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덕스런 로맨틱

[리발링크] 변덕쟁이 바람에 요주의

그래도 가장 귀여운 건

하루 일과를 마치고 귀가하는 길, 장을 보기 위해 들린 시내에서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중앙 광장의 분수대를 등지고 팔짱을 낀 채 서 있는 그의 이름을 부르며 종종걸음으로 다가가면,

"어라, 이게 누구야."

라고, 이거 참 놀랐다는 투의 인사가 돌아왔다. 중앙 하이랄에서 나를 만나도 딱히 이상할 것은 없을 텐데. 오히려, 하일리아인이 대부분인 이곳에서 이질적인 존재는 리토족인 리발이다. 북적거리는 시내에서 그를 단번에 발견한 것도 그가 눈에 띄는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특히 리토족 중에서도 흔치 않은 짙은 남색의 깃털은 그냥 보고 지나치기 어렵다. 

"여긴 어쩐 일이야?"

"족장님 심부름. 하이랄 왕에게 전할 게 있대서 말이지. 공주도 잠깐 만났는데, 네 모습이 안 보이길래 어디 갔나 했어."

"오늘은 하루종일 연병장에 있었어. 병사들 훈련을 봐줬거든." 

"흐응. 아무튼, 여기서 다 만나고 우연이네." 

우연이라기엔, 스탠바이 하고 있었던 거 같은데... 

목구멍 끝까지 차오른 말을 가까스로 삼켰다. 때로는 모른 척 넘어가는 편이 좋을 때도 있다. 하지만 얼굴은 나도 모르게 의심쩍은 눈초리를 하고 있었나 보다. 리발은 서둘러 화제를 바꾼다. 

"그보다 너, 배고프지 않아? 아니, 뭐, 네 그 한심한 머리 속에는 먹는 생각밖에 없잖아. 보아하니 또 잔뜩 장 봐서 돌아가는 길 같은데. 가끔은 네 우악스러운 요리보다 제대로 된 식사를 하는 게 어때? 마침 나도 저녁은 아직이고, 네가 정 원한다면 어울려줄 수 있다만?"

"............"

세상에 데이트하자는 말을 이렇게 빙빙 돌려서 하는 남자가 또 있을까?

....또 있어도 곤란할 뿐이지. 한숨이 절로 나온다.

"어이. 내 말 듣고 있어?"

리발은 대답이 없는 나에게 초조해진 모양이다. 여기서 거절하면 어떻게 될까, 하는 장난기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자신이 멋대로 찾아온 것은 생각도 안 하고 감히 네가 내 제안을 거절하냐며 펄펄 뛰는 것까지는 쉽게 상상이 간다. 그 뒤에 어떤 변명을 하고 나를 붙잡을지는 내심 궁금하지만, 이 상황에 나까지 솔직하지 못하면 죽도 밥도 되지 않는다. 

"응. 나 배고파. 저녁 먹으러 가자."

내 대답에 리발은 아주 잠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곧 언제나의 여유만만한 미소를 떠올렸다. 봐둔 가게가 있다며 내 팔을 잡아끄는 커다란 손이, 어쩐지 평소보다도 따뜻하다고 느꼈다. 


리발이 나를 데려간 곳은 좁은 골목길에 위치한 레스토랑 바였다. 외관은 창문이 없는 벽돌 벽에 허름한 나무문이 하나 덜렁 달려있을 뿐이지만, 막상 들어가 보니 의외로 넓고 근사한 가게였다. 왼쪽에는 바 카운터, 오른쪽에는 정사각형의 테이블석이 들어서 있고 맨 안쪽에는 음악가를 위한 작은 무대가 마련돼있다. 은은한 오렌지빛 램프 불빛이 차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분위기만큼이나 요리도 훌륭해서, 정신을 차리고 보면 나는 이미 접시를 비운 후였다. 리발은 자기가 만든 것도 아니면서 자랑스럽게 어깨를 으쓱한다. 하여간 먹는 거 참 좋아해, 라는 밉살스런 말도 물론 잊지 않고. 

"이런 곳은 어떻게 알았어?"

그 질문에는 지금까지 떠들어댄 게 거짓말처럼 입을 다문다. 사전답사까지 하면서 열심히 데이트 코스를 짜는 리발을 상상하고, 나는 소리내어 웃어버렸다. 그런 내가 못마땅했는지 리발이 얼굴을 노리고 메뉴판을 던진다. 여유롭게 캐치한 다음 메뉴판을 폈다. 

