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시이타]순정

금사빠 이타도리 때문에 고통 받는 후시구로

평화로운 현대 소꿉친구au

※이타도리가 토우지, 나나미, 고죠를 짝사랑합니다※

후시이타 전력 참여

순정

초등학교를 입학하기 전, 옆집에 새로운 사람이 이사 왔다. 아버지 한 명과 아들 하나. 아들은 내 또래. 우연이라기엔 나와 너무 비슷한 처지인 이웃집 아이.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와 단 둘이서 살아가는 동갑의 남자아이. 이타도리 유우지. 이사 첫날에 그는 제 아버지를 똑 닮은 머리카락을 하고 생글생글 잘만 웃으며 자기소개를 해왔다. 우린 서로 옆에 아버지를 껴두고 또래니까 친하게 지내라는 형식적인 첫인사를 나눴다. 인상이 사나운 아버지는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아니면 단지 파친코를 하러갈 동안 돌봐줄 사람이 생겼다 생각해서 그랬는지 다음날 바로 나를 옆집에 내밀었다. 옆집의 이타도리 씨는 싫은 기색도 없이 반갑게 나를 들였고 그 아이는 더 해맑게 웃으며 맞아 주었다.

“메구미 맞지? 난 이타도리 유우지야!”

이름 따위, 어제 나눈 인사로 알고 있다. 하루만에 잊어버릴리가 없잖아. 곧 초등학교도 들어가는 나이라고. 괜히 어색해서 툴툴거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고개만 끄덕이고 말았다. 그러자 이타도리 유우지는 내 손을 덥석 잡더니 제 방으로 끌었다. 또래 남자아이의 방은 처음이었지만 물건이 좀 더 많은 정도로 내 방과 다를 거 없이 평범했다. 

“우리 블럭 가지고 놀자!”

유우지는 신이 나서 블럭 장난감을 마구 꺼냈다. ……확실히 이 레고는 내게 없는 거다. 쭈뼛거리고 있는 나를 앉히고 이타도리 유우지는 한 걸음 더 다가와서 나의 무뚝뚝한 표정도 서투르고 민둥한 태도도 허물며 말을 걸어댔다. 나는 이 이타도리 유우지라는 아이가 몹시도 불편했다. 자꾸만 고개를 홱 돌리고 닿으면 살짝 멀어졌다. 화상을 입으면 간질거리는데 그것과 느낌이 비슷했다. 이타도리 유우지는 내게 없는 온도로 나를 대했고 나는 그것이 낯설어서 적응하기에 바빴다. 이타도리가 같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우리는 제법 친해졌지만 나는 여전히 화상을 입을까 까탈스러운 태도였다. 우린 등하교를 같이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고 두 아버지는 일을 해야했기에 서로의 집에도 자주 들락거렸다. 이타도리네 아버지에 비하면 내 쪽의 빈둥거리는 아버지는 집에 있을 때도 많았다. 그러면 유우지는 한심한 아버지에게도 퍽 사글사글하게 굴었다. 

“토우지 씨는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거야?”

“…뭐냐, 꼬마.”

“직업이 뭐길래 맨날 놀고 있는 거냐구우.”

“꼬마는 몰라도 돼. 가서 메구미랑 놀아라, 훠이.”

어른이라고는 할 수 없는 무성의한 손짓으로 이타도리 유우지를 쫓아내도 유우지는 싫은 티 하나를 내지 않았다. 늘어지게 누워서 티비를 가린다며 여덟살 짜리 어린애를 파리 쫓듯 휘휘 저어도 유우지는 상처 없음, 내색 없음, 여전한 천진함으로 상대가 한발 물러서게 만들곤 했다. 성인이라기엔 모자란 아버지는 어쩔 수 없단 듯 일어나서 결국 몸으로 유우지를 놀아준다. 어쩌면 성인보다 튼튼한 유우지가 맘놓고 육체를 부딪히며 놀 수 있는 사람은 제 아버지 하나 뿐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홉 살의 여름. 이타도리 유우지의 첫사랑 상대를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메구미~ 오늘은 토우지 씨 있어?”

같이 하교할 준비를 빠르게 다 마친 유우지가 눈을 빛내며 물어왔다. 제멋대로 큰 돈 물어올게 하고 나가서 보름 넘게 돌아오지 않는 몹쓸 어른을 기다리는 눈이었다. 나는 이제 저 눈동자를 마주해도 따스함에 데인 것처럼 따갑거나 간지럽지 않았다.

“없을걸.”

“아….”

유우지가 눈에 띄게 실망했지만 그래도 곧 웃었다.

“후시구로네 가도 돼? 같이 놀자.”

“…그래.”

