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술회전

[고죠유지] 선배, 나 좀 좋아해 줘

* 캠퍼스물

* 오메가버스 AU (알파x베타)

1.

"선배, 나 좀 좋아해 줘."

느닷없는 한마디. 짐짓 의미를 헤아리려 턱을 괴고 바라보고 있자니 깜찍하게 눈을 깜빡인다.

어떤 의미느냐고 물을 것도 없다. 뻔하지. 제가 자신을 싫어하는 줄 아는 거다. 제 마음이 어떤 줄도 모르면서.

하여간, 육감은 동물 같으면서 이런 방면에서는 눈치가 더럽게 없다. 이걸 좋아해야 되는 건지, 말아야 되는 건지.

잠시 눈을 가느다랗게 뜨며 속내를 가늠하던 것을 멈추고 눈을 지그시 감으며 답했다.

"뜬구름 잡는 소리."

"뜬구름 잡는 소리라니! 선배, 나한테 과제 같이 하자고 한 거 선배인 건 알고 있지?"

나름의 고충이 담긴 말을 단 한마디로 일단락 시키자 발끈하며 달려든다.

"근데?"

"근데라니? 우리 지금 진도 하나 못 나가서 일주일 내내 얼굴 보고 있는 거 알아?"

"알지."

"내가 의견 내는 족족 묵살하는 것도?"

"그것도."

대수롭지 않게 팔짱을 끼며 답하자, 이내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설움을 터뜨린다.

"선배는 항상 그런 식이야. 깔 거면 이유라도 말해주든가. 피드백 하나 해주지 않으면서 나 보고 어떡하라는 거야? 날 그렇게 싫어하면서 대체 왜 같이 조 짜자고 한 건데?"

당연하지만, 의견은 그럴만 해서 그런 것뿐이다.

만일 네가 진짜 싫어하는 놈이었더라도, 그런 걸로 트집 잡을 만큼 치졸한 인간도 아니고, 사사로운 감정 하나로 일을 그르치면서까지 손해볼 멍청한 인간도 아니다.

그런데, 넌 정말 그렇게 생각해?

"으으, 선배가 나를 어떻게 봤는지는 몰라도, 나도 받거든? 상처?!"

별다른 모션없이 네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자, 잠시간 머리를 굴리는 듯 싶더니 소리를 빽 지르고 가버린다. 입 꼬리가 비죽 올라갔다. 흥분하기는.

누르면 누르는대로 뾰족 튀어나오는 꾸밈없는 솔직함. 그야말로 너의 사랑스러움의 결정체.

서서히 점이 되어 가는 네 뒷모습을 바라보며 꼬고 있던 다리를 반대로 꼬았다. 이번엔 얼마나 걸리려나.

손목 시계로 시간을 한 번 확인한 뒤, 테이블에 네가 그대로 두고 간 자료를 훑으며 턱을 쓰다듬었다.

지금 봐둬야 편하겠지. 나중엔 분명 여유롭게 자료를 살필 정신 따위 없을 것이다.

네 손짓, 얼굴, 말투 하나하나 감미하느라.

지금은 씩씩거리며 자리를 떠났을 지언정, 곧 돌아오리란 것을 안다.

너는 그런 사람이었다. 응당 자신이 화내도 될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홀로 남겨진 상대가 신경 쓰여 못내 돌아오고 마는.

"저번보다는 빨랐으면 좋겠는데."

쨍하게 떠 있는 해를 보며 손가락 마디에 걸린 첫 페이지를 펄럭이며 뒤로 넘겼다.

유지는 제법 흥미로운 주제를 뽑는 재주가 있다. 저번에도 그랬고, 이번에도 그랬다.

하지만 주제는 썩 흥미로울지 몰라도 꼼꼼하지 못한 성격 때문인지 자료조사에 구멍이 많다는 게 단점이었다. 한마디로, 써먹지 못할 것들. 주제 자체로는 관심 받을지 몰라도 뒤로 가면 갈수록 그저 그런 결과물로 치부되기 딱 좋았다.

'뭐, 풋내기 대학생의 레포트가 다 거기서 거기지. 그래도, 노력했네.'

제대로 피드백 해준 것도 없는데 결이 저번보다 한결 나아졌다. 확실히 그저 그런 멍청이들이랑은 다르다니까. 본인은 자각도 못하겠지만.

사각사각. 품을 뒤져 항시 지니고 다니던 만년필을 꺼내 수기로 작성된 레포트에 제 글씨를 새겨넣었다. 

적당히 손대면 꽤 괜찮은 결과물이 나올 것 같아서.

