. 행적 이외의 사항이라면 후시구로 메구미가 사라진 과정을 본 사람이 어디에도 없다는 정도. 아이가 증발했대도 이보다는 물증이 남았을 텐데. 일을 설명하던 경찰이 한숨처럼 중얼댔다.

여러모로 의문점이 많은 사건이었다. 쥐도 새도 모르게 하굣길의 어린아이를 납치하는 게 가능한 집단이라면 왜 그 타깃은 후시구로 메구미가 되었는가. 낡고 허름한 아파트에 부모도 없이 사는 남매를 납치해 무슨 이득이 있다고. 목적한 바가 돈이 아닐 수도 있다. 나쁜 놈들은 사고는 창의적이고 기발한 경우가 많았으니까. 납치한 어린애를 알차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야 무궁무진했다. 후시구로 남매의 가정형편을 고려할 때 납치범의 목적이 몸값일 가능성은 희박했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도 괜찮을 만큼 협소한 인간관계를 가진 어린애 그 자체가 목적이었다는 편이 그나마 현실성 있겠지. 물론 몸값 어쩌고보다 가능성이 있다는 뜻일 뿐, 이 역시 설득력 강한 가설은 아니었다. 어린애 그 자체가 목적이었더라면 남매가 함께 하교하는 날을 노려 둘 다를 납치하는 편이 깔끔했을 것이다. 츠미키는 어렸지만 사리 분별 정도는 가능한 나이였다. 동생의 귀가가 늦어지면 경찰서로 달려가 실종신고를 할 만큼의 머리는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를 토대로 하면 납치범의 목적을 유추하는 일이 가능해진다. 그들의 목적은 처음부터 후시구로 메구미뿐이었다. 그의 연년생 누이는 고려의 대상조차 되지 못했다. 대담하고 조심성 없는 행보가 범죄자의 사고를 투영했다. 그들은, 경찰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납치범은 남매 중 후시구로 메구미만을 선택적으로 납치했다. 몸값 비슷한 것을 요구하는 연락도 없었다. 당연했다. 몸값이라니, 우스운 소리지. 후시구로 메구미는 자체가 보물이었다. 주술가 3대 가문인 젠인의 상전술식인 십종영법술. 그 귀한 술식을 계승한 아이를 데려오고자 고죠가 벌인 사달을 모르는 주술사는 아마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고죠 사토루는 ‘젠인 메구미’를 ‘후시구로 메구미’로 있게 하고자 단신으로 젠인가를 방문, 젠인의 모든 식솔을 힘으로 굴복시켰다. 이후에는 후시구로 메구미의 몸값으로 10억을 지불했는데 이것이 정말 후시구로 메구미의 몸값인지, 그가 가루로 만든 젠인가의 수리비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하나 확실한 건 고죠가 건넨 10억이 일종의 계약금이라는 사실인데, 실제로 일이 있던 다음날 젠인을 방문한 그는 젠인 당주를 만나 모종의 계약서를 작성했다. 그 내용은 젠인의 당주와 고죠만이 알고 있었고 호사가들은 그 내용이 10억의 화폐가치를 웃돈다고 추측했다. 고작 열 살 남짓의 어린아이는 주술계 전반에 크나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고죠는 후시구로의 유명세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당연히 입막음을 시도하지도 않았다. 후시구로를 데려오려 그 요란을 떨어놓고 침묵을 바랄 수는 없는 법이다. 고죠는 쓸데없는 일에 힘을 빼는 대신 저 이외의 주술사가 아이의 주변에 접근하는 일이 없게 엄포를 놓았다. 그 성질머리를 익히 알고 있는 주술사들은 실수로라도 후시구로 메구미의 근처에 다가가는 일이 없게 각별한 주의를 기울였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고인 빗물이 튀었다. 비스듬하게 부는 바람이 거세다. 우산이 제 몫을 다하기에는 어려운 환경이다. 행인들은 우산을 비스듬히 기울여 쓴 채 겨우 얼굴만을 보호했다. 그 사이, 까만 우산을 어깨에 걸친 고죠의 모습이 도드라졌다. 바람을 탄 빗물도, 바닥에 고인 웅덩이도 그의 옷자락을 적시지는 못했다.

후시구로 남매가 사는 낡은 아파트 앞으로 돌아온 고죠는 선글라스를 벗고 유심히 주변을 살폈다. 우울한 색채로 잠긴 풍경에 파르스름한 빛이 번져있었다. 비에 젖은 풍경에 녹아 자칫 간과할 수 있을 정도로 엷은 빛이었다. 고죠는 가늘게 늘어진 빛의 꼬리로 다가가 곁에 섰다.

