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술회전

상처

고죠우타

Dusk by 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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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실례되는 질문일 수도 있지만 얼굴의 그 상처는 어쩌다…….”

지겹도록 들은 질문. 이오리 우타히메가 살아온 서른한 해 중 상처가 있던 시간은 극히 일부인데도, 그것은 금세 우타히메가 살면서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이 되었다.

“주술사니까요. 상처 한두 개쯤은 이상할 것도 없죠.”

반복되는 질문에 답안처럼 만들어둔 대답을 읊는다. 이렇게 말하면 대부분은 더 추궁하지 않는다. 그리고 해명하지 않은 사실에 대해선, 술자리의 이야깃거리가 다 떨어졌을 때쯤의 소재가 될 것이다. 필요도 쓸모도 없는 ‘걱정’을 곁들여서.

그런 것에 대해서는 일찌감치 포기했다. 자신이 제어할 수 없는 일에 신경을 쏟는 것만큼 무의미한 일은 없으니까.

“와, 진짜 짜증 나네.”

그러므로 상대가 떠나자마자 이런 말을 내뱉은 건 우타히메가 아니었다. 우타히메는 옆에 서 있는, 아직 이곳에 있는 것이 약간은 어색한 인물을 바라보았다. 교토행 실습에 자원하는 것으로 염원하던 교토 여행을 실시간으로 만끽 중이었던 쿠기사키 노바라였다.

“실례인 걸 알면 안 물어보면 되잖아! 선생님은 괜찮아요? 제가 대신 해치워드릴까요?”

자기 일처럼 화를 내는 노바라의 모습을 보며 우타히메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금방이라도 달려나갈 것 같은 노바라를 말리듯 어깨에 손을 살짝 올리며 우타히메가 말했다.

“나는 괜찮아. 그래도, 고마워. 쿠기사키.”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은 자신의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니 포기했다 하더라도, 마음 어딘가가 불편한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내심 생각하던 것을 시원하게 말해준 노바라를 향해 진심을 담아 감사 인사를 하자, 노바라는 그래도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 말해달라며 믿음직스럽게 허리에 손을 얹었다.

임무 자체는 그다지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어서 교토 관광을 하고 싶다는 노바라의 강력한 의지도 있어, 생각보다 빨리 일을 끝낼 수 있었다. 고전에 들러 임무 결과를 보고한 후 우타히메는 사복으로 갈아입었다. 티셔츠와 긴 스커트의 편한 차림이었다.

“선생님이 같이 가주시는 거예요?”

“학생 혼자 익숙하지 않은 동네를 돌아다니게 두는 건 아무래도 불안하니까. 그 바보……, 고죠도 쿠기사키를 잘 부탁한다고 직접 전화까지 해왔고.”

“헤에, 고죠 선생님. 의외로 섬세하네요.”

“하하…….”

그 말에 대해서는 애매한 웃음으로 얼버무리며 우타히메가 앞장서 걸었다. 의심 없이 따라오는 노바라와 미리 불러둔 택시에 함께 탄 채로 교토 시내를 향했다. 노바라는 신난 마음을 감추지 못한 채 몸을 작게 흔들고 있었다. 이미 돌아다닐 루트까지 짜놓은 노바라가 교토에서 하고 싶었던 일들을 나열하는 모습이 제법 사랑스러워 자꾸만 미소가 새어 나왔다.

오히려 자신이 노바라에게 관광 안내를 받는 모양새가 되어 괜히 따라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혼자 왔으면 외로울 뻔했다며 웃는 노바라의 모습을 보며, 그런 걱정은 접어두기로 했다.

“저녁은 꼭 여기서 먹어보고 싶었어요!”

한바탕 쇼핑과 구경을 마친 후 노바라가 데리고 온 곳은 우타히메도 이름은 자주 들어왔던 유명한 음식점이었다. 주말엔 관광객이 몰려 대기가 필수인 곳인데, 평일에 아직 이른 저녁이라 그런지 기다림 없이 들어갈 수 있었다.

“선생님은 여기 와보셨어요?”

“아니. 보통은 학교에서 지내니까.”

