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온화상

[리발+젤다+링크] 제멋대로 포지티브

웃는 얼굴엔 침 못 뱉는다던데


별일이라고 생각했다. 타반타 지역의 유적 연구를 위해 리토 마을을 찾은 젤다 공주가, 느닷없이 "할 얘기가 있다"며 나를 불러세우다니. 

아니, 딱히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신수에 관한 일이겠거니 했다. 최근 메도와의 합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아서, 공주를 붙잡고 자랑이라도 늘어놓고 싶은 건 오히려 내 쪽이다. 오늘은 웬일인지 그 호위 기사의 모습도 보이지 않고, 모처럼 상쾌한 기분이었다. 

"링크에 관한 일이예요." 

초장부터 듣고 싶지 않은 이름이 나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

"제가 족장님과 이야기하는 동안, 링크와 단둘이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죠?"

아아, 그때 그 일인가. 내 회심의 걸작, 리발 토네이도를 눈 앞에서 보고도 감탄사 하나 제대로 내뱉지 않은 철가면을 떠올리면 지금도 치가 떨린다. 

...그래서. 이 공주는, 자신의 호위 기사가 나에게 모욕당한 것이 화가 나서 항의라도 하려는 건가? 

어이가 없다. 하여간에 마음에 드는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는 녀석이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알 수 없는 무표정도, 운명에 선택받은 잘나신 용사님이면서 그딴 건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무신경하게 구는 태도도. 분명 이 점에선 공주와도 마음이 맞았을 텐데, 어느샌가 공주도 그 녀석의 마성의 매력인지 뭔지에 넘어간 모양이다. 결국에는 내가 미움을 사는 지경에 이르다니, 정말이지 웃기지도 않―― 

"고마워요, 리발. 당신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하아?

"....그 녀석에 관해서, 공주에게 고맙다는 말을 들을만한 일은 기억에 없는데."

애초에 그런 일이 있을 리 없잖아. 나로선 어떻게 하면 그 잘난 면상을 구길 수 있을까 하는 생각밖에 없다고. 이쯤 되면 바보 취급을 받는 거 같아 기분이 영 좋지 않다. 벌레 씹은 표정을 하고 있다는 자각은 있지만 차마 표정 관리를 하지 못하고 있는데, 공주가 키득 웃음을 터뜨렸다.  

"실은 말이죠..."


"링크. 무슨 고민이라도 있나요?"

갑자기 소나기가 내린 날이었어요. 저희는 성으로 돌아가는 걸음을 잠깐 멈추고, 비가 그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어요. 평소라면 링크는 비를 맞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검술 연습에 몰두했겠지만, 그날은 무슨 일인지 저를 따라 나무 아래에 앉더군요. 골똘히 생각에 잠겨선요. 

링크는 여전히 말수가 적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모를 때가 많지만... 그래도 최근 들어 많이 친해졌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괜한 참견일지 모른다고 알면서도 용기를 내어 무슨 일이냐고 물어봤어요. 링크는 머뭇거렸지만, 이내 저에게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저기까지 갈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가르킨 손가락 끝을 따라가면, 다름 아닌 신수 바・메도였어요. 저는 조금 놀랐어요. 링크는 지금까지 고대 유물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거든요. 여기서만 하는 얘기지만, 링크의 머리 속에는 검술과 먹는 것밖에 없는 것 같다니까요. 그런 그가 이렇게 고민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이유는 묻지 않고, 일단 같이 방법을 생각해봤어요.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역시―― 

 "리발의 등에 태워달라고 하는 건 어떨까요?"

나름 가장 현실성 있고 좋은 방법이라 생각했는데, 링크는 미묘한 표정을 지었더랍니다. ....리발도 '괜한 소리를' 이라는 표정이네요. 하지만 저, 알고 있어요. 만약 링크가 정말로 부탁한다면 흔쾌히 들어줄 거잖아요? ...흔쾌히는 아니라고요? 후후. 어쨌든 들어준다는 얘기죠?

그런데요, 링크의 고민의 이유는 따로 있었어요. 

"모처럼 리발이 승부하자고 해준 건데, 당사자에게 부탁하는 건 모양새가 좀..." 

"승부요?"

저는 깜짝 놀라 되물었어요. 여기선 사정을 묻지 않을 수 없었죠.

"리발이, 메도 위에서 결판을 짓자고..." 

”자, 잠깐만요. 영걸들끼리 싸움이라니. 허락할 수 없어요!"

저도 모르게 큰 목소리를 내고 말았는데, 링크는 아주 단호하게 고개를 젓더군요. 

"싸움이 아닙니다, 공주님. 승부예요."

"다, 다른 건가요?"