교수는 조언 이상으로 손대지 말라고 했지만, 흑심을 품고 들이댄 것은 자신이었므로 이 정도 책임은 져야 될 것 같았다.

군데군데 체크해가며 맞지 않는 어귀를 거의 채울 즈음, 문득 제가 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공백을 빼곡히 채운 제 필체와, 아이패드 화면에 띄워진 자료 화면.

적당히 손대는 것치고는 너무 본격적이었다. 특히 아이패드는 언제 꺼낸 건지 자각조차 하지 못했다.

"이걸 선의 정도로 생각하면 곤란한데."

하지만 제 바람과는 다르게 관자놀이가 살살 아려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유지라면 그러고도 남기 때문이었다.

보통은 눈치가 비상하지 않더라도 한 번쯤은 의심하기 마련이다. 호감의 유무를 떠나, 상대가 자신에게 호의를 베푸는 이유 말이다.

그런데 유지는 그 뜻을 파고 들기는커녕, 그저 '좋은 사람'이라고 판단해버리는 습성이 있었다.

이럴 때 쓰는 말은 아니지만,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말이 딱 맞아 떨어졌다.

"……선배."

타이밍 한 번 좋네. 낯익은 음성에 턱을 괸 채로 감고 있던 눈꺼풀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유지가 우물쭈물 자신의 앞에 다시금 모습을 드러낸 것은 자료 정리를 전부 마친 직후였다. 얼마나 의기소침해진 건지, 개미만한 목소리가 개미굴까지 파고 들 기세다.

네가 잘못한 건 하나도 없는데. 다정한 말 하나 못 건네는 내가 널 화나게 만들었을 뿐인데, 고작, 지금까지 내가 너를 기다렸다는 이유만으로.

"늦었네."

"왜 아직도 여기 있어…."

단언컨대, '아직도'라는 표현은 적절했다. 분명 만났을 땐 해가 중천이었는데, 지금은 노을빛에 하늘이 빨갛게 물들어있었다.

'착해 빠져가지고는. 미련하게.'

저번보다 빨리 왔으면 하는 제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그런 네가 몹시 사랑스러웠고, 여전히 그런 네가 좋았다. 어찌 됐든 네가 나에게 돌아왔으니까.

"저녁이나 먹으러 가자. 배고프다."

"내가 살게!"

"플라이플로어 갈 건데."

유지는 호기롭게 외쳤으나, 이내 입을 싹 닦았다.

플라이플로어. 이 주변 가장 먹을만 하면서도, 아름답기로 유명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이었다.

이곳은 이름에 걸맞게 내부 곳곳에 꽃이 깔려있었으며, 그래서 그런지 데이트 명소로 손꼽히는 곳이기도 했다.

한마디로, 학기 중에도 알바를 하며 생활비를 충당하는 대학생이 감당하기엔 벅찬 수준이라는 것.

"선배가 사 주는 거지?"

상호명을 듣자마자 넉살 좋게 웃으며 팔에 착 달라붙는다. 눈을 내리깔고 제 팔에 감겨있는 네 팔을 바라봤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당장 쳐내고도 남았을 상황이었으나,

"나한테 잘 해."

"선배가 덜 까칠하게 굴면 되거든?"

"각자 결제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

"잘하겠습니다!"

부쩍 가까워진 거리가 마음에 들었다.

2.

MT. 그건 제가 딱 질색하는 것들만 집합 시켜놓은 교집합 같은 것이었다.

삼삼오오 모여 왁자지껄한 분위기, 알코올에 취해 사리분별 못 하고 마구 지껄이는 것들. 그리고, 술을 핑계로 페르몬을 흘리며 먹잇감을 노리는 하이에나인 척 하는 멍청한 자식들까지.

하지만 아무리 유아독존인 저라도 피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게 있다.

물론 자율 참여라는 명목 하에 이루어지고 있고, 뗀석기 시절마냥 MT를 강요하는 선배들은 없다. 드물게 그런 꼰대 같은 자식들이 있긴 했으나, 제가 4학년이니 강요할 선배 같은 게 있을 리 만무했다.

'선배'는 그랬다.

"ㅡ그래서 이번에 고죠 네가 총괄 좀 맡아주면 좋겠는데."

교수들 사이에서도 제법 어린 편에 속했던 교수는 서글서글 웃는 낯으로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다 대뜸 날카로운 시선으로 저를 직시했다.

얼핏 들으면 "네 의향은 어때?" 하며 의견을 존중한다는 뉘앙스였지만, 실상 강요나 다름없었다.

'여우 같은 놈.'

