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다시 태어나다

[리발링크] 오전 8시의 셔터 찬스

잃어버린만큼 새로운 추억을

부엌 창문의 열린 틈에서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온다. 맛있는 냄새가 집안 가득 퍼져 코를 간질인다. 링크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띄우고, 완성된 요리를 접시에 담기 시작한다. 

타반타 밀로 만든 빵에 각종 생선, 고기, 야채, 그리고 부싯돌도 잊지 않고. 언젠가의 임명식에서 제공되었다는 요리를 재현한, 오늘을 위해 링크가 준비한 스페셜 메뉴였다. 

식사는 아직이라는데, 거실에서는 벌써 웃음꽃이 활짝 핀 모양이다. 나중에 무슨 이야기를 나눴냐고 물어보면 짓궂은 동거인은 '네 험담'이라 답할 게 분명하지만, 설령 험담이든 뭐든 좋았다. 지금 그들이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링크는 더 바랄 것 없이 행복했으니까. 

평화로운 시간, 함께 있어 주었으면 하는 사람들, 머무르고 싶은 장소. 원하던 그 모든 것이 눈앞에 있었다. 

찰칵!

이 순간을 영원으로 간직하려는 것처럼, 어디선가 익숙한 셔터음이 들렸다.

...그런 기분이 들었다. 

천천히 눈이 떠진다.

낯익은 천장이 시야에 들어오고, 링크는 자신이 지금까지 꿈을 꾸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나 예전처럼 겁이 나거나 허망한 슬픔에 사로잡히지는 않았다. 방금 그것이 꿈일지라도, 결코 멀리 있는 행복은 아니라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옆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그 무엇보다도 확실한 증거였다.

링크는 침대에 누운 채로 쭈욱 기지개를 켜고, 동거인에게 나른한 아침 인사를 건넨다.

"좋은 아침."

"아아. 일어났어?" 

길게 풀어 헤쳐진 뒷머리를 보아하니 리발 역시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했다. 침대의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무언가를 유심히 보고 있었다. 해먹이 아닌 잠자리는 영 불편하다며 꼬리를 어쩌지도 못하고 안절부절 못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익숙해진 모양이다. 

아침부터 독서라도 하는 걸까 싶어 링크가 곁눈질로 살펴보면, 리발의 손에는 책이 아닌 시커 스톤이 들려있었다. 정확히는, 얼마전 프루아가 개발에 성공해 링크를 비롯한 영걸들 모두에게 선물한 시커 스톤의 레플리카였다.

지금은 본래의 주인, 즉 젤다 공주가 소유 중인 원본을 충실히 재현해낸 그것을, 리발은 꽤나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다. 수많은 신기한 기능 중에서도 그는 특히 하이랄 도감에 관심이 가는 듯했다. 이 하이랄에는 자신이 가보지 못한 곳, 보지 못한 생물이 이렇게나 많다느니, 하늘의 지배자라는 리토의 이름에 수치라느니, 언젠가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고 싶다느니. 어울리지 않게 탐구열을 불태우던 것을 기억한다. 

...아무리 그래도, 이 아침부터 들여다볼 정도로 그게 그렇게 재밌을까, 라는 게 학문과는 담을 쌓은 링크의 솔직한 감상이지만. 

"나 있지, 무지 좋은 꿈을 꿨어."

"헤에."

"어떤 꿈이었을 거 같아?"

"글쎄."

관심을 끌기 위해 던진 말에도 리발의 시선은 시커 스톤에 고정이다. 평소라면 '시커스톤이 나보다 좋냐'고 따지고 들었을 테지만, 시큰둥한 대답이야 언제나의 일이고, 고작 그런 이유로 토라지기엔 오늘 링크의 기분은 매우 좋았다. 이것도 전부 방금 꾼 꿈 덕분이었다. 

"공주님이랑 미파랑 다르케르랑 우르보사랑... 그리고 임파까지. 모두가 우리 집에 놀러 오는 꿈이었어."

여전히 꿈나라인 것처럼 둥실둥실한 목소리가 말한다. 그러자 리발은 갑자기 흥미가 생기기라도 했는지 시커 스톤에서 시선을 거두고 링크를 내려다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씨익 웃는다. 

"과연. " 

"....?"

