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술회전

깨달음

고죠우타

Dusk by 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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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죠 사토루는 재능으로 넘친다.

육안과 무하한 술식을 동시에 가지고 태어난, 그것만으로도 이미 과한 축복일 텐데. 마치 세계의 변혁을 위해 태어난 존재라는 것을 세상에 널리 알려야 한다고 주장하듯 그 외모와 두뇌마저도 평범한 사람을 가볍게 뛰어넘고 있었다.

단점이 있다면 그 성격. 그조차 본인에겐 아무런 해도 되지 않고, 자기가 그러고자 한다면 좋은 성격을 연기하는 것도 별로 어렵지 않을 것이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세상의 질서 자체를 뒤트는 존재. 자타공인 최강.

그런 존재가 도대체 왜.

“우타히메. 결혼하자.”

무슨 이유로 이런 말을 하는지. 지극히 평범한 일개 주술사 이오리 우타히메는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저기, 그거 도대체 언제까지 할 거야?”

“음? 우타히메가 받아줄 때까지?”

처음 저 터무니없는 말을 들었을 땐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고 짜증을 냈다. 그다음엔 그런 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라고 화를 냈다. 몇 번 더 반복되고 나서는 놀린다고 생각하여 평소와 같은 말다툼, 최근엔 그것도 질려서 무시로 일관하고 있었다. 이 정도 무시당하면 발을 뺄 만도 한데, 여전히 단둘이 되고 그사이 침묵이 끼어들라치면 이런 말을 꺼내는 것이다.

이대로는 끝이 나지 않는다. 우타히메는 마음을 다잡고 대화라는 것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얼마 전부터 계속 그 소리인데, 갑자기 왜 그러는 거야. 이유를 모르겠는데.”

“이제 슬슬 때가 되지 않았나 싶어서. 내 나이도 그렇지만, 우타히메는 특히 그 나이 되도록 아무런 소식도 없으면 여기저기 시달릴 거 아냐.”

“내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하거든!”

“우타히메, 어차피 지금 사귀는 사람도 없잖아. 그럼 나랑 결혼해도 상관없는 거 아니야?”

이게 도대체 무슨 논리인가. 어디부터 지적해야 할지 감도 잡지 못하고 우타히메는 이마를 짚었다. 질문의 방식을 바꿔야 할 듯했다.

“네가 결혼을 왜 하려고 하는지는, 그래, 알 바도 아니고 알고 싶지도 않지만, 왜 나한테 그러는 거야? 아니, 나한테만 이러는 건 맞아?”

“너무하네, 우타히메니까 청혼하는 거거든?”

“청…… 아니, 그러니까, 왜 나냐고!”

고죠가 눈을 가리고 있던 안대를 끌어 내렸다. 드러난 것은 아주 어이없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바보야? 당연히 좋아하니까 그러지.”

“하?”

저도 모르게 큰소리가 났다. 아니, 왜 지가 저런 표정을 짓지? 어이가 없는 건 단연 이쪽이었다. 좋아한다니. 고죠가? 나를? 왜? 정보가 완결되지 않아 초점을 잃고 서 있는 우타히메를 바라보며 고죠는 과장되게 한숨을 쉬었다.

“정말 둔하다니까. 그래가지고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려고 그래?”

“이제껏 잘 살아왔거든?!”

대답만큼은 자동으로 나가고, 소리치고 나니 갑자기 현기증이 일었다. 우타히메가 비틀거리자 고죠가 한 손으로 어깨를 가볍게 받쳐주었다.

“어이쿠, 조심해. 이제 잘못 넘어지면 돌이킬 수 없는 나이잖아.”

“누구 때문인데…….”

“당연히 이제까지 눈치 못 챈 우타히메 때문이지.”

이런 여자를 좋아하다니, 나도 참 불쌍하다니까. 비극의 주인공이라도 된 양 중얼거리는 고죠를 보며 우타히메는, 화낼 기력조차 잃어버렸다. 마지막 기운을 끌어모아 겨우 물을 뿐이었다.

“그래서 너는, 마침 시기적절해서, 거기에 마침 좋아……하는? 아무튼, 그런 사람이 나라서, 결혼하겠다는 거네.”

“응.”

“거기에 내 의사는?”

“지금 묻고 있잖아.”

“거절했잖아.”

“사람이 무슨 일이든 쉽게 포기하면 안 되는 거잖아?”

“내가 영원히 거절하면!”

“우타히메를 좋아하는 동안은 계속 시도할 생각인데. 그치만 역시 서로 피곤하니까 그냥 받아주면 안 돼?”

역시 이 남자에겐 말이 통하지 않는다. 알고 있었던 사실을 재확인하고, 우타히메는 질끈 눈을 감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제껏 당연히 알 거라 생각하고 전하지 않았던 진실을 이 입에 담아야 할 때가 왔다고. 마음을 다잡고 입을 열었다.

