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3

BG3/아스타리온 드림/아스타브

발더스게이트 3 - 수면에 대한 이야기 * 산길에 올랐을 즈음.

몽유기담 by NA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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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프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하면 뭘까. 역시 아름답고 유려한 미모일까. 심미안이 비슷한 종족이나 문화라면 그쪽을 제일 먼저 꼽을지도 모른다. 그 외에도 그들이 타고난 것, 독특한 특성은 많았다. 천성적으로 가진 마법 소양, 길고 긴 수명, 그들 신 아래에서 환생하는 영혼의 굴레 등. 엘프에 대해 좀 아는 사람들이라면 각자가 다양한 점을 들겠지.

그리고 지금 이 하프엘프에게 묻는다면, 그는 특이한 수면 습성에 대해 말할 것이다.

엘프는 좀처럼 잠들지 않는다. 잠을 잘 땐 크게 다치는 등 뭔가 문제가 생겼을 때뿐, 수면 대신 그들은 하루 피로의 회복을 위해 명상을 했다. 명상 안에서 기억을 되새기고 복기하고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으로 기나긴 삶 속에 쌓이는 기억과 인지에 혼선이 없도록 정리하는 것이다. 수명이 유달리 긴 만큼 그들에겐 반 필수적인 활동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건 한 번 죽어 언데드가 된 후에도 이어졌다.

산길에서 맞는 아침은 유난스레 밝고도 화창했다. 피로에 젖은 몸에 내려앉았던 깊은 잠도 물러가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막 잠에서 깬 하프엘프는 이제야 또렷해지는 눈동자로 눈앞의 연인…비스무리한 남자를 바라보았다. 유독 아름다운 그는 옆에 함께 몸을 뉜 채 긴 팔다리를 뻗고 한껏 햇빛을 즐기고 있었다. 풀밭 위로 흩뿌려진 백발도, 아침 햇살을 받는 창백한 몸도 이미 죽은 자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기만 했다.

숨소리에서 기척을 느꼈는지, 밝고 서늘한 아침을 온몸으로 느끼던 그는 반짝 눈을 뜨더니 나른한 목소리로 아침 인사를 던졌다. 이제 막 일어나 일이 분간은 비몽사몽에 젖어있던 그와 달리 잠기운 하나 없이 맑은 눈이었다.

“안녕, 자기. 좋은 아침이야.”

“—응, 좋은 아침.”

분명 간밤에 더 피로했던 건 그쪽이었을 텐데, 나보다 더 적게 잔 주제에 더 일찍 일어나고 더 말똥말똥한 것이 어쩐지 분하다. 굳이 어젯밤 일이 아니더라도 그랬다. 같이 밤을 보냈던 아침을 돌이켜보면서 하프엘프는 눈을 가늘게 뜨고 입을 열었다.

“오늘도 일찍 일어났네. 혼자 심심하지 않았어?”

“하, 당연히 심심하지. 자기를 옆에 두고 혼자 있는데 어떻게 안 심심하겠어?”

말도 청산유수다. 이른 아침을 시작한 만큼 컨디션도 좋은 모양이었다. 몸을 일으킨 아스타리온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에게도 반은 엘프의 피가 흐르긴 하지만 저런 습성은 물려받지 못했다. 하프엘프는 여타 종족들처럼 하루 일고여덟 시간은 꼬박꼬박 잠을 잤고, 자는 동안엔 당연히 의식도 촛불 꺼지듯 꺼졌다. 다소 부러운 마음으로 지난 밤들을 세어보던 그는 문득 달라진 아침을 의식했다.

처음 밤을 같이 보냈을 때에는 혼자 일어나 멀찍이서 일광욕을 하고 있었다. 다음 날도, 다른 날도 먼저 일어나 홀로 아침을 준비하고 햇빛을 맞고 있었다. 아쉽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렇다고 다른 기대를 했던 것도 아니라, 크게 마음 쓰지는 않았다. 이른 아침, 야영지에서 떨어져 둘만 나와 있는 곳에서 그가 일어나기까지 서너 시간을 기다려준다는 것도 고역이겠지, 하고 그러려니 했다. 거기다 그에겐 그는 결코 알 수 없을 깊이의 태양에 대한 그리움과 절절함이 있다. 오히려 깰 때 어쨌든 근처에 있는 것만 해도 다행 아닐까.

새삼 자신이 그에게 어떠한 기대치가 굉장히 낮다는 것을 자각하며 하프엘프는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매만지는 것으로 멋쩍음을 숨겼다.

“내가 일어난다고 심심함이 사라져?”

“그건 자기가 날 어떻게 맞아주느냐에 달렸지.”

“흠, 어려운 문제네.”