“와, 그러면 저랑 이거 같이 먹어주시면 안 돼요? 대표메뉴가 두 개인데 도저히 못 고르겠어요!”

우타히메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범하고 배짱도 좋은 아이였다. 우리 애들하고도 친해지면 좋을 텐데, 이번엔 다들 실습 임무로 바빠서 못 데려왔지만 다음엔 아이들끼리 놀러 갈 기회를 만들어주는 게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우타히메는 벨을 눌렀다.

곧 점원이 다가왔다. 노바라가 말한 대표메뉴 두 개와 에이드가 묶인 세트 메뉴를 시키려고 고개를 들자, 점원이 저도 모르게 ‘헉’ 하고 숨을 들이켰다. 뭐, 익숙한 일이었다. 못 본 척하며 메뉴를 주문하자 상대도 아무 일도 없었던 척 자신의 의무를 완수하였다.

“…하나하나 피곤하시겠어요.”

“이젠 익숙해졌어.”

담담하게 그렇게 말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가게에 들어가 앉을 때 웬만하면 벽이 있는 쪽을 오른쪽에 두고 앉는 것도, 말을 걸었을 때 상대가 저도 모르게 놀라는 것도, 거기서 멈추지 않고 무례한 질문을 던지는 것까지.

“아예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고, 이런 흉터가 없더라도 주술사로 살다 보면 이상하게 보는 시선 같은 건 일상다반사니까.”

“저는 그렇게 초연해지지는 못할 것 같아요.”

우타히메도 직접 겪지 않았다면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막상 닥쳐온 일에 어떻게든 적응하기 마련이었다. 그런 말을 하려던 참이었다.

“선생님은 강하시네요.”

이어진 말에 우타히메는 반사적으로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노바라의 손을 꼭 잡았다. 누구의 제자라고는 믿을 수 없는 감동적인 말이었다.

“쿠기사키는, 그 바보처럼 되면 안 돼. 지금처럼만 잘 자라줘.”

“그 성격, 되고 싶어도 쉽게 못 될걸요.”

무슨 말을 하는지 바로 알아들은 노바라가 그렇게 대답했다. 눈이 마주치자 어린아이같이 장난기 어린 웃음이 새어 나와, 두 사람 다 그대로 키득거리며 웃었다.

 

“잘 먹었습니다! 설마 사주실 줄은!”

“몰랐다고 말할 건 아니지?”

“아무래도요! 하지만 감사한 마음은 진짜예요.”

“그래그래. 어른한테는 잔뜩 얻어먹고 감사하고, 다음에 어른이 되었을 때 후배에게 돌려주면 돼.”

넵, 하는 활기찬 대답이 돌아왔다. 미래를 약속하는 별 것 아닌 대화가 소중하게 느껴지고 마는 마음을, 우타히메는 애써 드러내지 않는다.

노바라의 남은 계획까지 알차게 마무리한 후 두 사람은 고전으로 다시금 택시에 올라탔다. 고전의 기숙사에서 하룻밤을 자고 갈 노바라의 편의는 오늘 저녁 임무에서 돌아오는 미와가 봐주기로 했다. 마이나 니시미야가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우타히메는 간단한 안내사항 정도만 전달해 주었다.

“저기 그런데, 선생님.”

“응?”

택시가 고전에 거의 도착할 무렵, 노바라가 조심스럽게 우타히메를 불렀다. 그러나 이내 다시 말했다.

“아니, 역시 아무것도 아니에요.”

“으응.”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상처에 대해 궁금해졌는데, 묻고 싶은 걸 참고 있구나. 우타히메는 내심 대견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것을 모른 척했다.

사실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제자이자 후배이기도 한 아이들에게는 얼마든지 말해줄 수 있었다. 묻고 싶은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이유는 그것이 말해줄 수 없는 이유이기 때문이었다. 그 누구에게도.

 


 

지겹다. 언제쯤 끝나려나, 이 재미도 의미도 없는 모임은. 고죠 가의 당주는 그런 표정을 숨길 생각도 없이 그대로 드러내며 앉아있던 자세를 바꾸었다. 그 작은 움직임에도 주위 사람들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는 태도였다.