영리한 아이였다. 거리 곳곳, 희미한 주력의 잔예가 남아 있었다. 육안을 가진 고죠가 아닌 이상 쉽게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경미한 양이었다. 느린 걸음으로 이어진 빛을 따라 걷던 고죠가 우산을 접었다. 그 몸을 젖게 하지 못한 빗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실타래처럼 남은 자취의 끝에 빛이 가득 고여있었다. 산발적으로 터진 빛이 좁은 골목의 이곳저곳을 선뜩하게 물들였다.

후미진 골목에서 벌어졌던 납치극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했다. 납치범이 후시구로를 붙잡았다. 저항하려던 후시구로는 모종의 이유로 그들이 주술사라는 사실을 알았다. 상대가 주술사인 이상 저항은 무의미하다. 아이는 주력으로 흔적을 남기고자 했지만, 시도는 곧 무산되었다. 얇고 조심스러웠던 자취는 골목에서 끊겼다. 웅덩이처럼 고인 잔예가 당시의 상황을 나타냈다. 후시구로는 어떻게든 일을 고죠에게 알리려 했지만, 납치범의 소유일 자동차를 확인한 순간 더는 자의로 주력을 남길 수 없다고 판단을 내리고 도주를 꾀했다. 식신을 불러낸 흔적은 없었다. 주력을 통해 구현되는 식신은 엄연한 생명체로 불러낸 자리에 독특한 잔예를 남긴다. 고죠는 후시구로의 잔예를 알고 있었고, 옥견을 불러낸 자리에 남는 주력의 형태도 알고 있었다. 후시구로는 식신을 불러내는 일에 실패했다. 주력을 사용할 수 있으되 식신을 불러내지 못하는 상태. 손이 봉해졌다는 뜻이다. 후시구로의 잔예가 묻은 타이어가 도로에 긴 자국을 남겼다. 고죠는 허공에 떠 남은 잔예를 쫓았지만 큰 소득을 거두지는 못했다. 잉크처럼 찍힌 잔예는 갈수록 흐려져, 2킬로가량을 이동했을 즘 완전히 사라졌다.

안일했다. 설마 제가 후견인으로 있는 아이에게 손을 대는 미친놈이 있을 줄은 몰랐다. 귀한 술식을 가지고 있으나 변변하게 힘을 사용하지 못하는 어린애. 훗날의 가치를 점칠 수 없을 만큼의 보물. 얼마나 탐이 났을까. 고죠를 제외하면 변변하게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아이였다. 그들은 용의주도하게 고죠가 자리를 비운 틈을 노렸다. 그가 그렇게 만들었다. 그날, 후시구로를 데리고 오는 일을 포기했더라면 오늘과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겠지. 젠인 메구미는 가솔의 철저한 보호 속에 자랐을 것이다. 젠인의 안채에 앉아 온갖 보호 주술을 둘렀을 고삼가 차기 당주의 납치같은 건 감히 엄두조차 내지 못했겠지.

일단 고죠의 눈을 벗어나 아이에게 닿는 일에 성공하면 다음은 쉽다. 불러낼 수 있는 식신이라곤 옥견 두 마리에 불과한 어린애를 감추는 일은 간단했다. 그들은 용의주도하게 고죠가 자리를 비운 틈을 노렸고 기어이 목적한 바를 이루었다. 차량의 왕래가 적은 도로의 가운데에 홀로 선 고죠는 무릎을 굽히고 물에 젖어 일렁대는 후시구로의 마지막 흔적 위에 손을 올렸다. 후회하는 일은 쉽다. 의미도 없다. 해야 할 일이 눈앞에 있었다. 누군가가 사라진 자리를 노려보며 과거를 곱씹는 경험 따위는 한 번으로 족하다.

오래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암자였다. 이름 모를 꽃들과 억센 풀줄기가 언젠가 사람이 오갔을 길을 침범해 자라있었다. 무성한 수목은 저들끼리 팔을 엮어 오전 나절의 빛을 가렸다. 드리운 그늘은 깊었고 검은 음지는 겨울의 밤처럼 어둡고 축축했다. 젖은 땅으로부터는 희미하게 물비린내가 났다. 자취의 끄트머리에는 낡은 우물이 걸려있었다. 푸르스름 이끼가 낀 우물로부터 응달의 냄새가 났다. 우울한 냄새였다. 산 것이 고인 채 썩어가고 있었다.