학생회 간부들이 회비를 등처먹다 걸려 학생회가 공석이 되어버린 이상, 교수 중 가장 어리고 경력이 짧은 본인이 책임을 맡게 될 것이 뻔하니 제게 떠넘기는 것이다.

졸업을 앞둔 4학년에게 이따위 것을 시키는 것도 어이가 없지만, 만약 제가 이것을 거절한다면 이 교수는 없던 일까지 만들어가며 필시 자신을 괴롭힐 것이다.

사실 그것보다 이 교수가 자신의 부(父)에게 미주알고주알 일러바칠 것이 문제였다.

"그러죠, 뭐."

집안끼리 얽혀있다는 건 참 귀찮은 일이었다.

고죠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목적이 있는 사람들.

사람들은 맹목적으로 알파를 동경하고, 갈망했으며. 그것은 같은 알파라 하더라도 다를 것 없는 것이었다.

유서 깊은 알파 가문은 그마한 권력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었으므로.

한 사람이 권위적인 사람으로 자라나기엔 더할나위없이 안성맞춤인 환경이었다.

고죠는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애써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알파'라는 권력에 걸맞게 훌륭한 권위적인 인간이 되었다.

본디 감투란 없는 것보다 있는 게 훨씬 낫다. 다만, 자신 외 모든 이들을 멍청이라고 생각했다. 속 빈 강정 같은 권력을 휘두르는 자나, 그런 걸 보며 선망하는 자나.

"저, 고죠 선배 맞죠?"

낯선 목소리를 따라 고개가 돌아간다. 까만 흑발의 남자는 마치 이런 상황이 처음인 양 퍽 어리숙한 모습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방금 전 분류한 멍청이들 중, 후자에 속하는 쪽이었다.

'아까부터 웬 페르몬이 코를 찌른다 싶더니 여기가 근원지였나.'

"기분 안 좋으니까 가라."

고죠가 심드렁하게 축객령을 내렸다.

안 됐지만, 지금은 타이밍이 안 좋아도 한참 안 좋았다.

생각만 해도 엿 같은 MT에 끌려와서 개고생 하는 것도 열받아죽겠는데, 취기를 핑계로 앞뒤없이 들이박는 오메가란 정말 최악이었다.

"네?"

남자가 멍청하게 되물었다. 자신이 미처 잘못 들었기를 바랐다. 그러나 남자의 귀는 멀쩡했다.

"뭘 못 알아들은 척이야. 꺼지라고."

"……."

고죠는 일말의 여지조차 남기지 않겠다는 듯 쐐기를 박았다.

꼭 말로 해서는 못 알아듣는 부류가 있다.

단언하건대, 세살베기 아기도 이렇게 페르몬을 질질 흘리진 않을 것이다.

뻔한 수작질에 고죠가 눈을 위로 치켜뜨며 불편한 심기를 표했다.

거무칙칙한 페르몬이 몸체에서 스멀스멀 기어나오자 은근슬쩍 다가가던 남자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본래 오메가는 알파의 페르몬에 취약하다. 태생이 그러했다. 알파가 작정하고 페르몬으로 위협한다면 오메가는 제대로 숨도 쉬지 못할 정도였다.

그리고 그는 알파 중에서도 극히 드물다는 우성 알파였다.

"컥, 커억!"

아주 살짝 풀어놓았을 뿐인데 남자가 목을 움켜쥐며 고통에 찬 신음을 내뱉었다.

이쯤되면 알아들었을 거다. 고죠는 자신의 목을 부여잡은 남자를 무표정하게 바라보다 그렇게 생각하고 페르몬을 걷어냈다.

하지만 금방 달아날 줄 알았던 남자는 가련하게 몸을 벌벌 떨면서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아, 짜증나네.'

종종 있다. 알파라면 앞뒤 안 가리고 달려들고 보는 멍청한 족속들. 

그리고 그는 이런 족속들을 가장 싫어했다.

"너,"

그때였다. 날선 페르몬을 풀어내려던 때, 천진난만한 목소리가 남자에게 위협적으로 다가서던 고죠를 멈춰 세웠다.

"고죠 선배!"

고죠의 무미건조한 시선이 소년에게 닿았다. 순진한 낯짝과 어울리는 앳된 목소리.

이타도리 유지에 대한 고죠의 첫인상은 아직 어린 소년의 티를 덜 벗은 아이였다.

"고죠 선배 …가 아닌가?"

유지의 고개가 갸우뚱 기울었다. 고죠는 어느새 뒤로 물러선 녀석을 눈으로 흘기다 시선을 앞으로 고정했다.

"맞아. 나한테 뭐 할 말 있어?"

