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녘의 두 사람

[리발링크] 비 온 뒤 맑음

바람은 울지 않는다

그 날, 리토의 마을엔 먹구름이 드리워 있었다.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족장님이 그랬는데, 이건 '비'라고 하는 거래."

하늘에서 내리는 물방울을 가리키며 연보라색 깃털의 리토족 아이가 말한다. 조그만 가슴을 쭉 펴고, 어딘가 자랑스러운 듯이. 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키르에게, 다른 이에게 무언가를 가르친다는 건 좀처럼 오지 않는 기회였다.

취사장의 냄비 앞에서 불을 쬐던 하일리아인 청년은 경청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자 아이는 신이 나 덧붙였다. 

"리토의 마을에 비가 오는 건 백년 만에 처음이래!" 

링크는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하이랄 전역을 돌아다니며 온갖 궂은 날씨를 겪어온 그도 리토의 마을에서 비를 맞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리고... 음...." 

더이상 공유할 지식이 없었는지 키르는 멋쩍게 머리를 긁적이고, 링크의 옆에 앉아 재잘대기 시작했다. 

"비 싫어~ 놀러 나가지도 못하고."

링크는 비를 싫어하지 않는다. 단지, 리토의 하늘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리토족은 이 하이랄에서 유일하게 하늘을 자유자재로 날 수 있다는데, 이래선 영 기분이 나지 않을 거다. 그들에게 어울리는 건 역시―――― 

언젠가 올려다본 하늘을 기억해낸다. 

――――끝없이 펼쳐진 파랑. 그리고, 그보다 짙은 군청의 날개. "넌 혼자 저기까지 갈 수도 없지?" 라며 보란 듯이 날아오르던 녀석이 얼마나 얄밉고, 또 부러웠던가. 

이런 기억밖에 없냐고, 처음 기억을 되찾았을 땐 쓴웃음이 나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싫은 기분은 들지 않았다. 치사할 정도로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 누구보다도 자유로운 바람에게 품은, 막연하고도 순수한 동경이었다. 

나무로 된 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 속, 감상에 젖어 먹먹한 귀를 깨운 것은 키르의 목소리였다. 

"바람이 울고 있는 걸까?" 

바람이, 울고 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발상에 링크는 두 눈을 깜빡였다. 과연 음유시인의 딸. 때아닌 감탄을 한 것도 잠시, 궁금증이 밀려온다. 링크는 백년을 넘게 살았다는데도, 그 대부분을 잠으로 보냈기 때문인지 때때로 갓 태어난 아이처럼 호기심이 왕성했다. 

당장 지금 눈앞에 보이는 거암을 오르고 싶은, 그런 충동 말이다. 

"내가 물어보고 올까? 정말로 바람이 울고 있는지." 

키르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누구한테?" 

"음... '귀신 새'한테?"

"정말!? 그치만, 오빠는 날 수도 없는데 어떻게?" 

'귀신 새' 란 마을 꼭대기에 자리 잡은 새 형상의 기계, 신수 바・메도를 일컫는다. 정확히는 그 신수의 주인을 만나러 가는 거지만, 따지고 보면 그 역시 '귀신 새'니까. 실례잖아, 라는 빈정 상한 목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그렇담 더더욱 골려줘야지. 링크는 워프를 하기 위해 꺼냈던 시커 스톤을 도로 집어넣었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자신을 지켜보는 키르에게 재미난 광경을 보여주고 싶은 것도 있었다. 

취사장의 지붕에서 벗어난 링크는 옷이 젖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한쪽 무릎을 꿇는다. 익숙한 회오리바람이 자신을 감싸는 것을 기다리다 마침내 패러세일을 펼치면, 그는 순식간에 상공으로 떠올랐다. 

와아, 하고 놀라는 키르의 얼굴이 점점 작아진다. 링크는 씨익 웃어 보인 후 마을의 중심에 탑처럼 솟아오른 거암을 오르기 시작했다. 비 때문에 몇번인가 미끄러지기를 반복하다가 마침내 경사가 완만한 표면을 찾아 착지했다. 역시 한번으로는 어림도 없을 거 같다.