우물에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는 색이 검었다. 연기처럼 흔들리는 것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샛노란 비늘을 가진 생물이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설화 속 기린을 닮은 짐승이었다. 침입자를 바라보는 짐승의 눈이 의아한 기색을 띠었다. 어둑하게 쏟아지는 볕에 영롱한 비늘이 부서지듯 빛났다. 침입자를 바라보던 생물의 주둥이가 벌어졌다. 새카만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열린 아가리에서 썩은 잉어가 와르르 쏟아졌다. 물기가 다 마르지 않은 흙바닥으로 죽은 생물이 쌓였다. 질척대는 마찰음과 함께 이름 모를 것이 우물을 기어올랐다. 우물 아래 감춰두었던 몸뚱이가 드러났다. 둥그런 몸뚱이에 붙은 짧은 여섯 개의 다리. 무언가를 삼킬 입은 있으나 소화 시킬 기관은 존재하지 않는 듯, 먹어 치운 것이 쌓인 몸이 울퉁불퉁했다. 그것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신성을 모방한 비늘이 떨어졌다. 비늘로 숨겨두었던 피부는 검붉었다. 굶주린 것이 침입자를 삼키려 달려들었다. 그는 무심히 그것을 지나쳤다. 조각조각 부서져 퍼덕대던 것들이 곧 움직임을 멈췄다.

네 개의 우물을 지나 아홉 개의 결계를 통과한 후 모습을 드러낸 것은 오래된 신당이었다. 결계를 이용해 공간을 왜곡하는 술식. 꽤 품이 들었겠군. ‘적잖게 품이 들어간’ 결계를 거침없이 부수며 진입한 침입자의 감상은 그랬다. 결계를 만든 건 제법 머리를 굴릴 줄 아는 인간이었을 것이다. 그 노력이 가상했다. 저들은 육안을 속이기 위해 온 사방에 주력을 뿌렸다. 보이는 것 이상을 보는 눈으로부터 도망치는 대신 그 눈을 가리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평범한 주술사였으면 무시하고 지나쳤을 흔적까지 좇아 정보로 받아들이는 눈에 부하를 건다는 발상은 정말로, 꽤 괜찮았다.

덕분에 닷새가 걸렸지.

결계의 가장 깊숙한 곳. 까맣게 잠긴 초가을의 풍경 너머. 침입자는 기어코 찾던 것을 발견해냈다.

후시구로 메구미가 사라졌다. 정황상 납치를 당한 게 분명했다. 지쳐 잠든 츠미키를 안쓰럽다는 듯 내려다보던 이지치는 일을 주술계에 알리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 물었다. 시대를 막론하고 주술사는 늘 손이 귀했다. 빼어난 재능을 가진 주술사라면 더 그랬고. 젠인의 상전술식을 계승했으며 고죠가의 비호받는 아이였다. 도움을 청하면 누군들 나서줄 터다. 이지치의 말에 고죠는 코웃음을 쳤다. 이지치의 의견은 일의 사후 처리를 고려하지 않은 낙관론이었다.

젠인에 손을 벌리는 일은 불가능했다. 물론 젠인은 저희 가문의 술식을 지키기 위해 발 벗고 주저사의 수색에 동참할 터였다. 그래서, 후시구로를 찾으면? 기다렸다는 듯 고죠의 자격을 논하며 후시구로를 가로채려 들겠지. 당연히 고죠가의 힘을 쓸 수도 없었다. 그는 확실한 다음 대 고죠가의 당주였지만 ‘현’ 당주는 아니었다. 가문의 원로들은 선대 당주를 살해한 십종영법술사를 손에 넣기 위해 고죠가 벌인 일을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젠인에게는 중요한 당주 후보. 고죠가에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일 아이. 오랜 세월 고삼가 사이에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 젠인과 척을 지면서까지 후시구로 메구미를 고집할 이유가 없다는 게 그들의 뜻이었다. 이미 후시구로 메구미를 데려오는데 치른 값이 적지 않았다. 원로들은 이상의 손해를 감수하지 않을 것이다.

혼자 해결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먹고 자는 시간을 줄였다. 반전술식을 통해 극단적으로 뇌를 활성화했다. 정보를 모으고, 처리했다. 머리 깨나 쓸 줄 아는 치들 덕에 생각했던 것 이상 시일이 소요됐다. 그들은 육안을 소모할 줄 알았고, 고죠가 놓인 처지 역시 이해하고 있었으나 그가 젠인 토우지를 살해한 날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그것만이 그들의 패인이었다.

