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다시 태어나다

[리발링크] 밤새도록 널 생각해

내가 다시 태어났을 때

밤과 아침의 경계선이 어스름한 푸른 빛으로 번질 무렵, 리발은 눈을 떴다. 

그리워 마지않던, 사랑해 마지않는 리토의 하늘이다. 그런데도 리발은 잠시 현실과 꿈 사이를 방황한다. 그날로부터 벌써 몇 달이나 지났다는데, 그는 여전히 자신이 지금 이 순간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게 믿기 힘들 때가 있었다. 너무 오랫동안 썩어 문드러져 있었기 때문일까. 잠에서 깨어난 직후는 육체의 감각이 다소 둔하고, 두둥실 구름 위를 떠다니는 듯한 기분마저 든다. 

꿈 따위가 아니라고 알려주는 것은, 깃털을 간질이는 누군가의 온기.

리발이 고개를 돌리면, 지근거리에서 금발의 하일리아인이 새근새근 숨을 고르고 있었다. 

"........"

잠만 같이 자는 사이, 라니. 

이 웃기지도 않은 관계는 대체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리발은 지난 날들을 되돌아본다.


하이랄의 공주와 용사가 재앙 가논을 물리친 그날, 과거 영걸이라 불렸던 자들은 백년전의 모습 그대로 되살아났다. 기적이라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그야말로 기적. 하지만 기적적인 생환과 재회의 기쁨도 잠시였다. 하이랄 왕을 비롯해 끝내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 오랜 상처처럼 남은 재앙의 흔적들이라는 현실을 마주하고 나면, 자신들이 지키지 못한 것들의 무게가 느껴져 마음이 무거워질 뿐이었다.

그런 그들을 다잡은 것은, 백년전보다 더욱 강한 마음을 지닌 젤다 공주였다.  분명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 할 수 있는 것을 하자. 하이랄 재건을 향한 공주의 굳은 의지에, 용사와 영걸들은 다시 한번 그녀의 뜻에 동참하기로 했다. 용사는 공주의 호위기사로서 그녀의 곁에 남고, 영걸들은 각자의 고향으로 돌아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을 모색했다. 

리토의 영걸도 예외는 아니었다. 마물 잔당의 처리, 남은 병력의 훈련, 신수의 상태 관리 및 보고. 비록 다른 영걸들처럼 통치자의 입장에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도 남들만큼은 바쁘게 지냈다고 자부한다. 공주와 용사 역시 직접 발로 뛰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하니, 혼자 뒤처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다. 

이미 어둠이 자욱이 내려앉은 밤, 취사장 쪽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이 신경 쓰여 내려다 보면, 그곳엔 하이랄의 용사가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그는 낯익은 푸른색 튜닉이 아닌 간편한 여행자 복장을 하고 냄비 주위를 서성거리고 있다. 그 옆에 공주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리발은 의아함에 고개를 기울였다. 

정작 링크 본인은 태평하게 국자를 휘저으며 인사를 건네는 것이었다. 


"....그래서. 지도를 완벽하게 복원하기 위해 하이랄 전역을 돌고 있다고? 지도는 그 시커 스톤이라는 걸로 볼 수 있는 거 아니었어?" 


대강이나마 자초지종을 들은 리발이 되묻는다. 링크는 갓 만든 주먹밥을 우물거리며 고개만 끄덕이고, 꿀꺽 삼킨 후에야 입을 열었다. 

"그렇긴 한데, 직접 가보지 않으면 등록되지 않는 지명이 있어. 특히 헤브라 지방처럼 인적이 드문 곳."

"흐응. 그럼, 공주 없이 단독행동을 하는 이유는? 그녀를 데려가기엔 위험해서?" 

"음... 그것도 있지만...."


잠시 말을 고른 링크는 머쓱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어느 쪽인가 하면, 공주님의 배려이려나."

"공주의 배려?" 

"한동안은 같이 다녔어. 공주님도 자신의 눈으로 하이랄을 보고 싶어 하셨고. 그런데, 어디를 가든 나를 아는 사람들이 있는 거야. 전에 작은 심부름을 들어줬다거나, 마물을 물리쳐줬다거나, 뭐 이런저런 경위로 알게 된 사람들. 공주님은 그걸 보더니, '왜 하이랄 성에 오기까지 그렇게 시간이 걸렸는지 알 것 같다'며...."

"하! 정곡을 찔렸군."

저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옆길로 새던 용사의 모습은, 메도의 위에서 지켜봤던 리발의 기억에도 있었다. 물론, 마냥 링크를 탓할 수는 없다. 100년의 깊은 잠에서 깨어나 기억을 잃은 링크가 하이랄 성에 오기까지, 많은 용기와 결심을 필요로 한 것을 그들은 안다. 