집을 부를 때는 후시구로. 나를 부를 때는 메구미. 묘한 차이라고 느끼면서 나는 유우지와 시간을 때웠다. 사실 놀러가도 되냐는 말 같은 건 없어도 우린 매일을 같이 있다. 당연하게 우리집을 가고 가끔은 이타도리 씨가 있는 주말에 이타도리의 집으로 간다. 내 아버지는 오래 있다가도 자주 없었다. 유우지는 항상 오면서도 자주 두리번거렸다.

우리는 중학생이 되었다. 언제였지, 초등학교 고학년때쯤 이타도리와 시내로 놀러갔다가 한량 같은 아버지와 모르는 여자가 껴안고 걸어가는 모습을 이타도리와 함께 목격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깜짝 놀란 이타도리는 내 눈치를 살살 보다가 억지로 웃었다. 자신의 실연보다 내 충격에 대해 걱정하는 눈치였다. 이타도리가 바보 같이 착한 건 화가 났지만 싫지 않았다. 기분 좋은 안도감이 들어서 그날은 이타도리가 하자는 건 다 하고 집에 갔다. 컴컴하고 고요한 집에서 잠도 푹 잤다. 중학교에 들어가고 이타도리와 있는 시간이 줄고 이제 서로 요비스테도 하지 않지만 그때 이타도리의 첫사랑은 쉽게 저버릴 수 있는 설익은 풋내기 그 자체라 다행이었다. 아직도 그날을 생각하면 잠이 잘 왔다.

고등학교 1학년. 이타도리 유우지의 두 번째 사랑이 시작되었다.

중학생 때의 나는 삐뚤어져서 살랑대는 이타도리에게도 거북하게 대했다. 여기저기 싸움을 걸고 멍청한 생각에 빠져있었다. 이타도리와 나는 더 이상 초등학생처럼 행동할 수 없었다. 단 둘이 붙어 다니고 매일같이 서로의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평온한 생활을 중학교에 들어가서까지 할 수는 없었다. 당연했다. 서로에게 다른 사람이 생긴다는 것, 친구든 어떤 형태로든 간에 둘만이 있을 수 없다는 현실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당연한 거였다. 그러니 어느날 복도에서 본 이타도리가 뺨을 붉히고 대화하는 모습따위를 보는 거다. 나는 바로 알았다. 이타도리의 두 번째 사랑을.

“요즘 나나미 씨랑 친해보이네.”

“어? 그래보였어? 조금은 친해진 걸까나….”

나의 별볼일 없는 말 하나가 나나미 씨를 좋아하나보네처럼 들리기라도 했는지 이타도리는 내가 자판기에서 캔커피를 뽑는동안 상기된 얼굴을 진정시키려 손부채질을 해댔다.

“메구, 아, 후시구로는 요즘 싸움 안 하네.”

서로의 이름을 부르던 일은 중학교 때의 내가 거절했다. 호흡하듯 나오다 다시 들어간 내 이름. 어쩐지 아쉬웠다.

“…바보 같아.”

“응?”

“……불량아들이랑 싸우는 거.”

“그래도 난 좋았는데, 후시구로 멋있고!”

이타도리는 한결같이 선하다. 선한 사람이 행복한 모습을 보는 게 좋다. 이타도리가 행복하기만 하다면 그걸로 좋다. 이타도리는 이어서 오늘 학교 끝나고 오랜만에 영화를 보자고 제안했다. 난 거부하지 않았다. 평범하게 일상을 보낸다. 여러 사람과 친해지는 이타도리와 집에 간다. 우리는 아직도 서로의 옆집에 살고 있다. 꽤 안심이 되는 일이다.

이타도리는 연상을 좋아하는 걸까. 나나미 씨와 웃으며 떠드는 이타도리를 보며 무심코 생각했다. 나나미 씨는 13살 연상의 샐러리맨이다. 학교 선생님은 아니지만 관계자라서 가끔씩 학교에 온다. 그 짧은 시간에 언제 그 두 사람이 친해진 건지 나는 자세히 알 수 없다. 그래도 나나미 씨는 지금껏 봐왔던 어른들 중에 가장 어른 같은 사람이었다. 겉으로 티는 안 나지만 그 나나미 씨가 이타도리와의 대화를 즐거워 한다는 건 눈치챌 수 있었다. 

“3년….”

삼 년이 지나면 이타도리는 성인이 되겠지. 나도 그렇고. 너무 짧다고 느꼈다. 그리고 며칠 뒤, 더 짧다고 느껴지는 일이 생겼다. 

“고~죠 선생님!”

“오, 유우지!”

이타도리가 발랄하게 고죠 선생님을 향해 달려갔다. 고죠 선생님도 팔을 벌리고 학생을 받아줄 준비를 한다. 그때 내가 뛰쳐나와 이타도리의 후드를 잡았다.

“켁! 후, 시구로오….”

“음?”

“아프잖아, 후시구로.”

“뭐야, 메구미잖아. 질투했어?”

이타도리가 혀를 내밀며 후드를 잡고 흔들었다. 조금 미안한 마음이 생기기 무섭게 빈정거리는 목소리 때문에 인상이 구겨졌다. 