"지금 그, 누구더라, 그 눈 찢어진 선배가 고죠 선배 찾고 있어요."

"……."

고죠는 잠시 고민에 빠진 듯 입을 다물었다.

눈이 찢어지고 자신을 찾는 사람이라면, 단 한 사람 뿐이었다. 혼자 죽을 수 없다며 물귀신 작전으로 끌고 온 자신의 친구.

그 친구가 자신을 찾는 이유 또한 너무 훤히 보였기에, 고죠는 무어라 답변조차 하지 못하고 벗어날 궁리를 했다.

"선배?"

그것도 잠시, 고죠는 언제 그랬냐는 듯 유지의 부름에 선선히 답을 내놓았다.

"나 여기 있는 거 아는 사람 있어?"

"음, 저?"

"너 말고."

"그럼 없지 않을까요? 깜빡하고 폰을 위에 두고 와서 연락은 못 했거든요."

눈알을 도르륵 굴리며 말하는 소년을 보며 고죠가 잘 됐다는 듯 입매를 비틀었다.

"잘 됐네. 너 이름이 뭐야."

"이타도리 유지인데요."

"그래, 유지.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있으면 말해봐. 다 사 줄게."

"네?"

"대신, 너는 지금 날 못 본 거야."

고민 끝에 나온 결론이 이것이었다.

저만큼이나 사람들과 부대끼는 것을 싫어하는 친구마저 돈으로 꼬드겼는데, 또 통하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

이름하여, 뇌물작전.

"먹고 싶은 거요?"

"말만 해. 돈은 썩어날 정도로 많으니까."

그러나 고죠가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괜찮아요."

"뭐?"

"딱히 얻어먹을 만큼 제가 뭘 하는 것도 아니고, 이런 걸로 얻어먹을 정도로 염치 없진 않거든요. 그냥 선배를 못 본 체 하면 되는 거죠?"

유지는 결코 남에게 휘둘릴만한 성정이 아니었다.

"......그래."

"그럼 전 이만 들어가볼게요."

처음이었다. 알파도 아닌 자가 자신의 제안을 거절한 것은. 베타라도 다를 것 없었다. 알파라 함은 사회적 지위가 보장이 되어있는 종족이었으니까.

상대가 누구든 자신과 엮이기 위해서라도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안달이었건만.

'대체 뭘까.'

모든 것이 의심스러웠다. 거절로 관심을 얻어내려는 건가 싶기도 했지만, 그런 모양새는 아니었다.

그는 서서히 멀어지는 뒷모습을 끈질지게 쫓았다. 호기심이 갔다.

이유가 무엇이던, 여느 사람과 달리 아무런 목적없이 다가온 티없이 맑은 소년은 유독 빛나 보였다.

3.

"선배?"

"아."

고죠가 짧게 탄식하며 놓친 빨대 끝이 보기 좋게 굽어졌다. 고죠가 곁눈질로 주변을 훑었다.

학교에서 깨나 걸어 도착한 카페. 손님은 고작 자신과 유지, 둘 뿐. 참말로, 다행이었다.

네가 베타라는 사실이 다행이라 느껴지는 날이 올 줄 몰랐다.

'설마 무의식중에 페르몬을 표출할 줄이야.'

들은 적 있다. 페르몬은 무의식 중에 원하는 사람을 찾아간다는 말. 하지만 이런 식으로 출처 모를 소문의 진위여부를 가리게 될 줄은 몰랐다. 사람들과 부대끼는 것이 싫다며 인적 드문 카페에 자리를 잡은 것이 신의 한수였다.

만약 지금 있는 곳이 교내 카페였다면, 공개 고백, 그 이상의 수준이었으리라.

"선배!"

"어, 뭐라고 했지?"

고죠가 잠시 멍한 정신을 가다듬으며 넌지시 묻자, 유지가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삐치기 직전의 신호였다.

"오늘 뒷풀이 갈 거냐구."

"그런 걸 뭐하러 가."

"그럴 줄 알았어. 알겠어. 나 혼자 가지, 뭐."

유지는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으쓱였다. '그럴 줄 알았다' 즉, 유지도 알고 있었다. 고죠가 시끄러운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묻고 싶었다. 갈 것이냐고. 이유는 모른다. 과제를 핑계로 가까운 사이가 되고, 가까운 사이라는 핑계로 뺀질나게 붙어다녔다. 

아마 습관이 되어버린 건 지도 모른다. 고죠의 참석 여부를 자신에게 묻는 누군가들처럼.

"가려고?"

