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소마츠상 2차 창작 백업

[사이버마츠]떨어져 있던 사이에

2016.02.02 작성 | 공백 미포함 3,513자

부양조/보류조로 나뉘어 살고 있다는 전제 하입니다.

머신에서 두 줄기의 에스프레소가 내려오자 금새 씁쓸하고도 그윽한 원두향이 퍼져나갔다. 그 커피향을 맡는 둥 안맡는 둥 하며 마츠노 토도마츠는 메뉴얼대로 커피를 만들기 시작했다. 수 개월 전, 스타버에서 알바한 경력이 있어서 그런지 이 곳 카페에서 알바한지 이 주일도 채 되지 않았으면서 매우 익숙해보였다. 휴식실에서 그런 그를 바라보던 점장이 남몰래 흐뭇한 미소를 흘렸다.

한창 바쁠 점심시간을 지나 시곗 바늘은 어느새 오후 3시 30분쯤을 가리키고 있었다. 애매한 시간 탓인지 카페 안은 제법 한산했다. 토도마츠는 자연스럽게 카운터에 기대더니 스마트폰을 꺼내들었다. 스마트폰 액정 가득히 그동안 딴 여자들의 라인들이 떠올랐다. 그 중에는 오늘 딴 여자들도 있었다. 어디보자, 누구한테 먼저 라인 걸어볼까.  고양이입을 부드럽게 말아올리며 토도마츠는 가볍게 스마트폰을 두드렸다.

딸랑-

"어서오세요."

이 타이밍에 손님이냐! 짜증 대신 토도마츠는 인사와 미소를 내보냈다. 형제들에게 이중인격이냐는 소릴 들을 정도로 시꺼먼 속을 감추는 건 토도마츠의 특기라 할 수 있었다. 그런 특기가 우르르 무너진 것은 순식간이었다. 유리문을 열고 들어온 '손님'과 눈이 마주친 그 일순간에. 놀람과 당황스러움으로 점철된 토도마츠의 표정이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그 손님의 얼굴에도 떠올랐다.

"...토도마츠?"

토도마츠의 형이자 마츠노가의 삼남인 쵸로마츠가 거기에 서있었다. 낭패다. 토도마츠의 뺨을 타고 땀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놀랐네. 토도마츠 너 여기서 알바하고 있었구나."

"그건 내쪽에서 할 말이라구! 어째서 쵸로마츠형이 여기에 있는 거야!"

목소리를 낮춘 채 토도마츠가 짜증을 냈다. 마침 사람이 적은 시간대였고 상대가 상대이다보니 이젠 짜증을 감추고 뭣도 없었다.

수 개월 전 스타버에서 알바했을 때 생긴 악몽을 토도마츠는 결코 잊을 수가 없었다. 우연히 만난 형제들, 우연히 들킨 거짓말들, 그리고 악의적으로 시작된 형들의 온갖 만행. 도로 떠올라보자 토도마츠는 괜히 소름이 돋아 팔을 쓸었다. 또 그런 일이 없도록 일부러 집에서 한참 떨어진 이 카페로 정한 것이었는데! 그나마 마주친 사람이 다른 형들이 아닌 쵸로마츠인 것도 다행이라면 다행이였다.

"이번 거래처가 이 근처라서 말이야. 이제 회사로 돌아가야하는데 가기 전에 커피나 한 잔 마실까 싶어서 들어왔지. 그런데 설마 네가 있을 줄은."

"응?"

"응? 왜 그래?"

"아, 아니. 아무것도 아냐."

갸웃거리는 쵸로마츠를 향해 토도마츠는 손을 휘저었다. 아무것도 아냐. 응. 아무것도. 그냥 쵸로마츠형이 취직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워서. 말로 나오지 못한 이 이유를 알 리가 없는 쵸로마츠는 그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럴 때마다 목에 맨 초록색 넥타이가 살짝 움직였고, 토도마츠의 시선도 그에 따라 움직였다. 진짜로 취직했구나. 토도마츠는 속으로 감탄 비스무리한 것을 흘렸다.

