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는 우카이 제로의 손안에
돈이 필요해요, 라는 말은 제로의 입버릇이나 마찬가지였다.
손톱을 찔러넣어 찢으면 피가 아니라 과즙이 흘러나올 예쁜 입술이 내뱉는 말치고는 지나치게 속물적이었으나, 제로는 설령 얼굴이 아깝다는 평을 듣는 한이 있어도 돈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않았다. 애초에 제로는 현대 사회 속 편견의 주축이라고 할 수 있는 외모지상주의에 휩쓸리지 않는 도덕적인 사람이었다.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 너무나 기초적이고 올곧은 시선은 자신의 얼굴에도 평등하게 적용되었기에, 제로는 “잘생겼네”라거나 조금 과장을 보태어 “아이돌 해도 되지 않아?”라는 식의 칭찬마저 시큰둥하게 생각하는 남자였다.
그럴 때마다 스에자키는 제로에게 얼굴을 팔아 돈을 벌자는 제안을 했다. “아이돌 같은 걸 해보자”라고. 실제로도 일확천금이 손끝에 닿을 만한 발상이었으나 제로는 겸손에 귀찮음을 더해 “제가 아이돌? 가능할 리가 없잖아요”라며 답지 않게 불가능을 주장하며 못 들은 척 넘기곤 했다. 게다가 이 계획은 제로가 불법 갬블로 돈을 모으기 시작하자 스에자키는 잔고 위에 찍힌 0의 자릿수를 세느라 아이돌의 ‘아’ 자도 말하지 않게 된 일회성 계획일 뿐이었다.
이타쿠라는 드림 킹덤 이후로도 종종 제로와 만나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제로는 긴 속눈썹 밑으로 그늘을 드리워 우수에 찬 분위기를 연출하며 중얼거리곤 했다.
“돈이 필요해요.”
세상의 선함을 모두 그러모아 빚어낸 어여쁜 얼굴도, 뇌나 척수가 아닌 영혼 같은 비물질적인 곳에 새겨진 본능적이고 원초적인 감정을 자극하는 분위기도, 이 물질만능주의적인 대사 앞에선 힘을 잃고 무너져내렸다. 동화 속 악역과는 달리 호감 가는 생김새의 미청년은 그들보다 더한 탐욕을 입에 담으면서도 본인은 자각조차 없는 것인지 아니면 이젠 수치심조차 닳아버린 것인지, 아직까지도 금전에 대한 집착이 악행과 동일시되는 사회적 분위기를 거스르며 돈에 대한 탐닉을 부끄러운 기색 없이 말하곤 했다.
스에자키는 종종 보호자라도 되는 양 굴며 제로를 딱하다 말했지만, 이타쿠라는 돈이라는 단어를 발음하는 것조차 양심과 싸우던 예전의 제로보다는 내숭 따위 갖다버린 지 오래되어 이제는 돈, 돈, 하고 노래까지 부르는 그가 더 인간적으로 보였다. 오히려 너무 인간적인 나머지 으레 도박사들이 그러하듯 모든 돈을 잃고, 사실상 돈만 잃는다면 그나마 다행이며 드림 킹덤 때처럼 돈도 목숨도 겨우 죽지 않을 정도로만 붙어 있는 상황이 올 것 같아 이타쿠라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이렇게 농담했다.
“열흘에 이자 10%야.”
“이타쿠라 씨에겐 안 빌려요.”
망설임 없이 나온 깔끔한 톤의 대답에 이타쿠라는 피식 웃으며 담배를 꺼냈다. 형식적으로나마 한 개비 건네줄 법도 했으나 이타쿠라는 제 몫을 꺼내자마자 케이스를 다시 집어넣었다.
“뭐, 너에게라면 특별히 7%로 해줄 수도 있어.”
“관대한 처사네요. 마음만 감사히 받을게요.”
제로는 그렇게 말하며 완벽하게 매끄러운 곡선 형태의 눈을 접어 웃었다. 여자 친구의 손이나 전공 책을 쥐고 있는 편이 더 자연스러워 보이는 어린 손의 주인은 도저히 자금 세탁을 논의할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타쿠라는 불법 갬블에 손을 댈 수밖에 없었던 소년의 사정을 생각해주는 착한 어른이 아니라 대등한 관계의 사업상 파트너였으므로 스에자키가 들고 있던 통장을 휙 빼앗아 곧바로 본론으로 돌아갔다.