높으신 분들의 은근한, 그러나 보고 있기 힘들 정도로 노골적인 밥그릇 싸움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곳에 있는 이유는 그저 최소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였다. 이것도 미래를 위한 포석이라고 자신을 타이르며.

작은 회의가 또 끝이 나고 혼자만의 공간에 남겨진 고죠는 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사흘이나 이어진 이 지겨운 행사도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저녁은 일정도 비워두었고, 교토에 온 김에 관광이라도 하고 갈까. 그런 느긋한 생각이나 하고 있으려니 불쾌한 기분도 조금쯤 가시는 듯했다.

얼마간 누워있던 그는 몸을 일으켰다. 집안 행사란 시작도 마무리도 당주가 하는 법이다. 슬슬 움직일까. 남을 기다리게 하는 것이 그의 특기였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 그런 짓을 했다간 손해 보는 것은 그 자신뿐이었기에 자연스레 채비가 빨라졌다.

“혼담은, 잘 진행되고 있습니까?”

발걸음을 잡아끈 것은 문 안쪽에서 들려온 말이었다. 단번에 자신의 이야기임을 알았다. 오늘도 몇 번이나 검토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온 것을 무시한 참이었다. ‘검토’라니, 이젠 웃음도 나오지 않는 단어 선택이었다.

“그게 여전히 말이죠…….”

“슬슬 당주님도 생각해야 할 나이인데.”

걱정 참 고맙수다. 필요 없지만. 그 시간에 자기들 인생이나 걱정하면 삶이 조금은 윤택해질 텐데. 그런 생각을 하다가 그는 깨달았다. 그들은 충분히 자기들 인생이나 걱정하는 중이었다. 그러니 나올 수 있는 말들이었다.

이마저도 너무 뻔해서 지겨울 뿐이지만. 그런 생각을 하며 고죠는 그대로 방 앞을 지나치려 했다. 분명 다음 말이 몇 초만 늦었더라도, 그는 그렇게 했을 것이다.

“역시 그 여자 때문일까요?”

“여전히 자주 얽히는 것 같더군요. 얼굴에 흠집이나 내놓으면 관심이 떨어질 줄 알았건만.”

“그래도 여지껏 아무 일도 없으니 안심해도 되지 않겠어요?”

누구를 말하는 건지 명백했다.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순간 온몸이 서늘해지는 이 느낌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고죠는 잠시 숨을 멈췄다. 그리고 가슴에 얹힌 그것을 천천히, 오래도록 내쉬었다.

그 자리에서 무슨 말인지, 무슨 짓을 했는지 따지고 드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았다. 누가 들을지도 모르는 곳에서 떠들어대는 녀석들이 일의 주축일 리 없었다. 주력만을 기억해둔 후 그는 원래의 목적지로 향했다.

‘이런 일이 생길까 봐 특정한 관계를 만들기 싫었던 건데. 이미 일어나고 있었단 말이지…….’

일단은 이 지겨운 집안 행사라는 것을 어서 끝내고, 알아봐야 할 것들이 있었다.

 

 

 

교토 고전에 도착한 것은 해가 질 무렵이었다. 일단 무작정 본관으로 향하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고죠 선생님?”

“오, 노바라.”

맞다, 노바라가 교토에 오는 것도 오늘이었지. 하도 바빠 잠시 잊고 있었던 사실을 상기해냈다. 노바라는 사복 차림인 것이, 그렇게 염원하던 시내에 다녀온 듯했다.

며칠 전 우타히메에게 직접 잘 부탁한다고 연락까지 했으니, 책임감 강한 그가 노바라를 내버려 두었을 리 없다. 그렇게 판단하고 물었다.

“우타히메는?”

“방금 헤어졌는데! 타이밍이 별로시네요.”

“어느 쪽으로 갔어? 중요하게 할 말이 있는데.”

“전화가 있잖아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방향을 가리키는 노바라에게 나중에 보자는 인사를 남긴 후 고죠는 성큼성큼 걸어갔다.

보폭의 차이가 있다 보니 얼마 안 가 우타히메를 발견할 수 있었다. 몇 걸음을 남겨둔 거리에서 이름을 불렀다.

