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덕스런 로맨틱

[리발링크] 36℃

입술보다도, 눈빛보다도 더욱 수다쟁이인

♫ 斉藤朱夏 - 36℃

리토의 영걸에게도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이 있다. 

이를테면 오늘처럼 왠지 모르게 잠자리가 불편했던 날.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해먹을 벗어나기까지 평소보다 시간이 걸린다. 입맛이 없어 아침을 거른다. 거울 앞에서 한참을 머리와 씨름한다. 자랑해 마지않는 뒷머리의 부드러운 깃털이 오늘따라 유난히 윤기를 잃고 푸석푸석한 것이다. 그런 작은 것들이 먼지처럼 쌓이고 쌓이면 날개도 무거워진다.

우울한 기분을 떨쳐내듯이 리발은 크게 날갯짓해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상공에서 활을 잡고 시위를 당긴다. 한발, 두발, 세발, 차례차례 명중하고― 또 도중에 집중력이 흐트러져 하나 놓치고 말았다.

"쳇."

단순한 스트레스라면 비행훈련장의 과녁을 초토화시키는 것으로 발산할 수 있는데, 오늘은 그렇게 쉽게 풀리지만도 않는가 보다. 지상에 착지한 리발은 혀를 차고, 아까부터 실책을 거듭하는 자신의 손을 원망스럽게 내려다보았다. 몇번 쥐었다 펴보아도 특별히 이상은 느껴지지 않는다. 활의 상태도 흠잡을 곳 없이 최상이다. 매일같이 꼼꼼히 손질하고 있으니 당연한 얘기다. 그럼 대체 뭐가 문제란 말인가. 

 

"하아....."

....이만 돌아갈까. 

긴 한숨 끝에 툭 떨어진 제 목소리가 한심해서, 리발은 질끈 눈을 감았다. 아침 일찍부터 훈련장을 찾은 것이 무색하게 전혀 훈련이 되지 않았다. 솔직히 도망치는 것 같아서 내키지 않지만, 이대로 죽치고 있는다고 나아질 것 같지도 않다. 

집에 돌아가면 무언가 기분전환이 되는 일을 하자. 맛있는 것을 먹자.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디저트를 떠올려봐도, 훈련장을 뒤로하는 리발의 기분은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처럼 가라앉은 채였다. 무거운 날개가 바람에 질질 끌려가다시피 해 조금만 정신을 놓으면 그대로 고꾸라져 처박힐 것만 같다. 저기 저 새하얗게 펼쳐진 설원이 쿠션이 되어주면 좋으련만―

문득 내려다본 그곳에서 눈에 띄는 금발을 발견한 순간, 리발은 다른 의미로 고꾸라질 뻔했다.

"대체 여기서 뭐 하는 거야!?" 

그 즉시 방향을 틀어 빛의 속도로 하강한 리토에게, 금발의 하일리아인은 눈을 동그랗게 떠보인다. 오랜만에 만나도 여전히 말수가 적은 그는 대답 대신 커다란 눈덩이를 굴리던 손을 딱 멈추고 이미 완성된 눈덩이들을 가리켰다.

덩치 큰 눈사람, 아담한 눈사람, 훤칠한 눈사람. 링크의 단순한 사고방식과 좁은 인간관계를 생각하면 차례대로 다르케르, 미파, 우르보사라고 짐작하기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입 부분에 뾰족한 당근이 장식된 이것은.... 

"설마 이게 나는 아니겠지."

"........."

리발은 폭탄 화살을 꺼내려던 것을 그만두고, 애써 냉정을 유지하며 되묻는다. 

"눈사람을 만들고 있다는 건 보면 알아. 내 말은, 공주의 호위기사라는 녀석이 왜 여기서 눈사람 같은 걸 만들고 있냐는 거다!"

재앙을 물리친 이후에도 하이랄의 공주는 신수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리토의 마을을 방문한다. 하지만 리발은 오늘 공주가 온다는 얘기 같은 건 듣지 못했고, 주위를 살펴봐도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눈앞의 무뚝뚝한 기사에게 설명을 바라는 눈빛을 보내면, 그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휴가를, 얻었어."

리토의 마을에 갔더니, 비행훈련장에 있다고.... 눈사람은, 기다리기 심심해서....

띄엄띄엄한 설명이지만 못 알아들을 정도는 아니다. 그렇다고 아, 그랬구나~ 하고 넘어갈 줄 알았다면 천만의 말씀. 오히려 답답함만 가증되었다. 기다리다니, 훈련장이 코앞인데? 

"왔으면 왔다고 인사라도 하던가."

"....네가, 훈련장에는 오지 말라고...."

