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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가 된 메구미 (2)

***

불행의 전조란 무엇일까. 건드리지 않은 선반의 장식이 갑자기 떨어지거나, 놓친 컵을 깨거나. 영화나 소설에 으레 등장하는 장면, 그 대부분은 자질구레한 사고다. 등장인물은 그처럼 작은 사고로부터 닥쳐올 불행을 직감한다. 당연히 이야기 속 불행은 안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현실도 뭐,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고죠는 트뤼프 초콜릿 세 알을 한 번에 입에 넣으며 생각했다.

꽃병을 깨트린 여자가 불안한 표정으로 창밖을 응시했다. 전쟁에 나간 연인의 얼굴이 화면을 스쳤다. 여자는 꽃병을 치우는 대신 양손을 모으고 연인의 생환을 기도한다…. 고죠는 이어폰을 빼고 화면을 껐다. 지루한 영화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잠이나 더 자는 거였는데. 한숨을 푹 내쉬자 옆 좌석에 앉은 이지치의 몸이 붕 떴다. 천장에 머리를 박지 않은 게 기적일 정도다. 고죠의 눈이 가늘어졌다.

며칠 전 그에게 1급 임무가 하달되었다. 홍콩 모처에 발생한 주령을 퇴치하는 일이었다. 해외에서 발생한 1급 주령을 퇴치하는 일에 자국의 특급 주술사를 파견하는 일은 명백한 인력 낭비다. 고죠는 이의를 제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가 하는 일이라면 일단 반대부터 하고 보는 상층부는 물론 야가마저 고개를 저었다. 특수한 성격의 임무였다.

홍콩의 한 범죄조직이 주저사와 결탁했다. 비슷한 놈들끼리는 통하는 구석이 있다고. 범죄조직과 주저사가 손잡고 사고를 치는 건 그리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그뿐인 일이었으면 특급 주술사를 해외까지 파견할 필요도 없었을 테고. 진짜 문제는 홍콩의 조직과 연루되었다는 주저사였다.

일본의 어느 주저사가 홍콩의 범죄조직으로부터 거액의 의뢰를 받았다. 주저사는 본래 신을 모시는 무녀였다. 구사하는 술식은 주령조종술. 고죠는 혓바닥 위로 익숙한 단어를 굴려보았다.

세상에 완전히 같은 술식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뿌리가 같은 술식도 사용자와 사용법에 따라 형태가 천차만별 바뀌기 마련이니까. 생전 처음 보는 주술보다야 파악이 쉽겠지만…. 고죠는 자연스럽게 게토를 떠올렸다. 그가 사용하던 주술을 곱씹는다. 부양하는가 싶던 감정은 곧 물밑으로 가라앉았다. 그는 페이지를 넘겼다. 주저사에 대한 간단한 프로필이 적혀있었다. 빠르게 움직이던 눈동자가 멈췄다.

주령을 수육해? 자연히 미간이 좁아졌다. 끔찍한 능력이었다. 좋지 못한 방향으로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진 능력이기도 했고. 과거에 그와 비슷한 능력을 갖춘 여자가 있었다. 주술사가 아니었던 여자는 박해당했고, 도망친 끝에 어느 남자를 만났다. 그는 주술계에 길이 남을 업적을 세운 자였다.

‘신을 만든다더군.’

‘새로운 구상도가 아니라?’

야가는 무거운 한숨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고죠는 실없이 웃었다. 신을 만든다고. 그런 게 가능하기는 한가? 인간이 빚어 만들어낸 신을 신이라고 할 수는 있나? 물어본들 만족할만한 대답이 돌아오지는 않을 테지. 인간은 본시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믿고 싶은 것을 믿는 동물이니까. 신을 만들고자 행한 일이니 주령을 가리켜 신이라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심지어 고용한 주저사는 무녀였다는 여자가 아닌가. 탄생 설화라면 나름의 구색을 갖춘 셈이다.

아직은 1급 안건이었지만 향후 전개에 따라 얼마든 위험성이 올라갈 수 있는 임무였다. 그에게는, 별것 아니었지만. 야가가 손을 휙휙 흔들었다. 나가보라는 뜻이다. 게토 스구루의 배신 이후 그의 이마에는 주름이 깊어졌다. 찌푸려진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고죠는 군소리 없이 방을 나섰다. 어렵지 않은 일. 고개를 숙였다. 양말 끝이 거뭇했다. 너라면 할 수 있잖아. 어렴풋 게토의 얼굴이 떠오른다. 어떤 표정을 하고 있었더라.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가만히 이어지던 목소리는 이렇게나 또렷한데.