"별로, 원망하신 건 아니야. 다정한 분이니까.  '어쩌면 그때의 자유로운 여행이 당신의 적성에 딱 맞았는지도 모르겠네요' 라고, 오히려 격려해주셨어."

"과연. 그렇다면 지금 네가 맡은 일은, 확실히 공주의 배려네." 

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언제나 똑같은 무표정으로 묵묵히 공주의 옆을 지키던 그 호위기사가, 사실은 이토록 자유분방한 영혼이었다니. 리발로서는 조금 억울한 기분마저 들었다. 

하지만-


"응. 지금 공주님은 프루아와 함께 연구에 굉장히 열심히셔. 그러니까 나도 하루 빨리 지도를 전부 밝히고, 조금이라도 단서가 될 만한 것들을 찾아서 도움이 되고 싶다고 생각해." 

언제나 남을 위하고, 성실하고 상냥한. 가장 근본적인 부분은 변하지 않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것치곤, 지금 여기서 노닥거리고 있잖아?"

"윽!"


꾸짖음 반, 놀림 반으로 리발이 지적하면 링크는 시선을 피했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누가 묻지도 않은 변명을 줄줄이 늘어놓는다. 


"그치만, 밤이 되면 이동도 힘들고, 해골 마물도 귀찮고... 나도 잠 정도는 제대로 자고 싶단 말이야. 리토의 마을은 공기도 맑고, 카시와의 노랫소리도 기분 좋고, 여관은 조금 비싸지만 좋은 침대가 있고, 게다가..."

"게다가?"

"....리토의 마을에 오면 왠지 안심이 돼."

어딘가 그립달까, 사랑스럽달까...

먼 눈을 하고 중얼거리는 링크를, 리발은 잠자코 바라보았다. 날지도 못하는 하일리아인 주제에 그립기는 무슨, 이라고 토를 달 법도 한데. 사실 썩 나쁜 기분은 들지 않았던 것이다. 자신의 고향에 대해 그렇게 말해주는 게.

그런 리발이 의외였던 걸까. 링크는 조금 신기한 듯이 눈을 깜빡였다. 그리곤 조심스럽게 물었다. 


"있잖아."

"음?"

"별 용건 없어도... 또 와도 돼?"

아직 리발이 영혼인 채로 신수  바・메도의 곁을 지키던 시절. 딱히 용건도 없으면서 메도를 찾아오는 링크에게 매정한 소리를 하거나, 공주가 기다리고 있지 않느냐며 돌려보낸 적이 여럿 있다. 망설이는 등을 밀어주는 게 그 시절 리발의 역할이었고, 또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공주는 무사히 구출되었고, 그 공주마저 링크의 자유로운 여행을 허락하고 있다. 리발에게 뭐라 할 권리는 없었다.

"....네 마음대로 해."

리발의 대답에 링크는 기쁜 듯이 웃었다. 



"그렇다고 바로 다음날 또 오라는 소리는 아니었는데 말이지."

"헤헤..."

문틈으로 빼꼼 들여다보던 링크가 리발의 핀잔에 멋쩍게 웃는다. 여기가 리발의 둥지구나, 라고 넉살을 떨면서 허락도 없이 발을 들여놓는다. 

"칸의 둥지보다도 위에 있다는 건, 리발이 제일 높은 사람이라는 뜻?"

"말 돌리지마. 네가 리토의 마을에 오든 말든 내 알 바 아니지만, 여기는 내 개인적인 공간이다. 내 집에 들어올 때는-"

"그렇게 말할 줄 알고 용건을 만들어 왔지!"

"하아?"


당당하게 선언한 링크가 등 뒤로 숨기고 있던 무언가를 내놓는다 .


"짠! 혹시 너츠 케이크 좋아해?"

"!"

리발은 동요한다. 

단순히 그게 리발이 가장 좋아하는 디저트였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미사의 가게에 레시피가 있길래 만들어봤는데, 같이 먹을 사람이 없잖아. ....괜찮으면, 어때?"

야식은 먹지 않는 주의다. 그러나 그리운 것에 이끌리듯이 손이 멋대로 움직였다. 조금 안도한 듯한, 그러면서도 긴장한 듯한 링크의 시선을 받으며 한입 작게 베어먹는다. 

입안 가득 퍼지는 달콤하고 고소한 맛은, 리발이 기억하는 대로 몹시 익숙한 것이라서. 


"맛이 어때? 처음 만들어 본 거라 자신이-"

"처음 아니야."

"어?"

"네가 나한테 너츠 케이크를 만들어 준 거, 처음 아니라고."

괜한 말을 했다. 내뱉자마자 후회했다. 

링크의 눈이 동그래진다. 곧 그 의미를 파악하고 죄지은 사람처럼 어깨를 움츠렸다. 


