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발링크] Good Morning, Lovebirds
그래서 내가 세 번은 무리라고 했,
Day 1, 7:05am
리발의 아침은 빠르다.
평화를 되찾은 하이랄에서 꼭두새벽부터 순찰을 돌거나 잠자는 시간까지 줄여가며 훈련에 몰두할 필요는 없다는데도, 부지런한 천성이 어디 갈 리 없었다. 결국, 백년전과 다름없이 해가 얼굴을 내밀 무렵엔 이미 기상해 활을 손질하는 게 일상이 되어있었다.
....그럴 터인데.
현재 그는 해먹을 벗어나는 것조차 애를 먹고 있다. 전부, 지난밤 찾아와선 추위를 핑계로 리발의 해먹에 기어들어 온 불청객 때문이었다.
"으응... 내 이불..."
잠꼬대를 중얼거리며 리발의 허리를 붙잡고 도통 놔주질 않는, 이 금발의 하일리아인 말이다.
쪼끄만 게 힘은 또 어찌나 센지. 벌써 몇 분째 씨름 중인 리발이 포기한 듯이 한숨을 내쉰다. 그는 때때로 링크가 정말 자신을 리토의 고급 이불 정도로 생각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럴 마음도 없으면서 애교를 부리며 (※ 리발 시점) 안겨 올 때는 정말이지 죽을 맛이다.
어제밤도 그랬다. 날지 못하는 연인을 위해 리발이 친히 따로 낮게 설치해 둔 해먹을 무시하고 리발의 잠자리에 기어들어 온 것까지는 봐줄 수 있었다. 아니, 오히려 기대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 헌데, 분위기를 잡기도 전에 혼자 곯아떨어지는 게 아닌가!
분명 백년전에는 '링크님은 대체 언제 주무시는지 모르겠다'고 하일리아군 병사들의 걱정을 살 정도였는데. 불과 몇 개월 전까지도 링크는 주야장천 바쁘게 하이랄 각지를 돌고 있었다. 바로 그 덕분에 리발도 지금 여기 살아 숨 쉬고 있다. 그랬던 것이, 밀렸던 잠이 한꺼번에 쏟아지기라도 한 걸까. 용사를 은퇴한 뒤론 아주 못말리는 잠꾸러기가 되어버렸다.
어쩌면 이게 그의 본모습일지도 모른다. 퇴마의 검의 용사라는 운명에서 벗어난, 있는 그대로의 '링크'. 그렇게 생각하면 측은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이대로 좀 더 재우고 싶은 마음 또한 아주 없지 않다. 단지...
그렇다면 적어도 귀여운 얼굴을 보여주었으면 해. 나한테만 보여주는 네 무방비한 얼굴을.
슬쩍 링크의 잠자는 얼굴을 들여다본다. 얼굴 근육이 완전히 풀어져 있는 게 세상을 구한 용사라고는 믿을 수 없는 낯짝이다. 게다가 입가에 질질 흘리고 있는 건....
"........."
귀엽기는 개뿔이. 어째 뭔가 좀 축축하다 했어!
달콤한 말로 상냥하게 깨우고 싶은 마음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리발은 다시 한번 링크를 떼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러나 리발의 힘이 강해질수록 저항하는 링크의 힘도 거세졌다.
"이—거—놔!"
그 순간 해먹이 크게 휘청이고——
쿵!
"아야야.... 어라, 아프지 않네."
"그거야 날 깔고 앉았기 때문이지!!"
"아."
잠이 덜 깬 링크가 멍하니 리발을 내려다본다. 상황 파악이 끝나자 '큰일 났다...' 라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그 이상으로 귀찮음이 역력해 보였다.
그 표정에 부아가 치민 리발이 크게 한번 숨을 들이쉰다.
"너 말야...!!"
"잠깐!"
"!?"
"알았으니까, 그전에."
잔소리 폭격이 날라오기 직전, 링크가 재빨리 두 손으로 리발의 부리를 붙잡았다. 그리곤 얌전하게 다물린 (※ 물리) 그것 위에 제 입술을 떨어뜨린다.
쪽♡
"좋은 아침."
웃는 얼굴엔 침 못 뱉는다던데. 헤헤.....
"........................이 파렴치한!!!!!!!!!"
"아차~ 역효과였나."
울그락불그락 펄펄 뛰는 게 꼭 꼬꼬 같네~ 라고, 어딘가 태평한 생각을 하는 링크였다.
