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천방지축 어리둥절 빙글빙글 돌아가는 니케의 하루
간만에 자기 소개를 하니 니케는 무언가 제 몸을 타고 흐르는 머쓱함에 뺨을 검지로 살살 긁었다. 살면서 자기 소개 같은 건 잘 안해본 몸인데, 딴길로 새는 정신을 다시금 붙잡고 제 이름을 물은 상대를 바라보자 어쩐지 그는 묘한 미소만 지은 채였다. 뭐야? 안 그래도 수상한데 더 수상하게?
“당신들은?”
“일단 이 몸부터 소개해볼까~”
고죠 사토루, 주술고전 선생님이지. 살면서 자기소개 같은 건 몇 번 경험 안해본 건데 말이지~ 같은 너스레를 떠는 사토루의 행동에 니케는 어느정도 동감을 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니케도 살면서 자기 소개를 한 적이 몇 번 없다- 고죠 사토루, 하고 이름을 외우려 몇 번 중얼거리다 나머지는 이름을 말하지 않냐는 듯 시선을 옮겼다. 그러자 뭔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사토루를 쳐다보니 그가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제 이름을 말했다. -분홍머리는 기절해서 대신 답했다-
“후시구로 메구미다. 저 녀석은 이타도리 유지.”
“아까 말했듯이, 니케.”
니케가 부러 제 성씨를 감추는 행동은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 닌자의 습관이었지만, 애초에 마을에 있을 적엔 어지간한 인물들은 제 이름을 다 아는 편이었으니 길들여진 습관 같은 것이었다. 아무래도 혈계한계가 있는 세계인지라, 성씨를 밝히는 건 제 기술을 다 드러내는 미친 짓 중 하나니까. 니케는 코 끝을 스치는 매캐한 먼지 냄새와 피냄새에 콧잔등을 몇번 찡긋거리고 제가 나타난 곳에서 차크라가 뚝 끊겨버린 흔적들을 빠르게 훑어보았다. 음, 역시 바로 돌아가는 건 무리일 것 같네. 망한 것 같다니깐?
“일단, 윗선에 보고는 해야하니까 돌아갈까?”
“네.”
“니케도 같이 가야겠어!”
보고해야 할 게 한둘이 아니긴 하지만~ 하고 능청을 떠는 사토루를 무감하게 보던 니케는 자신이 현재 처한 상황에 대한 판단은 어느 정도 끝낸 상태였다. 요약하자면 난 지금 돌아갈 수 없는 상태다! 망했다! 아이고, 돌아가면 이거 놀림감이 아니라 진지하게 혼날 판이네. 니케는 서둘러 제 상황을 머릿 속으로 요약을 끝마친 다음 입바람으로 앞머리를 후! 하고 불었다. 응, 이거 불안하면 나오는 습관이니까! 입술을 앙 다물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빠르게 계산해야만 했다. 닌생은 잠깐의 방심으로 목숨을 잃기 쉬운 생이다. 오만은 금물, 늘 겸손하게. 자만도 지나치면 제 목을 긋는 수리검이 될 수 있다.
현재 비뢰신 계산 착오로 전혀 다른 세계에 떨어졌고 -이게 가능한건지에 대한 의문이 여전히 있었지만- 이 세계엔 차크라가 아닌 다른 기운으로 인술과 비슷한 능력을 쓰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기운이 차크라와 다른 평소 저가 담당하던 임무를 하며 자주 본 ‘주력’인 것에 혀가 깔깔해졌지만 말이다.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는 있을까? 그렇다고 하기엔 여기서 벗어나봤자 수리검의 행방을 알 수가 없어 발로 뛰는 건 시간 낭비일 것 같고 묘하게 이쪽과 얽혀야 일이 풀릴 것 같단 촉이 콕콕 당겨와 니케는 한숨이 나왔다.