뭔가 반응이 이상하다. 의아함에 링크가 고개를 갸웃하면, 리발은 아무 것도 아니라며 손을 저었다. 

"이런 얼굴을 한 것도 무리는 아니네, 하고 납득한 것뿐이야."

"뭐?" 

영문을 몰라 되물어보는 링크에게, 리발은 들고 있던 시커 스톤의 화면을 보여준다. 그곳에는――――

!!!???!!?

"자, 잠깐! 왜 남의 잠자는 사진을...!"

"웃기지?"

"웃기지? 가 아니잖아!" 

그야, 웃기다고 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화면 속의 링크는 얼굴 근육의 긴장이 완전히 풀려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으니까. 

링크는 수치심에 정신이 번쩍 들어 재빨리 몸을 일으켜 세웠다. 나무로 된 침대가 삐걱였다. 

"지워줘!"

기세 좋게 달려들어 리발의 시커 스톤에 손을 뻗는다. 어이쿠, 라며 리발이 팔을 높게 위로 뻗어 피하면, 애가 탄 링크는 리발의 가슴께를 투닥이기 시작했다. 

"당장 지워! 지우라고!"

어린애처럼 떼를 쓰는 모습에 리발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는다. 

"알았어, 알았어. 지울 테니까 가만히 있어." 

"어? 어..."

이렇게 쉽게? 라는 의문이 순간 스쳐 지나갔지만, 지워준다면야 불만은 없다. 링크는 리발의 무릎 위에 앉은 채로 얌전히 기다린다. 삑, 삑 하는 익숙한 조작음에 드디어 마음을 놓고 안심한 그 순간――――

찰칵!

".....하!?" 

"오오. 이것도 꽤나 얼빠진 얼굴이군." 

"~~~~~!!! 이제 됐어. 내가 직접 지울 테니까 그거 이리 내놔!"

"가져가 봐. 가져갈 수 있다면의 이야기지만." 

여유만만한 태도에 열이 받는다. 젠장, 그렇다면! 링크는 일단 후퇴를 했다. 침대에서 내려와 사이드 테이블 위에 놓인 자신의 시커 스톤을 집어 든다. 

"....뭐하는 거야."

"나도 찍어주겠어."

"뭐?"

이 전개엔 천하의 리발도 당황한 듯했다.

"그만둬. 찍히는 건 좋아하지 않아." 

자는 사이에 도촬을 당한 링크로서는 정말이지 어처구니가 없는 이유를 대며, 리발이 커다란 날개로 제 얼굴을 가린다. 정면에서 찍기가 어려워지자 링크는 다시 한번 침대에 뛰어들어 옆얼굴을 찍을 기회를 노렸다. 그러나 리발이 반대편으로 돌아누워 버리면 더이상 방도가 없었다. 

링크에게 남은 마지막 수단은 회유였다. 한숨을 푹 내쉬고, 리발의 등을 톡톡 건드리며 말한다. 

"있잖아.... 난 별로 사진 찍히는 거 싫지 않거든? 단지, 찍을 거면 제대로 찍어줬으면 좋겠어."

"...제대로?" 

"잠든 사이에 몰래 찍는 게 아니라, 마음의 준비가 된 상태에서 찍어달라는 거야." 

실제로 링크는 누군가에게 사진을 찍히는 것 자체가 싫은 게 아니었다. 지금까진 줄곧 스스로 찍어야 했으니까, 리발이 기념촬영이라도 해 준다면 오히려 환영이다. 그런데 리발은 생각이 조금 다른 듯했다. 다시 등을 돌려 링크를 응시하고는 뭘 모른다는 투로 말한다. 

"그래선 의미가 없잖아." 

"에?"

"너, 사진을 찍을 때 표정을 짓거나 포즈를 잡거나 하지? 뭐, 그것도 귀여.... 크흠. 웃기니까 싫지는 않은데."

링크가 젤다에게 시커 스톤을 돌려줄 때, 미처 지우지 못한 사진들이 모두의 앞에서 공개되는 일이 있었다. 보코블린 마스크를 쓰고 보코블린 무리에 끼어 발랄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화면 속의 용사를 보고, 젤다 공주는 "이런 캐릭터였던가요?" 라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더랜다. 