"아... 그렇구나. 미안."

저런 얼굴을 보고 싶었던 게 아니다. 사과 따위를 듣고 싶었던 건 더더욱 아니다. 애초에 사과할 일도 아니고. 백년이나 지난 일, 기억을 잃지 않았어도 잊어버렸다 해서 딱히 이상할 것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마음 한편으론 기억해주길 바랬던 걸까. 스스로가 우습고 한심해서, 리발은 다시 한번 속으로 혀를 찼다.   


"다른 건 없어?"

어색한 침묵을 깨뜨린 것은 링크였다. 

"...뭐가."

"내가 너에 대해서 잊어버린 거."

"그걸 나한테 물으면 어떡해."

"그것도 그렇네."

"네가 말해보던지. 넌 뭘 기억하는데?"

"음.... '넌 혼자서 저 신수까지 가지도 못하지? 하하하하!' 라면서 날 놀린 거?" 


어째 가시가 박힌 말투였다. 

"열 받을 정도로 잘 기억하고 있잖아."

"....그 기억 말인데. 그걸로 끝이었어?" 

"무슨 뜻인지 모르겠군."

"아니, 그러니까... 예를 들면 그 후에..."

"과거의 일 따윈 아무래도 좋잖아. 됐으니까 네 얘기나 해봐. 심심풀이 삼아 들어줄 수는 있으니까."

리발이 화제 전환을 시도한다.

링크는 여전히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눈치였지만, 곧 수긍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나마 걸려있던 쓸쓸한 미소를 지우고, 그날 일어난 일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오늘은 있지...."



그 이후로 링크는 밤마다 리발의 둥지를 찾아왔다. 간혹 이삼일씩 텀을 두기도 했지만, 그럴 땐 뼈만 남은 히녹스를 맞닥뜨렸다던가, 사토리 산의 정상에서 산의 주인을 만났다던가 하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잔뜩 쌓여있었다. 

링크가 떠드는 동안 리발은 대체로 활을 손질하거나 화살을 깎았다. 듣는 둥 마는 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듯한 모습에 링크는 볼멘소리를 내기도 하고, 순수한 의문을 입에 담기도 한다. 


"리토족은 밤이 되면 눈이 잘 안 보이는 거 아니었어?" 

"이건 거의 감각으로 하는 거야."

"헤에...."

사실 리발은 나름대로 링크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밤이 되면 눈이 잘 보이지 않는 대신 귀가 예민해지는 그에게, 링크의 조곤조곤한 말소리는 듣기 나쁘지 않았다. 매일 밤 이 시간을 남몰래 기대할 정도로는 말이다.

물론, 항상 그렇게 평화롭기만 한 것은 아니라서.


"그 꼴로 어딜 내 집에 발을 들여!?"


링크가 쫄딱 젖은 생쥐 꼴이 되어 나타났을 때는 리발이 화를 내기도 했다. 


"바다 한가운데에 묻힌 보물상자를 건지려다, 발을 헛디뎌서..."

"바보 아냐?"

시커 스톤의 워프 기능이 없었다면 링크는 진작 죽었을지도 모른다. 기가 찬 리발이었지만, 이대로 저체온증으로 죽게 내버려 둘 수도 없는 노릇. 물을 뚝뚝 흘리는 링크에게 자신의 오래된 스카프를 던져준 다음, 서둘러 취사장으로 향했다. 

잠시 후, 링크가 물기를 다 닦았을 즈음 돌아온 그는 한 손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머그잔을 들고 있었다. 

"후-후-"


리발의 스카프는 링크에겐 너무 크다. 아예 담요처럼 둘러매고 얼굴만 내민 채 핫밀크를 입에 가져다 댄다. 앗 뜨거, 하는 얼빠진 소리를 들은 리발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다 마시면 얼른 가서 자. 감기에 걸렸을지도 모르니까, 비싸더라도 오늘은 반드시 고급 침대를 고르도록 해."

더 설교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일찌감치 여관으로 돌려보내려는데, 링크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잊고 있던 것이 떠올랐다는 표정이다. 

"오늘은 못 묵을지도...."

"어째서."

"루피가 없어." 

나크시 마을의 도박장에서 왕창 잃었... 푸헤취!

".......이 정신 머리 나간 용사가!!!!"


하테노 마을에 있다는 집으로 돌려보낸다던가. 루피를 빌려준다던가. 하다못해 영걸의 권력을 이용해 공짜로 묵게 해달라고 부탁해본다던가.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수 없이 많았을 텐데. 

"좁아..."

"일인용이니까 당연하지."

"아, 별로 불평한 거 아니야! 오히려 따뜻하고 좋아. 고, 고마워." 

같은 해먹에 누워버리면, 이미 후회하기엔 늦은 선택이었다. 

"....너 결혼은 안 해?"