다들 걱정하겠네. 서늘한 바람이 니케의 머리칼을 쓰다듬어주듯 스쳐지나갔다. 니케는 사토루에게 안겨있는 유지를 쳐다보다가 시선을 돌려 머리에서 피가 주륵 흐르고 있는 메구미를 보았다. 흠, 저렇게 피를 흘리면 안 어지러울까? 좀 도와줄까, 싶어 니케는 그의 어깨를 톡톡 검지로 두드렸다.
“…응?”
“일단 그대로 두면 쓰러질 것 같다니깐.”
시험용이기도 하고, 니케는 중얼거리며 저를 빤히 쳐다보는 푸른 눈동자에 하핫, 짧게 웃어보였다. 피가 흐르는 이마 쪽으로 손을 뻗어 차크라를 주입하니 초록빛이 돌기 시작했다. 차크라가 통하긴 하구나, 상대방에게 스며드는 차크라를 세밀하게 조종하는 것에 집중했다. 상처가 점점 아무는 것에 니케의 미소가 짙어졌다. 통하네. 다른 세계라고 해서 차크라가 아닌 주력을 주로 쓰길래 행여나 인체 구조가 달라 통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고마워.”
“별 말씀을!”
사토루를 따라 내려간 곳엔 양복을 입은 사람과 자동차 -임무로 바깥에 나가면 종종 보이던- 가 있었고 사토루는 메구미에게 먼저 고전으로 가있어. 선생님은 이 녀석과 깊은 대화를 해야할 것 같으니까~ 같은 말을 하고 니케에게는 대충 넘어가볼까 하는 마음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선생이라며 왜이렇게 일을 대충 처리하는 것 같은데?
“원칙적으론 니케도 같이 깊은 대화를 해야하지만, 사안이 사안이다 보니 메구미랑 먼저 가서 대기해줘.”
“음, 그럴게요.”
그런데, 나 여기 신분 조회할 뭣도 없는데 닌자등록번호 말해봤자 의미 없지 않나…, 싶었던 니케지만 일단 메구미의 뒤를 따라 차에 올라탔다. 기차만 타보고 자동차를 처음 타 본 니케는 눈만 데굴데굴 굴리며 안을 구경하다 이런 움직이는 쇳덩어리의 원리가 뭘까, 같은 단순한 호기심이 스쳐지나갔지만 부러 다시 생각하지 않고 제 옆에서 눈을 감고 있던 메구미에게 말을 걸었다.
“있잖아, 메구미.”
“...응?”
“우린 지금 어디로 가는거야?”
“아.”
설명해줘야 하는 걸 잊고 있었네, 하는 태도였다. 메구미는 주술고전으로 돌아가는 길이란 대략적 노선을 말해주곤 일단은 복귀를 한다면 안내를 해줄 사람이 있을 거란 말도 덧붙였다. 니케는 경청을 하고 있다는 듯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제 복잡한 머릿 속을 정돈했다. 주술고전이란 곳은 이런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일까? 그런 것치곤 아까 유지가 말한 지역명과 다른 형식인데, 줄임말이려나. 아차, 아까 사토루가 선생님이라고 했으니 학교겠네. 아카데미랑 비슷한가?
니케는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을 살피며 자동차로만 가니 시간이 좀 걸릴 거란 메구미의 덧붙인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지금은 이들을 따라가야 하니까, 남는 것이 시간이려니 생각하고 넘어갔다. 그러다 한 십여분 갔을까, 새근새근 잠이 든 메구미의 모습에 니케는 제 옆에 보이는 담요를 들어 덮어주었다. 묘하게 거리감이 없는 것 같은데, 착각인가? 니케는 메구미를 훑어보다가 담요가 포근했는지 자세를 저가 편한 자세로 바꾸는 모습에 저도 모르게 설핏 웃음이 나왔다.