“우타히메.”

뒤를 돌아보는 우타히메는 눈을 조금 크게 떴지만, 그가 교토에 있다는 건 미리 들어 알고 있었기에 크게 놀란 기색은 없었다.

“오늘까지 집안 행사라고 하지 않았어?”

“마치고 오는 길이야.”

“고전에? 왜?”

“우타히메를 만나려고.”

평소 같은 경박한 말투가 아니었다. 우타히메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물어왔다.

“무슨 일이라도 생겼어?”

“글쎄. 왜?”

“분위기가 다르잖아.”

“우타히메도 그 정도 눈치는 있구나. 지겨운 집안 행사가 방금 막 끝난 참이니 기분이 좋을 리 없지.”

“평소엔 지겨운 게 드디어 끝났다고 좋아하지 않았어? 기분이 나쁘다 해도 왜 나한테 화풀이야?”

우타히메는 불만이 많은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고죠는 이 이상 빙빙 돌리는 대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우타히메. 그 상처는 어쩌다 생긴 거야?”

“……쿠기사키한테 무슨 말이라도 들었어?”

“노바라? 노바라는 왜?”

“아니…… 상관없으면 됐어. 그나저나 갑자기 그건 왜 물어?”

“내가 먼저 질문했잖아.”

“임무 때 생긴 거야. 다 알잖아.”

“다 아는 건 아니지. 다 알고 싶으니까 좀 더 자세히 말해봐. 주령한테 당했어? 어떤 방식으로?”

“……기억 안 나. 언제 적 일인데.”

“우타히메가 약하긴 하지만 그건 고작 2급 주령이었고, 보고서에도 별달리 특별한 점은 없었는데.”

“잘도 기억하고 있네, 그런걸…….”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하려고 애쓰고 있지만 얼굴은 점점 굳어지고 있었다. 거짓말을 못 하는 성격인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표정에 드러나서야. 그러나 우타히메는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기억 안 난다니까. 기억한다 해도 바보 취급할 게 뻔하니까 너한텐 말하기 싫어.”

순순히 대답해 줄 생각은 없다는 건가. 그렇게 나온다면 어쩔 수 없었다.

“쇼코가 그때 그랬거든. 우타히메의 상처가 뭔가 이상해서 몇 번이고 물었는데 얼버무리기만 했다고. 일이 일어난 직후에 잊어버렸을 리도 없고, 상대가 나도 아닌데 말 안 한 건 좀 이상하지 않아?”

그때는 그저 자신의 실력 때문에 눈에 띄는 상처를 입게 된 것이 수치스러워서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이후로 흉터를 과하게 신경 쓰는 기색도 없는 데다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쇼코에게까지 말하지 않는 것은 분명 이상했다.

고죠가 조용히 말했다.

“우타히메. 사실은 내가 뭘 묻고 있는지 알잖아.”

우타히메의 입매가 살짝 떨렸다. 짧게 한숨을 쉬더니, 포기한 듯 내뱉었다.

“너야말로 대충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나한테서 뭘 듣고 싶은 거야?”

 


 

주령은 보통 사람이 많은 곳에 생겨나지만, 그 임무는 특이하게도 산 깊은 곳에서 이루어졌다. 사람들이 소원을 비는 고목 나무 탓이었다.

본래는 보조감독이 동행해야 했지만, 산에 진입하기 직전 전화가 걸려왔다. 급한 일이 생겨 당장 사람이 필요하다는 연락이었다. 임무 자체는 전혀 어렵지 않았으므로 우타히메는 그를 보내고 혼자 임하기로 했다.

예상했던 대로 어려운 일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그 나무까지 가기 위해 등산하는 것이 더 힘들었을 정도였다. 퇴치 후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저녁엔 뭘 먹을까 하는 생각이나 하며 내려올 때였다.

나무 뒤에서 누군가 튀어나왔다. 매복하고 있던 것이 분명했다. 주술사를 전문적으로 상대하는 사람이었는지 시야에 들어올 때까지 그 존재를 느끼지 못했다.