고죠가 긴 다리를 쭉 뻗으며 반대로 꼬았다. 영 탐탁치 않아보이는 표정과 말투. 유지가 둥글게 만 주먹으로 테이블을 탕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방해할 생각하지 마! 선배 말대로 시험 때까지 공부만 했으니까, 오늘은 무조건 놀 거야!"

완곡한 의사 표명. 유지는 이번에도 알았다. 그는, 고죠는, 자신이 뒷풀이에 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을.

"그래, 그럼."

고죠는 마지못해 고개를 까딱였다. 기분이 구렸다.

차마 신나보이는 유지를 막을 수 없었던 것은 아니고. 말릴 핑계도, 명분도 없었기 때문에.

인상을 찡그리며 대놓고 싫은 티를 팍팍 내는데도, 유지는 개의치 않고 기대에 부푼 마음을 꺼내놓았다.

한참이나 쫑알쫑알 떠드는 미운 입술을 바라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공개 고백보다 더 하면 어떠한가. 다른 사람이 유지를 탐내는 것은 꼴보기 싫은데.

천상천하(天上天下) 유아독존(唯我獨尊). 하늘 위와 하늘 아래에 오직 나 홀로 존귀하다.

고죠는 그런 존재였다. 자신 이외의 모든 사람을 멍청이라 칭할 정도로 자존감은 물론이거니와, 자존심과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인간.

그래서일까. 그는 오히려 자존심이 없는 것처럼 굴 때가 많았다. 구태여 제 발 아래에 있는 것들을 이기려 드는 것이 우습다는 까닭이었다. 자존심 따위야 언제든 내세울 수 있었으므로.

다르게 말하자면, 그는 내려놓을 때를 매우 잘 알았다. 그리고, 지금은 그깟 자존심보다 이게 더 중요했다.

'결국 본인만 모르면 되는 거 아닌가?'

고죠를 뒤로 하고 종강 파티에 참석한 유지는 오늘따라 동기들이 낯설었다. 비단 동기 뿐만 아니었다. 모두가 낯설었다.

"아, 미안!"

하나같이 저를 보며 흠짓 놀라거나.

"고죠 선배랑은 어쩌다 사귀게 된 거야?"

고죠와 자신을 엮지 못해 안달이었다.

이 질문만 벌써 일곱 번째. 유지는 짧게 숨을 들이키며 고개를 내저었다. 이 이상 아니라고 해명하기도 질렸다. 어차피 대답을 듣고 난 후에는 제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자리를 피할 것이었다. 앞서 같은 질문을 했던 이들이 그랬다.

"아… 그래?"

보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예상대로 일곱 번째 질문자는 형식적인 문답 몇 번을 주고받다 자리를 벗어났다.

어쩜 이리 반응들이 똑같은지. 사실 자신이 마주한 일곱 명은 일곱 개의 육체를 가진 같은 자아의 사람이 아닐까. 의심될 정도였다.

'기분 좋게 놀러왔는데 이게 뭐야.'

어느덧 4인용 테이블에 혼자 남은 유지가 맥없이 엎어졌다.

외로웠다. 마치 자신이 고죠의 들러리가 된 듯한 기분. 좀 더 보태자면, 자신이 고죠의 매니저라도 된 것 같았다.

교내에서 고죠는 유명인이었다. 되바라진 성격임에도 인기가 많았다. 무려 우성 알파라는 권위도 있었고, 타고난 잘난 외모 덕도 있었다. 그가 모질게 굴 때마다 명성은 더욱 치솟았다. 이유는 나름 타당했다. '역시 얼굴 값 한다.' 본래 사람들은 쉽게 가질 수 없는 것에 열광한다. 남들이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졌을 때의 그 우월함. 고죠는 그들에게 '한정판' 그 자체였다.

당연히 이해한다. 자신 같아도 궁금했을 거다. 보잘 것 없는 자신과, 세상 잘난 사람이 어울리게 된 계기 따위의 것들.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소재가 아닌가. 

'유명인사와 친해진 것을 어쩌겠어.'

유지는 불쾌해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다섯 번째로 같은 질문을 들었을 때에도 방긋 웃었다. 하지만 여섯 번째에 미소가 옅어지고, 일곱 번째에 입꼬리를 놓아버렸다. 그가 없으면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취급이 더 서러워 견딜 수 없기 때문이었다.

속상한 마음에 홀로 술잔을 채웠다 비우기를 몇 번. 술병이 바닥을 드러냈을 즈음.

"얼마나 마셨어?"

유지가 자신의 술잔을 가로막은 손을 타고 서서히 시선을 위로 올렸다.

크고 다부진 손. 아래로 똑 떨어지는 프렌치 코트. 왁스로 반쯤 넘긴 머리와 웃음기 하나 없는 무뚝뚝한 얼굴.