쵸로마츠가 취직했다는 것을 토도마츠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것도 두 달도 전에 알고 있었다.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쵸로마츠는 카라마츠, 쥬시마츠와 함께 독립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독립할 수 밖에 없었던 거지만. 예전의 그 바보같은 면접에 합격한 토도마츠는 오소마츠, 이치마츠와 니트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지만 그 셋은 아니었다. 부모님이 갈라서면서 셋은 떨어져나가고 만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멋대로 나온 밥을 먹고, 멋대로 세탁된 옷을 입는 생활. 성인이 되고서 계속 지속된 뻔한 생활 패턴이었지만 토도마츠는 그 셋이 없다는 이유만으로도 너무나 낯설 게 느껴졌다. 오소마츠나 이치마츠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 둘과 토도마츠와의 차이는 그걸 겉으로 티를 냈냐, 안냈냐 정도였다. 토도마츠는 여자애들과만 사용한 라인을 처음으로 형제에게 썼다. 자신을 제외하고 가장 스마트폰과 가까운 쵸로마츠에게.

「잘 지내고 있어?」

간단한 이 한 문장을 보내기 위해 투자한 시간은 얼마던가. 저지르고 말자는 심정으로 보내버린 답장은 의외로 싱거웠다.

「응. 우리는 잘 지내. 너희들은?」

상투적이면서 재미없는 말투. 이런 답장하는 데에 시간은 또 어찌나 걸린 것인지. 이러니까 여자들에게 인기가 없는 거라고 답장하며 토도마츠는 피식피식 웃었다. 떨어졌어도 쵸로마츠형은 쵸로마츠형 그대로라고 생각하며. 그 뒤로 토도마츠는 쵸로마츠와 간간히 라인을 주고 받게 되었다. 쵸로마츠의 취직도 그를 통해 알게 되었다. 「나, 취직했어」라는 짤막한 말로. 그토록 바랐던 일이니 좀더 부산스럽게 알려도 될 텐데. 그리 생각하며 토도마츠는 스티커까지 곁들어가며 축하를 해줬었다. 그렇지만 막상 그걸 눈 앞에서 확인하게 되니 축하의 말이 쉽사리 나오질 않았다. '일은 많이 익숙해졌나보네.'라든가 '이젠 완전히 사회인이잖아'라든가 간단한 말이 무궁무진하게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비눗방울처럼 터져 사라졌다. 토도마츠 눈 앞에 있는 쵸로마츠는 더이상 여섯 쌍둥이 니트 쵸로마츠가 아니였다. 어엿한 성인이었다. 토도마츠 눈에는 그저 낯설기만한 정장이 쵸로마츠에게는 무척이나 익숙해보였다.

"─마츠. 야, 토도마츠!"

"에?! 아. 왜그래. 쵸로마츠형."

"주문 받으라고. 뭘 그렇게 멍하니 있는 거야. 그러다가 짤린다?"

"난 쵸로마츠형이 아니니까 안짤리거든요~"

"나도 안짤릴 거거든?!"

툭 건드리면 바로 성질 나오는 건 그대로인데. 혼자 열불내는 쵸로마츠에게 진동벨을 쥐어주고 토도마츠는 커피를 내리러 갔다. 아까와 똑같이 머신에서 에스프레소를 내렸고, 그윽한 향이 다시 한 번 토도마츠의 코에 닿았다. 씁쓸하다. 그냥 만들기 편한 아메리카노나 만들려던 토도마츠는 마음을 바꿔 카페라테를 만들었다. 검디 검은 에스프레소에 새하얀 스팀밀크가 섞여들어가 색깔이 탁하게 바뀌었다. 커피를 완성시켰건만 진동벨을 울릴 필요는 없었다. 쵸로마츠는 진동벨을 꼭 쥔 채 아까 그대로 카운터에 서서 토도마츠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기에.

"주문 안받고 그냥 가길래 또 제일 편한 아메리카노 만들 줄 알았는데."

"맘에 안들면 바꿔줄게. 단, 추가요금 받습니다."

"이 드라이 몬스터 새끼... 지가 멋대로 만들어놓고는. 됐어. 카페라테도 좋아하니까."

쵸로마츠는 계속 투덜거리며 지갑을 꺼냈다. 처음 보는 지갑 안에서 새하얀 명함들이 슬쩍슬쩍 보였다.