흉흉한 분위기의 신당 앞, 무복을 입은 여성들이 그를 마주했다. 주력을 단련한 기척은 없었다. 비술사였다. 그들은 고죠를 알지 못하는 듯 당혹스럽게 시선을 교환했다. 결계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건 허락을 받은 주술사뿐이다. 설마하니 그것을 죄 찢어발기고 진입하는 사람이 있을 줄, 어디 짐작이나 했겠는가. 고죠는 태연하게 그들을 지나쳐 신당의 입구에 섰다. 주력으로 꼬아낸 금줄과 갖은 주술을 박아넣은 색색의 헝겊이 흐르는 바람을 따라 음울하게 일렁였다. 고죠는 입구를 막은 금줄을 걷어냈다. 저항이 느껴졌지만 대단한 수준은 아니었다. 고죠 사토루에 한해서는 그랬다. 무녀들은 그제야 그가 침입자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려움 없이 금줄을 걷어내는 고죠의 모습에 그들은 급히 어딘가로 연락을 취했다. 결계를 만든 주저사 무리일 것이다. 의미 있는 행동은 아니었다. 결계를 구축한 무리는 결계가 부서지는 것과 동시에 침입자의 존재를 알아차렸을 테니까.

오래도록 관리하는 사람이 없던 신당은 이곳저곳이 뒤틀리고 삭아있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썩은 바닥이 끽끽 비명을 질렀다. 후시구로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신당의 가장 깊숙한 곳으로부터 억눌린 주력의 기척이 느껴졌다.

두 개의 문을 지나쳐 복도의 끝에 다다른 고죠가 입을 열었다. 메구미. 얇은 문 너머 숨죽인 바람이 대답을 대신했다. 주술을 사용하지 못하게 입을 막아뒀을지도 모른다. 고죠는 여닫이문을 젖혀 기척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빛이 들지 않는 모퉁이, 정오의 밤에 몸을 웅크린 후시구로가 그를 응시했다. 희게 바랜 손끝에는 핏물이 굳어 있었다. 오래 결박되었던 탓인지 축 늘어진 손은 움직임이 없었다. 작고 가느다란 열 개의 손가락 하나하나가 금줄에 묶여 있었다. 마른 손목에는 주력을 억제하는 주술부가, 얇은 목에는 말라붙은 피로 주술이 새겨져 있었다. 그 목에서 희미한 시취가 풍겼다. 죽은 것의 피가 아이의 목소리를 봉하고 있었다.

습기를 잔뜩 머금은 채 썩은 나무 냄새는 물비린내를 닮은 구석이 있다. 심해의 바닥처럼 깊은 어둠 속, 그림자 아래 가라앉은 눈동자는 무섭도록 고요했다. 숨이 턱 막혔다. 혓바닥이 굳어 제대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후시구로에게 다가간 고죠가 엄지로 그 목을 문질렀다. 핏물이 번지며 주술이 깨졌다.

“메구미, 괜찮아?”

“응. 츠미키는?”

담담한 목소리. 아이는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굴었다. 그럴 수가 있나? 후시구로 메구미는 고작 일곱 살이었다. 상황을 이해하지 못할 만큼 아둔하지도 않았다. 하얀 얼굴은 말끔했다. 눈물 자국 같은 건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림자가 진 얼굴을 손가락으로 쓸어 낸 고죠가 고개를 숙였다.

그가 후시구로를 찾는 데에는 닷새가 걸렸다. 닷새간 그는 한순간도 조급해한 적이 없었다. 홀로 후시구로를 찾는 일에 예상했던 것 이상의 시간이 걸린대도 괜찮았다. 십종영법술, 혹은 술식을 사용하는 술자. 어느 쪽이 목적이건 저들이 후시구로에게 해를 끼칠 리는 없었으니까. 열 살도 되지 않은 아이는 그렇게 여드레를 보냈다.

물기 없이 마른 눈이 고죠를 응시했다. 작은 손을 옭아맨 금줄을 끊어낸 고죠는 후시구로를 품에 안았다.

“미안해, 메구미.”

지난 며칠이 그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젠인의 요구를 가늠할 시간에 그들의 손을 빌렸어야 했다. 원로들과의 기 싸움을 할 시간에 가문의 힘을 동원했어야 했는데. 전부 때늦은 후회였다.