바야흐로 주인공의 등장이었다.

"아… 선배."

유지가 정신을 차린 듯 보이자, 고죠가 잔을 내려놓으며 맞은 편에 착석했다.

이쯤에서 유지는 남들이 왜 그렇게 오인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의 자연스러운 행동이 퍽 연인 같아 보이기도 했다.

"적당히 마시지? 너 눈 풀렸어."

"사람이 취하는 날도 있고 그런 거지……."

"까불지 마. 한 병도 간당간당한 게."

유지가 고개를 푹 숙였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왠지 모르게 그의 눈을 마주할 수가 없었다. 답지 않게 대놓고 걱정해서? 아니면 술 좀 취했다고 사람이 달라보이는 건가?

확실한 건, 캐쥬얼을 추구하던 평소와 달리 간드러지게 차려입었다는 것이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멋있게 차려입고 나온 건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안 온다더니."

유지가 입술을 비죽이며 말하자, 고죠가 덤덤하게 답했다.

"네가 온다며."

유지가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뭐지? 기분이 이상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다시금 초점이 흐려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고, 속이 울렁이는 것 같기도 했다. 취했나? 하지만, 갑자기 술이 올랐다 하기에는 정신이 너무나도 말짱했다.

알 수 없는 이상 증세에 유지가 다시금 시선을 내렸다. 이대로는 심장이 망가질 것 같았다. 제대로 볼 수 없음은 물론이요, 그의 시선이 닿는 곳마다 따가워서 미칠 지경이었다.

유지는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만을 간신히 참고서 숨을 가다듬었다.

"그래서 원하는대로 좀 즐겼어?"

"……."

"꼴을 보니 즐거워보이진 않네."

테이블과 고죠의 얼굴을 번갈아보기를 몇 번. 유지의 얼굴이 침울해졌다.

반대로 고죠는 깨나 즐거워보였다.

마킹. 주로 알파가 오메가에게 하는 영역표시. 하지만 마킹을 반드시 오메가에게만 하라는 법은 없다. 고죠 사토루는 이 점을 이용해, 유지를 마킹한 것이다.

더불어 같은 질문을 반복하던 그들 역시 제 2의 성을 가진 자들이었다. 페르몬을 볼 줄 알고, 마킹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그런데, 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유지를 보며 상황을 기이하게 여기고 돌아선 것이다. 연인도 아닌 자에게 마킹을 하는 것은 듣도보도 못했으나, 어느 누가 감히 고죠 사토루의 계략에 훼방을 놓겠는가. 결국 말이 무서워 도망간 거나 다름 없었다.

하지만 베타인 유지가 그 사실을 알 리가 만무했고. 그렇게 유지는 자신이 모르는 사이, 고죠 사토루의 것이라 낙인이 찍혔다.

다른 사람이 접근하는 것이 싫어 아예 사람들에게서 도태시켜버리다니. 성질이 더러워도 여간 더러운 게 아니었다.

"다 놀았으면 이만 일어나자."

"아쉬운데……."

"혼자 한 병 다 비워놓고 뭘 아쉬워."

"그러고 보니 선배 술 마시는 거 한 번도 못 본 것 같아. 이왕 온 김에 같이 마시자! 응?"

시선이 일제히 쏟아졌다. 대학에 오면 하루가 멀다 술과 부대끼고 살게 되는 것이 공식이다. 하지만 4학년이 되도록 입에 알코올 한 방울 안 묻힌 사람이 있다? 고죠 사토루는 여러모로 화제의 인물이었다.

"아서라. 나 이거 마시면 네가 나 엎고 가야 돼."

고죠는 드물게 해사하게 웃어보이다, 불현듯 가라앉은 눈으로 주위를 압박했다.

흐릿하게 풀린 동공. 열기로 불그스름하게 달아오른 볼과 살짝 벌어진 입술. 보기에도 달큰한 광경이었다. 당장 제 입으로 저 입술을 틀어막고 싶을 정도로.

처음에 입술을 부대 끼면 저 요망한 입술이 앙 다물리겠지. 그럼 도톰한 입술을 살살 어르고 달래서 벌리게 만드는 거야. 그 다음엔 약한 살을 쪽쪽 빨고, 네가 숨이 벅찰 즈음에 뒷목을 잡고 혀를 얽어대는 거지. 아, 얼마나 황홀할까.

이루어지기만 한다면, 평소 진절머리를 내던 알코올 향마저 달갑게 느껴질 것 같았다.