갑자기 흑역사가 들춰진 링크는 조용히 앓는 소리를 낸다. 리발은 피식 웃고는 말을 이었다. 

"기왕 사진을 찍을 거라면 좀 더 자연스러운... 꾸미지 않은 모습을 찍고 싶은 거야. 너 스스로도 눈치채지 못하고 지나가 버리는 그런 순간들 말야. 그게 더 기록으로 남겨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

알 것 같기도, 역시 잘 모를 것 같기도...

링크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문득 벽 한구석에 걸려있는 사진을 떠올렸다. 언젠가의 임명식이 끝나고 찍었던, 그러나 영걸들의 위엄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사진이다. 하지만 확실히, 그건 좋은 사진이라고 링크는 생각한다. 특히 리발의 꼴사나운 모습은 그것만으로도 소장가치가 있었다.

자신의 칠칠치 못한 얼굴을 찍고 싶어 한 리발의 마음을, 비로소 알 것 같았다. 

"....그럼 있잖아."

몰래라면, 나도 네 사진 찍어도 돼?

링크가 조심스럽게 꺼낸 질문에, 리발은 잠시 고민하더니 

".....눈치채지 못한 척 정도는 해줄게."

웬일로 순순히 허가를 내렸다. 

링크는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들뜨는 것을 느꼈다. 생각해보면,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순간들이 잔뜩 있었다. 아침에 약한 링크를 위해 아침 식사를 준비할 때라던가, 마을의 아이들과 놀아줄 때라던가. 분명 리발 스스로도 눈치채지 못한, 그의 상냥하고 다정한 모습들. 그것들을 사진에 담아 간직할 수 있다니, 솔깃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거기서, 갑자기 의문이 들었다. 

"넌 왜 기껏 몰래 찍어놓고 나한테 보여준 거야?"

모처럼 자고 있는 사이에 찍었으니까 입만 다물었다면 아무 문제 없이 지나갔을 텐데. 그야, 그 입 다무는 걸 리발이 제일 못하는 거라고 알고는 있지만...

링크의 순수한 의문에, 리발은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심심했으니까."

"결국 그냥 놀리고 싶었을 뿐이잖아!!"

"빨리도 알아챈다."

"~~~~~너 말야!!!"

"아-아. 누구 때문에 아침부터 피곤하군. 다시 잘까나." 

"진짜 누구 때문이냐고!"

링크가 옆에서 열을 내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벌러덩 드러누운 리발은 정말로 다시 잠자리에 들 기세다. 눈을 감고 고른 숨소리를 내쉬는 태평한 모습에 링크는 기가 찼다. 

그리곤 곧 깨닫는다. 

눈앞에는 리발의 잘생긴 무방비한 얼굴이.

제 손에는 아직 시커 스톤이 들려있다는 사실을. 

"............"

꿀꺽, 마른 침을 삼키고 천천-히 시커 스톤을 들어 리발을 향한다. 이제, 초점이 맞았을 때 재빨리 셔터를 누르기만 하면――――

"우왓!?"

바로 그 순간, 리발이 있는 힘껏 링크를 끌어당겼다. 그 기세에 셔터가 눌려 사진이 찍히기는 했지만 이미 리발의 품안에 안긴 뒤라 출력된 것은 새까만 화면뿐이었다. 

"....눈치채지 못한 척해주는 거 아니었냐구. 거짓말쟁이."

가슴께에 얼굴을 묻고 있는 탓에 투덜대는 목소리는 웅얼거릴 뿐이라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다. 리발은 쿡쿡 웃으며 링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렇게 쉽게는 안 되지. 너무 게을러진 거 아니야, 용사님?"

놀리는 게 분명한 목소리에 분한 기분이 들면서도, 다정한 손길에 금세 또 풀리고 만다. 게다가, 방금까지 자고 있었다는데 어쩐지 졸음이 몰려왔다. 리발에게 안기면 항상 이렇다. 

긴장이 풀린 손에서 시커 스톤이 스르륵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어차피 기회는 앞으로도 많이 있다. 시간만큼은 남아도니, 둘이서 여행을 떠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가보지 못한 장소, 보지 못한 것들. 잃어버린 만큼 새로운 추억을 잔뜩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서두를 필요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지만, 역시.

다음번 눈이 뜨였을 땐, 부디 리발보다 먼저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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