절 똑바로 바라보면서 고개를 한번 크게 끄덕이는데, 어찌나 단호하고 진지하던지. 게다가 묘하게 기뻐 보였달까, 들떠 보였달까. 커다란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어요. 그런 링크는 처음 봐서.... 잘은 몰라도 납득할 수밖에 없었어요.

"링크는 그렇게나 리발과 싸... 승부하고 싶은 건가요?"

"...그는 비행술뿐만 아니라 궁술도 다른 리토족과 비교도 할 수 없이 대단하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가까이서 볼 수 있다면..."

"아아. 저도 전에 그가 하늘 높이 날아올라 비행훈련장의 과녁을 모조리 맞추는 것을 본 적이 있어요. 그건 확실히 대단했죠...." 

"엣."

갑자기 망연자실하는 표정을 짓길래, 순간 제가 무언가 실수를 했나 싶었어요.

 

"그건, 언제...."

"네? 음... 두번째로 신수의 조종을 부탁하러 갔을 때요. 그러고 보면, 링크가 호위 기사가 되기 전이었네요."

"......."

"리, 링크?"

"........저도, 보고 싶었...." 

그러면서 제 눈을 피하는 거 아니겠어요!? 뭔가 자기도 좀 아니다 싶었는지 말꼬리를 흐리긴 했는데... 제가 보기엔, 토라져 있었어요. '나도 보고 싶었는데, 혼자만 보고 너무해!' 같은 느낌으로요. 믿기지 않죠? 하지만 정말이에요. 제가 다 무안해질 정도였다니까요.

"아... 그, 그치만! '퇴마의 검의 기사가 내 실력을 보고 자신감을 잃어도, 내겐 책임 없다고?' 같은 말을 했었어요. 그건 즉, 언젠가는 보여준다는 뜻이 아닐까요!? 예를 들면... 그래요, 결전의 순간! 링크와 승부할 그때를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 그런 걸까요?"

"분명 그럴 거예요!"

너, 너무 그런 눈으로 보지 마세요. 그때는 저도 링크를 달래느라 필사적이었다고요. ...네? 방금 그건 성대모사냐고요? 아하하... 아, 아무튼! 다행히 링크는 그걸로 기운을 되찾은 것 같았어요. 꼭 보고 싶다고, 반드시 메도에 갈 방법을 찾겠다고 다시금 의욕을 불태웠죠.

"옥타 풍선을 쓴다던가..."

"묘안이네요. 하지만, 아무리 많이 매달아도 메도까지 버틸 수 있을까요?"

"아니면... 다르케르에게 대포를 빌려 포탄 대신 날아가면...."

"기각이에요! 그런 위험한 짓은 제가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

"뭔가요, 그 시치미 떼는 표정은! 자, 잠깐, 링크!? 눈 돌리지 말고 제대로 대답하세요. 절대 실천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시라고요!"


"하아아....."

질려서 제대로 된 말도 나오지 않는다. 마지막에 가선 만담이 따로 없었다.

메도의 위에서 대결하자고 한 것은, 당연하지만 녀석이 날지 못한다는 것을 골려주기 위한 비아냥이다. 그걸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다니, 순수한 건지 멍청한 건지. 공주도 공주다. 뭘 바보 같은 이야기에 어울려주고 있는 거야. 내게 와서 얘기할 건 또 뭐고? 

"의외로 입이 가볍군?" 

"미안해요! 하지만 저, 리발 덕분에 링크의 새로운 면을 알게 되고 더욱 친해질 수 있었어요. 그래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나는 저어어어언혀 그런 의도 없었지만 말야. 뭐, 공주가 기쁘면 된 거 아냐?"

혀를 쯧, 차고 식어버린 차를 한입에 털어 넣는다. 

"그렇네요. 두 사람도 좋은 친구가 될 것 같아서 저는 기뻐요."

"푸흡!"

이놈의 하일리아인들은 비아냥이란 걸 모르는 건가!? 왜 그런 결론이 되는 거야!!

나와 그 녀석 사이에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는 단어를, 하이랄의 공주는 너무나도 간단히 입에 담아버렸다. 백보 양보해서 그 녀석과 동료로 지내야 하는 건 어쩔 수 없다지만, 친구? 친구우???

그럴 리가 있나! 나는 그 녀석이 마음에 들지 않고, 그 녀석도 나를――

"........."

 

만약, 오늘 공주의 이야기가 전부 사실이라면.


"아닌가요?"

"윽...."

공주가 생글생글 웃으며 대답을 재촉한다. 아아, 너무 그렇게 웃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이거 일부러 이러는 거 아냐? 반대로 눈치 빠른 거 아니냐고.

"....대충 그런 걸로 해둘게." 

웃는 얼굴엔 침 못 뱉는다던데, 그 말이 딱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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