그런 이유로 그는 자신의 시야를 다른 누구와 공유하고 싶지 않았다. 누가 자신과 같은 음험한 마음을 품었을 지 모를 노릇이었다.

고죠는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네가 베타가 아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럼 이 일련의 과정들이 한층 쉬워졌을지도 모른다.

4.

고죠는 요즘따라 멍을 많이 때렸다. 대화를 하다가 말을 멈추는 것은 부지기수였고, 마냥 걷다가 가만히 있는 엄폐물에 스스로 머리를 갖다박기 일쑤였다.

그것뿐이면 다행이랴.

빨간불에 횡단보도를 건너려다 모르는 사람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가 이렇게 황천길 구경을 하면서까지 시시때때로 사색에 잠기는 이유. 단순하다. 유지의 태도가 전과는 미묘하게 달라져서. 그 변화가 너무 미묘해서 뭐라 콕 짚어서 말할 수 없다는 게 흠이라면 흠이었지만, 달라진 건 사실이었다.

이를테면, 이전보다 눈을 마주치는 횟수가 가히급수적으로 늘었다는 것. 여기서 요점은 유지가 그때마다 눈을 피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이건 꽤 좋은 징조였다.

"선배 무슨 좋은 일 있어? 요즘따라 자주 웃네."

"그건 아니고. 곧 생길 것 같아서."

"으음… 그렇구나."

유지가 벨벳 케이크를 입안 가득 집어넣었다. 고죠는 턱을 괸 채로 그 모습을 관망하며 퍽 즐겁게 웃었다.

유지는 고죠에게 좋은 일이란 무엇일까. 그 생각으로 여념이 없었고.

고죠는 마냥 기분이 좋았다. 종강까지 한 마당에 과제 핑계를 댈 수도 없고, 무슨 수로 유지를 꾀어낼지 난관이었다. 그런데 자신이 며칠내리 고민한 것이 무색하게, 유지는 막무가내로 만나자는 연락에 가타부타 묻지 않고 선뜻 알겠다며 말을 마쳤다.

"나 궁금한 게 있는데, 선배는 왜 코스모스 졸업 안 했어? 학점 충분하지 않아?"

물론 충분하다. 하지만 미뤘다. 이유야, 뭐. 눈 앞에 있고. 근데, 보통은 좋은 일이 뭐냐고 물을 타이밍 아닌가? 진짜 예상대로 흘러가는 법이 없지.

고죠가 뻐근한지 뒷목을 주무른다. 그간 여러모로 티를 냈다고 생각했건만, 이 후배님은 알아줄 생각을 안 한다. 남은 건... 정공법이다.

"너랑 더 다니고 싶어서."

"어?"

"왜. 안 돼?"

의미심장한 뉘앙스에 유지가 저도 모르게 눈을 깔았다. 쥐똥만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그건 아닌데……."

"그럼 됐네. 나랑 다녀."

슬쩍 눈알을 굴리다 한순간 시선이 맞물렸다. 이젠 아주 대놓고 빤히 쳐다본다. 유지가 흔들리는 동공으로 눈을 피했다.

분명 먼저 본 건 저쪽인데, 어쩐지 제가 더 부끄러웠다. 훔쳐보다 걸린 기분이었다.

유지는 묘한 분위기에 며칠 전 종강 뒷풀이를 떠올렸다.

데려다주겠다며 비틀거리는 저를 이끌고 가던 선배. 손목을 붙잡혀 끌려가는 와중에도 새삼 등이 참 넓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때, 고죠가 대뜸 쪼그려 앉았다.

'업혀.'

'……?'

'걷기 힘든 거 아니야? 업히라고.'

맞긴 했다. 만취 직전에 술이 조금 깬다고 해서 안 힘든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걸음이 조금 느릴 뿐이었다. 크게 비틀거리지도, 스텝이 꼬이지도 않았다.

좀 놀라웠다. 그만큼 자신에게 신경쓰고 있었다는 점에서 놀랐고, 선뜻 등을 내어줘서 놀랐다.

고죠는 무성한 소문과는 다르게 자신에게 꽤 자상한 편이긴 했다. 그럼에도 이런 호의는 처음... 이 아닌가? 곰곰이 생각하던 차, 아래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안 업혀?'

유지는 대답 대신 드넓은 등에 제 몸을 실었다. 생각해보면 고죠는 자신을 알게 모르게 챙겨줬었다.

과제할 때에도 많이 구박하긴 했지만, 결국 선배가 다 해줬지.

좋은 사람. 유지가 저도 모르게 어깨에 볼을 부비적댔다. 고개를 묻은 목덜미에서 은은한 향이 난다. 달큰하면서도 시원한 향이 인위적인 향이 아닌, 본래의 체향인 듯 싶었다.