또래보다 작은 몸은 조금만 힘을 줘도 부서질 것처럼 가늘었다. 마른 등이 느리게 오르내렸다. 움직임은 그것뿐이었다. 주력과 주술을 모조리 봉인 당한 몸에 저주가 가득 들러붙어 있었다. 여드레 동안 묶여 있던 손목은 금줄의 모양대로 멍이 들었고 나뭇가지처럼 마른 손가락은 잔뜩 짓물러 있었다. 두려웠다. 그에게는 저주가 공기처럼 드리운 방에 던져져 여드레를 보낸 일곱 살 어린애의 머릿속을 읽어낼 능력이 없었다. 끌려가던 순간까지 필사적으로 행적을 남기고자 했던 영리한 아이. 그는 얼마나 오래 고죠를 기다렸을까. 그리고 언제 그를 포기했을까. 알 수 없었다. 물을 수도 없었다.

후시구로 메구미는 익숙한 남자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죽음 앞에서, 저를 죽인 이에게 피붙이를 맡기던 남자의 얼굴이었다. 하나뿐이던 친구 역시 그런 눈을 하고 있었다. 그를 남겨둔 채 떠나던 사람들의 모습이 그러했다. 조바심이 났다. 엉망이 된 손을 감싸 쥔 고죠는 급박한 어조로 했던 말을 되풀이했다. 미안해. 늦어서 미안해.

“미안해. 내가, 내가 너무 늦어서…”

두서없는 단어가 목구멍에 걸려 숨통을 죄었다. 피 한 방울 통하지 않은 아이는 그의 가족이었고, 꿈이었고, 보물이었다. 감히 저울의 반대편에 매달 수 있는 것이 아니었는데. 그 사실을 간과했다. 후시구로를 납치한 주저사조차 아는 것을, 제가 잊고 있었다.

잃을 뻔했던 것. 혹은 잃어버린 것. 경계선에 선 후시구로는 내내 말이 없었다. 후시구로가 손을 빼낸 건 다음 순간이었다. 팔을 올린 후시구로가 고죠의 등을 끌어안았다. 힘이 들어가지 않는 손가락이 속절없이 구부러지는 것이 느껴졌다. 후시구로는 간신히 입술을 떼었다. 지친 목소리였다.

“…메구미?”

작은 머리통이 힘없이 늘어졌다. 위로하듯 고죠의 등을 쓸던 손이 죽 흘러내렸다. 맥없이 넘어가는 몸을 받쳐 안은 고죠가 눈을 깜빡였다.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나고 드는 숨이 약했다. 후시구로는 꼭 줄이 끊어진 인형처럼 보였다. 손가락에 닿는 피부가 사늘하게 식어있었다. 멍하니 후시구로를 내려다보던 고죠는 급히 아이를 안아 몸을 일으켰다. 머릿속이 엉망이었다. 작은 등을 감싼 손가락이 형편없이 떨렸다.

토할 것 같아.

‘사토루가 잘못한 게 아니야.’ 이게 왜, 내 잘못이 아니야?

신당을 벗어나자 대기하고 있던 주저사들이 달려들었다. 육안은 단숨에 모인 인간을 분류했다. 주저사와 비술사가 섞여 있었다. 주술사가 비술사에게 상해를 입힐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비술사 사이에 숨은 주저사들이 주술을 발동했다. 급박하게 움직이는 풍경을, 고죠는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주술사는 저주와 주령으로부터 비술사를 보호하는 것을 첫 번째 목표로 삼는다. 그는 인간으로 났으나 인간으로 자라지 않은 존재를 금제하기 위한 도덕적 족쇄였다. 비술사와 주저사를 판별해 주저사만을 항거불능의 상태로 만드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고죠에게는 그랬다. -너라면 할 수 있잖아. 유난히 습하고 무덥던 여름, 버석하게 말라붙은 채 추락하던 의문들. 언제나 그랬다. 행하는 일은 쉬웠다. 어려운 건 그러지 않는 일이었다.

아마나이 리코의 시신을 회수하던 날, 그녀의 죽음을 사주한 비술사에게 둘러싸인 고죠는 행하지 않는 쪽을 택했다. 아마나이는 일찍이 숨이 끊어진 채였다. 비술사들을 죽이는 건 단순한 분풀이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실패했고, 아마나이 리코는 영영 눈을 뜨지 않았다. 사지를 늘어뜨린 일곱 살 어린애는 그녀보다 가벼웠다. 창백한 피부는 서늘했지만 아직 온기가 남아있었고 호흡은 섬약하게나마 이어지고 있었다. 그날과는 모든 것이 달랐다. 고죠는 손을 모았다. 모래처럼 손가락을 빠져나가던 것들이 고여 움직임을 멈췄다.