"뭐야, 뜬금없이."

"아니, 일인용이라길래..."

어색함에 쉽사리 잠에 들지 못하는 것은 서로 마찬가지. 리발은 등을 돌리고 눈을 감은 채로 대답한다. 

"백년전에는 혼담이 끊이질 않았는데, 돌아오고부터는 뚝 끊겼어."

"그래도 인기 많을 거 아냐." 

"글쎄. 적어도 지금까지 그런 류의 호감을 표한 이는 없다."

"그건, 다들 리발의 진짜 성격을 알게 되서- 아얏. 농담인데..."

"설령 나한테 마음이 있다고 해도, 이제와서 다가오지 못하겠지."

매일 밤 선객이 있으니까 말야.

".....!!"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짓궃은 한마디였다는 자각은 있다. 

링크의 재미없는 농담에 재미없는 농담으로 되돌려주었을 뿐이라고, 속으로 변명해보지만― 

"먼저 같이 자자고 한 건, 너면서...." 

등에 닿는 뜨거운 숨결에, 리발도 동요하고 만다.  

보이지 않아도 느껴진다. 뾰족하게 솟은 귀를 새빨갛게 물들인 링크가. 


".............."

그 열에 압도된 리발은 반박도, 열의 의미를 묻지도 못하고. 

그저 고른 숨소리가 들릴 때까지, 시끄럽게 뛰는 심장을 달랠 뿐이었다. 


이야기는 서두로 돌아온다.

결국, 이 웃기지도 않는 관계의 시작은 자신이었다. 리발은 깊게 한숨을 내쉰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도 그 날의 제안은 다분히 충동적인 것이었다. 이제와 이유를 생각해도 그저 그러고 싶었다는 답 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래, 이를테면― 

"으음..."

차가운 새벽 공기에 노출된 링크의 어깨를 자신의 날개로 감싸주고 싶은, 그런 충동과도 비슷했다.

리발은 자기도 모르게 뻗었던 한쪽 손을 거두고, 링크가 깨지 않도록 조용히 몸을 일으켜세운다. 

문자 그대로 잠만 같이 자는 사이가 된지 벌써 이주일이 지났지만, 항상 링크가 깨기 전에 자리를 뜨기 때문에 같이 아침을 맞은 적은 없다. 그에 대해선 어느 쪽도 언급하지 않고 지내고 있다. 링크는 밤이 되면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리토의 마을에 나타나고, 리발도 아무렇지 않게 맞아준다. 언제나처럼 이야기를 나누고, 누가 먼저 권하지 않아도 같이 잠자리에 든다. 일종의 불문율이었다. 

그러니까 분명, 이것으로 좋을 터이다. 

그렇게 스스로를 타이른 리발이 해먹을 떠나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날개를 붙잡혔다. 

천천히 눈만 움직여 아래를 보면, 자신의 것보다 몇 뼘은 작은 하일리아인의 조그만 손이 리발의 손가락 하나를 감싸듯이 쥐고 있었다. 

전해져오는 체온이 타는 것처럼 뜨겁다. 리발은 링크의 얼굴을 보는 것이 두려웠다. 지금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야 뻔한데. 그때와 마찬가지로 귀까지 붉게 물들이고 있겠지. 하지만 그걸 마주하고 나면, 돌이킬 수 없게 된다. 도망가지 못하게 된다. 이번에야말로 선을 넘고 만다. 그런 예감이 들었던 리발은― 

끝내 그 손을 뿌리치고 말았다. 



늦은 오후, 비행훈련장에서 머리를 식히고 돌아온 리발은 언제나처럼 활을 손질하며 링크가 나타나길 기다렸다.

그러나 그날 밤도, 그 다음날 밤도, 일주일이 지나도. 링크가 리발의 둥지를 찾아오는 일은 없었다.


"여어, 메도."

화창한 날씨와는 거리가 먼 오후, 리발은 자신의 오랜 파트너를 찾았다. 최상층의 중앙에 사뿐히 착지해 익숙한 손놀림으로 메인 단말을 쓸는다. 제법 먼지가 쌓여있었다. 

재앙 가논과의 마지막 결전에서 사명을 다한 기계 새는 푸른 빛을 잃고 더 이상 큰 소리로 울지도, 하늘을 날지도 않는다. 그저 리토 마을 위에서 날개를 쉬고 있을 뿐. 하지만, 살아 있다. 애초부터 기계에 불과하니 살아있다는 것도 이상하지만, 적어도 리발은 메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귀로 듣는 물리적인 목소리가 아닌, 정신과 정신이 이어진 감각에 가까웠다. 

그런데 어째 오늘은 영 대답이 없다. 리발은 쓴웃음을 지었다.

"미안해. 나도 그동안 이리저리 바빴어서 말이야."