하프엘프는 그를 따라 몸을 일으켰다. 가볍게 그의 어깨와 볼에 입 맞추고 “이런 건 합격점이야?”하고 묻자 아스타리온은 반색하며 유들유들하게 말했다.

“나쁘지 않지. 흠, 더 해보라고 하고 싶지만 그랬다간 야영지에 언제 돌아가게 될지 모르니 일단은 여기까지 하자고. 이 다음은 오늘 밤까지 미뤄줘.”

“오늘 밤? 너무 급한데?”

“세상엔 빠를수록 좋은 것도 있는 법이지. 정 안 된다면 오늘이 아니라도 괜찮지만, 날 너무 기다리게 하진 말았으면 좋겠네, 자기.”

첫 아침과 비교하면 따사로울 정도로 살가운 인사였다. 생각해보면 그래도 요 근래 맞은 아침은 늘 그가 옆에 있었다. 자신도 몰랐던 오늘 밤 예정에 짐짓 놀란 표정을 하자 아스타리온은 유혹적으로 턱 끝을 쳐들며 웃었다. 구릿빛 나신을 추스르고 아침 이슬에 소맷부리가 살짝 젖은 옷가지를 줍던 하프엘프는 아까 떠오른 생각을 입에 담았다.

“혼자 그렇게 일찍 일어나는 거, 괜찮아?”

“응? 뭐가?”

“남들과 다른 생활패턴으로 사는 거, 외로웠을 것 같아서. 거기다 예전엔 지금과 달리 햇빛도 피해야 했을 거잖아. 밤낮도 다른데 보내는 시간마저 다르면 좀 힘들지 않을까 하고.”

자는 시간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무심코 떠오른 생각이었다. 그건 아스타리온에게도 그랬는지, 아스타리온은 순간 벙찐 얼굴을 했다.

“응? 아, 창의적인 생각이네. 놀랍도록 다정하고. 흠, 엘프는 다 그렇게 자니까 그런 식으로 신경 써본 적은 없어. 심심하다뿐이지 다들 그런 거 아니겠어? 밤이야 뭐… 원래 길던 밤이 더 길어졌을 뿐이지. 태양은 사라지고. 그게 다야.”

“그래? 하긴 그렇겠네.”

정말로 생각해본 적 없는지 아스타리온은 영 거식한 표정과 몸짓으로 답했다. 확실히, 명상을 하지 않는 종족이니까 든 생각이지 원래 그렇게 사는 엘프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매일매일일 것이다. 발더스게이트가 암만 여러 종족이 함께 산다지만 거기 사는 엘프가 적은 수도 아니니 더 그렇겠지. 자기중심적인 발상이었음을 인정하며 하프엘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험한 여행과 모험 중이니만큼 입을 옷차림도 간결했다. 속옷과 셔츠, 바지와 허리띠까지. 이외 무장은 야영지에 돌아가서 챙겨입으면 충분했다. 풀밭에 앉아 그가 옷 입기를 기다리던 아스타리온은 그가 마지막 옷가지를 몸에 두르자 가벼운 몸놀림으로 훌쩍 일어났다.

“이제 돌아가서 또 폭력적이고 피가 튀는 하루를 맞이하자고. 하, 정말 기대되는걸. 정말 하루하루가 자극적인 나날이야. 안 그래?”

“과해서 피곤할 정도지. 하루 정도는 목욕이라도 하며 푹 좀 쉬고 싶을 정도야.”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지 어쩌겠어. 얼른 이 올챙이를 재우든 목줄을 채우든 뭐라도 하고 나면 목욕도 할 수 있겠지. 오, 물론 같이하는 것도 난 좋아. 자기만 괜찮다면.”

그렇게 말하며 곡선을 그리는 손짓이 뭘 의미하는지는 대충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요염한 미소와 함께 장난스럽게 그의 가슴을 찌르는 손가락에 하프엘프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저 헛웃음을 머금은 채 그가 말했다.

“그건 욕조가 얼마나 큰지 보고 나서 말해야겠네. 이만 가자, 늦겠어.”

“흠, 자기가 좀 많이 자긴 했지. 사실 깨울까 말까 고민하던 참이었어. 날 옆에 두고 외롭게 만들다니, 자기도 참 죄 많은 사람이라니까.”

아까까지 심심할 뿐이라 했으면서 잘도 말한다. 그래도 사실, 혼자 맞는 조용한 아침보다는 도란도란 이야기 상대가 있는 아침이 그도 좋았다. 이렇게 따로 아스타리온과 시간을 보내는 이유이기도 했고. 하프엘프는 풀 밟는 소리가 너무 소란스럽지 않게 신경 쓰며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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