"더 시켜도 돼?"

"쳇. 맘대로 하던지."

"그럼 마실 것만 더 시킬까."

모처럼 좋은 분위기니 음주를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리발은? 넌지시 눈빛으로 묻자 그는 사양한다는 의미로 손을 흔들었다. 이런 관계가 되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리발은 의외로 술에 약하다. 리토족은 선천적으로 알코올에 약한 종족이라는 거 같다.

무엇을 시킬지 고민하고 있는데 카운터 쪽에서 방금 도착한 다른 손님이 술을 주문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심코 귀를 기울이면, 꽤 괜찮은 초이스다. 나도 저거 시킬까, 하고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린 그 순간, 주문을 하던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어! 너는!" 

남자가 아는 척을 하며 다가온다. 기억이 나지 않아 물음표를 띄웠다. 

 

"나야 나, 모브슨! 기억 안 나? 겔드 사막에서 만났잖아!"

겔드 사막....?

"아."

생각났다.

"이야~ 이런 데서 다 만나고 우연이네. ...이쪽은 누구?"

"애인이다."

내가 무어라 대답하기도 전에 리발이 끼어들었다. 나에게 친한 척 말을 걸어오는 모르는 남자의 등장에 기분이 나빠졌다는 걸 숨기지 않는 살벌한 목소리였다. 나는 황급히 주위를 살폈다. 

우리가 영걸이라 칭송받은 것도 평화가 찾아온 하이랄에선 벌써 먼 과거의 일. 그렇다고 서로 얼굴이 전혀 알려지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이랄의 근위대장이 리토의 영걸과 사귄다'는 소문이 동네방네 퍼지는 것만은 막고 싶다. 다행히 엿듣는 손님은 없는 거 같고, 모브슨은 우리가 과거의 영걸들이라는 사실조차 모르는 듯했다.

모르는 게 그것 뿐만이 아니라는 게 더 큰 문제라면 문제였지만.

"그, 그렇구나. 뭐, 나도 애인이랑 온 거라서 말야. 전혀 부럽다거나 하지 않아!"

그럼 빨리 사라져줘.

이 남자와 오래 말을 섞으면 섞을수록 불편해지는 건 나다. 왜냐면....

"근데 너 어째... 전에 봤을 때랑 분위기가 좀 다른 거 같다? 랄까, 응? 에? 으으음?"

그야 그렇겠지. 지금의 나는 그 옷을 입고 있지 않으니까. 

나를 아래서부터 위까지 슥 훑은 모브슨은 혼란과 의심이 뒤섞인 눈을 하고 있다. 한편 리발은 '겔드 사막' 이라는 키워드에 짚이는 구석이 있는 거 같았다. 그걸 알아챌 눈치가 있다면, 가능한 입 다물고 있어 줬으면 좋겠는데-

"링크 너 설마 또 여장을 한 거야!?"

"ㅁ, 뭐, 여장!?"

아-아. 말해버렸다....

리발에게 그 자유분방한 입을 가만히 두기를 바라는 게 애초에 무리였다. 내 심정도 모르고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는 녀석에게 항변을 해본다. 

"어쩔 수 없잖아. 그 옷을 입지 않으면 겔드 마을에 들어갈 수 없고."

"그건 겔드 '마을'이잖아? 사막에서까지 입고 싸돌아다닐 필요가 어디 있어?"

"그치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 옷, 사막에서 움직이기 편하고, 갈아입기 귀찮고...."

"게으른 용사같으니라고!"

할 말이 없어져 고개를 푹 숙였다. 곧 뒤통수에 푹푹 박히는 따가운 시선에 조심스레 고개를 들면,

"............"

모브슨이 수치심과 배신감, 분노가 섞인 표정을 하고 이쪽을 노려보고 있다. 

별로, 속이고 싶어서 속인 건 아니라구. 멋대로 반해서 멋대로 대쉬해온 건 그쪽이잖아. 거절도 제대로 했어. 남자라고 밝히지 않은 건 미안하지만, 모르는 편이 더 좋을 거라 생각했고, 이렇게 다시 만날 줄은 몰랐으니까....

"저기-"

"아니, 됐어. 사과하지 않아도 돼. 아까도 말했지만 나도 애인이랑 왔다니까? 너한테 차이ㄱ, 흠, 내 말은, 그 이후로! 심기일전해서 아주 귀여운 여자친구를 GET 했다는 말씀이지. 너한테 저어언혀 미련 같은 거 없어."