오래동안 찾지 않은 것에 대한 사죄를 입에 담으면, 메도가 기다렸다는 듯이 대꾸한다. 리발이 눈을 깜빡이는 그 짧은 찰나, 일련의 이미지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늦은 밤 나타나 이야기보따리를 늘어놓는 하일리아인. 그 옆에서 희미한 미소를 띤 채 활을 손질하는 리토. 같은 해먹에 누워 잠자리를 청하는 두 사람. 

"....너 내가 그거 하지 말랬지. 엄연한 사생활 침해라고."

잊고 있었다. 이 기계 새가 전부 보고 있다는 것을. 그런 주제에 주인을 닮아 성격이 나쁘기까지 하다는 것을. 

꽤 한가해 보이던데? 라고 묻는 그 속뜻을 리발이 모를 리가 없었다. 괜히 한번 한숨을 쉬고 시인한다.

"그래, 인정할게. 바빴던 게 아니라... 난 널 피하고 있었을 지도 몰라, 메도."

메도의 위에 서면 아무래도 감상에 젖게 된다. 이 위에서 보냈던 수많은 밤들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온 하늘을 독차지한 것만 같았던 자유의 밤. 몸과 영혼이 묶인 채 그저 견뎌야 했던 고통과 고독의 밤. 망설이는 등을 밀어주고 다가오는 마지막을 기다린, 동트기 전의 가장 어두웠던 밤.

그것들을 전부 거슬러 올라가면, 아주 오래된 기억이 하나 있다.

숨조차 쉬기 힘든 고공이다. 거센 바람이 분다. "에취." 작은 재채기 소리에 리토가 고개를 돌린다. 뾰족한 귀를 붉게 물들인 하일리아인이 코를 훌쩍인다. 리토는 조심스레 제 날개를 올렸다가, 혀를 차면서 다시 내린다. 대신 자신의 스카프를 벗어 하일리아인에게 건넨다. "...고마워". 그 이상의 말은 들리지 않는다. 달빛만이 비추는 어둠 속, 그저 서로의 곁에 있을 뿐. 그런데도, 그런 침묵마저 묘하게 기분이 좋아서. 리토는 생각한다. 아침 따위 오지 않으면 좋을 텐데, 라고. 

우스운 일이었다. 밤이 되면 눈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주제에, 밝지 않는 밤을 바라다니.

대체 언제적 일을 끄집어내는 거야, 라는 핀잔은 차마 나오지 않았다. 반박해본들 메도는 비웃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게, 이렇게 될 걸 알면서도 메도를 찾아온 건 다름 아닌 리발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신은, 이제와서 감상에 젖고 싶었던 걸까? 그 밤이 그리웠던 걸까? 

"...모르겠어."

변명이 아니라, 얼버무린 게 아니라. 정말 그랬다.

하늘을 올려다본다. 제 복잡한 마음을 대변하는 것처럼 구름이 잔뜩 끼어있었다. 그 사이로 겨우 보이는 한 줄기 빛을 향해 손을 뻗는다. 

"모르겠어, 내가 뭘 하고 싶은지. 그 녀석을 붙잡고 싶은 건지. 나한테,"

뻗었던 손이, 힘없이 아래로 떨어진다.

―――――그럴 자격이나 있는지.

백년전에도 비슷한 의문을 가진 적이 있다. 재앙 가논 토벌의 주역을 맡지 못해 분통을 터뜨리던, 아직은 치기 어린 시절이다.

지금과 달리 그때 리발의 답은 명쾌한 "yes" 였다. 퇴마의 검 따위 없어도 나라면 할 수 있다. 평생을 노력해왔다. 나에겐 자격이 있다. 그런 확신과 자신감에 차 공주의 힘이 깨어나지 않는다 한들 조바심은 나지 않았다. 여차하면 자신이 재앙을 물리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날의 패배, 그리고 죽음이 있기까지는. 

자신은 그런 곳에서 죽을 사내가 아니었다고, 리발은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야 물론 이유를 대라면 얼마든지 댈 수 있다. 방심했다던가, 어둡고 비가 온 탓에 시야가 좋지 않았다던가. 하지만 그 어느 것도 리발을 납득시키지 못했다. 죽고 나서 처음 몇년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고민 끝에 나온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그냥 거기서 죽을 운명이었던 거다.

결국 리발이 메도 안에 갖혀지낸 백년간은, 운명 앞에 자신의 무력함을 마주하는 시간이었다.

영혼이 해방된 후라고 다를 건 없었다. 끝내 해내고야 만 공주와 용사를 보면서, 운명에 선택받은 자들과 자신의 차이를 뼈저리게 느낄 뿐이었다. 

미련을 가져봤자 어쩔 수 없다. 그러니까 오히려 '후회 따위 없다'고 단언하면서, 폼을 잡으며 떠날 생각이었다. 

