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도스미]첫눈에 반하는 이야기
키도 츠보미, 스노하라 스미레 첫 만남
* 해당 글은 '카게로우 프로젝트'의 캐릭터 '키도 츠보미‘와 2차 창작 드림주 캐릭터인 '스노하라 스미레'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 드림에 대해 잘 모르거나 거부감이 있으신 분들, 혹은 '키도 츠보미' 드림 연성을 좋아하지 않는 분들은 해당 글을 읽는 걸 재고해주시길 바랍니다.
* 해당 원작에 대한 스포일러와 개변한 서사가 존재합니다. 원작을 훼손할 의도는 전혀 없으며, 원작과 혼동하지 않도록 주의해주시기 바랍니다.
공백 미포함 2,062자
"첫눈에 반했어요! 저와 친구가 되어주세요!"
씩씩한 목소리를 반쯤 흘려들으며 카노는 둥근 정수리를 내려다보았다. 고개를 숙여 흘러 내려온 연보라빛 머리카락 사이로 붉어진 귀가 언뜻 엿보였다. 삼류 로맨스 만화에 나올만한 장면을 눈앞에 두고 카노는 슬그머니 시선을 옆으로 던졌다. 지금 이 장면의 주인공이자 가족인 키도 츠보미에게. 지금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는지 키도의 얼굴엔 당혹스러움이 한가득 들어찼다. 내가 놀릴 때도 저런 표정은 지은 적은 없던 것 같은데. 웃음이 나오는 것을 꾹 참으며 카노가 팔꿈치로 키도의 옆구리를 콕 찔렀다. 굳어 있던 키도가 크게 움찔하더니 가까스로 검지손가락을 들어 자기 자신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나 말인가?"
"네!"
"내 양옆에 있는 얘네가 아니라?"
"네!"
"대답 한번 우렁차네~"
자기 일 아니라고 방청객처럼 반응하는 카노의 발을 키도가 지그시 밟았다. 오늘 아침에도 들었던 악 소리가 터져 나오자 뭐라 한마디 보태려던 세토가 몰래 뒤로 몸을 뺐다. 평소처럼 바보 같은 형제들을 보고 있자니 이상하게 마음이 침착해지는 것 같았다. 키도는 일부러 크게 헛기침을 하고선 손을 제 가슴 위에 얹었다. 약간 큰 사이즈의 파카에 가려져 있던 굴곡이 슬그머니 드러났다.
"...나는 여자다만?"
"엣!"
말 한마디에 숙이고 있던 몸이 단번에 꼿꼿이 펴졌다. 그제야 제대로 다짜고짜 자신에게 고백한 이의 얼굴을 본 키도는 마른침을 삼켰다. 나이는 기껏해야 자신과 같거나 조금 아래일까. 붉게 상기된 뺨이나 둥근 눈매 때문에 유독 더 어려 보였다 연보라색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는 손은 체구만큼이나 작았다. 습관인지 머리카락의 땋은 부분을 매만지던 소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다시 크게 외쳤다
"그래도 상관없어요!"
"뭣...!"
"이사람 강적이네여."
하여간 이 녀석이나 저 녀석이나. 둘이 형제 아니랄까 봐 태연한 목소리가 똑같다. 똑같이 발을 밟아주고 싶어도 이미 몸을 피신한 터라 애꿎은 땅만 찰 뿐이었다. 진정하자. 타인 앞이다. 주먹을 쥐며 부글거리는 속을 가까스로 참아낸 키도는 한숨 섞인 말을 꺼냈다.
"그... 마음은 고맙다만..."
"혹시 제가 싫으신가요?!"
"아니, 싫다기보단..."
"절 잘 모르셔서 그러신 것뿐이죠? 그렇죠?"