Day 2, 8:30am
"우으...."
현재 링크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이불을 뒤집어 쓴 채로 해먹에 누워있다. 이따금씩 허리의 통증을 토로하며 앓는 소리를 내는 그의 목소리는 묘하게 갈라져 있다.
"..........."
그 아래서 누가 시키지도 않은 정좌 자세를 하고 있는 건 리발이다. 해가 중천에 떴는데도 일어날 생각을 않는 링크에게 잔소리는커녕 찍소리 하나 내지 못하는 것은, 필시 찔리는 구석이 많기 때문이리라.
"....링크. 먹고 싶은 거 있어?"
마침내 리발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링크는 기다렸다는 듯이 이불 속에서 얼굴만 빼꼼 내밀어 답한다.
"맥스연어 뫼니에르."
"하?"
뜬금없는 주문에 리발이 얼굴을 찌푸렸다.
"음유시인네 딸내미도 아니고...."
"아읏."
"!!!"
버릇처럼 토를 달기 무섭게 링크가 신음을 흘렸다. 어젯밤의 비밀스런 정사를 떠올리게 하는, 모르는 사람이 들어도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음색. 리발이 허겁지겁 자리에서 일어난 틈을 타 링크가 결정타를 날린다.
"....그래서 내가 세 번은 무리라고 했,"
"지금 당장 싱싱한 걸로 잡아 올 테니까 기다려!!!"
우당탕 계단 내려가는 소리와 함께 마을 여기저기서 소란이 ("어머!" "우왓, 리발님!?" "꺅!") 일어난다. 그 소리를 배경음악 삼으며 혼자 태평하게 몸을 일으킨 링크는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좋아, 그럼-
"어딜 저리 급하게 가시지? ...여어, 링크."
해먹에서 폴짝 뛰어내린 다음 크게 한번 기지개를 켜고 있으면, 계단을 올라오던 테바와 딱 마주쳤다. 테바가 자세한 사정을 알 리 없다는데도, 어쩐지 민망해진 링크는 눈인사만 한 다음 서둘러 취사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별로, 꾀병을 부린 것은 아니다. 하반신의 피로감은 실재하고, 그게 전적으로 리발의 탓이라는 사실도 변함없다. 단지, 링크가 연기한 것처럼 손가락 하나 까딱 못 할 정도는 아닐 뿐. 이래 봬도 링크는 체력에 자신이 있었다. 이걸 알면 리발은 속았다는 분노보다도 자존심을 상해할지 모르겠다. 어제밤은 그동안의 울분(?)을 풀겠다는 기세로 평소보다 기합이 들어가 있었으니까.
애인을 두고 혼자 곯아떨어지는 나쁜 습관은 링크도 반성하고 있다. 그러니 오늘 아침은, 괜한 장난을 친 것을 포함해 사죄의 의미로 호화스러운 식사를 대접할 생각이다. 메인 요리는 물론 맥스연어 뫼니에르, 그리고 리발이 가장 좋아하는 디저트도 잊지 않고.
"앗! 링크다!"
취사장에는 카시와-하밀라 부부의 다섯 딸들이 냄비를 둘러싸고 앉아 재잘대고 있었다. 제일 먼저 링크를 발견한 장녀 난을 따라 일제히 링크 곁으로 몰려든다.
"링크! 어젠 어디 갔었어?"
"아빠가 링크가 왔다고 했는데, 안 보여서 섭섭했어."
"오늘은 같이 놀 수 있어?"
"링크, 뫼니에르 만들어줘~"
쉴 새 없이 재잘대는 아기새들에 둘러싸여 주춤하면서도, 링크는 한명 한명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미안. 어제는 리발을 달래느라, 아니, 그, 훈련에 동참하느라, 거의 비행훈련장에 있었어."
"리발님!"
리발의 이름에 다섯 자매의 눈이 빛났다. 그러고 보면, 리발 본인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마을 사람 대부분이 리발을 어려워하는 반면 (전설의 영걸님이니 당연한 얘기다), 아이들만은 비교적 허물없이 다가와 주었다고. 그중에서도 이 다섯 자매는 리발이 곤란할 정도로 친화력이 좋았다는 모양이다.
"저번에 있지, 리발님이 딸기를 따다 줬어!"
"노래도 가르쳐줬어!"
"머리도 만지게 해줘!"
"하하. 다들 리발을 좋아하는구나."