그런데 되살아나고 말았다.

이건 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운명의 장난? 하일리아 여신의 변덕? 설마, 나한테도 기회가 있다고? 

기대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기대했기 때문에 오랜만에 만난 링크에게 말을 걸었다. 집안으로 들였다. 매일 밤 그가 오는 것을 기다렸다. 같은 해먹에 누워 밤을 보냈다. 그렇게 기대한 주제에, 막상 링크가 건넨 손을 잡지 않은 건―― 

"무서웠으니까."

한심하지? 자조하듯 리발이 푸스스 웃는다.  

"하지만 말야, 메도. 난 이미 알아버렸어. 기대할 만큼 기대하고, 결국 운명에 버림 받을 때의 비참함을. 그러니까, 전부 없었던 일로 하는 편이 좋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거야. 나에게도, 그 녀석에게도."

과연 그럴까?

겨우 마음의 정리가 되었다는데, 토를 다는 머리속 목소리가 성가시다. 

"이 이상 쓰잘데기 없는 소리하면-" 

또 방치하려고?

그러다 너 없는 사이에 침입자가 다녀가도 난 몰라. 

".....?"

뜬금없는 협박을 하는 메도에 기분 나쁜 예감이 든다. 이어지는 메도의 목소리에는 짓궂은 웃음이 서려 있었다.

아니, 이미 여러번 다녀갔던가. 


"리, 리발...."

그날 밤, 메도가 보여준 대로 메도의 위에 나타난 링크는 리발을 보자마자 굳어버렸다.

"알고 있었어?" 

"....조심하는 게 좋아. 메도 녀석, 전부 보고 있거든."

나도 당해봐서 알지. 덧붙이자 링크의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들키고 싶지 않은 일들이 또 뭐가 있었을지 궁금해지지만, 당장 알고 싶은 건 링크가 리발 앞에서 자취를 감춘 동안 사실은 매일같이 메도를 찾은 이유다. 날카로운 추궁의 눈빛에 링크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하는 수 없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기억이 돌아올까, 해서...."

확신이 필요했어. 그럼 너한테 따지기라도 할 수 있을 테니까.

"어렴풋이 떠오르는 기억이 있어. 숨 조차 쉬기 힘든 높은 밤하늘 속, 메도의 위에서. 누군가와,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뭘 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어. 어쩌면 별일 없었는지도. ....그런데, 그런데도 말야. 그런 침묵마저 기분 좋은 거 있잖아.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 하고 나도 모르게 바라게 되는. 그런 두루뭉술한 기억 뿐이라 도저히 남한테 말하지도 못하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사실이라면... 날지 못하는 내가 메도 위에 있었다는 건 분명...." 

말꼬리를 흐린 링크가 리발의 눈치를 살핀다. 제법 근접했지만 여전히 결정적인 확신이 없는 모습에 리발은 내심 안도한다. 오늘 리발이 여기서 링크를 기다린 건 모든 것을 끝내기 위해서다.

기억이 완전하지 않다면 기억하는 쪽에서 부정해버리면 된다. 서로를 위해서, 전부 없었던 일로 해버리는 거다. 

"안됐지만―"

리발이 부리를 연 그 순간이었다. 

"....!?"

별안간 링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크게 숨을 들이킨다. 그대로 혼자 시간이 멈춘 것처럼 정지한다. 마치, 모든 것을 기억해내듯이. 

지나간 시간이 한꺼번에 덮쳐오는 그 찰나의 순간을, 리발은 알고 있다.

"메도!!!!" 

당했다. 리발은 제 부주의를 탓한다. 메도가 링크에게 자신에게 한 것과 똑같은 짓을 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는데. 게다가, 하지 못한 게 아니라 안 했을 뿐이라면 지금까지 몇번이고 기회가 있었다는 얘기다. 그걸 하필 이 타이밍에 저질렀다는 것은- 

"....왜, 알려주지 않아?"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의 링크와 마주한다. 

리발이 우려했던 대로다.

마주하고 나면, 도망갈 수 없는 것이다. 

"등에 태워준 거, 그게 처음이었잖아. 나 그때 무지 설렜는데."

"그뿐만이 아니야."

"너츠 케이크, 맛있다고 해줘서 기뻤어."

"우리, 싸울 땐 의외로 합이 잘 맞았지."

"헤브라 산의 정상에서 본 오로라, 예뻤어."

"별의 조각을 주우러 가자는 내 부탁도 들어주고 말야."

"역시, 나쁘기만 한 관계는 아니었어. 그치?"

전부 없었던 일로 해버리려 했는데. 

떨리는 목소리가 중구난방으로 되짚은 기억들이, 대체 왜 그리 선명했는지.

"그래서?"