해가 기운다. 오른발등에 걸려있던 볕이 비스듬하게 밀려났다. 빛이 움직이는 자취를 쫓던 고죠가 얕은 탄성을 흘렸다. 그는 안개가 낀 것처럼 부연 기억을 뒤져 하나뿐이던 친구의 얼굴을 기억해내는 데 성공했다. 그제야 잊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날, 게토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다. 그는 한 번도 그런 친구의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누군가 그 얼굴을 본뜬 가면을 뒤집어쓴 채 그의 행세를 하는 것 같았다.

너는 고죠 사토루라서 최강인 건가? 아니면 최강이라서 고죠 사토루인건가?

묻는 목소리는 모래알처럼 버석했다. 잡을 수 없었다. 막을 수도 없었다. 그는 최강이었으나 만능은 아니었으므로. 그걸, 게토 스구루가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비실비실 웃음이 샜다. 알아달라고 말했으면 무언가 달라졌을까.

세상 모든 것이 발아래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할 수 없는 것이 많았다. 얻은 것보다 잃은 게 많았다. 삶이 녹록지 않았다. 그래도 ‘이건’ 할 수 있는 범주에 들어가는 일이지. 고죠는 고개를 숙였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원하든, 그렇지 않든. 그는 여전히 남들보다 할 수 있는 일이 많았다. 속이 메스꺼웠다.

일은 생각했던 것보다 까다로웠다. 상대가 비술사인 탓이었다. 상대가 주술을 사용할 수 있는 인간이라면 수 분도 걸리지 않을 일이건만. 고죠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주령의 수육을 시작한 주저사는 찾아야 하겠는데, 그 앞을 수많은 비술사가 가로막는다.

저들이 흉악한 범죄자라 한들 달라질 건 없었다. 상대해야 할 것이 주술을 사용할 수 없는 인간일 경우, 주술사의 움직임에는 필연적으로 제약이 생긴다. 그는 인간이되 인간으로 자라지 않은 이들을 통제하기 위한 브레이크였다. 당장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만으로 대량 살상이 가능한 인물이 여기에 있었다. 그 정도의 제약은 당연했다.

고죠는 밋밋한 회색 천장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사방에서 총탄이 쏟아졌다. 벽에 맞은 총탄이 튈 것은 생각하지 않는 걸까. 저들은 쉼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그렇게 하면 무한을 깎아낼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 그는 오만상을 썼다. 여름날 모기도 이것보다는 덜 귀찮을 것 같다. 이어지는 물음에는 자연히 짜증이 뱄다.

‘죽이면 안 돼? 이 정도면 정당방위 아니야?’

인이어로 보조 감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잔뜩 위축된 음성이 떠듬떠듬 정론을 늘어놓는다. 고죠에게는 만족스럽지 못한 답변이었다. 고죠는 길게 주름이 잡힌 미간을 문지르며 입을 비죽였다. 건물 내 비술사의 수가 많아 그럴 수는 없단다. 건물째 날려버리면 속이 시원할 것 같은데.

비술사라. 고죠는 가만히 그 단어를 곱씹었다. 이 경우, 저들은 비술사라기보다 관계자로 분류하는 편이 맞지 않나? 정말이지 융통성이라곤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가 없다. 마음에 안 드네. 마른 입술을 축인 고죠가 입엣말을 했다. 그를 아는 사람이 들었더라면 어처구니없어했을 터다. 언제는 네 마음에 드는 일이 있었니?

일을 마무리 짓는 데에는 무려 삼박사일이 걸렸다. 비술사 무리를 죽이지 않는 선에서 정리하고, 그들이 꽁꽁 감춰둔 보물을 찾아, 그가 수육하는 주령을 죽이는 데까지 걸린 시간. 그중 만 이틀은 문제의 주저사를 찾는 데에 썼다. 찾아낸 주저사를 무저항 상태로 만들고, 수육하던 주령을 처리하는 데에는 일 분도 걸리지 않았다.

이후 고죠는 이지치를 끌고 가까운 백화점으로 향했다. 스트레스를 푼다는 명목으로 펑펑 돈을 썼다. 이지치는 바지런하게 그의 뒤를 따랐다. 왼팔에 다섯, 왼손에 여섯, 오른팔에는 둘, 오른손에는 넷. 걸어 다니는 쇼핑카트 같은 꼴을 한 이지치를 말끄러미 바라보던 고죠는 새로운 쇼핑백을 들고 고개를 기울였다. 고죠가 든 건 이지치의 몸에 걸린 열일곱 개의 쇼핑백보다 큰 사이즈였다. 그는 간절한 눈빛으로 고죠를 응시했다. 손바닥에 식은땀이 뱄다. 제발 하나 정도는 본인이 들었으면. 이지치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고죠는 들고 있던 쇼핑백을 이지치의 목에 걸었다. 쇼핑백은 크기에 걸맞은 무게를 자랑했다. 이지치의 몸이 앞으로 기울었다. 고죠는 비틀대는 이지치를 보며 천진하게 웃었다.