"응! 리발님 좋아!"
신이 나 리발을 이야기하는 아이들의 사랑스런 모습에, 링크는 눈을 가늘게 떴다. 아아, 역시 아이들은 솔직해서 귀엽-
"링크는?"
"응?"
"링크도 리발님 좋아해?"
"으응!?"
"좋아해? 좋아해?"
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키르의, 분명 큰 의미는 없는 질문. 저를 올려다보는 다섯 쌍의 순수하고도 천진한 눈빛이 부담스럽다. 결국 링크는 볼을 긁적이다가,
"...좋, 아하려나...."
삑사리 내며 간신히 대답했다.
"링크, 얼굴이 맥스연어처럼 빨개~"
"진짜다!"
"맥스연어 뫼니에르 먹고 싶어~"
맥스연어라는 단어에 겐코가 또다시 뫼니에르를 찾기 시작했다. 화제를 돌릴 절호의 타이밍이었다.
"그, 그럼 내가 만들어 줄-"
"어? 리발님!"
"헉!?"
끼기긱. 경직된 링크가 삐걱대며 뒤를 돌아보면, 양손 가득 맥스연어를 든 리발이 서 있었다.
서, 설마 전부 들었...?
"리발님, 들었어? 링크가 리발님 좋아한대."
"아아."
그리그리의 친절한 확인사살이 아니었어도, 알기 쉽게 올라간 리발의 입꼬리가 이미 모든 걸 알려주고 있었다. 링크와 눈이 마주치면 아주 주체를 못 하겠다는 듯이 대놓고 웃음을 흘린다.
"날 속인 건 괘씸하지만, 좋은 구경을 했으니 봐줄게. 자, 여기 맥스연어."
"윽...."
링크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재료를 받아 든다. "어라, 여기 또 한마리 있네?" 라는 리발이 얄미워 죽을 거 같다.
"...있잖아, 리발님."
"응?"
"리발님은? 리발님도 링크 좋아해?"
"하, 하아?"
"!"
옳지, 잘한다 키르!
나만 당할 수는 없지! 링크의 얼굴에 생기가 돌아왔다. 요리를 그만두고 리발을 응시한다. 아이들 역시 기대 가득한 눈으로 리발을 올려다본다.
"그, 그건...."
본래 솔직하지 못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내다. 평소라면 곧바로 부정의 말이 나왔을 법한데. 링크까지 가세한 눈빛 공격에 차마 얼버무리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아이들에게 약한 사내인 것이다.
그러나 링크보다도 한참 대답에 시간이 걸리자 아이들의 얼굴에 실망의 기색이 엿보이기 시작했다. 키르는 왜인지 눈물이 그렁그렁하고, 측은한 눈을 한 코츠는 링크의 다리를 토닥인다.
"링크, 괜찮아. 코츠는 링크 좋아하니까."
"잠깐! 싫어한다곤 안 했잖아!"
"? 그럼 좋아해?"
"그, 그야 당연히 조, 좋...!"
"얘들아, 두 분을 곤란하게 하면 안 돼. 이리 온."
"!!!!!!!!"
별안간 들려온 어른의 목소리에, 리발과 링크가 동시에 펄쩍 뛰었다.
"엄마, 아빠~!"
끼기긱끼긱. 이번엔 두 명분의 로봇이 삐걱댄다.
저 멀리서 카시와가 쓴웃음을 짓고 있다. 그 옆의 하밀라는 내가 다 부끄럽다는 얼굴로 시선을 피하며 아이들에게 손짓한다. 고개만 숙여 인사한 두 사람이 서둘러 아이들을 데리고 사라지면, 취사장에는 어색한 정적만이 감돌았다.
리발이 토네이도를 써서 메도로 줄행랑을 치고, 링크가 냅다 리리토토 호로 몸을 던진 것은 그로부터 약 10초 후의 일. 리토의 전사와 하일리아인 용사의 서툰 연애를 그린 소위 '얼레리꼴레리' 노래가 리토 마을에 전해져 내려오는 것은 한참 더 먼 훗날의 이야기다.
Day 3, 6:45am
오늘은 링크가 리토의 마을을 떠나는 날. 잠자는 시간마저 아까웠던 것일까, 유난히 일찍 눈이 떠졌다.