“신경 끄시죠.”

“질투했네, 질투했어! 하핫, 질투하는 남자는 꼴사납다구, 메구미.”

“무슨 얘기야?”

고죠 선생님은 선글라스 아래로 푸른 눈을 빛내며 조롱하고 있고 이타도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잔뜩 남을 놀릴 생각으로 흥이 난 남자가 더 말하기 전에 난 이타도리의 손목을 낚아채고 걸었다.

“어어어.”

“아하하.”

깔깔 웃어대는 가벼운 남자를 배경 삼아 얼떨떨하게 있는 이타도리를 끌고 구석진 곳까지 왔다. 매우 충동적이었다. 갑자기 끌려온 이타도리보다 내가 더 당황하고 있었다. 이타도리는 무슨 일이 있는 거야? 하며 걱정하는 낯이 되었다. 그 걱정은 본디 나의 것이다. 매일같이 봐왔으니 알 수 있다. 이타도리의 기분도, 지금 하는 생각도,이타도리가 좋아하는 사람도. 삼각관계도 모자라 오각, 육각관계의 막장 드라마를 같이 보면서 삼류네, 하는 나와 달리 러브라인이 너무 복잡해서 누가 누굴 좋아하는지 모르겠어 하는 이타도리의 감상이 지금 나의 감상이다. 머릿속이 엉켜들었다. 너, 대체, 나나미 씨는 어쩌고….

저런 경박하고 어른스럽지 못한 사람을 좋아하게 된 거야.

말하고 싶지만 말할 수 없다. 입에 지퍼가 채워진 사람처럼 이타도리 앞에서 마냥 서있었다. 이타도리는 얌전히 기다리다가 걱정을 하다가 조용해졌다. 이타도리는 정돈된 자세로 나를 기다렸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 

“너…….”

“응, 메구미.”

펄떡, 하고 심장이 뛰었다. 하도 내 겉모양이 이상해보였는지 이타도리가 어릴 때처럼 이름을 불러주었다. 진정하길 바라는 마음이었겠지만 오히려 흥분되기만 했다. 이타도리니까 아마 눈치채지 못할 거다. 

“…고죠 선생님을 좋아하는 거냐?”

“…엣, 뭐, 어떻게….”

꼿꼿이 서있던 자세 그대로 이타도리가 벌겋게 익어갔다. 식물이 자라나 열매를 맺듯이. 얼굴은 물론 귀까지 빨개진 이타도리가 안절부절 못하기 시작했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고 고개를 숙인다. 동서남북 아무렇게나 시선을 던지다가 끝내 나를 부끄러운듯이 쳐다보고 검지손가락을 입술 위에 올린다.

“이건 비밀이야, 후시구로….”

“전에는 나나미 씨였잖아.”

“그것도 알고 있었어?!”

이타도리가 바보 같은 얼굴로 여, 역시 후시구로는 똑똑하네…. 말하곤 멋쩍게 뒷머리를 긁적였다. 

“왜?”

“…어? 뭐가?”

“왜 고죠 선생님을 좋아하는 건데?”

“오늘따라 적극적이시네요, 후시구로큥!”

이타도리는 쑥스러워서 못 참겠다는 듯 외쳤다.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렸다가 내 눈치를 슬슬 보곤 이어 말했다.

“그야…고죠 선생님은 멋있고…강하고……정말이지, 부끄럽다구, 후시구로….”

엄청난 진실을 밝힌다는 투로 이타도리가 중얼거렸다. 그게 뭐야. 멋있고 강한 거라면 나나미 씨도잖아. 그 방정맞은 인간으로 바뀐 이유가 뭐냐고. 멋있고 강하기만 하면 다 좋은 거냐고, 너는. ……그런 거라면 나도…, 그 인간보다는 차라리 내가…. 나나미 씨라면 몰라도 그 인간은 미성년자라도 건들 거 같다고. 상상만으로도 용납할 수가 없다. 이타도리가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타도리가 행복하기만 하다면 나도 좋다. 그렇지만 널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은 그 인간이 아니야. 

오랫동안 싹트기를 기다렸던 욕망이 움트는 게 느껴졌다. 이타도리, 나 욕심이 생겼어. 단단하게 굳은 대지에, 강직하게 발라진 시멘트 바닥에, 빗방울 하나 뚫지 못하는 단단한 벽에 금이 간 것이 느껴졌다. 이타도리의 순정이라면 뭐든 좋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어떤 이름이 붙여져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 아니야. 이타도리가 아니면. 네가 아니면.

“……역시 그만둬라.”

“에, 뭐를?”

“고죠 선생님 좋아하는 거.”

“후시구로, 그거는…”

찢어지는 태양 아래서 후시구로 메구미는 깨닫는다. 후시구로 메구미의 순정을.

“나를 좋아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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