리발의 마지막 발악이었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에, 링크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되물어본다. 

"그래서라니...?"

"기억 나서 달라질 게 있어? 그래서 우리가 그때 연인 사이라도 되었나? 아니잖아. 네가 말해봐, 링크. 그깟 기억 몇개 되찾아서, 대체 뭘 어쩌고 싶은지!"

'그깟 기억.'

링크가 허망한 얼굴로 고개를 떨구면, 그 한마디가 부메랑처럼 돌아와 리발의 가슴에도 박혔다.

"....일단."

이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했을 때, 링크가 고개를 들었다. 어찌나 세게 쥐었는지 부들부들 떨리는 주먹을 움켜쥐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성큼성큼 다가오는 링크의 모습에, 리발은 질끈 눈을 감았다. 피하려면 충분히 피할 수 있는 거리지만, 어째서인지 그 자리에 뿌리가 박힌 것처럼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맞아도 싸다고 스스로 인정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코 앞에서 링크가 걸음을 멈춘다. 크게 숨을 들이쉰다.

다음 순간 리발의 부리에 닿은 것은, 주먹이 아닌 부드러운 입술이었다. 

"이, 이러고 싶어." 

리발의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가운데, 링크가 천천히 까치발을 내린다.

"당연하잖아. 줄곧 무서웠어. 혹시 내가 착각한 거면 어쩌지. 정말 아무 일도 없었으면 어떡하지, 하고. 착각이 아니었다고 알게 돼서, 나 지금 무지 기쁘단 말야." 

"...아니, 사실은 지금도 무서워. 네 말대로, 달라질 게 없다면? 백년전이나 지금이나, 이렇게 느끼는 게 나뿐만이라면?"

"그래도 마음이 시키는 대로 했어. 왜냐면, 정했으니까." 

더 이상 내 감정으로부터 도망가지 않겠다고.

그러니까, 리발.

너도 도망가지 마.


"쿨쩍."

코를 훌쩍이는 소리에 리발의 정신이 돌아온다. 맞지도 않았는데 얼얼할 정도로 멍한 머리 속에선 링크의 말이 되풀이되고 있었다.

――네 감정으로부터 도망가지 마.

그저 감정이 시키는 대로, 리발은 한쪽 날개를 들어 올린다. 그리고 추위에 떠는 어깨를, 이번에야말로 있는 힘껏 끌어안았다. 

"다행이다...."

목덜미에 닿는 뜨거운 숨결.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안도한 듯한 목소리가, 리발의 귀를 간질인다.

"난 또, 내가 백년전이랑 너무 달라져서 싫어진 줄 알고...."

"말해두지만, 넌 백년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멍청하고 서툴다."

"...리발한테만은 듣고 싶지 않은데." 

도저히 방금 맺어진 연인의 대화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대화. 하지만 지금 리발은 쓸데없이 입이라도 놀리지 않으면 도저히 버틸 수 없을 거 같았다.

"링크, 나는...." 

"응."

"사실은, 줄곧...."

"응."

"내가 널 행복하게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푸핫."

끝내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게 되면, 링크는 웃음을 터뜨렸다. 

"너 우는 거 처음 봐."

"...싫어졌어?" 

어린애같은 질문에, 링크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으응. 살다 보면 울고 싶을 때도 있는 거잖아. 슬퍼서든, 기뻐서든. 다 울고 나면, 그땐 웃을 일만 남지 않을까? 그런 일도 있었지, 하고 같이 기억해주는 상대가 있다면 더더욱 말이야. 그러니까... 이왕이면, 행복하게 해주는 게 아니라 함께 행복해지자! 함께 울거나 웃거나 하면서. 어때?"

리발은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미래였다. 그러나 곧 깨닫는다. 줄곧 바래왔던 미래라고. 너무도 매력적이라 감히 바래도 되는 것인지 몰랐을 뿐. 

"....좋네, 그거."

마음에 들어. 속삭이면서, 다시 한번 링크를 끌어안았다.

운명에 선택받지 못해도 좋다. 영원히 반복되는 용사와 공주와 마왕의 이야기 속에서 단 한번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라 해도 좋다. 그렇다면 어차피 이번 삶이 리발이 가진 전부일 테니. 이번에야말로 후회가 남지 않도록, 자신의 전부를 걸어 사랑하면 되는 것이다.


밤과 아침의 경계선이 어스름한 푸른 빛으로 번질 무렵, 리발은 눈을 떴다. 평소와 다른 점이 있다면,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보인 게 리토의 하늘이 아닌 낯선 천장이라는 점이다. 

해먹이 아닌 침대에서의 잠자리는 리발의 생각만큼 불편하진 않았지만, 역시 익숙하지 않았다. 이곳저곳 쑤시는 몸을 일으켜 기지개를 켠 다음 집 밖을 나선다. 탁 트인 경치가 그리워 지붕 위로 날아오르면, 역시나 익숙하지 않은 풍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링크의 고향, 하테노 마을.