목으로 들어오는 칼을 몸을 젖혀 피했다. 그걸 예상한 듯, 금방 궤도를 바꿔 얼굴로 다가왔다. 흩어지는 핏방울을 보며 다음 공격에 대비하려 했을 때, 상대는 도망갔다.

증거를 남기지 않으려는 이유라는 건 금방 알았다. 싸움이 길어지면 어떤 식으로 흔적이 남을지는 이런 일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준비한 첫수에 죽어도 좋고, 최소한 상처를 입히라는 의뢰였을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은 그런 대단한 의뢰를 받을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자연스럽게 떠오른 것이 주변에서 가장 대단한 사람이었다. 이전에도 몇 번 있었던 짓궂은 일들에 고죠의 이름이 언급된 적이 있다는 것을 떠올리니 의심이 확신에 가까워졌다. 왜 자신이 타겟이 되었는지, 사람 목숨 하나 정도는 쉽게 없앨 수 있을 것 같은 집안이 왜 그토록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고 했는지는 지금까지도 알 수 없었지만.

 

“왜 말 안 했어?”

이야기를 다 듣고서 그렇게 묻는 고죠의 목소리는 몹시 잠겨있었다. 어쩌면 우타히메가 아무것도 모르기를 그는 바랐다. 그런 마음을 알 길 없는 우타히메는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증거도 없잖아. 지금도 내 추측이 진짜인지도 모르겠고.”

“진짜 맞아. ……심증은 있었잖아. 그러면 따지기라도 했어야지.”

“너한테 왜 따져? 너랑은 상관없는 일인데.”

“……뭐?”

순간 말문이 막혔다. 상관이 없다니, 도대체 뭘 어떻게 봐야 상관이 없을 수 있단 말인가.

“진상이 어떻든 간에 네가 한 일이 아닐 게 뻔한데, 이미 지나간 일에 괜히 걱정하거나 죄책감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다고!”

덧붙이는 우타히메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짜증이 묻어있었다. 고죠를 상대로 내뱉기엔 낯부끄러운 말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지만, 고죠에게는 화를 돋우는 요소일 뿐이었다.

“왜 우타히메가 짜증을 내는데? 상관이 없어? 내가 우타히메랑 가깝게 지내서 생긴 일이 분명하잖아. 몇 년을 그 상처를 안고 살면서, 아무한테도 말도 안 하고, 날 원망하지도 않고, 그렇게 지내왔다고? 바보야?”

“……나야말로 네가 왜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지 잘 모르겠는데.”

내가 약해서 생긴 상처라는 건 변함 없기도 하고. 담담하게 말하는 우타히메의 말이 진심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순간 맥이 빠졌다. 상처가 생긴 후로 우타히메가 겪어야 하는 은근하거나 노골적인 멸시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사소하거나 사소하지 않은 귀찮은 일들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그걸 감내하며 우타히메는 단 한 번도 고죠의 탓을 하지 않았다. 그의 잘못이 아니었기에. 그런 믿음 하나로.

그러니 고죠도 여기서 우타히메의 탓을 할 수는 없었다. 화풀이에 불과하니까. 정말로 화가 나는 것은 이런 일을 만든, 그러면서도 아무것도 몰랐던 자신이면서.

한숨이 나왔다. 그는 그것을 굳이 참지 않고 깊이 내쉬었다. 그러나 동시에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결심이 섰다. 몸을 바로 세우고, 우타히메를 똑바로 바라보며 고죠는 말했다.

“책임질게.”

“뭐?”

“우타히메도 그런대로 각오를 다지는 게 좋을 거야.”

그러고선 부러 경박하게 손을 휘휘 내저으며 그는 돌아섰다. 지금 이 순간 다짐한 것이 있었고, 그것을 위해서 해야 할 일도 생겼다. 영문도 모른 채 멍하니 이쪽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설명해 줄 마음은 없었다. 우타히메의 잘못이 없다 해도 역시 멋대로 아무 말을 하지 않은 것은 괘씸하기에, 이것은 그 나름의 복수였다.

차라리 웃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미 휘말렸다면 완전히 끌어들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나마 다행인 것이 있다면, 그것이 참는 것보다는 훨씬 쉬울 것 같다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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