“이번에 꽤 많이 벌었잖아?”
이타쿠라가 장난스럽게 말하자 스에자키는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마구 소리쳤다.
“그건 제로와 내 돈이니까! 조금이라도 가져갔다간 가만 안 둬!”
예전부터 같은 조직이었던 두 사람은 서로의 성격상, 혹은 지능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업신여기는 눈빛이나 말투 때문에 자주 부딪히곤 했는데, 스에자키가 제로와 손을 잡은 뒤로는 더욱 노골적으로 으르렁거렸다. 스에자키가 건수를 물어오고 제로가 갬블에서 이기고 이타쿠라가 돈을 세탁한다는 세 명의 협업에서 제 몫이 조금이라도 빠져나갈까 두려운 탓이었다.
이타쿠라와 같은 야망이나 제로와 같은 꿈이 있는 것도 아닌 그저 돈을 사랑할 뿐인 물질만능주의의 폐해이자 승리자인 스에자키는 말 그대로 어떠한 목표도 꿈도 없이 돈만을 좇았기에 갬블이 끝나면 이타쿠라와 연락하는 제로를 어떻게든 뜯어말리려 했으며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스에자키는 이타쿠라의 손에 들린 통장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제로의 팔을 붙들었다.
“제로, 이제 돈은 충분하지 않아? 이번에 번 돈이 얼마인 줄 아느냐고!”
마치 자기가 벌어온 돈인 양 손을 덜덜 떨며 말하는 그에게 제로는 여전히 단호한 태도로 대답했다.
“아직 모자라요. 돈이 더 필요해요.”
그 말에 스에자키는 제로의 어깨를 마구 흔들며 선생처럼 설교를 쏟아냈다.
“무슨 말이야! 자그마치 천만이라고! 이 정도라면 술도 여자도 무엇이든 살 수 있어! 미래가 황금빛이야, 제로!”
그러나 늘 듣지 않던 꾐을 이제야 들을 리가 없었다. 제로는 스에자키의 손을 잡아 제 어깨에서 떼어내었다.
“스에자키 씨, 제 미래는 말이죠, 고여 있어요. 흐르게 해야만 해요. 그건 아마… 시루베가 해줄 수 있겠죠.”
시루베라는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고 멈춰버린 짧은 정적 속에 담긴 감정을 읽어내지 못할 정도로 스에자키는 바보가 아니었기에, 그는 애써 미소 짓는 제로를 향해 측은한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제로는 돈을 갈구하는 사람답게 동정이나 자기연민 같은 싸구려 위로를 거절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잘되어가고 있어요.”
그리고는 선글라스 렌즈 너머 무엇이 보이고 있는지, 굳은살 하나 없는 매끄러운 손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미래는 우리 손안에 있어요.”
“제로…!”
둔탁한 빛과 반대로 선명한 희망이 가득 찬 말에 스에자키는 감동이라도 한 것인지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 모습을 이타쿠라는 속으로 비웃을 뿐이었다.
그는 ‘우리’라는 단어에 속하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강한 확신, 빛을 내뱉는 자신이 눈부신 듯 선글라스로 눈을 가리는 청년이 말하는 불확실하고 모호한 미래를 들을 때마다 이타쿠라는 제로의 손을 억지로 펼쳐보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지금은 하루하루 어떻게든 넘기고 있으나 언젠가는 그 손목이 잘려 떨어질 예감이 드는 탓이었다.
안에 든 것을 놓지 않는 고집스럽고 얇은 손목을 볼 때마다 이타쿠라는 값비싼 시계가 채워져 있을 뿐 아무것도 잡고 있는 것이 없는 손을 보았다. 미래는 우리의 손안에…. 소년만화의 주제가에나 어울릴 법한 희망 넘치는 문장을 떠올리면, 이타쿠라는 생각했다.
그렇다면 우리라는 테두리 밖으로 물러난 자신은 어리고 위태로운 왕이 손안에 있는 것을 놓을 때까지 지켜볼 수밖에 없겠노라고. 언젠가 손목이 잘려 푸른 핏줄도 선분홍색 살덩이도 까맣게 썩어 주먹이 열릴 것이다. 그럼 잘린 손 위의 손가락이 펼쳐지고 안에 든 것이 미래인지 아니면 제로가 마주하지 않고 있는 어떤 다른 것인지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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