"자, 여기 천엔."

"아, 천엔 받았습니다. 멤버쉽이나 포인트 카드는 안물어봐도 되지? 어차피 없을 거 아냐."

"왜 그렇게 확신하며 말하는 건데?! 없긴 하지만!"

"진짜로 없으니까 그렇지. 여기 거스름돈─"

"─아, 됐어. 그건 그냥 팁인 걸로."

"어?"

토도마츠의 손이 공중에서 멈추자 잘그락 소리가 났다. 토도마츠가 움직일 생각을 안하자 쵸로마츠는 제 손 안에서 멈춘 그 손을 기어이 카운터쪽으로 밀어넣으며 덧붙였다.

"오랜만에 만났으니까 말이야. 별 건 아니지만서도."

"겨우 몇백엔으로 멋진 척하려고 하지마, 체리마츠형!"

"체리마츠라 하지마!! 그리고 그 몇 백엔 벌기가 얼마나 힘든데!"

「나도 알바하니까 알긴 알거든?」이라고 토도마츠는 차마 쏘아붙일 수가 없었다. 여자애들과 친해질 명목으로 카페 알바를 하는 자신과 다른 두 형제들과 먹고 살기 위해 회사일을 하는 쵸로마츠는 차원이 달랐다.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것도 아니고. 토도마츠가 철없는 막내라고 해도 그런 말을 함부로 해선 안되는 건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무심코 주먹을 세게 쥐자 동전이 살 안쪽으로 파고 들었다.

"아무튼 말이지 너──에에?! 시간이 언제 이렇게 된 거지. 가봐야겠다. 미안, 토도마츠. 이거 잘 마실게."

"어, 응. 잘가, 쵸로마츠형."

서둘러 커피를 들고 문쪽으로 향하는 쵸로마츠를 보며 토도마츠는 잔소리가 끊겨서 기뻐해야할 지, 아니면 슬퍼해야할 지 고민했다. 쵸로마츠의 등은 어엿한 한 가장의 그것이었다. 잠시 떨어진 사이에 사람이 저렇게 달라지다니. 토도마츠의 입 안에서 다시금 쓴 맛이 감돌았다.

"아, 맞다. 토도마츠!"

"왜?"

"나중에 카라마츠, 쥬시마츠랑 같이 와도 돼?"

안그래도 팔자인 눈썹을 더 휘어가며 쵸로마츠는 살짝 민망하다는 듯이 웃었다. 항상 고민이 많아 ㅅ자이던 입이 지금처럼 역삼각형 모양이 되는 것은 보기 드물었기에 토도마츠는 안그래도 큰 눈을 더 동그랗게 떴다. 쵸로마츠와 떨어져지낸 것이 두 달, 같이 살 때에도 어쩌다 한 번 웃었으니 거의 삼 개월만의 미소였다. 그런 얼굴로, 그런 말을 하면 거절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토도마츠의 입에서 픽- 웃음이 흘러나왔다.

"어쩔 수 없네~ 깽판 안 벌인다고 약속하면 허락해줄게."

"그때야 거짓말했던 네가 나쁜 거지. 여기서도 또 거짓말하고 알바하는 거 아냐?"

"에에~ 쵸로마츠형 너무해~ 날 그렇게 못믿어?"

"넌 드라이 몬스터잖냐."

"그것보다 가야하는 거 아니였어?"

"아, 이런. 그럼 진짜 갈게!"

네, 네. 얼른 가세요. 허겁지겁 뛰어가는 쵸로마츠의 등에 대고 토도마츠는 살랑살랑 손을 흔들었다. 뛰어가는 폼은 형제들을 말리러 뛰어갈 때 그대로였다. 토도마츠는 그 모습을 눈으로 쫓다가 더이상 보이지 않게 되자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아직 곱게 쥔 채인 오른손. 조심스럽게 펴자 동전들이 가게 조명을 반사하여 빛나고 있었다. 고작 몇백엔. 이걸 나름 팁이라고 주다니. 이러니까 형이 인기가 없는 거야~ 토도마츠는 동전들을 제 주머니에 밀어넣으며 말했다.

"다음에 다른 형들이랑 오면 파르페 하나 서비스해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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