"아, 응. 축하해...?"  

"지금 잠깐 화장실에 갔는데, 돌아오면 소개시켜 줄게."

모브슨은 무언가 꿍꿍이가 있는 것처럼 기분 나쁜 미소를 흘리고는, 허락도 없이 리발의 옆자리에 앉아 자신이 주문한 술을 따르기 시작했다.

"자자. 리토족 형씨도 한잔 받아."

"사양한다."

"쌀쌀맞긴. 근데 형씨, 정말로 괜찮은 거야? 애인이 이런.... 여장이 취미인 남자라도?"

취미 아니거든! 

"아니, 뭐, 나도 처음 봤을 땐 좀 귀엽다고 생각했지만. 칼라를 만나보니까 아, 내가 그동안 우물 안 개구리였구나, 싶더라니까. 칼라는 말이지, 이 하이랄에서 가장 귀엽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헤에."

영혼 없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리발은 정말이지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런 리발의 태도에도 아랑곳 않고 모브슨은 계속해서 입을 놀려댔다.

"형씨도 그러지 말고, 내가 칼라한테 예쁜 친구를 소개시켜달라 할게. '진짜' 여자아이가 더 귀여운 게 당연하잖아? 칼라의 친구들은 칼라를 닮아서 모두 레벨이 높-"

"그런데 말야."

"아?"

"만약 그녀가 이 하이랄에서 가장 귀엽다면, 링크는 전 세계에서 가장 귀여운 셈인가?"

푸흡-!

나도 모르게 마시던 물을 뿜어버렸다. 

지, 지금 뭐라고 한 거야?

충격에 빠져 콜록거리는 나를 무시하고 리발과 모브슨이 서로를 노려본다. 

"....어이. 설마 지금 칼라가 남자보다 못하다는 말이야?"

"여자, 남자의 문제가 아니야. 그녀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이 녀석의 매력에는 이길 수 없다는 말이다."

"뭣...! 링 뭐시기가 세계 제일이라면, 칼라는 우주 제일이다!"

"흥. 그럼 링크는 차원을 초월했다고 해두지."

"하아!? 네놈, 아까부터 그 무례한 태도는 대체 뭐야!" 

"무례한 건 그쪽이잖아?" 

거기서 리발이 결정타를 날렸다.

"내 애인이 여장한 모습에 반해놓곤 차이기까지 해서 쪽팔린 건 알겠는데... 이런 식으로 내 앞에서 욕보이려는 건 좀 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아, 참고로 링크가 이 나를 두고 너 따위를 선택할 리 없는 건 당연하니까, 너무 그렇게 분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어쩜 저렇게 말을 재수없게 할 수 있을까.

쓸데없이 자극하지 말라고 간절한 눈빛을 보내보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모브슨이 분노로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리발이 따라 일어나면, 두 사람 사이에 불꽃이 튀고 금방이라도 한판 붙을 기세다. 자, 잠깐만. 

"둘 다 진정-"

"어머. 대체 무슨 일이야?"

험악한 분위기를 가로지르는 높고 발랄한 목소리. 그 주인은 긴 머리를 우아하게 늘어뜨린 젊은 여성이었다. 곧바로 그녀가 칼라라고 알아챘다. 

"카, 칼라!"

모브슨이 달려가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말하는 도중에 힐끔힐끔 리발을 쳐다보는 게, 아마 리발이 쓸데없는 말을 덧붙일까봐 경계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의외로 리발은 말을 얹는 일 없이 잠자코 있었다. 죄 없는 칼라의 기분까지 상하게 하고 싶지 않다는 그 나름의 배려겠지. 결국 이 사태를 단순히 팔불출들의 애인 자랑으로 이해한 칼라는 쾌활하게 웃었다. 

"뭐어~? 내가 못 살아 정말~ 뭐, 이렇게 된 거 이기고 와!" 

말리지 않는 거야? 게다가, 이기고 오라니?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새 손님들의 시선이 집중되어 있었다. 그중 단골로 보이는 취객 몇명이 홀 한가운데로 부랴부랴 테이블을 하나 옮기고는 양옆에 설치된 의자에 앉으라는 듯이 손짓한다. 나는 속으로 이마를 짚었다. 그야, 남의 싸움만큼 재밌는 안주거리는 또 없겠지만.... 