한 소리 듣겠군. 링크는 속으로 웃으며 다시 한번 낮은 자세를 잡았다. 


너 말이야.... 아무리 강화되었다지만, 요즘 너무 리발 토네이도를 남발하는 거 아냐? 

힘들게 정상에 올랐다는데, 밉살스러운 목소리는 반갑게 맞아주긴커녕 숨 고를 틈조차 주지 않고 쏘아붙인다. 물론, 충분히 예상했던 바다. 링크는 어깨를 으쓱하며 태연하게 받아쳤다. 

"비가 왔으니까."

그 정도는 근성으로 어떻게든 해봐. 암벽등반, 특기잖아?

여전히 링크에겐 불합리할 정도로 엄격한 사내였다. 익숙한 처사에 별다른 대꾸도 하지 않고 메도의 커다란 날개 아래서 빗방울을 털기 시작하면, 리발은 다 들리게 혀를 찼다. 

그래서, 무슨 일인데? 

"참수리의 활의 수리를 맡기러 왔어. 깜빡 잊고 데스마운틴에 가져갔다가 태워버렸거든."

정말이지 어리석군 (愚の骨頂だよね) !? ....내 말은, 왜 여기 왔냐는 거야.

이유가 없으면 안되는 거냐 물으면 아마 안 된다고 딱 잘라 말할 것이다. 링크는 잠시 고민하다가, 아까와 같은 답을 되풀이했다.

비가 왔으니까, 라고.

"누가 그러더라. 바람이 울고 있는 게 아니냐고. 리토의 마을에 비가 오는 건 나도 처음 보니까, 궁금해졌어. 이 비는 어디서 오는 건지. 정말 바람이 울고 있는 건지." 

하아? 

....설마, 내가 울었냐고 묻고 싶은 거야?

링크는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볼을 긁적였다.

천하의 리토의 영걸이 울고 있을지 모른다. ....고 생각한 것은 당연히 아니다. 설마 정말 비가 바람의 눈물이라 생각했을 리도 없다. 어린아이도 아니고. 다만, 단지ー

누구보다도 자유롭게 날던 너니까. 이제와 날지 못하는 것이 슬프지 않을까. 피할 지붕도 없는 그런 곳에서 혼자 비를 맞는 건 역시, 조금, 외롭지 않을까. 아주 살짝 걱정이 되었을 뿐이야. 

입에 담기 부끄러운 이유인 것엔 변함이 없었다. 대답이 없는 링크를 대신해 리발이 길게 한숨을 내쉰다.

내가 울 리 없잖아, 이유도 없는데. 고작 그런 이유로 내 리발 토네이도를 낭비하다니, 어리석음의 극치.

기껏 걱정해줬더니만. 하지만 밉살스런 태도가 오히려 묘하게 안심이 되었다. 링크는 자기도 모르게 들어가 있던 몸의 긴장을 풀고 장난스럽게 받아친다. 

"네가 준 능력이면서, 쪼잔하긴."

너무 의지하지 말라는 얘기야. 내가 성불하면 리발 토네이도도 더이상 못 쓰게 될지 몰라. 그때를 대비해둬야지 않겠어? 

"........!!"

턱 하고 말문이 막힌다. 

이 남자는 항상 이렇다. 언제 찾아와도 인사 따위 생략하는 주제에. 어제 만난 사이처럼 허물없이 구는 주제에. 방심하고 있으면 또 이렇게 갑자기 선을 긋고, 등을 떠민다. 자신은 이제 떠날 사람이라며, 너는 해야 할 일이 있다며. 그 담담한 목소리에 혼자 살아남은 링크에 대한 원망이나 부러움은 담겨있지 않아서 더욱 곤란하다. 리발이란 사내가 그저 낯설게만 느껴진다.

....아니지. 링크는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애초에 자신은 리발을 모르는 것이다. 조각난 기억밖에 없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이제부터라도 알아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좀 더 터놓고 말해주었으면 했다. 백년 전의 일들, 지금에서야 말할 수 있는 것들. 듣고 나면 겨우 확신할 수 있을지 모른다. 리발에 대한 기억을 되찾을 때마다 어렴풋이 느껴진 감정의 정체를, 자신을 향하던 비취색 눈동자에 담긴 의미를. 