주술고전으로 가는 길에 운전을 하는 이와 통성명을 하고 -이지치 키요타카이며 사토루처럼 선생님은 아니지만 그들을 보조하는 보조감독이라 하였다- 일단 살아남으려면 정보 습득이 우선이니, 필요한 기본 지식부터 뜯어내볼까? 싶어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저기, 주술고전은 뭐하는 곳이에요? 주술사들을 양성하는 교육 기관입니다. 부터 시작하여 차근차근 주술사와, 주력, 또한 주저사 따위의 지식들을 담아냈다.
얼추 필요한 것들을 다 말하고 꽤 긴 침묵이 흐르다 차가 서서히 멈추고 도착했다고 알려주는 키요타카의 말에 깊게 잠이 든 메구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지만 얘 많이 피곤했나? 도통 일어나지 않네. 그렇다면 이게 최고지! 문뜩 생각난 어릴적부터 엄마와 아빠가 자신을 깨우는 방법으로 -손을 잡고 이름을 부르는 방법- 메구미를 깨웠다.
“메구미.”
손이 잡히자 서서히 뜨는 눈에 음, 역시 잘 통하네! 라는 생각을 하고 슬며시 입꼬리를 올리자 여전히 잠에 취한 눈동자가 니케를 쫓더니 느리게 눈을 몇 번 깜빡이더니 다시 눈을 감고 웅얼거렸다. 얼라리.
“으응, 누나….”
“응? 키요타카씨, 메구미한테 누나가 있나요?”
저를 누나라고 부르는 말에 눈이 동그랗게 떠진 니케가 키요타카를 쳐다보며 물어보자 키요타카는 그에게 한 살차이 나는 누나가 있다고 답했고 니케는 잠결에 날 누나로 착각했나 싶어 웃음을 흘렸다. 와, 메구미 완전 애기 같애. 아~ 한 번 놀려줘?
“잠꾸러기 메구미쨩, 누나 먼저 간다?”
키득이는 니케의 농에 메구미의 눈이 번쩍 뜨이더니 잠시동안 상황파악을 하는 듯 멍한 눈으로 몇 번 꿈뻑이더니 그제서야 제가 했던 발언이 떠오른건지 물감을 퍼뜨린 것처럼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채 푸다닥 몸을 일으켰다.
“하?!”
“응, 응, 우리 잠꾸러기 메구미쨩! 일어났어요~?”
하하! 저를 바라보며 웃음을 함박 터뜨린 니케를 보고 메구미는 고개를 푹 떨군 채 한숨을 푹 내뱉었다. 아, 짜식 되게 귀엽잖아! 뒤이어 제 뒤통수를 벅벅 긁더니 말을 굳이 덧붙이지 않은 채로 차에서 내려 고전으로 향했다. 그 모습에 또 다시 니케는 웃음이 터졌지만 부러 더 놀리지는 않고 메구미를 뒤따라가며 키요타카와 이야기를 빙자한 정보수집을 마저했다.
“그렇다면 아까 말한 것처럼 주술사나 보조감독, 창이 될 사람들을 교육 시키는 곳이 여기 주술고전이란거죠?”
“네, 도쿄와 교토 두 곳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여기는 도쿄 도립 주술 전문 고등학교죠.”
“그럼 이젠 전 어디로 가야할까요?”
“일단…, 고죠씨가 부탁한대로라면….”
키요타카의 말이 잠깐 뜸해질 때 니케는 제게 다가오는 인기척에 고갤 들어 앞을 보았다. 어느 샌가 메구미는 그의 곁에 서있는 상태였는데 그는 사토루와 엇비슷한 체구를 가졌고 기다란 검은 머리카락을 절반 정도 묶은 모습이 제법 눈에 띄는 요소였다. 오, 앞머리 개성있어.
“사토루한테 연락은 받았어, 이지치.”
“아, 게토씨.”
“이제부터 인솔은 내가 맡을게. 고생했어.”
니케라고 하던데, 반가워. 나는 게토 스구루라고 해. 니케는 제게 다가온 스구루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받았다. 흠, 이 사람도 제법 그릇이 크네. 니케의 눈이 보기좋게 휘어지자 상대도 그럴듯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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