‘손잡이가 커서 다행이네, 이지치.’

다행이라는 듯 어깨를 도닥이는 손에 이지치는 이를 악물고 목구멍까지 올라온 욕설을 삼켰다. 악마 새끼!

임무를 마친 고죠는 내리 나흘을 홍콩에 체류했다. 그리고 죽을 날을 받아놓은 사람처럼 열정적으로 홍콩의 정취를 만끽했다. 핸드폰은 당연히 꺼뒀다. 심지어 그는 이지치의 핸드폰까지 갈취했다. 상층부의 연락은 절대 받지 않겠노라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고죠는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에 대고 카드를 긁어댔다. 설마 홍콩에 집이라도 구할 생각인가? 이지치가 그런 걱정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렇지 않아도 바쁜데 해외까지 나가 일해야겠느냐 싫은 소리를 하던 사람과 동일 인물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고죠는 밥 먹고 씻고 자는 시간을 빼면 호텔에 붙어 있을 때가 없었다. 이지치는 도중 몇 번이고 귀국에 관한 화제를 입에 올렸지만 큰 소득은 없었다. 고죠는 그의 말을 듣는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

고죠가 마음을 돌린 건 사흘째 밤이었다. 홍콩의 야경을 즐기던 그는 느닷없이 가격대가 있어 보이는 전통복매장에 들어갔다. 그를 본 점원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손님께서는 맞춤복을 입으셔야 할 것 같은데,’

다리 길이가 맞는 옷이 없어 기성복을 입지 못한다는 고죠 사토루에게 맞는 전통복이 준비되어 있을 리 없었다. 고죠는 엷게 웃으며 손을 저었다.

‘저 말고. 애들한테 입힐만한 걸 보고 싶은데요.’

따로 통역도 필요치 않을 만큼 완벽한 광둥어였다. 점원과 고죠가 나누는 대화를 알아듣지 못하는 이지치는 눈치껏 상황을 파악했다. 고죠는 보호 중인 남매에 대해 설명했다. 하나는 남자애고, 다른 하나는 여자애예요. 남자애는 키가 이 정도에 마른 편이고…. 점원은 아동용 치파오 몇 벌과 함께 어울리는 머리 장식, 신발을 내놓았다. 좋은 천을 쓴 치파오는 적지 않은 몸값을 자랑했다. 가격을 확인한 이지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성장기 아이들이 입을 옷이라기에는 지나치게 비쌌다. 심지어 남의 나라 의복이 아닌가. 저런 걸 일 년에 몇 번이나 입는다고.

고죠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었다. 그는 남매를 위한 치파오를 각각 세 벌 골랐다. 거기에 츠미키를 위한 머리 장식 두 개와 신발 두 켤레, 메구미를 위한 신발 두 켤레와 겉옷 두 벌을 추가로 구매했다. 가게를 나온 고죠는 이지치를 시켜 일본으로 돌아가는 가장 빠른 비행기를 예약하게 했다. 남매가 보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지치는 일본으로 향하는 가장 빠른 비행기 편을 수색했다. 거기에서 문제가 생겼다. 예약한 비행기는 퍼스트와 비즈니스 클래스가 모두 매진이었다. 두 번째도, 세 번째도 마찬가지였다. 고죠 사토루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상층부가 걸려 오는 연락은 죄 무시한 채 현지를 즐긴 고죠를 위한 전용기를 수배해 줄 리도 만무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지치는 그렇게 이코노미 두 석을 예약한 과거의 자신을 원망했다. 고죠를 이코노미석에 앉혀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적어도 그 자리만은 저와 떨어진 곳에 두었어야 했는데!

긴 다리를 구겨 앉은 고죠의 눈에는 짜증이 성에처럼 끼어 있었다. 알아 이지치? 나는 다리가 길어서 이코노미는 불편하단 말이야. 그의 귀 가까이 입술을 가져다 댄 고죠가 음산하게 속삭였다. 양손을 맞잡은 이지치는 비행시간 내내 믿지도 않는 신을 찾아야 했다.

보는 사람이 안쓰러울 만큼 몸을 떨던 이지치는 일본 땅을 밟자마자 크게 숨을 뱉었다. 올려다본 하늘이 흐렸다. 곧 비가 쏟아질 기세였다. 이번 비행기를 타지 않았으면 귀국이 더 늦어졌을 뻔했다.

“바로 돌아가시나요?”

두 손 가득 고죠의 짐을 든 이지치가 돌아왔을 때 고죠는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니. 애들부터 볼래.”