엄청난 기세로 한 발짝 다가오는 소녀를 피해 키도가 한 발짝 물러났다. 체구는 분명 자신보다 작은데 어디서 이런 힘이 나온단 말인가. 불이라도 붙인 듯 이글거리는 검은 눈동자에 시선을 뗄 수 없었다. 그 틈을 타 소녀는 대뜸 키도의 손을 잡았다. 새하얀 손끝에 피가 몰려 붉게 물들었다.
"저도 알아요. 아주 당황스러우시죠?"
"어, 어?"
"지지마, 키도~"
"이거 싸움이 아님다, 카노"
옆에 있는 둘의 말은 가뿐히 무시한 채, 소녀는 올곧게 키도 한 사람만을 바라보았다. 거절할 일말의 명분도 주지 않겠다는 듯 말을 쏟아냈다.
"그러니 친구가 되자는 거예요. 친구부터 시작해서 서로 천천히 알아가요! 어쩌면 좋은 인연이 될지도 모르잖아요? 저 나쁜 사람 아니에요!"
"마음은 고맙지만 나는..."
"부탁이에요."
붙잡힌 손이 강하게 붙들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떨리고 있었다. 긴장했는지 여름임에도 차가워진 손바닥에서 간절함에 묻어났다. 놀란 키도의 눈동자가 소녀에게 향했고 두 개의 시선이 교차했다. 서로의 눈동자에 상반된 표정이 비추어졌다.
"이대로 당신을 보내고 싶지 않아요..."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는 것까지 보자 키도는 한숨을 토해냈다. 처음 보는 상대와 대뜸 친구가 될 정도로 그녀는 싹싹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토록 애원하는 상대를 밀어낼 정도로 매정하지도 못했다. 손가락이 천천히 접히며 차가운 손을 마주 잡았다.
"...키도 츠보미."
"네?"
"난 키도 츠보미라고 한다. 너는?"
"아, 아! 실례했습니다. 스노하라 스미레라고 해요."
자기소개도 안 했다니 나도 참! 황망해하며 붉어진 뺨을 손으로 감싼 소녀, 스미레가 제 이름을 밝혔다. 순서가 많이 잘못되었지만, 키도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스노하라. 네 마음을 잘 알겠다. 하지만 우선 오늘은 보다시피 내가 이 애들과..."
"설마 사귀나요?!"
"아니다!"
"아니야!"
"아님다!"
동시에 터져 나오는 대답에 스미레가 눈을 두어 번 깜박이다가 작게 입을 가리고 웃었다. 얼굴 하나 닮지 않았지만 머쓱하게 눈동자를 굴리는 세 명이 어쩐지 가족 같아서. 다행이다. 사귀는 건 아니구나. 사귄다고 거짓말할 수도 있는데 그러진 않는구나. 역시 이 사람은... 스미레는 울렁거리는 가슴께를 두 손으로 꾹 억눌렀다. 그렇지 않으면 겨우 붙잡은 이 사람이 또 도망칠 것만 같았기에.
"크흠... 아무튼 오늘은 이 둘과 일정이 있어서 말이다. 나중에 내가 먼저 연락하도록 하지. 일단 그걸로 괜찮겠나?"
"물론이죠! 아, 제 연락처는..."
금세 다시 자신들만의 세상에 빠져 연락처를 주고받는 둘을 보며 카노가 슬쩍 세토 옆으로 이동했다. 한 걸음 떨어져 보니 키도의 표정이 묘하게 상기되어 있는 게 보였다. 오랜 시간 함께 한 가족만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아주 미미하게. 이상하긴 해도 나쁜 애는 아닌 것 같고, 본인도 싫어하는 것 같진 않으니 말릴 수도 없다. 그저 어깨만 으쓱일 뿐.
"살다 보니 별일도 다 있네, 세토."
"그러게 말임다, 카노."
키도 츠보미, 17세. 아직 아지랑이도 피어오르지 않은 초여름날. 한 살 위의 언니와 최소 100살 위인 혼혈 메두사를 제외하고 첫 동성 친구를 사귀었다.
친구가 될지, 연인이 될지 모르는 인연의 씨앗은 그렇게 심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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