기왕 일찍 일어난 거, 오늘이야말로 호화스러운 아침 식사를 준비하려 했는데. 눈앞에서 새근새근 숨소리를 고르며 잠들어 있는 사내가, 그 커다란 날개로 링크의 허리를 감싼 채 도통 놔주질 않는다. 리발이 자신보다 늦잠을 자다니. 별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링크는 얌전히 안겨 리발의 잠든 얼굴을 바라본다. 어쩌면 리발은 반대로 링크와의 아침을 만끽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서로 표현은 달라도 같은 마음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기뻤다.
".........."
마음이 벅차오르고, 어떠한 충동에 휩싸인다. 임기응변에 가까웠던 이틀 전의 그것과 달리 이번엔 제대로 진심을 담아, 천천히 얼굴을 가까이한다.
"....아침부터 그렇게 들여다보고. 구멍 뚫리겠어."
"!!!"
입술이 부리에 닿기 직전이었다. 지그시 떠진 청록색 눈동자가 흥미진진하게 빛난다. 링크는 서둘러 변명했다.
"자, 잠꼬대를 하길래..."
"흐응. 내가 뭐라 했는데?"
되물어 보는 것 치곤 1도 안 믿는 눈치였다. 그러나 이미 내뱉은 변명. 이제와서 아니라고 하기도 뭣하다. 링크는 잠시 고민하고,
"...'링크, 사랑해' 라고...."
아까보다 더한 무리수를 던졌다. 내뱉어 놓고 바로 속으로 제 머리를 쥐어박는다.
으으, 이래선 아직도 어제 일에 꽁해있는 거 같잖아. 게다가 뭐야, 저 부끄러운 대사는. 리발 녀석, 분명 '하아??? 너야말로 잠꼬대 아냐??' 이러겠지!?
"이런, 그게 들렸나보네."
"......................어?"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다. 링크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의미를 온전히 파악하면, 마음 속이 간질거려 참을 수 없었다. 리발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뭉개진 발음으로 중얼댄다.
"방금 그거 치사해...."
"먼저 수작 부린 건 너니까 말야."
"네가 하도 말을 안 하니까 내성이 없는 거 아냐. 다 네 탓이라구."
"난 항상 말하고 있는데?"
"하아?"
별로, 리발의 애정을 의심한 적은 없다. 아주 쪼-끔만 더 표현해줘도 좋을텐데 라고 생각은 하지만. 남들 앞에서 '링크는 내거다!' 라고 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것도 분명 있다. 게다가, 그런 솔직하지 못한 부분마저 귀엽게 느껴질 정도로는, 링크도 리발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래도 거짓말은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웃기고 있네. 네가 언제?"
'사랑해' 라니, 난 한 번도 못 들었어. 꽤 진심으로 토라진 목소리로 링크가 묻는다. 그러자 리발은 짓궃게 웃었다.
"너 잘 때."
"~~~~~~진짜 치사해!!!!"
8:10am
"저기,"
"움직이지 말랬지."
"......"
합, 하고 입을 다문 링크의 고개가 얌전히 정위치로 돌아간다. 현재 그는 리발에게 머리 손질을 받고 있다.
침대 위에서 한참을 투닥대고 난 후에야 두 사람은 아침 식사를 했다. 같이 식기를 정리한 다음 링크는 옷을 갈아입고 짐을 챙겼다. 그리고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리발의 둥지를 나서려는데, 한 손에 빗을 든 리발이 링크를 불러세운 것이었다.
리발에게 머리 손질을 받는 건 오랜만이다. 커다란 손가락이 어쩜 그렇게 섬세하고 세심하게 움직이는지. 요리와 검술 외에 손으로 하는 것엔 영 재주가 없는 링크는 이 순간이 마법 같다고 생각한다. 궁금하고, 보고 싶다. 그래서 자꾸 자기도 모르게 몸을 움직이게 되는데,
"한번만 더 움직이면 네 머리카락 다 뽑아버릴 줄 알아."
아까부터 애인이 진지하기 짝이 없다.
어차피 머리 손질 따위, 좀 더 붙어있기 위한 구실이잖아. 상냥하게 대해줘도 좋지 않아? 링크는 속으로 툴툴대지만, 리발의 완벽주의적 성향을 떠올리고 납득한다. 잘은 몰라도 전통적인 리토의 방식으로 링크의 머리를 땋고 있는 듯했다.
잠시 후, 똑 하고 헤어피스가 끼워지는 소리가 들렸다.
"다 됐어."