시야가 붉게 번진다. 수 없는 비명이 흙바닥을 적셨다. 고목 아래 핀 이끼가 게걸스레 죽음을 빨아들였다. 인간이라고 부를 수 없는 형상이 무질서하게 흩어진 채였다. 걸리는 것을 갈퀴처럼 찢어발긴 손이 붉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새빨간 핏물을 뒤집어쓴 고죠 사토루는 악귀 같은 형상을 하고 있었다. 붉은 것 가운데 오직 그 눈만이 파랬다. 벼린 날붙이처럼 날 선 눈동자가 선뜩하게 빛났다. 결계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던 주저사들이 뒷걸음질을 쳤다. 죽음이 엉겨 붙은 손이 저들을 향했다. 찰나, 그의 몸이 굳어졌다. 무언가를 부수고 죽이기 위해 빚어낸 것 같은 손가락이 곱아들었다. 파란 눈동자가 일렁였다. 짧은 침묵이 지난 자리, 목숨을 건진 주저사 무리는 주저앉아 한숨을 토해냈다. 고죠 사토루는 모습을 감춘 뒤였다.

먼 거리에서도 알 수 있을 만큼 짙은 피비린내. 공간을 울리는 강렬한 주력의 기척. 읽던 책을 덮은 이에이리는 방을 벗어났다. 설마하니 고죠가 상처를 입었을 리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어디 인생이 생각한 대로만 흘러가는 것이던가. 예기치 못한 일은 언제고 일어나기 마련이다. 게토 스구루의 배신이 그러했던 것처럼.

옷가지를 흠뻑 적신 핏물이 떨어져 바닥에 고였다. 그가 반전술식을 터득한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24시간 술식을 유지하는 일이 가능한 남자의 너저분한 몰골에 이에이리는 먼저로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 다음에는 고죠의 상태를 의심했다. 술식에 이상이라도 생겼나? 그 의식이 고죠가 안고 있는 아이에게 미친 건 수초가 지난 후였다. 상황을 파악한 이에이리는 물고 있던 담배를 떨어뜨렸다.

완전히 의식을 잃은 후시구로는 코가 마비될 듯한 피비린내에도 눈을 뜨지 못했다. 더운 핏물을 뒤집어쓴 고죠는 그것이 품에 안긴 아이에게 닿을까 겁을 내는 사람처럼 몸을 굳힌 채였다. 쇼코. 신음하듯 토해진 목소리에 이에이리는 정신을 차렸다.

“제정신이 아니구나.”

고죠 사토루가 후견인으로 있던 아이가 납치당했다더라. 이에이리 역시 그 소문을 들었다. 진위는 확인할 수 없었다. 고죠는 일찍이 돌보는 아이에게 주술사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엄포를 놓았다. 고죠의 경고를 무시할 만큼 간이 큰 주술사는 주술계에 존재하지 않았으니 누구도 진실을 알지 못했다. 누군가는 고죠가 홀로 아이를 찾고 있다고 수군댔다. 이에이리는 일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한 특급 주술사가 두문불출하는 건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었던 탓이다.

“메구미 좀 살려줘.”

고죠는 최강이었다. 인간의 거죽을 뒤집어썼으나 인간이 아닌 생명체. 때문에 이에이리는 고죠의 사고를 이해한 적도, 이해하려 한 적도 없었다. 그의 인간 같지 않은 언행에 새삼 이질감을 느끼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제 와 그녀는 고죠를 이해했고 그가 무엇을 위해 술식을 해제했는지도 깨달았다. 바라본 적 없는 동질감이었다.

그는 품에 안은 아이의 숨이 꺼질까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 온기가 닿지 않는 게 겁이 나 술식을 해제하고 무슨 저주가 담겨있을지 모르는 주저사의 피를 뒤집어썼다. 몸에 한기가 들었다. 그녀는 제정신이 아닌 인간이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가 알고 있었다. 인간이 아닌 최강은 광기로부터 유리된 존재였다. 지금까지는 그랬다.

“넌 미쳤어.”

그녀는 ‘인간’ 고죠 사토루를 보며 진저리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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