먼저 자리에 앉은 것은 모브슨이었다. 도발적인 웃음을 띠운 채 팔꿈치를 세우는 그를 보고 리발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이래서 하일리아인은...' 으로 시작하는 언제나의 불평이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그렇다고 긍지 높은 리토의 전사가 걸려온 승부 -설령 그게 팔씨름 따위의 하찮은 종목이라도- 를 마다할 인물은 아니라서. 크게 한번 혀를 차고 맞은편 의자에 착석했다.

심판을 자청한 노인의 힘찬 신호와 동시에 리발과 모브슨이 서로의 손에 온 힘을 쏟는다. 리발의 완력이라면 잘 알고 있으니까, 금방 승패가 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모브슨도 만만치 않다. 그러고 보면, 나를 꼬실 때도 근육을 어필했던 거 같아. 리발이 아주 약간 우세한 각도를 유지한 채 서로 한 치의 양보도 없다. 더 가까이서 보면 두 사람의 팔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을 것이다.

"아하하. 남자들은 참 바보 같아. 안 그래?" 

말릴 새도 없이 시작되버린 승부에 어리벙벙해 하고 있자니 칼라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웃을 일이, 아닌 거 같은데."

"뭐 어때. 우린 구경이나 하자구. 뭐 마실래? 아, 혹시 아직 꼬마라서 주스밖에 못 마시니?"

........꼬마!? 

키가 작은 탓인지 실제 나이보다 한참 어리다고 생각되는 일은 자주 있다. 하지만 명색이 바에 와서 식사하고 있는데 그렇게 부르다니. 어떻게 생각해도 악의가 있어.

"근데 너도 참~ 취향 특이하다."

"뭐가 말이죠."

"아니~ 좀 그렇잖아? 상대가 리토족이라니. 하일리아인 중에선 상대해주는 사람이 없었나 봐? 왜일까~ 귀엽게 생겼는데. "

"............"

왜 이런 말을 들어야 하는 거지?

리토족이, 리발이 뭐 어때서? 얼마나 푹신푹신하고 따뜻한데. 저 품에 안겨서 자고 일어나면 체력이 세배는 더 늘어있단 말야. ....이건 좀 다른 얘긴가? 아, 아무튼! 리발은 아주 멋있는 데다가, 실력은 말할 것도 없어. 성격도-

....성격은 조금, 까다로운 면이 없지 않지만, 솔직히 그렇게 좋지 않지만, 저 남자도 남 말 할 처지는 아니잖아.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면, 나는 리발을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 

"리발! 저런 녀석한테 지지마!!!!" 

비취색 눈동자가 내 것과 마주치고, 날카롭게 번뜩인다. 리발은 곧바로 시선을 돌려 자신의 팔과 같은 방향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러자 힘겹게 버티고 있던 모브슨의 손이 꽝 하고 탁자에 부딪혔다. 

마침내 결정된 승자에 주위가 환호성을 지른다. 좋아, 이제 얼른 여기를 빠져나가-

"포기하지 마, 모브슨! 이기는 건 당신이야!!"

고통스럽게 자기 손을 부여잡고 있던 모브슨이 칼라의 응원에 퍼뜩 고개를 들었다. 툭툭 날개를 털며 일어서는 리발의 어깨를 억지로 붙잡고 외친다.

"아직.... 아직이다!" 

그 말에 구경꾼들이 한층 더 열광했다. 리발은 노골적으로 귀찮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마지막 발악을 허락한다는 듯이 거만한 태도로 다시 의자에 앉았다. 헌데 모브슨은 2차전 종목으로 다른 생각이 있었나 보다. 

"남자라면 이걸로 승부를 봐야지!" 

비틀거리며 잠시 자리를 떠난 모브슨이 손에 들고 돌아온 것은, 아까 그가 마시던 술. 여유만만한 리토의 얼굴이 한순간 굳어진다. 그 짧은 순간을 모브슨은 놓치지 않았다. 

"설마 자신이 없는 거야?"

"...좋아. 어디 한번 해보자고."

아.

일 났다.


그래서 결국 어떻게 되었냐 하면.

결론부터 말해 리발이 이겼다. 남자의 자존심을 걸고 비장하게 술잔을 주고 받는 와중에도 몇차례나 계속된 팔씨름 대결에서 리발이 다섯번째 승리를 따낸 직후 모브슨이 기절해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상처 없는 승리는 아니었던 게, 리발 역시 조금만 늦었으면 기절했을지도 모른다. 마지막 잔을 기울일 즈음에는 이미 한계에 다달아 오기만으로 겨우겨우 버티고 있었으니까. 