"! 고, 고마워."
머리모양이 망가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뒤돌아본다.
리발의 눈이 커다래진다. 자신의 상상 이상이라는 표정이다. 링크가 고개를 갸웃하니 크흠, 하고 헛기침을 한다.
"그럼, 조심해서 가."
"헤?"
자리에서 일어난 리발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날아가 버렸다. 혼자 덩그러니 남은 링크는 입술을 삐죽인다.
"뭐야. 뭐에 쫓기는 사람처럼...."
다정한 배웅 같은 건 바라지도 않았지만. 또 부끄러워서 저러나? 히여간 알다가도 모를 사내이다. 한숨을 푹 내쉰 링크는 이번에야말로 리발의 둥지를 나섰다. 나무로 된 나선계단을 내려가며 마을 주민 모두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둥지마다 걸음을 멈춘다.
"홋호오..."
"오, 오우. 조심해서 가."
"...조만간 또 뵐 것 같군요, 근위기사님."
"어머! 아, 안녕히 가세요."
"왐마야."
차례대로 칸, 테바, 카시와, 벨라, 하츠이다. 하나같이 링크를 보자마자 놀란 얼굴을 하거나,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
뭐지. 나 뭔가 이상한 말 했나? 내 얼굴에 뭐가 묻었나?
....설마, 리발 녀석이 내 머리에 이상한 짓이라도 했나!?
뒤늦게 찾아온 나쁜 예감에, 링크는 가장 가까운 가게로 뛰어들어갔다. 방어구점의 하크 역시 링크를 보곤 일순 놀라더니, 휘익 하고 휘파람을 불었다.
"드디어 드렸나 보네. 만들어드린지 벌써 꽤 됐는데."
"??? 하크, 거울 좀 보여주세요."
"엥? ....설마 모르고 있는 거야?"
리발님도 참.... 어이가 없다는 듯이 중얼거린 하크가 거울을 내밀었다. 링크는 여전히 영문을 모르는 채로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본다.
"!!!!"
처음 보는 깃털장식이 있었다. 리토의 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설조의 흰색 깃털장식이 아닌, 짙은 남색의 깃털장식이다. 밤하늘의 군청을 닮은 그것은 햇살을 받으면 금빛으로 빛나는 링크의 연갈색 머리카락과 절묘한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이런 깃털 색을 가진 것은 백년전이나 지금이나 단 한 사람뿐이다. 그리고, 리토가 자신의 깃털로 만든 물건을 선물하는 의미는 분명....
링크가 정신을 차리고 보면, 웅성거리며 모여든 마을 사람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링크의 얼굴이 맥스연어가 아닌 맥스순무 수준으로 벌겋게 달아오른다.
리발 녀석, 혼자 도망쳤겠다!!! 아니, 그보다...
프러포즈를 했으면 적어도 대답은 들어야 할 거 아니야!
서둘러 인파 속을 헤쳐나간 링크는 들뜬 발걸음으로 정문을 나선다. 향하는 곳은 어디라도 좋았다. 어디에 있든 반드시 찾아낼 테니까. 만나서, 꼭 대답을 들려줄테니까!
잠시 후, 보초를 섰던 기잔이 호들갑을 떨며 돌아오면 여기저기서 "뒷북이야" 라는 핀잔이 날라왔다.
"뭐, 정말 뒷북인 건 리발님 쪽이지만."
"하긴. 이제와서 링크가 리발님 거라고 모르는 사람 없는데 말야.
"아빠. 리발님이랑 링크, 겨론하는 거찌?"
"겨론이 아니라 결혼. 그리고 글쎄다...."
하츠가 하나뿐인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테바를 쳐다본다. 눈이 마주친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저 두 사람이 결혼? 지금도 깨가 쏟아지는데, 결혼하면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의 손발을 사라지게 할지. 상상만 해도 두렵다.
테바는 칸에게로 고개를 돌린다.
"리토와 하일리아인이라니, 이거 전례가 없는 일인데 어떡합니까? 족장님."
"홋호오."
아침의 대부분을 졸면서 보내는 칸도 오늘만큼은 흥미진진하게 눈을 빛내고 있다. 곧 칸의 명령을 받아든 테바가 큰 목소리로 선언한다. 언젠가 머쓱한 얼굴을 하고 돌아올 두 사람을 위해, 리토의 마을도 꽤나 바빠질 것 같다.
"예식 준비나 하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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