“저기, 고죠.”

“드디어 마음을 먹었어?”

“그, 네가 왜 갑자기 나를 좋아한다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별로 널 그런 의미로 좋아하지 않거든…….”

좋아하지 않는 수준이 아니라, 싫어한다. 그러나 차마 방금 자기를 좋다고 말한 사람에게 그렇게 내뱉을 순 없어서 우타히메는 최대한 둥글게 말을 돌렸다. 고죠는 안대를 다시 쓰고서는 말했다.

“의식한 적이 없어서 그런 거 아냐?”

“아니, 앞으로도 별로 의식하고 싶지 않은데.”

“흠, 그러면 말이야.”

고죠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팔을 뻗어왔다. 커다란 손이, 아주 느리게 우타히메의 옆머리를 매만졌다. 귓바퀴를 살짝 스치는 감각에 놀라 우타히메가 몸을 뒤로 물렸다. 고죠의 손은 그런 우타히메를 쫓지 않고 허공에 멈춰섰다.

“나 우타히메를 좋아해. 제법 진심으로.”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지만, 목소리는 진지했다. 우타히메가 순간 숨을 멈출 정도로.

“거기부터 시작하자.”

고죠의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이 다행이라고 우타히메는 생각했다. 이 세상 것이 아닌 것 같은 그 청명한 눈을 바라보면서는, 이렇게 즉답할 수 없었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멈춘 숨을 내쉬는 것과 동시에 우타히메는 내뱉었다.

“싫어.”

“……지금 분위기 되게 좋지 않았어?”

우타히메가 크게 한숨을 쉬었다. 여기선 제대로 말해주는 편이 오히려 고죠를 위한 길이리라.

“고죠, 잘 들어. 일단 나는 결혼할 생각이 없어. 그야 언젠가 할 수도 있겠지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게다가 나는 하게 된다면 그… 좋아하는 사람이랑, 하고 싶으니까.”

“그래도 우타히메, 나를 싫어하는 건 아니잖아. 그러면 나한테도 기회가――”

“미안한데, 싫어해. 비교적 진심으로.”

“………….”

“………….”

어색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아아, 여기부터 시작해야 했구나. 누구랄 것도 없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고죠 사토루는 재능으로 넘친다.

누군가는 그것을 축복이라 불렀지만 고죠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너무 많은 것이 주어지면, 오히려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그것은 경험으로 깨닫게 된 사실이었다.

원하는 것은 대체로 손에 들어온다. 하고자 하는 일은 대체로 금방 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세상은 전혀 재미가 없었다. 그런 세상 속에서 우타히메를 만났다.

정론은 싫다. 약한 존재를 신경 쓰는 것은 귀찮다. 그런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매번 정론을 들이미는 이 약한 사람이 왜 자꾸만 신경 쓰이는지.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한 번도 진지하게 이유를 찾으려 한 적이 없었다.

아마 처음으로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우타히메가 크게 다쳤던 날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삶에서 그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미래를 가정하고 나서야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던 자신의 감정과 마주하게 되었다.

우타히메는 무사히 깨어났다. 그동안 고죠 역시, 그 감정에 이름을 붙일 수 있을 정도로는 마음을 정리했다. 그래도 딱히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지금 이대로가 좋다고 생각했으니까.

지금의 관계가 바뀌어버리면, 그때도 계속 우타히메를 좋아할 수 있을까? 확신할 수가 없었다.

우타히메의 얼굴에 생긴 흉터가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솔직히, 기뻤다. 스스로도 좀 위험하다고 생각했지만 진심이었다. 사람들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기 일쑤니까, 누구의 방해도 없이 이 관계를 지켜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착각이었다.

조금만 함께하다 보면 우타히메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은 모두가 금방 알아차리고 만다. 우타히메가 집안의 등쌀에 못 이겨 선을 보러 다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고죠도 드디어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누군가 우타히메를 마음에 들어 한다는 소문이라도 들리면 그 날은 보조감독이 고생하는 날이었다.

“다른 사람 괴롭히지 말고 차라리 얼른 고백하고 얼른 차이지그래?”

“왜 당연히 차일 거라 생각하는데?”

쇼코가 질렸다는 얼굴을 할 때는 정말로 이유를 몰랐다. ‘싫어한다’는 선언을 남기고 우타히메가 돌아간 후, 드디어 진실을 알게 된 고죠에게 쇼코가 몹시 즐겁다는 미소로 말을 걸어왔다.

“차였다면서?”

“시끄러워……. 왜지?”

“진짜 몰라서 하는 말이라는 게 웃기네. 다른 때는 그렇게 머리가 잘 돌아가면서, 왜 네가 하는 행동을 선배가 싫어한다는 생각은 못 하는 거야?”

“……그럼 이제껏 보여준 우타히메의 태도가 전부 진심이었다는 소리야?”