"하아? 그건―"

....그랬지. 리발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과거에 비행훈련장을 찾은 링크를 내쫓은 적이, 있기는 하다. 염탐할 생각이라면 꿈도 꾸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았던가. 순간 리발은 과거의 자신을 목 졸라 버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하지만 링크도 링크다. 그런 말을 들었다고 눈보라 속에서 기다리는 쪽이 미련하지 않은가. 추위에 약한 하일리아인 주제에! 자신이 잘못한 거라고 백번 알고 있는데도, 리발은 어쩐지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한때 링크에게 매정하게 대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거야 두 사람이 이런 관계가 되기도 훨씬 전의 일이다. 이런 관계가 되어서도 여전히 쉽게 다가오지 못하는 링크에게 진절머리가 났다. 

"그럼 그냥 마을에서 기다리면 됐잖아."

"........"

또다시 입을 닫아버린 링크를, 리발은 애가 타는 마음으로 지켜본다. 그러자 지금까지 신경 쓰지 못했던 것들이 비로소 눈에 들어왔다. 예를 들면, 추위로 벌겋게 달아오른 뺨과 하일리아인 특유의 뾰족한 귀. 특히나 귀는 언젠가 리발이 선물한 군청의 날개 장식과 절묘한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설새의 하얀 깃털 대신 리발의 남색 깃털이, 루비 대신 비취가 장식된 그것은 기존의 리토의 날개장식과 달리 어떠한 방한 효과도 없다. 그럼에도 군말 없이 써주는 연인의 모습은 그야 기쁘지만―

리발은 조심스레 오른손을 뻗었다. 아니나 다를까, 손가락 끝에 닿은 귀가 얼음장처럼 차갑다. 정말이지 이 미련한 용사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언제부터 기다리고 있었던 걸까. 쯧, 하고 혀를 차며 다른 한 손도 들어올렸다. 전신이 깃털로 뒤덮인 리토족의 체온은 하일리아인의 그것보다 높고, 커다란 손은 조그만 하일리아인의 귀와 뺨을 전부 감싸기에 충분했으니.

갑작스런 온기에 움찔, 하고 크게 몸을 떤 링크는 당황이 역력한 얼굴로 리발을 올려다본다.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시선을 피하고 눈동자만 도록도록 굴려대는 꼴이 웃겨서, 리발은 링크의 얼굴을 손에 쥐고 찬찬히 바라보았다. 추위가 아닌 다른 이유로 급속도로 붉어지는 얼굴이, 그가 빠르게 본래의 체온을 되찾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한시라도 빨리 내가 보고 싶었다, 이거군?

입술보다도, 눈빛보다도 더욱 수다쟁이인 36℃. 그것은 솔직하지 못한 리토의 쌀쌀맞은 태도마저 녹여버린다. 리발은 그제서야 자신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침부터 우울했던 기분은 어느새 저 멀리 달아나버렸다. 심지어는 오늘 자신의 컨디션이 나빠서, 훈련을 일찍 끝마쳐서 다행이라고까지 생각하는 스스로가 있다. 아니, 어쩌면 애초에 컨디션 난조의 원인이 이 녀석이었을지도 모르지. 이 계절에는 사람의 온기가 그리워진다고들 하지 않는가. 

그렇다곤 해도, 입 밖으로 시인할 생각은 없었다. 단지, 눈을 마주쳐주지 않는 링크가 야속했을 뿐이다. 지금이라면 무슨 말을 해도 들리지 않을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고.

"....나도, 보고 싶었어." 

차가운 공기를 아주 살짝 흔들었을 뿐인 음성. 

귓가에 닿았을 리 없는데도, 한 박자 늦게나마 링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맑은 하늘을 닮은 푸른색 눈동자가 천천히 리발을 향한다. 시선을 피하지 않고 참을성 있게 기다려주면, 링크는 제 귀를 덮고 있는 커다란 손을 끌어내렸다. 부드러운 깃털로 감싸준 보람도 없이 여전히 새빨간 귀를 드러내고,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다.

"방금, 뭐라고...."

"뭐가? 아무 말도 안 했는데."

"................."

기다렸다는 듯이 천연덕스럽게 대답한 리발에게, 링크는 눈을 두어번 크게 끔뻑이고는

"방금 분명히 뭐라고 했잖아!"

드물게 큰 소리를 냈다. 

"아니라니까 그러네? 그보다 나, 네가 만든 너츠 케이크가 먹고 싶어."

"~~~~~~!!"

솔직하지 못한데다 짓궂기까지 한 리토는 폭발 직전의 데스마운틴 같은 링크를 무시하고 그의 손목을 잡아당긴다. 눈에 젖은 장갑이 차가워서, 도착하면 손부터 녹여줘야겠다고 다짐하며 걸음을 재촉한다. 목적지는 물론 비행훈련장이다. 둘만 있을 수 있는 장소에서, 한시라도 빨리 사랑스러운 체온을 독차지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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