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술회전

서늘한 따뜻함

고죠우타

Dusk by 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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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타히메, 약해서 큰일이네. 이래서야 앞으로 주술사 일 잘 할 수 있겠어?”

명백히 사람의 화를 돋우려는 목적의 저 말투. 시끄러우니까 꺼지라고 소리라도 치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목이 완전히 잠겨서 말은커녕 숨을 쉬는 것조차 버거운 상태였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는 술식이다 보니 고집을 부릴 틈도 없이 임무는 캔슬. 아마 지금쯤 다른 사람이 나 대신 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감기 같은 것에 걸려 다른 사람에게 부담을 준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도 있었고, 이래서 주술사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냐는 면박에도 할 말이 없었다.

이것이 내 잘못으로 걸린 감기라면 말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저놈이 나한테 저따위로 말하는 건 역시 잘못됐다. 고죠 사토루야 말로 이 감기의 원인 그 자체였다.

 


 

“우타히메. 나 열나는 것 같은데.”

불쑥 나타난 건방진 후배가 내뱉은 첫 마디는 이거였다. 이 녀석이 아프다니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나? 바보는 감기도 안 걸린댔는데. 그보다 도대체 왜 멋대로 이름으로 부르는 거지? 이건 선배 취급 이전의 문제가 아닌가.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니 확실히 컨디션이 안 좋아 보이기는 했다. 아무리 짜증 나더라도 후배는 후배이니, 일단 태도에 대해선 묻어두기로 하고 고죠의 이마에 손을 대보았다. 키가 큰 탓에 팔을 한껏 뻗어야 하는 게 마음에 안 들었지만.

“……확실히 미열이 있네. 네가 웬일이야? 그래도 심하진 않은 것 같으니까 급한 임무 없으면 약 먹고 누워서 좀 쉬는 게…….”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손을 떼려는 순간 고죠의 손이 내 손목을 붙들었기 때문이었다.

“뭐 하는 거야?”

“우타히메 손, 시원해.”

기가 막혔다. 이마에 쿨패치나 붙이지, 36.5도쯤 되는 사람 체온이 시원해봤자 얼마나 시원하다고. 나는 잡힌 손을 확 잡아 뺐다. 어쨌든 시도는 했다는 뜻이다. 장렬한 실패.

“나 좀 어지러운데 방까지 데려다주면 안 돼?”

그보다 더한 실패는 물론 이 요구를 거절하지 못한 것이었다.

 

이 커다란 사내애를 내 힘으로 어떻게 옮길 수 있을 리가 없고, 데려다 달라던 사람에게 거의 끌려가다시피 하여 고죠의 방문 앞에 도착했다. 거기서 돌아가려고 했더니 약이 없다느니 빈속이라느니 시끄러운 탓에 결국 약국에서 이런저런 걸 사 고죠의 방으로 복귀. 겸사겸사 옆에 있던 편의점에서 산 인스턴트 죽을 내려놓자 역시나 불만이 터져 나왔다.

“이게 뭐야! 우타히메 수제 요리는 없는 거야?”

“시간 걸리잖아. 빨리 먹고 약 먹고 잠이나 자. 아, 쿨패치도 사 왔어.”

“필요 없어.”

이게 사람이 기껏 신경을 써줬더니. 목 끝까지 차오른 분노를 필사적으로 삼켰다. 저놈은 환자다. 일단 화를 내도 나중에…….

“아……!”

“음, 역시 시원하다.”

침대에 있던 고죠가 갑자기 팔을 끌어당겼다. 사람을 인형 취급하듯 끌어안는 몸이 뜨거웠다.

“시원할 리가 없잖아, 이거 놔!”

“시원해. 그리고 따뜻해.”

“그게 무슨 소리야 도대체…….”

“나 잘래.”

“야!”

이 일이 이틀 전. 정말로 잠들어버린 고죠의 품에서 빠져나오려는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후 포기하고 가만히 있다가 함께 잠들고 말았고, 눈을 떴을 땐 약도 안 먹었으면서 바로 쌩쌩해진 고죠를 보고 혀를 차며 방에서 나왔다. 그리고 다음 날 몸이 으슬으슬하다 싶더니 오늘 이 상황에 이르렀다.

 


 

“자, 이건 약한 우타히메를 위해 내가 특별히 가져온 것들.”

남의 방에, 도대체 문을 어떻게 따고 들어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멋대로 쳐들어온 그가 그렇게 말하며 내민 것은 물론 내가 이틀 전 고죠에게 사다 준 후 그대로 방치되었던 약이었다. 조금 얄밉긴 해도 솔직히 약을 사러 갈 기운도 없으니 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일단 일어나야겠다 싶어 뒤척이자 고죠의 팔이 몸을 받쳐 일으켜주었다. 고죠 사토루에게 이런 배려가 가능하다는 것에 솔직히 조금 놀랐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고죠는 베개를 세워 기대게 해주고서는 곧 어디론가 사라졌다.

돌아온 손에 들려 있던 쟁반은 곧 내 무릎 위로 올라왔고, 그 위에는 약한 김이 피어오르는 죽 한 그릇이 놓여있었다. 대충 때우려던 우타히메와는 달리 직접 만들어 왔지, 하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이 녀석의 이런 친절은, 익숙하지 않다.

그러나 무슨 꿍꿍이가 있느냐고 물어볼 처지도 아니었다. 일단 말을 할 수가 없었으니까. 목이 아파 죽을 먹을 수 있으려나 싶었는데, 잘 갈린 따뜻한 죽은 의외로 쉽게 넘어갔다. 반 정도를 비우고 숟가락을 내려놓자 이번엔 약과 물.

“먹기 힘들면 먹여줄까?”

와중에도 헛소리를 멈추지 않는 고죠를 가볍게 째려보고서 그것을 받아들었다. 알약이 평소보다 세 배쯤 크게 느껴졌지만 어떻게든 삼켰다. 따뜻한 것으로 가라앉았던 목의 통증이 따끔따끔 되살아나 눈을 꾹 감았다.

약이 내려갈 때까지 앉아있으려니 슬슬 추워졌다. 고죠는 옆에서 끊임없이 까불고 있었는데, 머리가 웅웅 울리는 탓에 사실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문득, 조용해졌다. 반응 없는 사람을 상대로 용케도 이만큼 떠들었네,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등에 무언가가 닿았다.

이 방에 있는 건 나와 고죠뿐이었으므로 닿은 것은 고죠의 손이 틀림없었다. 커다랗고 따뜻한 손이 등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그제야 몸이 덜덜 떨리고 있었던 것을 자각했다.

“이제 슬슬 누워도 되지 않을까?”

몸을 일으킬 때와 마찬가지로 조심스럽게 눕히는 손길에 이상하게도 더 열이 오르는 기분이었다. 목까지 이불을 끌어 올려 덮어준 고죠가 가만히 이쪽을 내려다보기에 나는 차라리 눈을 감았다.

“어때. 시원하지?”

이마와 눈가를 덮는 여린 서늘함. 이번에도 고죠의 손이었다. 아주 엉터리 같은 말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시원하고 따뜻하다는 건.

“우타히메가 가야 했던 임무는 내가 대신 다녀올게. 상당히 인력 낭비긴 하지만, 안 그러면 우타히메 편하게 쉬지도 못할 거잖아. 그리고…… 미안.”

나지막한 목소리로 고죠가 중얼거렸다. 아아, 왜 이러나 했더니. 머릿속 소음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금세 졸음이 몰려왔다. 잘 자. 그런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잠들기 직전 내 얼굴은, 어쩌면 어쩔 수 없다는 듯 웃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타히메 몰래 문도 고치고 갔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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