후시구로 남매는 그가 노는 것을 포기하고 일본에 돌아가겠다는 마음을 먹게 한 가장 큰 요인이었다. 실제 홍콩에서 산 물건도 고죠 자신보다 남매를 위한 것이 더 많았다.

“이지치, 차에 우산 있어?”

“없을 것 같은데요.”

“그럼 하나 사와. 금방 비 올 것 같으니까.”

무한을 사용하는 남자에게 우산이 필요한가? 생각과 별개로, 이지치는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죠는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어린 남매가 선물을 받으며 지을 표정이 기대됐다.

차에 탄 고죠가 태블릿을 켰다. 기내에서 보다만 영화가 재생되었다. 떨리는 손으로 깨진 화병을 치우는 여자를 바라보던 고죠는 완전히 영화를 껐다.

불행에 전조가 있을까. 전조의 대부분은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불행을 미리 걱정하고, 거기에 그럴싸한 현상을 꿰맞추는 것에 가까웠다. 애당초 닥쳐올 불행을 직감하는 방법부터가 초현실적이지 않나. 비술사라면 모를까,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삶을 살아온 고죠로서는 쉬이 공감하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그런 것이 가능했더라면 게토가 저를 배신하도록 두었을 리 없지. 더 일찍 알고, 대책을 강구했을 터다. 게토 스구루의 배신에는 아무 징조도 없었다. 며칠 얼굴색이 좋지 않았지만 그건 징조보다 현상에 가까웠다. 그는 기본적으로 정이 많은 성격이었다. 타인에 대한 관심이 희박했던 고죠는 아마나이 리코 사후 게토가 느꼈을 감정을 짐작할 수 없었다. 그는 아마나이를 살해한 후시구로 토우지를 미워하지도, 원망하지 않았다. 후시구로를 죽인 건 복수보다 유흥에 가까웠다. 그는 아마나이의 죽음에 유감을 표할지언정 슬픔을 느끼지는 않았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내 빗줄기는 점차 굵어졌다. 여름이 다 지나서 내리는 비 치고는 기세가 사나웠다. 우산 하나만 믿고 돌아다니긴 힘들겠네.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하늘을 보고 느낀 건 그게 전부였다.

남매가 사는 집 앞에 선 고죠는 익숙하게 벨을 눌렀다. 가볍고 빠른 발소리가 들렸다. 벌컥 문이 열렸다.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츠미키! 아이를 안아 올리려던 고죠는 곧 이변을 알아차렸다. 고죠를 올려다보는 츠미키는 얼굴색이 나빴다. 씩씩하고 다정하던 눈동자가 물기로 흐렸다. 얼마나 울었는지 눈가는 빨갛게 짓물러 있었다. 믿을 수 없다는 듯 고죠의 얼굴을 바라보다 츠미키가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고죠는 급히 무릎을 굽혀 츠미키의 등을 쓸었다.

“츠미키,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누군가를 책망하는 일 없던 아이가 잔뜩 갈라진 목소리로 고죠를 원망했다. 전화했는데, 아무리 전화해도 받질 않아서. 고죠는 내내 꺼두었던 핸드폰의 존재를 떠올렸다. 주머니를 뒤져 사흘 내 꺼두었던 핸드폰을 켰다. 수십 통의 문자와 부재중 기록이 남아있었다. 대부분은 츠미키의 것이었다. 츠미키는 숨이 넘어갈 듯 울었다. 쏟아지는 빗줄기가 아이의 울음소리를 먹어 치웠다. 바닥에 고인 빗물이 현관으로 튀어 츠미키의 발을 적셨다.

무언가 이상했다. 고죠는 텅 빈 집안을 바라보았다. 메구미? 부르는 목소리에 돌아보는 얼굴이 없었다. 손끝을 떨며 깨진 화병의 파편을 집어내던 여자가 떠올랐다. 파편에 손을 베이고, 피가 나는 손을 감싸 쥔 채 연인의 무사를 빌던 여자. 그녀는 부질없이 소망했다. 도와주세요. 츠미키는 그렇게 애원했고, 그 바람은 한 줄기도 고죠에게 닿지 않았다.

검은 공동을 닮은 눈이 떠오른다. 눈을 감아 그를 떨쳐낸 고죠는 들고 있던 것들을 내려놓으며 츠미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처음 만났을 무렵부터 남매는 유달리 어른스러웠다. 저희끼리 보듬으며 살아온 시간이 길어서일까. 좀체 약한 소리를 하는 법이 없었다. 그런 아이가 세상이 무너질 것처럼 울며 고했다.

“사토루,”

그는 최강이었으나 만능은 아니었다. 남들보다 할 수 있는 일이 많았지만 모든 것을 할 수 있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는 절박하던 아이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메구미가 없어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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