어젠 그렇게 시끌벅적 했다는데, 새벽에 가까운 이 시간은 조용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리토족을 처음 보는 하일리아인 꼬마들에게 시달린 것을 생각하면 이런 고요함도 나쁘지 않았다. 어제는 결국 깃털이 잔뜩 뽑혀버렸다. '내 깃털을 가져도 되는 건 링크 뿐이니까!' 따위의 말을 해서 놀림을 당한 건 덤이다. 이사 첫날부터 거한 흑역사를 만들고 말았다. 

끼익,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부스스한 머리를 하고 나타난 링크가 눈을 비비며 볼멘소리를 낸다. 

"꼭 그렇게 새벽같이 일어나야 해? 내일부터 또 바빠질 테니까, 오늘 하루 정도는 늦잠 자도 좋잖아."

"미안하지만 잠꾸러기인 너랑은 달라서."

"치." 

토라진 표정을 지으면서도 그리운 온기를 찾아 지붕 위로 올라온다. 리발은 말없이 링크의 어깨에 제 날개를 감쌌다. 금세 기분이 풀린 링크는 리발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하테노 마을을 내려다본다. 

"어때? 리토의 마을 만큼은 아니지만 좋은 마을이지?"

"뭐, 나쁘지 않네." 

"...이제와서지만, 정말 괜찮았던 거야?"

넌 누구보다도 리토의 마을을 사랑하잖아. 덧붙이는 링크의 목소리에는 제법 진심 어린 걱정이 어려있었다. 

확실히, 리토의 마을을 떠나는 건 그에게 있어서 커다란 선택이었다. 테바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도 놀란 얼굴을 하거나 아쉬움을 표했다. 리토족은 하이랄에서 유일하게 하늘을 자유롭게 거닐 수 있는 종족이라는데도, 그 조그만 마을을 벗어나는 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한때, 리발이 아직 날갯짓도 제대로 하지 못하던 시절에는, 리리토토호 너머 저 먼 땅에 뭐가 있는지 자신의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그러한 꿈을 마음 한켠에 고이 접어둔 것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그 누구보다도 강한 리토의 전사가 되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말야. 리발은 생각한다. 그건 이미 이뤘잖아?

기왕 얻은 두번째 삶. 조금은 마음이 시키는 대로 살아도 나쁘지 않을 터다. 

"별로, 어디라도 좋았어. 하이랄에는 내가 보지 못한 것들이 아주 많은 모양이니까. 그래, 나크시 마을이란 곳엔 따뜻한 바다가 있다며. 아, 그리고 네가 건설을 도왔다는 시자기 마을? 거기도 가보고 싶네."

링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매일 밤처럼 찾아와 주절주절 모험담을 늘어놓았던 주제에, 설마 리발이 그걸 다 기억하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던 모양이다. 이제 명실상부 연인인데 신용이 없어도 너무 없군. 리발은 쓴웃음을 지었다. 

"내 말은, 집이나 목적지 같은 건 어디라도 상관 없다는 거야."

"에?"

"내가 돌아갈 곳은, 언제라도 네 곁이라고 정했으니까." 

".....!"

링크의 얼굴이 붉어진다. 하늘을 닮은 예쁜 눈동자에 눈물이 고이는가 싶더니, 곧 이슬을 머금은 꽃이 피듯이 수줍게 웃었다. 

리발 역시 눈을 가늘게 뜬다. 이토록 감정표현이 풍부한 링크도, 솔직하게 마음을 표현하는 스스로도 아직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익숙해지고 싶다고 생각한다. 링크가 말했던 대로, 함께 울고 웃으며 행복해지고 싶다고 생각한다. 

마주 보고 웃은 두 사람은 같이 하늘을 올려다본다. 본격적으로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순간, 리발은 잊고 있던 장면을 떠올렸다. 

링크가 하이랄 성으로 향했던 그 날, 동트기 전의 가장 어두웠던 그 밤. 후회 따위 없다고 단언한 주제에 사실은 밝지 않는 밤을 바랬던 자신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그 앞에 기다리는 아침이 이렇게나 눈부셨던 것이다. 

그리곤 새삼스레 깨닫는다. 자신은 그 아침에 다시 태어난 거라고. 지금, 링크와 함께 맞는 이 아침과 똑같이 눈부신 아침에.

아아, 그렇구나. 

내가 다시 태어났을 때, 그곳엔 이미 네가 있었어.

그러니 어찌 돌아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링크가 없으면 날도 밤도 새지 않는다. 그가 리발에게 내일을 준다. 바라건대, 이 삶이 다하는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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