그 시절 솔직하지 못했던 건 분명 피차 마찬가지니까. 지금이라면, 지금의 나라면 답해줄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정작 너는, 이제와서 그 모든 게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처럼 쿨한 척을 하고―

치사해. 

울컥하고 링크의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치밀어 올랐다. 

뒤돌아보게 만들고 싶다고, 그런 유치한 생각을 했다. 

"넌 그걸로 괜찮아?" 

정말로 울 이유가 없어?

슬프지 않아?

후회는 없어?

....왜 없겠어. 말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지.

나는 그런 곳에서 죽을 남자가 아니었다.

좀 더 강해져서 내 이름을, 내 힘을 온 세상에 떨쳤을 터였어. 너랑도......

....하지만, 울지 않아.

울 수 없어. 

당연하잖아. 내 싸움은.... 아니, 우리들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눈물을 흘리는 건 모든 것이 끝났을 때, 패배했을 때로 족해. 그러니까―

―――――너 역시 울지마.

링크의 몸이 크게 떨렸다. 그 순간 뚝하고 물방울이 떨어져 뺨을 적셨다. 링크는 서둘러 손등으로 눈가를 훔쳤다. 

쓸데없는 질문이었다. 그야, 괜찮을 리 없지 않은가. 하지만 리발은 울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싸우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울어선 안 된다고. 링크가 살아있기에 자신의 싸움도 끝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었다.

리발이 하려다 그만둔 말을, 링크는 추궁하지 않기로 했다. 아마 그 뒷말을 듣는 날은 평생 오지 않을 거라고, 쓸쓸한 마음 한구석에서 깨닫고 있다. 결국 이게 리발이라는 사내일지도 모른다. 고집쟁이에, 솔직하지 못하고, 자신의 슬픔을 드러내는 걸 죽기보다도 싫어하는 주제에 다른 이의 슬픔은 부정하지 않는. 뭣하면 서툰 위로의 말도 건넬 줄 아는, 그런 사내인 것이다. 

아아, 정말이지 치사하다. 

치사하지만, 역시 치사할 정도로 멋있다.

분하니까, 가끔은 나한테도 폼을 잡게 해줘. 

"운 거 아냐. 이건 빗방울이...." 

아, 그래. 그럼 어쩔 수 없네.

리발은 시큰둥하게 대답하고, 그 이상 말하지 않는다. 링크가 고개를 떨군 채로 어색한 침묵을 견디고 있으면, 말 대신이라는 것처럼 온몸을 감싸는 듯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것은 링크의 앞머리를 헤쳐 붉어진 눈가에 닿는다. 간지럽기도, 따끔하기도 한 느낌에 링크는 고개를 들었다. 크게 한번 심호흡을 하고, 눈을 부릅뜨면――

어느새 비는 그쳐 있었다. 

허세가 들켰을까 하는 걱정은 새삼스럽다. 링크는 구태여 고개를 똑바로 했다.

푸른 눈동자는 다시 흐려지는 일 없이 온전히 그 하늘을 담는다. 마찬가지로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갠 하늘을.

여전히 리발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작별 인사도 배웅도 해주지 않는 거냐고 따지고 싶지만, 사실 링크는 알고 있다. 이 기분 좋은 맞바람이 곧 있으면 등을 미는 순풍으로 변할 거라는 걸. 그때가 되면 떠나지 않으면 안 된다. 아쉬워도, 슬퍼도, 외로워도. 그가 뒤돌아보지 않겠다고 정한 것처럼, 자신도 앞만 보고 나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코 울지 않았다는데도 어째선지 몹시 허기가 졌다. 마을에 돌아가면 무언가 맛있는 걸 해 먹자. 그런 사소한 것부터, 링크는 앞으로의 일들을 생각한다. 취사장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키르에게도 전해줄 말이 있었다. 

바람은 울지 않는다. 그렇지만, 누군가가 흘린 눈물을 거둬갈 수는 있다.

리토의 바람은 이렇게나 따뜻하고, 상냥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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