진심이 아니면 뭔데. 그냥, 농담인 줄 알았지. 어이없는 대답에 쇼코는 크게 한숨을 내쉬며 더 말하기를 포기했다. 좋아하는 사람한테 그런 식으로 대하면 안 된다는 말에 누가 누구를 좋아하냐며 화를 내던 옛날보다는 낫지만, 고죠는 여전히 어린애 같았다.

“그래서, 이제 어쩔 거야?”

“몰라.”

“10년 넘게 쌓인 감정을 금방 어떻게 할 수는 없겠지만, 선배도 10년간 널 싫어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렴.”

“싸움 거는 거야?”

“사실을 말해주는 것뿐이야.”

여러모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 날 이후 고죠는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을 숨길 생각도 없이 주변 사람들을 상당히 귀찮게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평소의 상태로 돌아왔다. 모두 다행이라고 생각했고, 그것은 쇼코를 통해 소식을 전달받은 우타히메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다음에 만났을 땐 평소처럼 대해도 되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고죠 사토루가 자신을 좋아하는 걸 수도 있다는 생각을 우타히메라고 안 해본 것은 아니었다. 다만 우타히메는 믿었을 뿐이다. 고죠가 어른으로서의 분별력을 가지고는 있으리라고. 그리고 초등학생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 행동들은 장난이기 때문이라고 결론지었다.

지치지 않는 결혼 요청도 그 연장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고죠가 자신의 머리를 매만지며 좋아한다고 말할 때의 그 표정이, 그의 말대로 제법 진심처럼 보였던 것을 떠올리면 이제 와서 기분이 이상해졌다.

어쩌면 나도, 습관처럼 고죠를 싫어하는 걸지도 몰라.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버리고 말았다. 그의 감정에 대해 더 생각하지 않고 ‘싫어한다’라고 대꾸해버린 것이, 10년 이상 이어져 온 관성 같은 것은 아니었는지.

한 번 시작된 의심은 자꾸만 꼬리를 물려고 들었다. 그러나 우타히메는 고개를 휘휘 내저으며 그 상념을 끊어내려 했다. 이미 끝난 일이 아닌가. 도쿄에 와서, 고죠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잡념이 들 뿐이다. 자신을 타이르듯 되뇌며 교직원 휴게실에 발을 디딘 순간이었다.

“나, 생각해봤거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반사적으로 몸을 틀어 나가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눈앞에서 문을 막고 선 커다란 검은 물체. 얼굴을 보지 않아도 당연히 누군지 알고 있었다. 왜 하필 지금.

“……고죠, 오랜만이――”

“무슨 생각인지 알아?”

인사로 무마하려고 한 시도는 실패했다. 한마디씩 할 때마다 한 발짝씩 가까워지는 탓에, 우타히메는 어쩔 수 없이 휴게실 안쪽으로 뒷걸음질 쳐야 했다.

“……별로 궁금하지 않은데.”

무언의 압박을 느껴 대답하면서도 별 효과가 없을 말이라는 건 알았다. 역시나 고죠는 우타히메의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사람을 싫어하는 것도 은근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이란 말이야.”

문득,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반사적으로 피하려고 했을 뿐인 아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아까까지 피하려고 했던 그 ‘의심’을, 고죠가 지금 파헤치려 하고 있었다.

“10년 전이면 몰라도, 우타히메가 교토에서 일하기 시작한 이후로는 나 같은 거 그냥 무시하고 지낼 수도 있었을 텐데.”

눈을 가린 천을 끌어 내리고서, 고죠는 몸을 숙여 우타히메와 시선을 맞췄다. 시선을 피하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 깊은 푸름.

“여전히 나를 싫어한다는 거잖아. 그치?”

고죠가 싱긋 웃었다. 순간 느껴진 심장이 뚝 떨어지는 듯한 철렁함을 우타히메는 결코 다른 단어로 정의하고 싶지 않았다.

사랑의 반대말은 무관심이라고 했던가. 역으로 말하자면, 무관심하지만 않다면 그 어떤 감정도 사랑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오랜 시간, 오직 한 사람만을 향해 키워온 감정이 있다면 더더욱.

우타히메에게 고죠와 같은 관계는 고죠 외에는 없었다. 그런 특별한 자리에서 그를 끌어내릴 생각도 하지 않고 지내온 세월이, 그 이유가, 보이지 않아도 그곳에 분명히 존재했다. 그리고 우타히메는 지금, 그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분명히 인식하고 말았다.

고죠는 더 말하지 않았다. 우타히메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았다. 우타히메를 두고, 그는 즐거운 마음으로 휴게실을 떠났다. 지금은 이 정도가 딱 적당했다. 자신이 그랬듯, 한 번 자각하고 나면 결코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정말 싫어…….”

혼자 남은 우타히메가, 무언가를 확인하듯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것이 이전과는 다른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은 물론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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