가게를 빠져나가기 전에 마지막에 본 것은 기절한 모브슨을 어깨에 메고 고군분투하는 칼라였다. 도와주고 싶어도 나는 나대로 덩치 커다란 리토를 짊어져야 해서. 분위기에 휩쓸려 한바탕 응원 대결을 펼친 그녀와는 그다지 좋은 사이가 아니었다지만, 눈이 마주쳤을 땐 서로에게 약간의 동질감을 느꼈다. 

아무튼 그런 연유로 나는 지금 술에 취한 리발을 부축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우욱."

"조금만 더 참아. 토하면 안돼."

"날 뭘로 보고.... 이 내가 그런 추태를 부릴 리가, 읍!"

"어휴."

정말이지 손이 많이 간다니까....

애초에 왜 이런 일이 됐더라. 일의 발단을 따지기 위해 기억을 더듬어 본다. 

겔드 사막에서 여장한 나에게 차였던 모브슨이 갑자기 말을 걸어와선, 나한테 앙갚음할 생각으로 여자친구 자랑을 했고, 그래서.... 

"......."

리발이 되받아친 말을 떠올린다.

그때 리발은 분명 취해있지 않았다. 지극히 멀쩡한 정신으로, 내가 가장 귀엽다는 말을 한 것이다. 

"왜 그랬어? 나한테는 항상 못생겼다고 하면서."

이 남자에게 이런 걸 물어봐서 얻는 건 없다고 아는데도 참지 못하고 물은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리발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대체 뭔 소리 하냐는 표정을 짓는다.

"뭘 착각하고 있는 거야. 누가 네 얼굴이 예쁘대? 얼굴을 따지면 공주나 미파가 백배는 예쁘지. 물론, 가장 잘생긴 건 나고."

어련하시겠어....

"그렇지만."

"아?"

"가장 귀여운 건... 사랑스러운 건 너야."

"......."

"그런데 그 하일리아인이 멍청한 소리를 하니까, 내가 직접 알려준 거라고." 

내가 이겼어. 뭐, 당연한 결과지!

술에 취한 와중에도 기세등등한 목소리로 덧붙인 리발이 내 뺨에 부리를 비벼왔다. 칭찬해달라는 듯이, 예뻐해달라는 듯이. 가까이서 숨결이 느껴진다. 언제나 그에게서 맡을 수 있는 딸기와 나무열매의 향에 독한 알코올 냄새가 섞여 있었다. 

"....응. 이겨줘서 고마워." 

부리 끝에 입술을 살짝 떨어뜨리자 리발이 눈을 천천히 끔벅였다. 술에 취해 몽롱했던 비취색 눈동자에 생기가 돌아오고, 얼굴을 뒤덮은 남색 깃털이 취기만은 아닌 무언가로 붉게 덧발라졌다. 

이쯤 되면 고개를 홱 돌릴 줄 알았는데, 의외로 얌전히 얼굴을 밀착한 채로 있는다. 대신 퉁명스러운 목소리를 냈다. 

"그 옷, 금지야." 

"에?"

"다른 놈들이 너한테 반하는 것도, 차인 놈들의 원한에 휘말리는 것도 이젠 사양이야. 그러니까 앞으로 절대 다른 남자 앞에서 입지마." 

"네 앞에서는 입어도 되고?"

"......."

되는구나....

대답 없이 부리를 비벼오는 그에게 웃음이 나왔다. 

어차피 오늘 일은 전부 그의 변덕이다. 별안간 데이트를 신청해온 것도, 평소에는 절대 하지 않는 부끄러운 말을 하면서까지 나를 감싼 것도. 뭐든 날씨 탓을 하기 좋아하는 리토족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냥 그런 바람이 불었다'는 녀석이겠지. 내일이 되면 기억이 안 난다면서 시치미 뚝 뗄 게 뻔해. 모르는 척하는 정도면 양호하지. 못생긴 용사라느니 칠칠치 못하다느니, 밉살스런 말만 골라 할걸.

하지만 괜찮아. 그런 너를 좋아하는 것도, 다 큰 남자가 들어서 전혀 기쁠 리 없는 '귀엽다'는 말을 듣고 기뻐하는 것도, 나의 작은 변덕이니까. 서로 피차일반이라는 걸로 됐지?

내일 아침 숙취로 고생할 리발을 위해 맥스연어 밀크수프를 만들어야겠다. 예의 '그 옷'을 입고 친히 침대까지 가져다주면 그는 과연 어떤 얼굴을 할까. 조금 발칙한 상상을 하면서 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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