'야, 몸 성히 집에 가고 싶으면 그만 비벼.'

얼굴이 화르륵 달아올랐다. 평소라면 절대 떠올리지 못 했을 가정이었다. 이런 가정을 하게 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하필 그 순간 그들이 지나가던 거리에 모텔이 즐비하고 있었고, 유지는 알 거 다 아는 스무살이었다.

유지는 그저 들어도 못 들은 척, 봐도 못 본 척, 집에 도착할 때까지 입을 꾹 닫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짧게 회상을 마친 유지가 또다시 슬쩍 눈알을 굴렸다.

유지는 그날 침대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고죠가 한 말에 저의를 생각하고, 고민했다.

하지만 알아낼 수 있는 건 자신의 기분 뿐이었다. 자칫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말에도 기분이 나쁘기는커녕, 오히려 설렜었다.

마침 요란하게 뛰어대는 심장 박동이나, 묘한 분위기가 그날과 똑같았다.

유지는 이 감정이 무엇인지 자각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역시 잘생겼어."

차마 얼굴을 바로 보지는 못하고 그의 날렵한 턱선을 구경하던 유지가 무심코 감상을 읊조렸다.

그의 눈동자가 저를 또렷하게 응시한다. 자신이 속내를 입밖으로 내뱉은 줄 모르는 유지는 우연이 절묘하다고 생각했다.

"알고 있어."

그가 대답하기 전까진.

"어어…?"

고죠의 눈동자에 이채가 감돌았다.

"감상은 끝났어?"

자신은 힐끔힐끔 훔쳐보는 시선을 느끼고 사각 프레임에 담기는 피사체라도 된 마냥 포즈를 잡고 있던 고죠가 싱긋 웃어보였다.

유지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 붉어졌다. 이번엔 진짜로 부끄러웠다. 자신의 속내를 다 들킨 것 같아서.

좋아한다고 결론을 내린지 5분도 채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벌써 들키다니. 자신은 뭘 숨기고 감추는 데에 소질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이판사판이다.'

"선배."

"말 해."

"나 좀 좋아해 줘."

고백 아닌 고백. 이게 최선이었다. 썸을 타던 것도 아니고. 상대가 자신을 좋아하는지 아닌지도 모르는데, 사귀자는 고백은 너무 일방적이었다. 심지어 상대는 그 누구도 아닌 고죠 사토루였다.

안 그래도 자존감이 낮은 유지로써는 이게 최선이었다고 할 수밖에.

그러니까, 이건 어디까지나 유지 입장이었다.

"내가 좋아하면?"

"……응?"

"내가 널 좋아하면 어떻게 되는 건데."

전처럼 헛소리 하지 말라고 까내릴 줄 알았던 고죠는 꽤 진지한 기색으로 물었다. 의외의 반응이었다.

하지만 아직 거기까지 생각해보지 않았던 유지는 잠시 뜸들이다 입을 열었다.

"사… 귀나?"

"그래."

……?

"응?"

"그러자고."

유지는 입까지 벌리고 멍을 때렸다. 잠시 머리가 안 돌아갔다.

사실상 고죠의 입장에서는 땡큐, 아리가또, 쎼쎼였다. 일방적으로 마킹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지금은 자신이 영향력이 있다한들, 그건 어디까지나 대학이라는 조직 한정이었다.

물론 사회에서도 지대한 영향력을 키울 자신은 있다. 하지만 유지는 제가 졸업하고 나서도 몇 년간은 대학생이란 게 문제였다.

졸업하고 나서도 제 영향력이 뻗을지 미지수이기 때문에.

제게 주어진 시간은 단 6 개월. 앞으로 어떻게 이 요망한 후배를 구워 삶아야 될지 고민이었는데, 그토록 손아귀에 넣고자 했던 것이 드디어 제 손아귀에 들어왔다. 그것도 스스로.

그간 꽤 오랜 시간 공들였다고는 하나, 사실상 손 안대고 코 푼 격이었다.

아무리 그래봤자 유지는 이제 막 발에 물을 적시기 시작한 단계. 이미 온몸이 절여진 자신과는 아주 달랐다. 고죠는 그 점을 아주 잘 파악하고 있었다.

'앞으로가 관건이겠지.'

하지만 고죠는 한 번 손아귀에 들어온 것을 놓치는 머저리가 아니었다.

고죠는 볼이 움푹 패이도록 웃으며, 여전히 정신 못 차리고 헤벌레 하고 있는 유지에게 쐐기를 박았다.

"네가 사귀자고 한 거야. 무르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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